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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학력위조와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로 세상을 떠들썩하게했던 신정아씨가 한 권의 책을 들고 돌아왔다. 자전적 에세이 형식의 책 제목은 <4001>(사월의 책). 책 제목은 신씨가 예일대 박사 학력위조와 미술관 공금횡렴 혐의로 지난 2007년 10월 구속된 이후 1년 6개월간 가슴에 달고 있었던 수인번호다. 

신씨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까지 나의 내밀한 이야기를 일일이 내보여야 하는지 고민스러웠지만, 사실과 다른,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부풀린 이야기들을 바로 잡고 싶었다"며 "'소문속의 나'로 사는 것이 싫었다. 한번쯤은 신정아가 하는 이야기도 들어달라고 조르고 싶었다"고 에세이집을 내게 된 이유를 밝혔다. 이 책의 부제는 '사건 전후', 그녀가 말하는 '그녀의 이야기'다.

"정운찬 총장, 대놓고 내가 좋다고...도덕관념 제로" 

지난 2007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 학력위조 사건 등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신정아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자전적 에세이 '4001' 출간기념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지난 2007년 청와대 정책실장과의 스캔들, 학력위조 사건 등으로 파문을 일으켰던 신정아가 22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자전적 에세이 '4001' 출간기념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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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출판기념회에서 책이 공개되자마자, 책의 내용은 큰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정운찬 전 총리가 언급된 '서울대 교수직 제안 전말기'. 신씨는 "남자들은 지위가 높거나 낮거나, 많이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상관없이 다 똑같은 것 같다. 어떤 남자건 여성을 '인간' 아닌 '여자'로 바라보는 점에서 한결같았다"며 "인격이 있는 분들과는 점잖게 가끔 점심을 하거나 전시회를 보러오는 정도로 좋은 인간관계가 유지되었다. 하지만 도를 넘는 사람도 간혹 있었다. 당시 서울대 총장으로 있던 정운찬 전 총리가 그런 경우였다"고 정 전 총리의 실명을 거론했다.

신씨는 "내 사건이 터진 후 정운찬 당시 총장은 스스로 인터뷰에 나와서, 나를 만나본 일은 있지만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직을 제의한 적은 결코 없다고 해명을 했다"면서 "정 총장의 인터뷰를 보면서 나는 실소가 나왔다. 서울대 교수직이나 관장직 얘기는 둘째 치고, 자신의 이름이 전혀 언급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저렇게 먼저 내 문제를 스스로 들고 나와서 극구 부인하는 모양이, 켕기는 것이 있으니 저러는 게 아닌가 싶었다"고 정 전 총리의 주장을 반박했다.

신씨는 "언론을 통해 보던 정 총장의 인상과 실제로 내가 접한 정 총장의 모습은 너무나 달랐다. '달랐다'의 의미는 혼란스러웠다는 뜻이다"라며 "정 총장은 처음부터 나를 단순히 일 때문에 만나는 것 같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만나려고 일을 핑계로 대는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그 예로 신씨는 "우선 정 총장이 나를 만나자는 때는 늘 밤 10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아무리 지위와 힘이 있다고 해도 나를 밤 10시에 불러내야 할 이유는 없었다"며 "서울대 총장이란 이 나라 최고의 지성으로 존경받는 자리이다. 정 총장이 '존경'을 받고 있다면 존경 받는 이유가 뭔지는 모르지만 내가 보기에는 겉으로만 고상할 뿐 도덕관념은 제로였다"고  정 총장을 정면으로 공격했다.

신씨는 또한 팔레스호텔에 있는 바에 자신을 불러낸 정 총장이 "안주 겸 식사를 시켜놓고서, 필요한 자문을 하는 동안 처음에는 슬쩍슬쩍 내 어깨를 치거나 팔을 건드렸다"며 "훤히 오픈되어 있는 바에서 시중드는 사람들이 수시로 오가는 마당에 그 정도를 성희롱이라고 할 수도 없었고 불쾌한 표정을 짓기도 애매한 상황이었다"고 토로했다.  

