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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야, 순자야, 너 오늘 복 터졌다."
"뭔 소리여?"
"511호 가 봐라. 거기 인도네시아 남자 한 명 들어왔어야. 너한테 목욕 오다 떨어졌다 야. 이 얼매나 큰 복이 터진 것이냐."
"오메나!!!!!!"

비명인 것 같지만 비명은 아니었다. 이때부터 효자병동 로비와 복도 전체가 들썩들썩,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 같은 웃음소리가 회오리바람처럼 몰아치기 시작했다. 웃음소리는 마치 투명한 유리구슬이 수천, 수만 개나 경사진 콘크리트 바닥을 굴러 내려가는 느낌으로 귀를 꽉 채웠다. 세상에 다른 아무것도 없고 오직 그녀들의 웃음소리로만 채워진 것 같았다.

유리 탁자 하나를 가운데로 의자 네 개가 달랑 놓여진 로비를 서성이고 있던 나는 그만 달팍 넘어질 뻔했다. 웃음소리가 너무나 갑작스럽고, 요란하고, 그리고 투명해서 '이 세상'이 아닌 '저 세상'으로 순간이동이라도 해 버린 것 같은 착시와 어지럼증으로 한참이나 허둥거려야 했다. 처음이었다. 태어나서 그렇게도 맑고 경쾌하게 아무런 사심(?)이 없이 그냥 쏟아져 나오는 웃음소리를 들어보기는 처음이었다.

날아가는 새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는 10대 소녀들의 웃음소리와는 격이 다르고 질도 달랐다. 웃음에 가담한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단 두 사람이었다. 간병인들 가운데 비교적 젊다고 할 수 있는 50대 초반이나 되었을까, 중반이나 되었을까, 하여튼 비슷한 또래의 간병인 아주머니 두 사람이 기역자로 휘어지는 복도에서 딱 마주쳤다. 보자마자 한 사람이 너 잘 만났다는 투로 깜짝 입을 열었고, 다른 한 사람이 그 말을 받았고, 그리고 웃음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어안이 벙벙해서 멀뚱히 쳐다보고 있는 나를 뒤로 하고 그들은 예의 511호실로 몰려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에 나왔다. 소리는 이제 없었지만 얼굴에 매달린 웃음꽃을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확실히 한국 사람은 아니네. 근디 인도네시아 사람이 저렇게 까만가?"
"나도 모르지. 그냥 생각난 곳이 인도네시아 뿐이라서."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들은 그제야 나를 발견했다는 듯 목례를 했다. 그리고는 잘 만났다는 투로 성큼 다가서며 "아저씨가 한 번 봐주시오 야?" 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보통 "밑도끝도 없이 뭘 봐달라는 것이냐"는 질문이 먼저 나와야 했지만, 정황상 그 내력을 이미 짐작하고 있는 나로서는 능청이건 내숭이건 그 어떤 돌아가는 길도 써먹어볼 겨를이 없었다. 그저 "아, 예" 하고 냉큼 따라나서야만 할 상황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검은 사람이었다. 반바지에 티셔츠를 입었는데 발가락에서 머리끝까지 온통 시커멓기만 할 뿐 단 한 군데도 다른 색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얼굴은 옻칠이라도 해놓은 것처럼 빛이 났다. 얼핏 보면 아프리카 사람인가 싶기도 했지만 골격이나 외양이 그쪽 사람은 아니었다. 웅크린 채로 눈을 꾹 감고 있어서 가늠하긴 어려웠지만 아리안 계통의 피가 섞인 인도 사람에 가까웠고, 무슨 고행을 하던 중에 쓰러진 게 아닌가 싶었다.

잠시 뒤에 그 남자는 휠체어에 태워졌다. 다른 간병인 한 분이 오고 해서 세 사람이 합동으로 휠체어를 밀며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그러니까 "복이 터졌다"는 말은 처음부터 근거가 없는, 그저 웃자고 해본 말이었던 셈이었다. 한 시간쯤 뒤에 그들은 다시 휠체어를 밀며 목욕탕을 나왔다. 아직도 로비에 무르춤하게 서 있는 나를 보더니 순자(가명)씨가 보고라도 하듯이 한 마디 했다. 옷을 벗겨놓고 보니 속은 하얗더라는 말이었다.

