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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3학년에 올라온 아이들이 네 장의 문제지에 빽빽하게 들어있는 25개 문항의 평가지를 40분 동안 읽고 답하면서 기초학력을 평가받아야 합니다.
▲ 3학년 '읽기' 기초학습진단평가지 전체 모습 갓 3학년에 올라온 아이들이 네 장의 문제지에 빽빽하게 들어있는 25개 문항의 평가지를 40분 동안 읽고 답하면서 기초학력을 평가받아야 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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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2011학년도 모두 네 장으로 된 3학년 '기초학습 진단평가' 읽기 평가 문항지 전체 모습입니다. 읽기 평가지 문항을 보자마자 깜짝 놀랐습니다. 네 장 모두 글씨가 빽빽했습니다. 주어진 글을 읽고 문제를 풀기위해 제시된 글도 열 개나 되었습니다. 아무리 '읽기' 평가라지만 문제지 모습만 봐도 2학년을 갓 마치고 올라온 아이들에게 할 평가지라고 하기에는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이 네 장의 문제지에 빽빽하게 들어있는 25개 문항의 평가지를 40분 동안 읽고 답하면서 기초학력을 평가받아야 합니다. 어른이 읽기만해도 벅찰 정도입니다.

그 다음으로 놀라운 것은 문제의 난이도였습니다. 이번 3학년 진단평가는 4,5학년과 달리 그냥 진단평가가 아니라, '기초학습' 진단평가입니다. 그런데 평가하는 내용과 방법은 '기초학습'이 아닙니다. 그냥 1,2학년의 읽기 성취도를 평가하는 문항으로도 알맞지 않은 매우 어려운 문제가 대부분입니다. 교사들은 대입수학능력평가 문제유형과 비슷하다고도 합니다. 지금부터 3학년 기초학습진단평가 '읽기'평가문항이 갖고 있는 문제점을 하나하나 밝혀보겠습니다.

내용을 획일화시키는 평가문항

다음은 1번 문항입니다.

이런 문제는 ‘항아리’, ‘옷걸이’, ‘발자국’ 그림을 특정한 모양으로 고착시킬 수 있어서 창의성을 죽이는 문제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읽기 1번문항 이런 문제는 ‘항아리’, ‘옷걸이’, ‘발자국’ 그림을 특정한 모양으로 고착시킬 수 있어서 창의성을 죽이는 문제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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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아리', '옷걸이', '발자국' 낱말에 알맞은 그림을 찾아 선으로 잇는 문제인데, 이런 문제는 '항아리', '옷걸이', '발자국' 그림을 특정한 모양으로 고착시킬 수 있어서 창의성을 죽이는 문제의 표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그림에 나오는 발자국은 관념적인 모양일 뿐  실제 주변에서 이런 모양의 발자국을 보기 어렵습니다. 또 항아리는 모양으로만 구별할 수가 없고, 만든 재료를 알아야 구별할 수 있기 때문에 제시된 흑백 그림의 모양으로 항아리라고 하기에는 문제가 많습니다.

그리고 최근 도시중심 아파트 생활을 하는 아이들 집에서는 항아리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1․2학년 '기초학력'으로 왜 아이들에게 항아리를 그림으로 구별하는 것을 평가해야하는지 출제의도가 알맞지 않다고 봅니다.

아이들에게 특정한 낱말의 이미지를 고착화시켜서 창의성을 해치는 문제는 2번과 3번에도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이런 평가방식은 아이들에게 특정한 낱말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킬 위험성이 있습니다.
▲ 읽기 2번과 3번 문항 이런 평가방식은 아이들에게 특정한 낱말의 이미지를 고착화시킬 위험성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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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번은 '떠오르다'와 '생겨나다'와 '이해하다'라는 낱말의 알맞은 뜻을 찾는 문제인데, '떠오르다'는 말뜻이 무척 다양한데, 오직 '기억이 되살아나거나 생각이 나다'로 한 가지로 정답을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해하다'를 '모르는 내용을 잘 알게 되다'로 정답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이해하다'를 잘못 해석하고 있습니다. '이해하다'의 내용을 여러 사전에서 찾아서 종합해 보면 단지 '모르는 내용'을 잘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사리분별하여', '이치를 깨달아'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3번의 '굽다', '담다', '따다'를 나타내는 그림도 왜 이런 그림을 나타내서 아이들에게 '굽다', '담다', '따다'같은 낱말을 아는지를 평가해야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먼저 이 세 가지 낱말은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먼저 움직임을 나타내는 말을 한 장의 그림으로 평가한다는 것이 알맞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림으로 나타낸다하더라도 '굽다'를 보통의 아이들이 경험할 수 없는 생선을 직접 불에 굽는 모습으로 표현해야하는지, '따다'의 알맞은 장면으로 캔 뚜껑을 따는 장면을 나타내 주는 것이 가장 좋았는지, '담다'는 과일바구니에 과일을 담는 모습을 표현해야하는지 출제자는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봐야합니다. 

