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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수자 활동가로 일하다 보면 매 순간순간이 커밍아웃이고, 그것이 곧 운동인 경우가 많다. 성소수자에 대한 공부도 하지 않고 성의 없는 질문지를 가지고 인터뷰 하러 온 학부생에게는 따끔하게 몇 마디 하지만 곧 좋은 질문들을 건네주고는 인터뷰를 진행한다. 커밍아웃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인간극장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할 거라 여기며 섭외 욕심으로 가득한 교양 프로그램 작가에게는 한 사람의 가슴 아픈 삶의 이야기를 어떻게 그리 쉽게 꺼낼 수 있느냐며 예의 없다고 일갈한다.

그럼에도 매체에 성소수자를 알리는 작업은 무엇보다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성소수자의 삶을 알릴 필요가 있고, 사회가 함께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말할 기회조차 막히는 경우가 생길 때마다 느끼는 벽은 활동가로서 큰 상처로 다가온다. 그것이 마치 모든 성소수자는 다시 벽장 속으로 들어가 절대 나오지 말라는 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지난 27일, 나는 또 다시 마주한 벽 앞에서 큰 상처를 입었다.

"'동성애 고민'은 선정적 기사"... 네이버 모니터링단의 혐오적 반응

"남자랑 잔 남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사
 "남자랑 잔 남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사
ⓒ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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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중순 경 <오마이뉴스>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을 사회적 상담을 통해 풀어보자는 취지로 마련한 '레인보우 상담실'이라는 기획이 있는데 상담가로 참여해줄 것을 나에게 의뢰한 것이다. 나는 현재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성소수자 정체성 및 청소년 성소수자 관련 상담을 하고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뿐만 아니라 성인인 성소수자 그리고 성소수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이성애자 등에게 성소수자가 갖는 여러 가지 고민을 알리고, 성소수자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제안을 받아 들였다. 그리고 27일 수요일 내가 쓴 첫 번째 상담글이 <오마이뉴스>에 "남자랑 잔 남친...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는 제목을 달고 출고됐다. 그런데 그날 오후 담당 기자로부터 네이버 뉴스캐스트에 3시간 동안 노출이 제한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노출이 제한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모니터링단 의견: 동성애자의 성관계 모습을 지나치게 묘사하였고, 청소년들에게 성정체성의 혼란을 야기시킬 우려가 있습니다. 이에 이 기사는 선정적인 기사로 판단합니다.

뉴스캐스트 운영 가이드에 따라 해당 기사는 3시간 동안 노출이 제한될 예정입니다. 뉴스캐스트 모니터링은 건전한 인터넷 환경 조성을 위해 불가피한 최소한의 조치로 이용자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첫 번째 상담자의 고민은 '군대 시절 남성과 연애 관계가 있었던 남자친구가 양성애자인지?' 그리고 '남자친구가 남자와 연애관계가 있었음에도 양성애자로 인정하지 않는데 괜찮은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이 내용은 질문을 한 상담자뿐만 아니라 당사자도 누구에게 물어보기 곤란하고 혼란스러운 내용이었다. 그리고 특별한 소수의 예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정체성에 대해 세심하게 고민한 사람이라면 겪었을 법도 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런 심각한 고민에 대한 상담 글에 네이버 모니터링단은 "동성애자의 성관계 모습을 지나치게 묘사하였고, 청소년들에게 성정체성의 혼란을 야기 시킬 우려가 있다"며, 지극히 동성애 혐오적인 반응을 보였다.

소수자 인권을 '보편성'으로 평가하나?... 인권감수성 반드시 배워야

네이버 뉴스캐스트 모니터링단 댓글
 네이버 뉴스캐스트 모니터링단 댓글
ⓒ 카페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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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가 네이버 뉴스캐스트 카페에 올라온 위와 같은 모니터링단 의견에 "동성애자의 성관계 모습을 지나치게 묘사했다는 부분이 어디인지 이해하기 어렵"고, "청소년에게 불건전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댓글을 통해 밝히자 '시민모니터링단'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댓글이 다시 달렸다.

시민모니터링단의 재논의 결과 호기심 많은 청소년들이 동성애를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염려되며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어 선정적이라는 의견입니다. 해당기사의 선정성은 이전 판단과 동일한 것으로 결정되었습니다.

'청소년들이 동성애를 보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는 게 염려되며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어 선정적'이라는 문구에 나는 두 번째 상처를 받았다. 홍석천씨가 동성애자로 커밍아웃한 지 11년이 넘었다. 커밍아웃한 게이 영화 감독, 커밍아웃한 레즈비언 정치인이 있고 성소수자 장남이 가족에게 자신의 정체성을 커밍아웃하고 자신의 애인을 가족들에게 소개하며 잘 지낸다는 이야기를 대한민국 대표 드라마 작가 김수현씨가 주말드라마 통해 발표했다.

더불어 평범한 네 명의 커밍아웃한 게이들의 다큐 <종로의 기적>이 6월 2일 극장 개봉을 앞두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에서는 합리적인 이유없이 성적 지향 때문에 평등권을 침해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12번째 성소수자들의 퀴어 퍼레이드가 올해 청계천에서 열린다. 여러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한국사회에서 동성애자는 여전히 성적소수자다. 그런 소수자들의 인권을 '다수의 보편성'으로 이야기하자는 것이 네이버 뉴스캐스트 모니터링단의 의견인지 묻고 싶다. 정말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동성애'에 대해 알 필요도 없으며 이들에겐 '동성애'라는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선정적인가?

모니터링단의 답변에 여러 누리꾼의 항의가 이어지자 시민모니터링단은 한 발 물러섰다. 동성애 차별이 아니라 '선정적인 제목' 때문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이는 영화 <친구사이?>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첫 번째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을 당시와 상황이 흡사하다. 영상물등급위원회는 처음엔 <친구사이?>를 두고 모방위험 정도가 높아 청소년에게 유해하다고 판단했으나 이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자 두 번째 심사에서는 '모방 위험' 정도 보다는 선정성이 높다고만 판단했다. 동성애 차별이 아니라 '선정성' 문제로 물타기 하려는 수순인 것이다. 나는 이런 입장 변화에 세 번째 상처를 받았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모니터링단은 조금 더 솔직해져야 한다. 해당 기사를 제한하면서 밝힌 최초 의견 자체가 동성애에 대한 무지와 편견으로 인한 동성애 혐오를 드러낸 발언이었다는 사실을 밝혀야 한다. 또한 모니터링단의 이러한 발언으로 실제로 상처받고 정체성 혼란을 겪을 청소년 성소수자에게 엄숙히 사과해야 한다. 또한 이 상담을 통해 고민을 해결하고자 했던 상담자가 네이버 모니터링단의 반인권적이고 편협한 판단으로 느꼈을 상처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사과해야 한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모니터링단은 동성애가 선정적이고, 청소년에게 유해한 섹슈얼리티라고 말할 권리가 없다. 또한 모니터링단은 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하고 평등권을 침해하는 발언을 해서도 안 된다. 모니터링단은 무엇보다 먼저 동성애에 대한 혐오적인 시각을 버리고 청소년 성소수자와 이 기사의 상담자에게 진실로 사과해야 할 것이다. 네이버 뉴스캐스트 모니터링단이 성소수자의 인권감수성을 적극적으로 배워 동성애 혐오증으로부터 벗어나길 진심으로 바란다.


태그:#레인보우 상담실, #네이버 , #동성애, #레인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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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에서 활동하는 이종걸 입니다. 성소수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이 공간에서 나누고자 합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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