이러한 정 전 총리의 태도 때문에 서울대 교수직과 미술관장 제의를 거절했다는 신씨는 "정 총장은 내가 서울대 자리를 거절한 다음부터는 나를 불러야 할 명분이 없어졌다. 그 때문에 바로 다음번에 팔레스호텔에서 만났을 때는 아예 대놓고 내가 좋다고 했다"면서 "앞으로 자주 만나고 싶다고 했고, 심지어 사랑하고 싶은 여자라는 이야기까지 했다"고 썼다.

"…(중략)…나는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하지만 정 총장은 끈질겼다. 한 번은 나와 친한 동아일보의 허아무개 기자가 선배 논설위원과 함께 있다면서 차나 한잔 하자고 연락을 한 적이 있었다. 약속장소에 도착하니 허 기자 일행과 정 총장이 함께 있었다. 팔레스호텔 바에서의 사건이 벌어진 후 내가 계속 전화를 받지 않자 정 총장은 허 기자까지 동원했던 것이다."

신씨는 이후 이른바 '신정아 사건'이 터지고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정 총장과의 통화기록이 수도 없이 나왔고, 그 가운데는 정 총장이 잇달아 여러 통의 전화를 했는데 내가 전혀 받지 않은 기록들도 나왔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정말로 내가 출세하려고 마음먹었다면 정 총장만큼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정운찬 전 총리는 "워낙 황당하고 일방적인 주장이라 대꾸할 가치를 못느낀다"며 "신씨의 주장은 전형적인 노이즈 마케팅"이라고 반박했다.

"조선일보 C기자, 택시 타자마자 윗옷 단추 풀려고..." 

신정아씨는 또 "지금은 기자를 그만둔 조선일보 C기자"에게 겪었던 일도 서술했다. 그는 "기자들을 접대하던 당시 나는 황당한 일을 겪게 되었다. 지금은 기자를 그만둔 조선일보의 C기자가 장본인"이라며 1999년 봄, 금호미술관 큐레이터로 재직했던 때를 떠올렸다. 신씨는 "C기자는 도윤희 선생의 전시를 앞두고 크게 기사를 실어주었고, 전시 오픈에 임박해서는 또 한 번 기사를 써주었다"면서 전시회를 함께 준비한 미술계 인사들, C기자와 함께 하얏트 호텔 헬리콘 바에 가서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전했다.

"일행은 자연스럽게 폭탄주를 마시고 노래를 불렀다. 함께 일어나 노래를 부르다보니 어쩌다 몸이 약간씩 부딪히는 일이 있었는데, C기자는 그럴 때마다 내게 아주 글래머라는 소리를 했다. 화가 치밀었지만, 술자리였고 다들 즐거워하는 분위기여서 맘대로 화를 내기가 어려웠다. 적당히 피해서 나는 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러나 C기자는 계속 나를 끌어당기며 블루스를 추자고 했다…(중략)…C기자는 춤을 추는 게 아니라 아예 더듬기로 한 모양이었다. 허리를 잡는 것까지는 어쩔 수 없었지만, 손이 다른 곳으로 오자 나는 도저히 구역질을 참을 수가 없어서 화장실로 피해버렸다…(중략)…화장실에서 나오는데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C기자는 나를 껴안으려고 했다. 겨우 그를 밀치고 룸에 들어간 나는 정말로 화가 나서 집에 가겠다고 하고 가방을 들고 나와 버렸다…(중략)…호텔 로비에 나와 모범택시를 타는데, C기자와 우리 집의 방향이 같다면서 다들 택시를 같이 타고 가라고 했다."

택시 안에서는 '성추행'에 가까운 일이 일어났다고 썼다.

