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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학교 정문 전경
 중앙대학교 정문 전경
ⓒ 중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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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요? 잘 되고 있는 것 같은데요. 그동안은 정체돼 있었는데 이제 뭔가 발전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11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 만난 김아무개(22, 경영학부3)씨는 두산 그룹의 인수 이후 학교에서 일어난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그는 "그전에는 재단에서 어떤 투자를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는데, 두산으로 바뀌고 나서는 그래도 뭔가 투자가 이뤄지는 것 같아 솔직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대학 구조조정에 반대했던 목소리와 관련해서는 "반대는 있게 마련"이라며 "교수들은 자기 밥그릇이 줄 수도 있으니까 그렇다 쳐도, 학생들이 그러는 건 조금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시도를 하면 우려하는 목소리는 있기 마련이죠. 학교가 조금 무리하게 밀어붙여서 반대하는 목소리가 있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일 같아요. 하지만 확실히 이전보다 경쟁력도 생기고 취업이 잘될 것 같아서 우선은 기대하고 있어요."

김씨의 말대로 지난 2008년 두산 그룹이 인수한 중앙대학교에는 상당히 많은 변화가 생겼다. 기존 18개 단과대와 77개 학과를 10개 단과대와 46개 학과·학부로 통폐합했고, 이를 다시 5개 계열(인문사회계열, 자연공학계열, 경영경제계열, 의약학계열, 예체능계열)로 나눠 각 계열별로 부총장을 임명하는 '책임부총장제'를 시행했다.

학생들의 사회진출을 위해 경쟁력 있는 학과를 집중육성하고 유사학과를 통폐합해 효율성을 높인다는 취지이다. 전 학생이 졸업을 위해 꼭 이수해야 하는 교양필수 과목으로 회계학 수업을 신설하기도 했다.

교수들에게도 엄격한 평가제도가 도입됐다. 연구실적을 기준으로 매겨진 등급에 따라 연봉에 인센티브 또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 기업들이 시행하는 연봉제와 거의 흡사한 이 제도는 교수들의 반발에도 결국 시행됐다.

그 과정에서 "각 학문의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폭력적인 구조조정", "인문학을 죽이고 기업이 원하는 인재만 고려한다", "학내구성원들의 우려에도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비민주적인 행태"라는 비판이 일었다. 구조조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던 학생들이 퇴학을 당하기도 했고 학교 측을 비판하는 내용의 만평과 기사를 실었던 학내 언론사는 지원 예산이 끊기는 등 탄압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새 학기를 맞아 학생들의 생각을 알아보기 위해 찾아간 캠퍼스의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공과대학의 캠퍼스 이전 문제를 제외하고는 비판의 목소리를 찾기 어려웠다. 오히려 구조조정에 찬성하고 희망과 기대에 부푼 이들이 많았다.

"대기업이 학교 인수했으니 취업 기대감 높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학생회관 앞을 오가는 학생들.
 지난 11일 오후 서울 흑석동 중앙대학교 학생회관 앞을 오가는 학생들.
ⓒ 최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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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일 오후여서인지 캠퍼스 내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나마 중앙도서관과 학생회관이 맞닿아 있는 길에만 학생들의 왕래가 있었다. 학생회관으로 가는 길에는 동아리 홍보 현수막 사이로 대기업들의 캠퍼스 리크루팅 일정을 알리는 현수막들이 듬성듬성 보였다. 중앙도서관 밖에 설치된 벤치에는 동아리 모집을 하는 학생들과 오가는 학생들로 대학 캠퍼스다운 분위기를 풍겼다. 

가까운 곳에 문과대학이 위치해서인지 인터뷰에 응하는 학생들 가운데 인문사회계열 전공자들이 많았다. 인문사회계열은 이번 구조조정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어문학과를 학부제로 통폐합한 것은 최근 서울대나 한국외국어대가 어문학을 학부제에서 학과제로 변경하고 있는 것에 반대되는 일이어서 논란이 됐다.

어문계열 전공자라며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학생은 "불만이 있지만 방금 바뀐 걸 도로 금방 바꿀 수는 없을 것 같다"며 "솔직히 학교가 어떻게 되든 간에 취업에는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 제도에 만족하지 않지만 어쩔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러면서 그는 "대기업이 학교를 인수했으니 취업 기대감이 높은 것은 사실"이라며 "전공 어문을 살려 은행이나 항공사에 들어가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역시 인문사회계열 전공자 정아무개씨(여, 신문방송학2)는 "두산이 오고 나서 학교가 긍정적인 미래로 가고 있다 생각한다"며 "물론 인문학이나 학문적인 연구를 할 사람들은 불만이 있을 수 있겠지만, 현실은 취업이 잘 되느냐 안 되느냐의 문제"라고 말했다. 정씨는 이어 "아무래도 두산에 입사할 수 있는 학생들도 늘어날 거고 재단의 투자액도 많아진 만큼 좋은 변화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회계학을 전공필수로 들어야 하는 학번인 정씨는 "회계학 수업이 특별히 어렵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아깝기는 했다"며 "앞으로 할 일에 크게 도움은 안 될 것 같은데, 그런 수업은 회계학 말고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 외 십여 명의 학생들과 대화를 나눴지만 대부분이 비슷한 반응이었다. 한 학생은 "불만이 많지만 솔직히 그런 말을 한다고 해서 바뀌지도 않을 거고... 학생들은 닥치고 공부나 하라는 소리"라고 씁쓸해했다.

