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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 선택 또는 소비자 주권이라고 말하지만 거대한 식품체계 속에 던져진 소비자 개개인은 참말로 무기력하다. 식품체계는 그가 가진 식품 정보 자체를 통제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친환경의무(무상)급식을 떠올려 보자. 지방자치를 통해 친환경 무상급식을 확보한다, 자치를 급식 공간에 확대한다, 학교급식은 지역사회 자치의 공간이다, 아이들에게 무엇을 먹일지를 지역사회와 학부모가 결정한다.

 

송기호 변호사는 신작 <맛있는 식품법 혁명>(김영사 펴냄)에서 '선택하고 자치하고 연대하는 소비자'를 얘기한다. 무엇보다도 자치가 중요하다.

 

"선택은 불완전하며 거기에만 머물면 식품체계에 휩쓸리기 쉽다. 자치가 없는 연대는 공허하다. 자치하는 소비자가 정의로운 식품체계를 만든다."

 

대한민국의 에이스다

 

언젠가 우석훈 박사는 송기호 변호사를 두고 "송기호는 대한민국의 에이스다"라고 평했다. 맞는 말이다. 법조인이라면 여전히 판검사나 김앤장 등 대형로펌 변호사를 꿈꾸는 현실에서, 송 변호사는 대학시절부터 일관되게 농업법에 대한 관심을 경주해 왔다. 농업법 공부가 졸업이후 농민운동으로 이어졌고, 법조인이 되고나서는 농업법, 식품법, 국제거래통상법 분야에서 우리 사회의 최고 전문가가 됐다. 그리고 소송을 통해 정보에 접근하고, 그 정보를 가공하여 논문으로 발표하고, 다시 정리하여 책으로 펴낸다.

 

<녹색평론> 편집인으로서 환경운동에도 관여함과 동시에 좋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인다. 한미 FTA에 대한 비판적 문제의식과 농업부분에 대한 송 변호사의 기여는 굳이 강조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끊임없는 비판이 협상팀을 긴장하게 만들었고 협상의 지렛대가 되었다. 한-EU FTA 또한 마찬가지다. 물론 한미 FTA 등에 대한 송 변호사의 비판적 입장은 여전한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예비법조인을 만날 때면 늘상 다음 시대 법조인의 모델로 송 변호사를 얘기한다. 전문성, 일관성과 함께 공공선을 위한 노력, 그리고 늘 부끄러운 듯한 그의 순결하고 겸손한 품성을 얘기하지 않을 수 없다.

 

2004년 송 변호사는 <WTO 시대의 농업통상법>(개마고원)을 펴냈다. 식품무역의 국제질서가 주제였다. 이번에는 눈을 안으로 돌렸다. 지난 5년간 송 변호사가 직접 진행한 사건들, 그 과정에서 모두 124차례나 행정정보 공개 청구를 통해 얻은 정부 문서가 근거가 됐다. 이로써 식품체계 내부의 짜임새를 촘촘하고도 단단하게 구성할 수 있게 됐다.

 

"이 책의 출간으로 비로소 짝을 맞추어 하나의 체계를 이루었다."

 

구제역만이 아니다

 

구제역과의 전쟁이다.

 

"새로운 식품법은 가축과 작물을 질병에서 보호하기 위해 검역을 강화한다. 그것은 광우병, 구제역과 같이 가축과 작물의 건강한 성장을 해치는 위해 요인이 외부에서 침입하는 것을 국경에서 막는 조치다. 식량자급률이 26.7퍼센트에 불과할 정도로 외국에 식품을 압도적으로 의존하는 현실에서, 점점 더 많은 위해 요인이 외부에서 침입해 가축과 작물을 위협한다.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가축과 작물의 안녕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검역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검역은 작동하지 않았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법은 있되, 왜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을까. 식품법에는 어떤 문제들이 상존하고 있는 걸까.

 

"지금의 식품체계는 병에 걸려 죽은 동물의 시체를 동물에게 먹인다. 가축전염병에 걸려 죽은 가축의 사체를 태우거나 묻어 없애지 않고 사료로 재활용 처리하는 것을 허용하는 것이다."