"C기자는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달려들어 나를 껴안으면서 운전기사가 있건 없건 윗옷 단추를 풀려고 난리를 피웠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그날 내가 입은 재킷은 감색 정장으로 단추가 다섯 개나 달려있었고 안에 입은 와이셔츠도 단추가 목 위까지 잠겨있어 풀기가 아주 어려운 복장이었다. 나는 늘 긴팔 옷을 입고, 셔츠나 블라우스 단추를 끝까지 꽉꽉 채우는 버릇이 있었다…(중략)…C기자는 그 와중에도 왜 그렇게 답답하게 단추를 꼭꼭 잠그고 있느냐는 소리를 했다. 결국 나는 크게 화를 내면서 C기자의 손을 밀치고는 택시 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했다. 기사도 눈치를 챘는지 호텔을 벗어나자마자 길거리에 차를 세워주었다. 택시에서 내린 나는 앞만 보고 죽어라고 뛰었다."

신씨는 "(이후) 가능한 한 골치 아픈 일을 만들지 말고 곤혹스런 상황들을 지혜롭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아예 선머슴이 되기로 했다. 옷도 헐렁한 셔츠만 입었고, 청바지에 운동화만 신고다녔다"며 자신이 바지만 입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C기자는 22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러한 주장을 전면 부인했다. C기자는 "신정아씨의 주장은 악의적인 거짓말"이라며 "신정아씨와 출판사는 물론이고, 명백한 허위사실을 인용보도한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법적대응을 하겠다"고 펄쩍 뛰었다.

"노 대통령, 똥아저씨에게 배신감 느꼈을 것"

학력위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불구속된 신정아씨가 18일 밤 고개를 숙인 채 서울 서부지검을 나서고 있다.
 학력위조 혐의 등으로 검찰에 긴급체포됐다 법원의 구속영장 기각으로 불구속된 신정아씨가 18일 밤 고개를 숙인 채 서울 서부지검을 나서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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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아씨가 '똥(변)아저씨'라고 불렀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에 대한 언급은 첫 만남부터 헤어짐까지 책 전반에 걸쳐 등장한다.

신씨는 "똥아저씨와의 이야기를 할 때에는 가슴이 많이 아려왔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이 남들에게는 하찮고 별 볼 일 없는 것이요, 말도 안 되는 천박한 사랑으로 보인다는 것이 가슴 아팠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듯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똥아저씨와의 사랑을 사람들이 이해해줄지 두려웠다"고 조심스러워했다.  

하지만 만남의 내용은 매우 구체적이다. 신씨는 책에서 변 전 정책실장과 주고받은 메일을 공개하는가 하면, 그와 '첫 관계'를 맺었던 기억에 대해 "그날 여행에서 벌어진 이야기는 도저히 내 손으로 쓸 수가 없어 똥아저씨가 법정에 제출한 서면증언 진술서로 대신한다"며 변 전 실장의 진술을 그대로 보여주기도 했다.

신씨는 책에서 "똥아저씨는 진심으로 내가 큰 사람이 되기를 원했다. 나를 사회에 내놓기 위해 똥아저씨는 오랜 시간을 친구로, 연인으로, 선배로, 아빠로 있어 주었다"며 "내 사건이 터지고 우리 관계가 만천하에 폭로된 후 나는 똥아저씨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실망도 컸지만, 그간 나를 아껴주고 돌봐준 것에 대해서만큼은 진심으로 감사한다. 그리고 똥아저씨가 내내 행복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만약 내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든 똥아저씨와의 아픈 사랑은 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책에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도 나온다. 신씨는 "노 대통령과 인연이 있다는 말만으로도 사람들은 또다시 내가 돌아가신 분의 이름에까지 먹칠을 한다고 손가락질 할 것 같다. 세상이 새겨준 주홍글씨를 달게 된 내가 혹시 노무현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몹시 조심스러울 따름이다"라고 말했다.

신씨는 "노 대통령과의 인연은 외할머니로부터 나를 눈여겨봐달라는 말씀을 들은 노 대통령이 갑자기 나를 보자고 하신 것"이라며 노 대통령이 자신에게 미국 드라마 <웨스트 윙>을 보라고 권했던 것, 자신의 측근인 모 의원을 소개시켜준 것 등을 소개했다. 신씨는 "노 대통령이 이모저모로 내게 관심을 쏟은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직접적인 도움을 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면서도 "멀리서나마 나를 신뢰해주는 분이 계시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든든했다"고 했다. 