지난 한 달여 동안 효자병동으로 출퇴근을 하다시피 해온 나는 이제 병동의 식구처럼 인식되고 있었다. 그런데도 간병인들이 남자를 목욕시키고자 데려가는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남자 환자나 여자 환자나 구분이 없이 대소변을 받아내고, 약을 챙겨 먹이고, 어떤 경우에는 밥도 떠먹이는 것이 간병인들의 일이었다. 그렇다면 목욕 또한 남자 환자 여자 환자 구분이 없이 으레 그렇게 해 왔을 터이었다.

"남자들 목욕도 다 시킨다는 것을 저는 오늘에야 처음 알았네요?"
"남자 간병인이 없으니께 어쩔 수 없지요."
"남자는 원래 간병인이 없는가요?"
"아니여라. 있어라. 우리 병원만 읎제. 근디 어디나 마찬가지 아닐까 싶네요. 하기사 어떤 남자가 이런 일을 한다고 하겠어요."

순자씨의 그 말이 내 가슴에 맺혔다. 어떤 남자가 이런 일을……. 이 말을 약간 변용하면 이런 말이 가능할 터이다. 남자는 귀족이요 여자는 하인. 귀족이 어찌 하인이 하는 일을 하겠는가. 그렇다면 일자리가 없다는 아우성은 일종의 엄살이 되는 셈이다. 아니다. 좀 더 세세하게 분석해 들어가자면 남자들만 귀족인 것은 아니다.

간병인들은 대부분 중년 이상이었다. 50대가 가장 많고 60대도 꽤 된다. 40대는 눈을 씻고 또 씻은 뒤에 봐야만 겨우 한 명 보일 정도였다. 적어도 내가 보아온 간병인들은 그랬다. 그렇다면 젊은 여자들은 간병인 자격이 없어서 안 하는 것인가? 자격이 없어서 다른 일을 찾고, 또 찾아도 없다고 아우성인 것일까? 모르겠다.

"여자는 누구나 혼자서도 하지만 남자는, 절대로 안 돼요. 위험해서, 사고 날 수 있으니께."
"사고라면, 어떤? 아, 예에," 
"남자는 그렇더만요. 숨쉬는 기력만 있어도 그놈의 것이, 그렇덩만요. 따땃한 물 한 바가지 뿌리고, 두 바가지 뿌리고, 비누칠 하믄 까딱까딱 일어나덩만요."
"아, 그게, 그래요오?"
"그렇더랑게요. 저도 이 일 하믄서 처음 알았네요."
"저도 사실은, 거기까지는 몰랐어요. 남자도 미처 몰랐던 그런 일을, 으흠, 그렇다면 출세 하신 거네요 뭐."
"에헤 출세. 그렇제라. 출세했제라. 남자가 불쌍하다는 것을 알았응게."
"불쌍이요? 하긴, 그것도 틀린 말씀은 아니네요."
"불쌍하제라. 시상에, 을매나 불쌍하요."

한 마디로 말해서 남자의 존재조건 자체가 불쌍하다는 얘기였다. 순자씨는 가끔 그런 식의 이야기로 사람을 움찔 놀라게 하는 독특한 내공이 있었다. 그녀의 그런 말을 듣다 보면 내가 무슨 굉장한 철학이 완성되어 가는 현장에라도 와 있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리 오래지 않은 시절에 카드빚에 몰려 집을 잃고 사람도 잃었다는 사람이었다.

카드를 만들면 좋은 일이 많다고 해서 얼결에 만들었단다. 만들어서 실제로 사용한 것은 딱 두 번이었다고. 그런데 잃어버렸다. 잃어버리고서도 잃은 줄도 모르고 있다가 카드회사에서 보낸 우편물을 보고 알았다. 이름이나 겨우 들어봤을 뿐인 백화점에서 별것별것을 다 샀고, 현금 서비스도 한도액을 꽉 채울 정도로 받은 걸로 되어 있더라는 것이었다.

"오매오매 시상에나 내가 그때 일만 생각허믄 시방도 가심이 벌렁벌렁."