 

구제역이나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에 걸려 살처분된 가축의 사체는 재처리된 다음 동물의 사료로 사용하는 것이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 물론 재처리규정은 있다. 가축전염병의 병원체가 퍼질 우려가 없도록 열처리 또는 발효처리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한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곳은 아프리카의 밀림이 아니고, 우리의 먹을거리를 규정하는 것은 야생동물의 질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식품체계다. 식품으로 먹기 위해 가축을 기르는 과정에서 가축이 전염병에 걸려 죽을 경우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의 문제다. 송 변호사의 주장은 "식품체계에서는 전염병에 걸려 죽은 가축의 고기를 그 체계 안에 다시 투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

 

검역과 함께 밀집된 사육환경이 문제라고 했다. 과도한 항생제 사용은 필수적이다. 법이 이미 그렇게 돼 있었다.

 

"법은 소르빈산과 같은 방부제를 '보조사료'라고 부르면서 가축 식품제조 공정에 투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리고 항생제마저 '사료첨가제'라고 정의하면서 가축 식품 공장에서 가축의 식품에 섞을 수 있도록 한다."

 

왜 가축의 식품에 항생제를 섞는가? 그것은 병에 걸린 동물에게 주기 위해 만든 것인가? 그렇지 않다. 질병에 걸린 동물에게 약을 먹이는 방편으로 항생제를 식품에 타 먹이는 것이 아니다. 멀쩡한 가축에게 먹일 식품에 항생제를 탄다. 2004~2008년 5년간, 전체 동물용 항생제의 41퍼센트가 배합사료 제조용으로 팔렸다. 성장 촉진 항생제 모넨신나트륨과 아빌라마이신을 사료첨가 동물용 의약품으로 허용한다. 2008년의 통계를 보면, 이 성장 촉진 항생제를 소에게 4.4톤, 돼지에게 3.6톤, 닭에게 3.8톤 먹였다. 이런 항생제들은 돌고 돌아 어디로 들어갔을까.

 

해양오염방지법을 보자. 국가는 1977년, 가축분뇨를 '육지에서 처리가 곤란한 폐기물'로 규정하고 이를 바다에 버릴 수 있도록 합법화했다. 동해안 대게에 짐승들의 털이 묻어올라왔다. 논란이 일었다. 고작 대안이란, "2006년에 이르러, 똥에서 털을 골라낸 다음 바다에 버리도록 했을 뿐이다."

 

가축에 투여하는 항생제는 1963년에 11킬로그램에 지나지 않았으나, 1981년에는 9만2788킬로그램에 이르렀다. 비명은 생태계 오염이 최종적으로 모이고 쌓이는 바다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어패류 생산량은 1986년 약 316만 톤을 기록한 후 더 이상 증가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2002년에는 193만 톤까지 감소했다. 이것이 생태계의 현실이고, 우리 밥상의 현실이다. 식품법 혁명이 필요한 이유다.

 

개고기는 안 먹을 수 있어도 유전자조작식품은 거부할 수 없는 이유

 

유전자조작식품은 식품이다. 한국의 밥상에서 법적 지위를 획득한 지 이미 10년이 되었다.

 

"개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은 그 결심을 99.9퍼센트 실천할 수 있다. 그러나 유전자조작식품에서는 불가능하다. 내가 먹은 것이 유전자조작 식품인지 아닌지 제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한 해 미국·브라질·중국산 유전자조작 콩 93만 톤을 수입해서 식용유를 만들어도, 소비자들은 그 식용유가 유전자조작 식품인 줄을 알 수가 없다. 또한 음식점에서 반찬으로 나온 두부가 유전자조작 콩으로 만든 것인지도 전혀 알 수가 없다. 얼마 전 롯데마트는 크기는 기존 두부의 세 배나 되는 1kg이고, 가격은 기존 두부의 1/3에 불과한 이른바, '통큰' 두부를 판매하겠다고 발표했다.