책에 따르면,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만남 역시 노 전 대통령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는 변 정책실장과의 만남을 전하면서 "다만 언제부터인가 노 대통령과 똥아저씨 사이의 기류가 심상치 않게 느껴져서 마음에 걸렸다. 대통령 입장에서는 똥아저씨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를 격려해주고 정신적 힘이 되어주기를 원했는데, 막상 나를 만나서는 애인을 만들어버렸으니 얼마나 충격적이고 뒤통수를 맞은 듯 했을까. 그 점에 관해서는 나도 책임을 면할 수 없으니 아무 할 말이 없다"고 덧붙였다.

"논문 대필은 맞지만 손수 학위위조한 건 아냐"

<문화일보>는 2007년 9월 13일자에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다며 이를 입수에 3면에 게재했다.
 <문화일보>는 2007년 9월 13일자에 신정아씨의 누드사진이 여러 장 발견됐다며 이를 입수에 3면에 게재했다.
ⓒ 문화일보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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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1>에는 언론에 대한 강한 분노도 나타나있다.

신씨는 "나는 지난 10년 동안 세상에 예술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데 언론의 덕을 보았고, 그렇게 덕을 본 언론을 통해서 내 38년 인생을 잃어버렸다"며 "언론에서는 나를 언론을 가장 잘 이용한 큐레이터라고 말했지만, 나는 오히려 언론을 믿고 신뢰했던 큐레이터였다. 그러나 사건이 터지자 나의 '믿음'은 '이용'이라는 말로 둔갑해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의 누드 사진을 실은 <문화일보>의 신아무개 기자를 언급하며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힌다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신 기자의 기사에 큰 충격을 받았다"며 "그토록 친했던 사람이 내가 곤경에 빠지자 오히려 나에 대해 특종을 내려는 것을 보고 정말 세상이 무서워졌다"고 했다. '두 얼굴의 기자들'이라는 장에서는 신아무개 기자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배신감을 느꼈던 기자들의 기사와 실명을 언급했다. 

신씨는 책 전반에 걸쳐 이미 유죄를 선고받은 '학력위조' 혐의에 대해서도 거듭 억울한 심경을 나타냈다.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성실하게 공부하고 혼자 힘으로 논문을 써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은 아니었지만, 몇 년간 학비를 내고 리포트도 성실히 제출했으며, 논문자격시험 통과는 물론이요 지도교수와 대학원 부원장을 포함한 세 명의 예일대 교수들 앞에서 논문 디펜스(논문 내용에 대해 비판하고 방어하는 절차)까지 치렀다"면서 예일대에서 자신의 학위가 없다고 밝힌 것에 대해 "나로서는 학위가 부적절하게 수여되었고, 새삼 논문이 문제되자 예일대는 학교 명예가 걸린 일이니 서둘러 나에 대한 모든 기록을 삭제해버린 거라고 추측하는 것밖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이는) 논문을 대필해서라도 학위를 받으려했던 나의 어리석음은 어떤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것이지만, 손수 학위를 위조해서 세상을 속이려 했다는 말들에 대해 내가 이토록 눈물을 삼키고 피를 토할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논문 대필'은 사실이지만 '학위'는 분명히 존재했다는 것이 신씨의 주장이다.

신씨는 "결국 학위가 없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학력위조의 원조'라 부를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손가락질에도 불구하고 내게 중요한 것은 내가 그 사실을 몰랐고, 최소한 그것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내가 삶을 포기하지 않는 마지막 한 가닥 이유이기도 하다"라고 항변했다. 또 "구차한 변명 같지만, 이렇게 편법으로 받은 학위를 내세워 덕을 본 것도 없었다"고 강조했다.


태그:#신정아, #4001, #변양균, #정운찬, #학력위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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