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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집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도시의 경기 체감온도와 시민들의 애환이 한눈에 보여요."

친구의 권유로 꽃집 점원이 된 꽃집 청년 소현두씨의 경험담이다. 꽃집에서 수 년 째 근무하다보니 알게 된 세상 이야기다.

현두씨는 시각장애 사장님의 손발이 되어 오늘도 꽃집을 열심히 돌보고 있다. 지금은 화분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중이다.
▲ 소현두씨 현두씨는 시각장애 사장님의 손발이 되어 오늘도 꽃집을 열심히 돌보고 있다. 지금은 화분을 제자리에 갖다 놓는 중이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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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사회는 꽃을 구입해 일상생활에서 주로 사용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도 80% 이상이 이벤트용이란다. 그러다보니 18만 인구 도시 안성의 요즘 '근황'은 꽃집을 보면 잘 알 수 있다고 현두씨는 말한다.

"안성시의 인사이동, 장례식장, 각종 취임식, 결혼식과 회갑연, 칠순과 팔순잔치, 스승의날, 졸업식 등 안성의 경조사에 쓰이는 화분과 화환 등을 배달하다보니 자연스레 안성의 근황과 시민들의 생활이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겨울은 원래 장사가 잘 안 되는 계절이다. 요즘 안성에선 구제역과 조류독감이 전염될까봐 사람 많이 모이는 행사들이 거의 취소되었다. 꽃이 생필품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민들은 경기가 어려우면 당장 꽃 소비를 줄인단다.

꽃 소비가 많으면 그만큼 안성 사람들이 활기차게 산다는 증거다. 꽃 소비의 온도가 안성의 온도다. 실제로 온도가 따스해지는 4월이 꽃 소비의 최고 성수기란다. 봄의 시작인 3월은 아직 겨울 기운으로 인해 추위가 가시지 않아서라고.

"우리 사장님,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해요"

현두씨가 세상에서 자신의 아버지 다음으로 존경한다는 꽃집 사장 구승모씨. 구 사장은 4년 전 모 대학병원에서 눈 수술을 받고난 후 시력을 거의 잃었다. 지금은 눈앞에 형체만 어렴풋이 아른 거릴 뿐이다. 그는 시각장애의 아픔을 딛고 일을 하고 있다. 20년 넘게 해온 노하우와 감각으로.

소현두씨가 일하는 가게엔 요즘 이런 꽃들이 팔리고 있다.
▲ 꽃들 소현두씨가 일하는 가게엔 요즘 이런 꽃들이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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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장님을 통해서 인생살이와 일을 많이 배워요. 시각장애를 극복하고 자신의 힘으로 일을 해서 가족을 책임지는 모습이 존경스럽죠. 꽃을 다루는 것도 굉장히 섬세하세요. 조금이라도 더 좋은 꽃을 손님에게 주려는 노력과 진심은 우리 사장님이 최고예요."

현두씨는 자연스레 구승모 사장의 손발이 된다. 눈이 잘 보이지 않는 사장의 한계를 착실히 보완한다. 식물관리는 기본이고, 고객관리와 각종 살림살이를 해낸다. 무엇보다 꽃 배달은 언제나 현두씨의 몫이다. 

화분을 배달하다 깨뜨려 먹어 곤란했던 경험, 꽃 배달 운전하다가 눈길에 빠졌을 때, 어떤 스님이 뒤에서 밀어줘서 구사일생했던 경험, 안성 끝에 위치한 일죽면의 한 행사장으로 화환을 들고 도착했는데, 리본에 쓰인 글씨가 잘못되어 다시 꽃집으로 가서 고쳐 달았던 경험 등은 현두씨만의 소중한 추억이다.

"주위에서 말리지만, 난 이 일이 좋아"

현두씨는 어렸을 적부터 고생 한 번 안한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났다고 자신을 소개한다. 부유한 가정의 아들이었던 그가 꽃집 일을 하는 것을 누구보다 부모님이 제일 안타까워하신다고. 주위 사람들은 좋은 대학 나와서 번듯한 직장 다니지 왜 그 고생이냐고들 한단다. 그럴 때마다 그는 늘 "아버지가 부자이지, 내가 부자는 아니다"라는 말을 한다고.

꽃집 일은 현두씨가 좋아서 하는 일이다. 꽃을 보고 있으면 왠지 평온해지고, 꽃집 일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단다. 꽃집 일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나름 비전 있는 일이라고 그는 확신한다. 꽃집 일을 하는 덕분에 자신의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으로 독립도 했으니 두말해서 무엇 하랴.

현두씨가 있는 꽃집에는 이런 꽃들이 요즘 살고 있다.
▲ 꽃과 식물들 현두씨가 있는 꽃집에는 이런 꽃들이 요즘 살고 있다.
ⓒ 송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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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그토록 꽃집 일을 좋아하는 것은 그에게 꿈이 있어서다. 자신의 이름으로 조그마한 꽃집을 하는 것. 그 꽃집을 통해 소외된 이웃들과 나누며 사는 일을 하고 싶단다. 그는 참 괜찮은 청년이다.

현두씨는 오늘도 시각장애 사장의 손발이 되어 자신의 꿈을 꽃처럼 가꿔나가고 있다. 그런 그를 아름다운 꽃집 청년이라 부를 만하지 않는가.

덧붙이는 글 | 이 인터뷰는 지난 26일 소현두씨가 일하는 꽃집 '식물나라'에서 이루어 졌다.



태그:#꽃집, #화환, #화분, #안성, #소현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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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목사질 하다가 재미없어 교회를 접고, 이젠 세상과 우주를 상대로 목회하는 목사로 산다. 안성 더아모의집 목사인 나는 삶과 책을 통해 목회를 한다. 그동안 지은 책으로는 [문명패러독스],[모든 종교는 구라다], [학교시대는 끝났다],[우리아이절대교회보내지마라],[예수의 콤플렉스],[욕도 못하는 세상 무슨 재민겨],[자녀독립만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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