 

유전자조작식품 없이는 당장 소와 돼지와 닭이 굶주릴 것이다. 동물이 굶게 되면 사람들은 더 이상 고기를 먹지 못한다. 이런 경로로 유전자조작식품의 수입은 급증하고 있다. 2008년 수입된 '동물 식품용' 옥수수 704만 톤 가운데 680만 톤이 미국산 옥수수였다. 이 규모는 같은 해 한국에서 생산한 쌀, 보리, 밀, 콩, 고구마, 옥수수 등 식량작물을 모두 합한 545만 톤보다 많다.

 

2008년에는 그 성격을 분명히 하는 새로운 사태가 발생했다. 미국산 유전자조작 옥수수 71만 톤을 '동물이 아닌 사람이 직접 먹는 용도'로 수입한 것이다. 그런데 이것은 2008년의 유기농 생산량 11만5000톤과 무농약 생산량 55만4000톤을 모두 합한 것보다 많다.

 

검역의 문제가 있다. 미국은 유전자조작 식품을 개발한 나라면서 최대 수출국이다. 미국은 세계 여러 나라의 유전자조작 식품 규제를 없애야 할 장벽으로 여긴다. 한미 FTA에서도 우리 입장에서는 '검역주권'이, 미국 입장에서는 '비관세 장벽'이 되어 협상의 목표가 됐다. 미국은 2007년 4월 한미 FTA 협상의 종착역에서 '농업생명공학 양해서'(Understanding on Agricultural Biotechnology)라는 것을 관철시켰다.

 

"이미 승인을 받은 유전자 조작 생물체의 교잡 생물체에 대해선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추가적 안전성 평가를 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는 매우 민감한 영역에서 한국의 손을 묶은 것이다."

 

'무미일(無米日)', 쌀밥을 팔지 않는 날

 

1968년 <한국영양학회지> 창간호에 쥐 서른여섯 마리를 대상으로 실험을 한 논문 한 편이 실렸다. 실험의 결론은 쌀만 먹인 쥐가 성장이 불량하고 지방간이 가장 높다는 것이었다. 이후 박정희 정부는 1969년 '국민영양개선령'을 만들어, '영양 지도 사업'이라는 것을 대대적으로 추진했다. 혼·분식 장려였다. 쌀밥 중심 식생활을 청산하자는 것이었다.

 

1970년 이 학회지에는 "쌀은 3세 이전의 어린이에게는 단일한 단백급원으로는 부족한 식품이며, 쌀을 주식으로 섭취하는 나라에는 성장장해, 'kwashiokor', 'marasmus', 비타민A 결핍증이 영양장해로 되고 있다"는 내용의 논문이 실렸다.

 

1971년 같은 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은 쌀밥 중심의 식생활을 저단백, 저지방, 저비타민 식이라고 규정했다. 같은 해 정부는 '전국의 음식 판매업자 준수사항'을 고시하여 모든 음식점에서 즉석에서 솥에 쌀밥을 짓는 행위를 불법화했다(농림부 고시 제2,377호). 그리고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11~17시에는 아예 쌀밥을 파는 행위 자체를 불법화했다. 국가의 고시는 다음과 같은 문장으로 끝을 맺고 있다. "이 명령을 위반하는 자는 3월 이상 6월 이하의 영업정지를 하거나 허가를 취소한다."

 

1975년 문교부는 초등학교 실과 과목 교사용 지도서에 쌀밥 중심의 식생활이 체질의 산성화, 심리적으로 끈기와 침착성 결여, 소극적인 성격, 대뇌변질증을 일으키고 판단력을 흐리고 지능이 저하될 우려가 많다고 적었다. 1976년에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에서 '무미일(無米日)', 그러니까 쌀밥을 팔지 않는 날을 만들었다. 수요일과 토요일이었다.

 

2001년 <대한 지역사회 영양학회지>에는 전통적인 밥 중심의 식사는 면 혹은 빵 중심의 식사보다 영양적인 균형식이며 성인병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논문이 실렸다. 2003년 2월, 보건복지부는 한국인을 위한 식생활 지침을 발표했는데, 그 일곱 가지 지침 중 하나로 "밥을 주식으로 하는 우리 식생활을 즐기자"가 들어 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허구의 영양학'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국민영양개선령'을 제정한 1969년 미국에서 들여온 잉여 밀과 밀가루는 모두 135만9185톤에 이르렀다. 이 규모는 그해 우리나라가 생산한 쌀 생산량의 33퍼센트, 보리 생산량 기준으로는 81퍼센트나 되는 엄청난 양이었다. "이렇게 과잉 공급된 미국 밀을 처리해야 했다. 영양학의 쌀 공격은 미국산 밀의 소비를 위한 것이었다. 미국산 수입 밀을 기반으로 한 식품체계가 등장하는 데 봉사했다."

