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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찾아 떠나다>의 저자 김이경씨
 <희망을 찾아 떠나다>의 저자 김이경씨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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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방학이 되면 기업이나 단체에서 주최하는 단기해외봉사 모집 공고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은 대학생들의 이력서에 들어갈 '스펙'거리가 된 지 오래다. 지난해 5월 <희망을 찾아 떠나다>(소나무 펴냄, 주세운 공저)라는 책을 펴낸 김이경(28)씨는 젊은 20대 또래들이 꿈을 찾지 못하고 스펙을 찾아 떠나는 현실에 대해 안타까워했다. 희망을 찾아 떠난 여행에서 돌아와 다시 새로운 희망을 찾아 나선 범상치 않은 김씨를 지난 14일 그가 활동하는 흑석동의 한 공간에서 만났다.

"단기해외봉사활동은 이제 또 하나의 스펙이 되어 버렸어요. 그런데 이걸 지적하는 사람이 없어요. 이런 프로그램은 마치 만들어 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올리는 것과 같다고 생각해요. 직접 밥을 짓다가 망쳐보기도 하고 직접 만든 짜디짠 국도 맛보는 실패를 경험해야 하는데 다들 이력서에 스펙으로 남길 수 있는 잘 세팅된 것만을 찾으려고만 해요."

그에게도 실패의 경험이 있었다. 하지만 그 경험은 꿈을 찾는 여행의 시작이 되었고 그래서 그는 실패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또래인 20대들이 실패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2006년 '지구촌대학생연합'이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하던 그는 제3세계의 빈곤과 열악한 인권에 대해 공부하면서 조금씩 꿈과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가 속한 동아리에서 '개발NGO만들기'를 주제로 1박 2일간 포럼을 열었다. 그는 파키스탄 팀장을 맡아 공정무역 축구공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파키스탄의 축구공 만드는 현장에 가보고 파키스탄과 한국에 지사를 세워 공정무역을 감독하고 무역을 통해 실천하는 내용이에요. 우리는 참신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고 자신감도 있었는데 순위에는 들지 못했죠."

아쉬웠지만 거기서 좌절하거나 멈추지 않았다. 꼭 해보고 싶은 열정이 더 강했기 때문이다. 빈곤의 현장을 직접 찾아가보는 '꿈'을 이루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 카페에 '축구공 만드는 곳을 직접 찾아가서 살펴보는 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글을 올렸다. 100일간의 공정여행을 함께 떠나게 된 여정과 세운, 두 친구가 '같이 해보자'고 답글을 달았다.

그로부터 1주일 후 세 명의 젊은이는 여행준비에 착수했고 300일의 준비 끝에 빈곤의 현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우정을 나눌 벗과 함께 꿈을 향해 한발 더 내딛게 된 것이다.

"여느 대학생처럼 스펙을 쌓기에도 모자랄 시간들을, 나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보냈다. 적어도 그때만큼은 우리가 인간답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었으니까. 빈곤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다는 꿈을 품고 여행 계획을 세우는 동안에도 우리를 이끈 건 가슴 뛰는 설렘이었다."(<희망을 찾아 떠나다>에서)

"옆에 있는 친구와 고민 나누기"는 공정여행보다 더 중요

지난해 5월 펴낸 <희망을 찾아 떠나다>
 지난해 5월 펴낸 <희망을 찾아 떠나다>
ⓒ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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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작년 6월, 평화재단이 개최한 청년아카데미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 여행에 대한 이야기보다 꿈과 우정에 대해 이야기했다고 한다. 20대 공정여행가로 알려져 있는 그는 "여행보다 옆에 있는 친구와 같이 고민을 나누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단다. 왜 그랬을까? 그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학창시절 생각했던 '대학'을 꿈꾸며 서울로 올라온 그는 그동안 즐겨봤던 시트콤 속의 대학은 '환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다른 세상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사라져 버렸다. 대학에서 만난 친구들과 같이 술 마시고 이야기를 나누면 즐거웠지만 그는 느낄 수 있었다, 너와 나 모두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있다는 것을. 친구들이 방학 때 토익공부를 하거나 어학연수를 떠날 때 이런 불안함은 더욱 커졌다고 한다. 이런 대학생활은 그에겐 더 이상 재밌지도 즐겁지도 않았다.

"학교는 우리에게 진정한 배움보다는 좋은 학점을 받아 유능한 노동자가 되는 길만을 보여줬다. 학교 밖에서도 우리는 친구를 만들기보다 서로를 경쟁자로 보는 데 익숙했다. 88만원세대의 경제적 압박도 압박이지만 그보다 더 고통스러운 건 꿈과 우정의 부재였다. 그 둘이 없는 우리는 청년이라 할 수도 없었다."(<희망을 찾아 떠나다>에서)

300여 일 동안 준비했다는 말처럼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고 한다. 어떨 때는 24시간 개방되는 대학교 건물에 갇혀 있다시피 하며 가고자 하는 나라와 방문하고자 하는 단체를 조사하고 정보를 찾았다.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그들이 가고자 하는 곳은 가이드북에서 찾을 수 있는 관광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이크로크레딧을 운영하는 그라민은행도 유누스 총재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지만 우리가 궁금했던 것은 '그곳에서 돈을 대출받는 여성대출자들에게 정말 도움이 되는가'였어요. 또 공정무역을 하는 분들은 공정무역에 대해서 좋다고 하지만 현지 생산자들도 공정무역에 대해 알고 있을지, 또 그들의 삶이 공정무역으로 나아졌는지 궁금했죠."

