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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초등학교 3학년 대상 수학 진단평가는 그냥 '수학'이 아니라, '기초'라는 말을 앞에 붙여서 '기초수학' 진단평가입니다. 그러나 전체 문항을 살펴보니 '기초수학'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어렵습니다. 그냥 '수학'이라고 해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또한 1, 2학년의 발달단계에도 알맞지 않고, 수학 교육과정에도 알맞지 않은 문항이 많습니다. 도대체 이 진단평가 문항을 가지고 누가 어떤 근거로 3학년 아이들의 '기초수학'을 평가한다는 것인지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교육과정 내용조차 파악하지 못한 기초수학 평가문항

다음 2번 문항은 그림에서 둥근기둥 모양을 찾는 것입니다.

‘입체도형’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그림이 아닌 실물을 가지고 찾게 해야합니다.
▲ 기초수학 2번문항 ‘입체도형’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그림이 아닌 실물을 가지고 찾게 해야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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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 문항은 출제자가 초등학교 1학년 수학 '입체도형'의 내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출제한 문제로 1학년의 '입체도형' 평가문항으로 알맞지 않습니다. 참고로 '2007년 개정교육과정' 135쪽에 나오는 1학년 '입체도형'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 도형
입체도형의 모양
① 여러 가지 물건을 관찰하여 직육면체, 원기둥, 구의 모양을 찾을 수 있다.
② 여러 가지 모양을 만드는 활동을 통하여 기본적인 입체도형에 대한 감각을 익힌다.

교육과정에 나와 있는 내용을 보면 1학년 아이들에게 '입체도형'을 그림에서 찾아보게 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물인 물건에서 찾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입체도형'에 대한 평가를 제대로 하려면 그림이 아닌 실물을 가지고 찾게 해야 합니다. 평면인 그림에서 찾는 것과 입체인 물건에서 찾는 것은 수학적 사고의 측면에서 완전히 다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2학년에서 '도형'은 쌓기나무로 '입체도형을 구성'하도록 하고 있는데, 문항은 다음과 같이 그림으로 나와 있습니다.

교육과정에는 그림이 아닌 실물로 하게 되어 있는 것을 평가에서는 그림으로 보고 찾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 기초수학 18번 문항 교육과정에는 그림이 아닌 실물로 하게 되어 있는 것을 평가에서는 그림으로 보고 찾게 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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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에서는 실물로 하게 하는 것을 평가에서는 그림을 보고 그림과 똑같이 쌓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 기초수학 수행형 평가문항 교육과정에서는 실물로 하게 하는 것을 평가에서는 그림을 보고 그림과 똑같이 쌓아보게 하고 있습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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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개정교육과정(138쪽)' 2학년 '도형'에서 배워야 할 학습 내용으로, 다음과 같이 나와 있습니다.  

㈏ 도형
입체도형의 구성
① 쌓기나무로 만들어진 입체도형을 보고 똑같이 만들 수 있다.
② 주어진 쌓기나무로 여러 가지 입체도형을 만들 수 있다.

2학년에서 입체도형은 그림이 아닌 입체도형을 보고 똑같이 만드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평가문항에서는 그림을 보고 찾거나 똑같이 만들도록 하고 있습니다. 한술 더 떠서 수행형 2번 문항을 보면 문장으로 된 설명을 읽고 '(1)번과 다른 모양'을 만들어 보게 하고 있습니다. (수행형 문제는 교사가 해당 입체도형을 가지고 있고, 학생에게 도형을 직접 쌓아보게 해 점수를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실물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문장으로 된 설명을 읽고 ‘(1)번과 다른 모양’을 만들어 보게 하고 있습니다. '면과 면이 맞닿도록'이라는 것과 '(1)번과 다른 모양'이라는 말이 아이들에게 수학으로서, 아닌 기초수학으로서 입체도형의 내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합니다.
▲ 기초수학 수행형 평가문항 실물도 아니고 그림도 아닌 문장으로 된 설명을 읽고 ‘(1)번과 다른 모양’을 만들어 보게 하고 있습니다. '면과 면이 맞닿도록'이라는 것과 '(1)번과 다른 모양'이라는 말이 아이들에게 수학으로서, 아닌 기초수학으로서 입체도형의 내용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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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2학년 수학교육과정에 나오는 입체도형을 평가하는 문항으로 더욱 알맞지 않습니다. 특히 '면과 면이 맞닿도록'하는 주어진 조건이 아이들이 이해하기 힘들어서 이 문제는 2학년 아이들의 수학을 평가하는 문제로 더욱 알맞지 않습니다. 

4번은 분수 문제입니다. 분수는 2007년 개정교육과정에서 2학년으로 내려온 것으로 2학년 아이들이 이해하기 아주 버거워 하는 내용입니다. 구체물을 가지고 하는 것도 어려워하는데 이 문항은 그림을 보고 '옳게 나타낸 것'을 찾아보게 합니다.

 분수는 2학년 아이들에게 버거운 내용입니다. 그런데 실물이 아닌 그림으로 분수를 찾아보라고 합니다.
▲ 기초수학 4번문항 분수는 2학년 아이들에게 버거운 내용입니다. 그런데 실물이 아닌 그림으로 분수를 찾아보라고 합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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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수학 교육과정에 나오는 분수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분수의 이해
① 연속량의 등분할을 통하여 분수를 이해하고, 읽고 쓸 수 있다.