 

대신 사람들이 먹는 쌀의 양은 1970~2007년에 43.6퍼센트나 감소했다. 밀 수입량은 2007년 한 해에만 338만 톤에 달했다. 이는 그해 쌀 생산량 440만 톤의 76.8퍼센트나 되는 양이다.

 

쌀 대신 밀이 밥상에 오른 정치적 이유

 

식품체계가 있다. 한 사회가 먹을거리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땅과 바다에서 시작해 밥상에 이르는 수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농어민이 식품을 생산하는 활동이 순조로워야 하며, 흙과 햇빛과 바다의 힘도 차질 없이 작용해야 한다. 이들 요소는 따로따로 고립되어 있지 않다.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이 같은 목적을 향해 나아가면서 서로 밀접한 영향을 주고받는, 살아 움직이는 연관체다. 그래서 이를 식품체계라 부른다.

 

그런데 불과 40년이 되지 않는 짧은 기간에 밀은 우리의 주식이 되었다. 전통적인 우리의 식품체계는 무너졌다. 세계의 식품체계에서 자연조건의 급격한 변화가 없었는데도 이렇게 짧은 기간에 한 사회의 주식이 바뀐 사례는 찾기 어렵다. 정치가와 영양학자들은 꿈을 이뤘다. "그러나 자작농의 쌀은 도시화와 공업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서 다양하고 새로운 식품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겼다." 비극적인 밥상의 역사다. 식품체계의 일상사다. 왜 우리가 식품법 체계에 관심을 가져야하고 <맛있는 식품법 혁명>이 필요한지를 일깨워주는 서글픈 현재사다.

 

식품'법'이라는 제목에 겁먹을 이유는 전혀 없다. 우리 사회 고질적 문제 중 하나가 어쩌면 법에 대한 두려움일지 모른다. 한편으로는 국가폭력의 외상성증후군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법은 시민의 일이 아닌 특수한 전문가들의 영역이라는 예외성이다. 법이 상식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은 늘 전문성과 특수성, 독립성 그리고 엘리트성이라는 외피를 두르고 시민과 법조 및 정치 엘리트 계급을 철저히 차별했다. 법이라는 이름만으로도 골치 아프고 접근 가능성마저 차단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주먹이 가깝지는 않겠지만, 법은 늘 저만치 멀리 서 있다.

 

송 변호사가 밥상의 문제를 식품법의 관점에서 슬기롭게 풀어냈다. 법의 문제가 아닌, 밥상의 문제로 풀어냈다. 음식의 문제로 풀어냈다. 이 책이 출간된 것은 지난 초겨울, 그사이 우리 사회에는 '친환경의무급식논쟁'과 구제역, 조류인플루엔자 등 식품과 관련된 수많은 이슈들이 공적 토론의 장 위에 올라와 있다. '이 시대의 가장 명예로운 지위'가 시민이라면, 우리는 주권자의 관점에서 식품체계에 대한 심각한 변화를 모색해야 한다. 대신 <맛있는 식품법 혁명>이어야 한다. 그것이 시민이다. 그래야 시민이다. 음식에 대한 안전성과 보편성, 시민주권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어찌 민주주의와 공화주의를 말할 수 있겠는가. 시민이라는 지위는 결코 쉽지만은 않다.


맛있는 식품법 혁명 - 식품법 100년이 숨겨온 밥상 위의 비밀과 진실

송기호 지음, 김영사(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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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는 소주가 아니다

태그:#구제역, #송기호 변호사, #맛있는 식품법 혁명, #유전자조작식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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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한강 대표변호사, 김대중평화센터 고문으로, 연세대 의과대학 외래교수, 이화여대, 영남대, 전남대 로스쿨 및 광운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입니다. 홈페이지는 www.e-sotong.com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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