쓰지도 않은 빚을 갚느라 허덕이고 나니 억울하더란다. 억울해서 카드를 새로 만들어서 막 쓰고 다녔다. 원이나 풀어보자고 한 짓이었지만, 원을 풀었다는 느낌도 뭣도 없이 그 재미에 빠져 버렸다. 다시 또 한 번 "오매오매" 소리가 나올 즈음 그녀는 이미 집을 팔아야 할 상황에까지 와 있었단다. 그 뒤로 어찌어찌 마음을 잡고, 간병인 교육을 이수한 다음 방문간병 등의 프리랜서로 일 년을 뛰다가 종합병원에 고용되었다.

그러자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찾아왔다. 정기적으로 수입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안 카드회사 영업사원이 쫓아다니기 시작했다. 집요하게, 사흘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찾아온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야멸차게 거절을 해도 그 영업사원은 거절을 거절로 인식하지 않고 마치 그렇게 살도록 프로그램된 사람처럼 일정한 시간만 지나면 다시 찾아와서 "여기에 사인만 하시면 된다니까 그러시네"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 바람에 순자씨는 '일정한 시간'만 되면 뒤를 자꾸 살피는 버릇이 생겼고, 저기 온다 싶으면 즉각 비품 창고로 숨어버리는 버릇이 추가로 생겼다는 것이다.

"아따 그것도 재밌습디다. 숨어서 킬킬킬 웃는 재미가 어찌나 좋은지."

전개되는 상황을 원망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슬쩍 피해가며 조롱하는 재미, 그것을 누리게 되었다는 얘기였다. 대단하다고 칭찬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었다. 하긴 순자씨의 경우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열 명이 넘는 간병인들 중에서 얼굴에 짜증기를 달고 다니는 사람을 나는 아직까지 본 적이 없었다.

피로에 지쳐서 아무 데나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꾸벅꾸벅 졸다가도 무슨 이상한 기척이 들리면 즉각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데 그 순간의 표정이 가슴에 새겨둘 만했다. 자기가 하는 일이 더럽다거나 짜증스럽다는 생각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표정, 잠에 취한 눈을 있는 힘껏 똥그랗게 뜨고 누구야, 누가 나를 필요로 하는 거야, 하고 좌우를 재빠르게 둘러보는 그 살아 있는 표정 말이다.

그런 모습이 내 딴에는 안쓰러워서 잘난 체를 해본 적이 있었다. 간병인들은 휴게실이 따로 없는가? 왜 그렇게 아무 데나 엉덩이를 걸치고 않아서 삼십여 초씩 혹은 일 분여씩 쪽잠을 자야만 하는 것인가? 청소 노동자들이 휴게실을 만들어달라고 하소연하는 내용의 뉴스를 너무 많이 봤던 탓이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휴게실 문제를 정식 의제로 채택할 것을 권유하는 그런 발언이 내 입에서 자발스럽게 튀어나왔다. 그러자 두 말도 필요 없다는 듯 이구동성으로 한 마디씩만 하고 있었다.

"에이그, 우린 그런 것 필요 없어라."
"아니 왜요?"
"아따 참말로, 여태 보시고도 모르시겄소?"
"그러니까 그게……."

머리를 한참이나 굴리고 나서야 감이 잡혔다. 언제 어디서 누가 나를 필요로 할지 모르는데 휴게실이라니. 휴게실에 편안히 앉아서 눈을 감아봐라. 그냥 푹 골아떨어지고 말 텐데 그런 간병인이 무슨 필요가 있겠느냐, 하는 그런 이야기로 읽혔다.

아, 이것은 좀 복잡한 문제였다. 간병인 제도가 아직은 초기 단계라서 그렇게 간병인들 스스로가 모든 것을 소위 인간적으로만 해석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어쨌든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 아무 불만이 없어 보였다.

불만은커녕 누군가 자신의 손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무한한 긍지를 갖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경쾌하고 투명하게 아무런 사심이 없이 웃을 수 있는 에너지는 결국 자기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한 깊은 애정에서 나오고 있었던 셈이다.


태그:#간병인, #노인병동, #자부심, #애정,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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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것이 일이고 공부인, 공부가 일이고 사는 것이 되는,이 황홀한 경지는 누가 내게 선물하는 정원이 아니라 내 스스로 만들어나가는 우주의 일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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