사교육을 받지 않은 보통의 2학년 아이들이 분수를 이해하는 것은 힘듭니다. 그래서 분수는 다시 3, 4학년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교사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려진 그림을 보고 분수를 찾게 한다니요? 이런 평가문항 또한 교육과정 내용도 2학년 아이들도 모르고 출제한 문항입니다.

20번 역시 그림을 보고 그림 속에서 원을 찾는 문제입니다.

 1학년 수학 교육과정 내용에는 실물인 물건에서 찾게 하고 있는 것을 역시 그림에서 찾게 하고 있습니다. 수학교과서에도 이와 비슷한 예시문항이 나오는데 이는 교과서 연구자와 집필자가 1학년의 교육과정 내용을 잘못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기초수학 20번문항 1학년 수학 교육과정 내용에는 실물인 물건에서 찾게 하고 있는 것을 역시 그림에서 찾게 하고 있습니다. 수학교과서에도 이와 비슷한 예시문항이 나오는데 이는 교과서 연구자와 집필자가 1학년의 교육과정 내용을 잘못 파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이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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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학년 수학교육과정 내용은 다음과 같이 원을 그림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구체물인 여러 가지 물건에서 찾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문항도 '기초수학'을 평가하는 문항으로 적절하지 않습니다.

평면도형의 모양
① 여러 가지 물건을 관찰하여 사각형, 삼각형, 원의 모양을 찾을 수 있다.
② 구체물을 이용하여 기본적인 평면도형을 만들고, 여러 가지 모양을 꾸밀 수 있다.

다음 7번 문항도 1학년 수학 교육과정에 나오는 '길이' 내용을 제대로 평가하려면 그림이 아닌 실제 아이들의 키를 비교해보는 것으로 평가해야 맞습니다.

 그림이 아닌 실제 아이들이 키를 대로 크다, 작다를 나타내게 하는 것이 교육과정의 내용입니다.
▲ 기초수학 7번 문항 그림이 아닌 실제 아이들이 키를 대로 크다, 작다를 나타내게 하는 것이 교육과정의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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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선다형 지필평가의 최악... '선분'과 '직선' 찾기

3번은 그림을 보고 '직선'을 찾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바로 오직 외워서 정답 하나를 찾는 사지선다형 지필고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 기초수학 3번 문항 이 문제가 바로 오직 외워서 정답 하나를 찾는 사지선다형 지필고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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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분'과 '직선'이라는 용어는 2학년 도형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이 문항을 출제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2학년 아이들에게 '선분'과 '직선'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찾아내게 하는 것이 과연 '기초'로 꼭 필요한 내용인가를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봐야 합니다. 시험을 볼 때 말고는 '선분'과 '직선'을 구분해야 하는 일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2학년 아이들에게 그것을 정확하게 구분해서 알게 해야 하는 것인가요? 이 문제가 바로, 오직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정답 하나를 찾는 사지선다형 지필고사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의 전형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서답형 3번 문항입니다. '종이테이프'를 그림으로 그려 놓고 길이를 재어보라고 합니다. '자를 이용해서 길이를 재어보는 것'이 평가의 목표면 그냥 굵은 선을 그려 놓고 재어보라고 하거나 실제 테이프를 주고 재어보라고 해야지, 굳이 그림으로 그려놓은 가짜 종이테이프를 재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자를 이용해서 길이를 재어보는 것‘이 평가의 목표면 그냥 굵은 선을 그려놓고 재보라고 하거나 실제 테이프를 주고 재게 해야 합니다. 굳이 가짜인 ’종이 테이프‘라는 말을 넣어서 재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 기초수학 서답형 (2)번 문항 ’자를 이용해서 길이를 재어보는 것‘이 평가의 목표면 그냥 굵은 선을 그려놓고 재보라고 하거나 실제 테이프를 주고 재게 해야 합니다. 굳이 가짜인 ’종이 테이프‘라는 말을 넣어서 재라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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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살펴본 3학년 '기초수학' 진단평가 문항에 나타난 가장 큰 문제점은 '기초수학'을 사지선다형 지필평가로, 그것도 전국의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에게 똑같은 문항으로 똑같은 시간에 똑같이 실시하는 일제고사로 치르기 때문입니다.

'기초수학'을 사지선다형 지필평가인 일제고사로 보는 한 아이들의 '기초수학'을 제대로 진단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이런 평가방법으로 평가를 하면 정상인 아이들을 '기초학습 부진아'로 낙인 찍게 만들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태그:#초3기초학습진단평가, #진단평가, #기초수학, #일제고사, #초등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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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년만에 독립한 프리랜서 초등교사. 일놀이공부연구소 대표, 경기마을교육공동체 일놀이공부꿈의학교장, 서울특별시교육청 시민감사관(학사), 교육연구자, 농부, 작가, 강사. 단독저서, '서울형혁신학교 이야기' 외 열세 권, 공저 '혁신학교, 한국 교육의 미래를 열다.'외 이십여 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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