잘못 출제된 평가문항

14번 문항은 출제자가 문항 자체를 잘못 출제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답이 ③번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정확한 정답이 아닙니다.
▲ 읽기 14번 문항 정답이 ③번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정확한 정답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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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이 ③번이라고 되어있는데, 이는 정확한 정답이 아닙니다. 가장 정확한 정답이 되려면 ③번이 '아기 도깨비는 빨간 고추를 보면 함부로 먹지 않을 것이다'로 되어야 합니다.

1,2학년 어린이의 발달단계를 무시한 평가문항

4번은 출제자가 아이들이 주어진 글을 읽고 글 속에 나와 있는 내용을 구조화 시켜서 이해하는지를 평가하려고 출제한 문제인데, 출제자는 글의 내용을 구조화해서 이해하는 능력을  '기초학력'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의 내용을 구조화시켜서 이해하는 것은 2학년 어린이들의 발달단계로 알맞지 않아서 억지로 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글의 내용을 구조화시켜서 이해하는 것은 2학년 어린이들의 발달단계로 알맞지 않아서 억지로 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 읽기 4번 문항 글의 내용을 구조화시켜서 이해하는 것은 2학년 어린이들의 발달단계로 알맞지 않아서 억지로 하게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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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그래왔듯이 이번에도 1,2학년 기초학력을 평가하면서 평가문항의 유형이 고학년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과연 다음과 같이 묻는 방법이 1,2학년 기초학력을 평가하는데 알맞은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읽기 6번 문항
 읽기 6번 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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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9번 문항
 읽기 9번 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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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13번 문항
 읽기 13번 문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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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으로 볼 때 대부분 보통의 아이들은 이런 문제에서 답은 알고 있어도 문제가 말하고 있는 것을 몰라서 답을 잘 고르지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를 잘 풀려면 이와같은 사지선다형 평가문항을 많이 풀어봐서 문제에 답을 하는 방법을 따로 공부해야 합니다. 이것은 사지선다형 지필평가가 가지는 가장 좋지 못한 점으로 하루빨리 이런 평가방식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답이 한 개가 아닌 평가문항

저학년 아이들을 평가하다보면 정답이 아이들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아이들이 어떤 경험을 하고 있느냐가 정답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인데, 이번 '읽기' 평가 문항을 살펴보니 아이들에 따라 다르게 대답할 수 있는 문항이 여러 개가 있습니다.
8번 문항은 시의 제재를 알아맞히는 문제인데 ④번이 정답이라고 나와 있지만, ①번도 답이 될 수 있습니다. 

22번도 답은 ①이라고 되어있지만, ③도 충분히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답은 ①이라고 되어있지만, ③도 충분히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 읽기 22번 문항 답은 ①이라고 되어있지만, ③도 충분히 정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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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9번, 15번, 18번, 21번, 23번, 25번 문항도 경우에 따라 답이 한 개가 아니고 여러 개일 수 있습니다.

친절하지 않은 평가 문항

23번 평가문항은 아래 사진처럼 4쪽 맨 위에 있습니다. 그런데 평가문항을 보면 '위와 같은'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위'가 아니라 '왼쪽 아래'입니다.

문제지 맨 위에 있는 평가문항에서 ‘위와 같은’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위’가 아니라 ‘왼쪽 아래’입니다.
▲ 읽기 23번 문항 문제지 맨 위에 있는 평가문항에서 ‘위와 같은’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위’가 아니라 ‘왼쪽 아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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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번 문항도 오른쪽 위에 있으면서 왼쪽 아래 글을 보고 문제를 풀게 되어 있습니다. 이런 평가문항은 평가문항 출제에서 가장 최악의 방법입니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평가 문항으로 이런 출제는 하지 말아야합니다.

'읽기'평가와 '수학' 평가가 뒤바뀐 것 같은 평가 문항

12번은 '읽기'를 평가하는 것보다 수학을 평가하는 내용에 더 알맞습니다. '기초수학' 7번 문항은 수학보다 읽기문항에 더 가까워서 혹시 평가지를 편집할 때 실수로 맞바꿔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읽기보다는 수학문제에 가깝습니다.
▲ 읽기 12번 문항 읽기보다는 수학문제에 가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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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문항은 오히려 읽기 문항으로 더 적합합니다.
▲ 기초수학 7번 문항 이 문항은 오히려 읽기 문항으로 더 적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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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살펴봤을 때 3학년 '기초학습진단평가'로 치러진 '읽기' 평가문항은 여러 가지로 3학년 '기초학습진단평가'로 적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출제자가 1,2학년 수준의 읽기 기초학습과 발달단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1,2학습진단평가에서 읽기 평가 방법을 잘 모르고 문항을 출제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런 평가로 3학년 아이들의 기초학습을 진단하게 되면 정상적인 아이들을 부진아로 몰아갈 수밖에 없고, 결국 이런 평가에서 높은 점수를 얻으려고 부모들은 학원에 보낼 수밖에 없습니다. 아이들의 읽기 기초학습능력도 파악하지 못하고 외려 읽기 기초학습능력을 왜곡하는 역할을 하는 이런 진단평가는 하루빨리 사라져야 합니다.  

*관련기사 :기초학력의 '기초' 파악하지 못한 평가
               3학년 '기초수학' 진단평가 문제, 너무 어려워요.


태그:#진단평가, #일제고사, #기초학력, #읽기평가문항분석,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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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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