"공대가 검단으로 옮겨가는 걸 '유배'라고 부른다"

지난해 중앙대학교 흑석캠퍼스 본관 앞에서 학내 언론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대학언론 장례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이들은 학교측의 교지편집위 예산 전액 삭감을 규탄하며, 비판적 대학언론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항의했다.
▲ 대학언론 장례식 지난해 중앙대학교 흑석캠퍼스 본관 앞에서 학내 언론탄압 저지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가 '대학언론 장례식' 퍼포먼스를 열었다. 이들은 학교측의 교지편집위 예산 전액 삭감을 규탄하며, 비판적 대학언론에 대한 보복조치라고 항의했다.
ⓒ 손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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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대의 구조조정은 대부분 완료됐지만 아직까지 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캠퍼스 이전 문제다. 중앙대는 지난해 3월 인천 검단신도시에 제3캠퍼스를 조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서울에는 인문·의학 계열을, 검단신도시에는 이공계 계열을 배치해 협소한 공간문제를 해결하고 이공계열 투자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이에 앞서 2009년 중앙대는 경기도 하남에도 새로운 캠퍼스를 구축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런 캠퍼스 구조조정은 이공계열 학생들의 반발에 부딪혔다. 현재 성균관대나 경희대가 취하고 있는 방식이지만 '학교가 서울에서 멀어지면서 경쟁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우려'와 '시설개선과 투자를 위해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캠퍼스에서 만난 정아무개(남, 공과대학2)씨는 "공대가 검단으로 옮겨간다는 걸 '유배'라고 한다"며 "검단으로 가게 되면 시설은 좋아지고 연구실도 늘어나겠지만 결국 서울에 있는 공대에 밀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어 "가야 한다는 의견과 가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한 실정"이라며 "학교에서 캠퍼스를 만든다고만 하고 아직 이렇다 할 구체적인 계획 발표가 없어 양쪽 모두 답답한 상황"이라고 학교 분위기를 전했다.

정씨는 학교 구조조정 과정에서 있었던 논란과 관련 "공대 캠퍼스 이전 문제도 마찬가지로 재단이 독단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문제"라며 "하지만 취업만큼은 이전보다 좋아질 것이라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앙대 교지 <중앙문화>의 최석현 편집장은 학내에서 두산 재단에 대한 비판여론이 수그러든 이유를 "'대기업 재단이 들어오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취업도 보장되겠지'라는 기대 심리가 있고, 학교 측의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학생들이 위축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 편집장은 "가장 피해자라고 할 수 있는 인문계열의 학생들도 사회에서 취업이 워낙 어렵다고 하니까 그 불안감이 기대감의 원인으로 작동하는 듯하다"며 "하지만 기업이 재단을 맞는다고 취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 편집장은 "취업은 학생들 각자의 능력 문제라기보다 기업에서 얼마나 뽑느냐에 달려 있는 실정"이라며 "취업이 안 되는 환경을 만들어 놓고 대학생들이 취업에만 매달리게 하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풀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책임부총장제'는 이사장의 직할 통치"

김누리(독어독문학과 교수) 중앙대 교수협의회장은 12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박용성 이사장(두산 중공업 회장)은 대학을 직업훈련소로 만들고 있다"라며 "그것은 중앙대학교 학생들을 매우 얕잡아 보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더 큰 꿈을 가진 학생들을 단지 회사의 중하위 사무직 정도를 사회진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처럼 취급한다"며 "학생들의 취업은 자아를 실현하는 취업이 되어야지 두산 같은 기업에 들어가서 몇 푼 받느냐가 중요한 자신을 부정하는 취업이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회계학을 전 학생에게 가르쳐 어느 중간 기업이라도 들어가라고 하는 건 박 이사장이 학생들을 깔보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중앙대의 구조조정 자체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는 "학문단위를 재편한 것은 아주 졸속적이었고 그 결과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특히 어문계열을 학부로 묶은 것은 학문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무식한 행위이다. 서울대, 한국외국어대 등은 학부제를 학과제로 전환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최근 시행된 '책임부총장제'와 관련해서도 김 교수는 "사실상 각 대학의 자율권을 억압하고 '법인(재단)의 직할 통치'를 위한 제도"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에서 'OO사업 본부장'을 두고 회장이 직할 통치를 하는 것처럼, 부총장 5명에게 차기 총장 자리를 놓고 경쟁을 시켜서 실적을 높이라는 건데, 이는 학문의 고유성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대학의 모든 것을 경쟁시스템에 맞춰 가려는 태도"라고 일갈했다.

그는 "결국에는 '책임부총장제'라는 미명 아래 이사장이 대학을 멋대로 전횡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태그:#중앙대, #중앙대학교, #두산, #김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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