그래서 그들은 발로 뛰며 도움을 얻었다.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하며 세계인들과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있는 전국철거민연합이나 빈민운동 하는 분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다. 탄탄하게 준비를 마친 그들은 2007년 9월 첫 목적지 방글라데시로 떠났다.

여행을 떠나 첫 방문지 방글라데시에서부터 그들은 '깨졌다'. 우리가 좀 더 도와주거나 공정무역과 같은 방법만 있으면 이들이 가난에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깨진 것이다. '우리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말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인도의 맨발대학에서는 자신의 신분적 한계를 뛰어넘고 평생 그 한계에 투쟁하는 에너지가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한없이 부끄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여행 내내 '우리가 그들을 보러 갈 자격이 있을까? 그들의 빈곤에 대해서 이야기할 자격이 있을까?'라는 물음이 계속 이어졌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었다고 한다.

"'관해난수'라는 사자성어를 책에서 봤어요. 바다를 본 사람은 물을 함부로 이야기 할 수 없다는 내용이에요. 그래서 여행을 다녀온 후 함부로 그들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없었어요."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물었다. 우리는 학점과 스펙, 그리고 취업난에 젊은이들이 좌절을 하는데 과연 그게 큰 좌절일까? 이들처럼 많이 갖지 않아도 살 수 있는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 할까? 고민이 계속될수록 여행이야기에 대해서는 더욱 말을 아끼게 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에겐 답보다 질문을 배운 여행이었다. 처음에 우리가 생각한 빈곤의 의미는 1달러 미만의 혹은 하루 20리터의 물을 구할 수 없는 등의 계량화된 수치였다. 그러다 여행 중 만나게 된 많은 사람들을 통해 빈곤을 숫자로만, 물질로만 정의할 수 없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게 되었고, 우리의 빈곤과 우리가 잃어버린 용기들을 그곳에서 배우기도 했다. 이제는 더 이상 우리의 도움으로 그들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은 하지 않게 되었다. 다만 우리는 서로 배우고 함께 연대할 수 있을 뿐이지 않을까."(<희망을 찾아 떠나다>에서)

여행잡지 발간, 인권 관련 책 집필까지

박준상씨는 네팔 쓰리시스터즈에서 가이드인 니르말라(왼쪽)씨에게 김이경씨의 책 <희망을 찾아 떠나다>를 전달했다.
 박준상씨는 네팔 쓰리시스터즈에서 가이드인 니르말라(왼쪽)씨에게 김이경씨의 책 <희망을 찾아 떠나다>를 전달했다.
ⓒ 박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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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나온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인터넷 쪽지로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어요. 어떤 남자였는데 군대에서 이 책을 봤는데 전역했다면서 다짜고짜 만나야겠다는 거예요. 만나야 하는 이유도 뚜렷하지 않은데 꼭 만나봐야겠다고 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얼마 후 이곳에서 만났죠."

그때 찾아온 박준상(26)씨는 책을 통해 공정여행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NGO활동과 국제개발원조에 관심을 가진 그는 실제로 현장을 보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만나기 위해 현재 9개월째 여행 중이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사하러 온 그에게 김이경씨는 책 두 권을 주며 혹시나 여행 중에 자신이 갔던 여행지에 들르게 된다면 전달해 줄 것을 부탁했다.

올해 1월, 준상군의 블로그에 들어가 본 김이경씨는 깜짝 놀랐다. 블로그에 올라온 사진에는 자신이 갔던 네팔의 쓰리시스터즈 트레킹 사무소에서 만난 여성가이드 니르말라씨가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곳뿐 아니라 그가 방문한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은행과 그라민-다농 공장, 인도 둥게스와리의 JTS에도 책은 전달됐다.

이 이야기를 전하며 그는 "두 권만 줬는데 네 군데나 돌며 책을 전달했더라"고 고마워했다. 희망을 찾아 떠난 이야기가 다른 사람의 꿈을 자극했고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꿈을 자극하고 있을 것이다.

대학원을 잠시 쉬고 있는 그는 요즘 글을 쓰는데 바쁘다. <희망을 찾아 떠나다>가 출간된 후 이 책을 본 어느 출판사에서 인권에 관해 글을 한번 써보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올 8월까지 마감해야 하는데 글 쓰는 게 쉽지 않다고 엄살을 부린다.

거기다가 평화여행, 평화교육을 실천하고 공부하는 '이매진피스'라는 단체에서 만난 또래 친구들과 함께 여행에 관한 잡지를 야심차게 준비하고 있다. 정식으로 출판등록도 하고 디자인도 제대로 해서 그동안 쌓아온 콘텐츠를 통해 고민을 풀어낼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여행에 대한 새로운 상상력을 제시하고 싶단다.

지금의 삶에서 경제적인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물었다. 그는 경제적인 부문을 아예 무시하고 살 수 없다는 점에는 동의했지만, 돈에 대해 걱정만 하면서 살기보다는 용기를 가지고 사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이전에 잠시 직장생활을 통해 모아뒀던 것과 그 외 약간의 비정기적인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했다.

그는 2008년부터 친구들과 만든 흑석동의 한 공간에서 계속 모임을 꾸려가고 있다. 작은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토론하고, 놀고, 웃으며 삶을 나누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바빠 보였지만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다.

"여행을 가면 설레잖아요. 특히 사람들은 일상이 단조롭고 재미도 없고 빡빡하니까 여행을 동경해요. 그런데 거꾸로 생각해보면 여행을 동경하는 이유는 내 일상이 재미없다는 거잖아요? 그럼 나의 일상을 어떻게 여행보다 더 재밌게 만들 수 있을까도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그는 일상에서 희망을 찾아 떠난다.


태그:#공정여행, #김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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