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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의 음식과 맛을 다룬 미각의제국은 한국인의 음식박물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한국인의 음식과 맛을 다룬 미각의제국은 한국인의 음식박물지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 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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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강력한 고소함은 음식 맛을 죽이기도 한다. 슴슴한 고사리나물에, 달콤한 콩나물무침에, 쌉쌀한 도라지나물에, 시원한 무나물에 참기름 한 방울을 떨어트리면 후각으로 느끼는 맛은 거의 같아진다. 쇠고기든 돼지고기든 불에 구워 참기름 찍으면 맛이 똑같아진다. 이런 까닭에 참기름은 한국 음식에서 폭군이다. 맛있는 것과 맛없는 것을 똑같은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독재자이다. 참기름이 한국 음식 맛의 다양성을 죽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야 한다." p.36 참기름

"나 또한 고추 중독자이기는 하지만, 외식업체들이 이 통증의 감각물을 남용하는 버릇으로 해서 노이로제에 걸려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 매운 음식이란 그 음식 전체가 매운 성분으로 처발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를 음식 전체에 풀어 덩어리든 액체든 똑같은 강도의 통증이 느껴지도록 조리한다." p.28 고추

한국인이 즐겨 먹는 음식과 그것을 느끼는 맛에 대해 다룬 책이다. 음식의 지닌 아름다운 맛과 화려한 조리법을 소개하지 않는다. 오히려 한국인이 주체성을 잃은 채 갖고 있던 맛에 대한 환상을 담담한 필체로 정리한다.

저자 황교익은 <전원생활> 편집장 등을 거치며 전국의 음식을 섭렵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음식에 관한 저서와 각종 매체에 맛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맛집 책이라면 으레 따라붙기 마련인 식당 안내 전화번호도 없다. 그런 깐깐함으로 만들어진 맛 개념서가 바로 <미각의 제국>이다.

맛 개념 잡고 자신의 맛 추구하며 '미각의 제국' 만들기

푸아그라나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와인 따위를 설명하지 않고 국수, 김치찌개, 삼겹살, 비빔밥 등 우리가 흔히 즐기는 음식과 식품을 두고 그 맛에 대한 기준을 잡도록 돕는다. 앞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익숙한 것에는 더 이상 의문을 품지 않는다. 가정 밥상의 근본이라 할 수 있는 고추장과 된장, 김치마저 공장의 대량 시스템을 통해 만들어진 공산품을 소비하고 있음에도 그대로 따라갈 뿐이다.

그래서 이 책의 미덕은 우리가 잊고 지냈던 것들, 알고 있지만 무시하고 지나는 것들을 생각해 보도록 돕는다. 우리는 적당히 맵고 적당히 달고 적당히 고소한 맛에 길들여지지 않았을까? 거대 자본이 만들어내는 기준으로 인해 화학조미료로 '고향의 맛'을 내고, 외식업체들의 천편일률적인 맛 기준에 따라가고 있지는 않을까?

사실 맛은 재료와 조리법으로만 결정되지 않는 것이다. 흔히 여름에는 입맛이 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책을 열어보면 젖, 아내, 열, 가을 등에 대한 관념적인 맛의 환경을 다루는데 이 또한 천천히 읽으며 음미할 가치가 있다.

"'맛있는 음식은 이 세상 어머니의 수와 같다'는 말을 들었다. 어머니가 자식에게 먹이는 음식만큼 사랑과 정성이 들어간 음식은 이 세상에 없다는 말일 것이다. 어머니의 음식에 대한 이런 애착은 어머니가 부재했을 때 비로소 드러난다. 바로 곁에서 매일 먹을 때는 모른다는 말이다. 아내의 음식도 그럴 것이다." p.94 아내

회식 자리에서 끊임없이 구워지는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보면 그 맛 뒤의 축산 환경을 생각해보자. 물론 타박을 들을만한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음식과 식재료의 근원을 찾는 일은 우리가 거대자본이 제시하는 '좋은 먹거리', '바른 먹거리'를 소비하는 것과 질적으로 다르다.

저자는 맛의 개념을 잡고 자신의 맛을 추구해나가는 일을 미각의 제국을 만들어 가는 일이라 표현했다. 그러나 옳은 맛을 찾아가는 일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단으로 비춰진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미각의 제국을 구축한 사람이면서, 동시에 옳은 맛을 찾아가는 미각 레지스탕스이기도 하다.

음식의 맛을 느끼면서 그 맛의 근원을 찾아가보자. 재즈를 계속 듣다보면 처음 들을 때 들리지 않던 콘트라베이스 소리가 둔중하면서 흥겨운 소리를 내듯이 우리가 느끼는 맛의 세계도 더 크게 열릴 것이다. 그 큰 맛의 세상을 탐험하는 데 있어 <미각의 제국>은 좋은 지도다.

" 음식에도 깨우침이 있다고 생각하며 간다"
[인터뷰] 황교익과 함께하는 맛 탐구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
ⓒ 박상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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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식사 자리에서 음식의 평을 할라치면 종종 핀잔을 주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이 문명과 문화를 발전시키려면 섬세한 느낌이 필요하다. 흔히 음악이나 영화를 보지 않는 사람을 미개인이라고까지 한다. 맛에 대한 성찰을 하지 않는다면 무엇이 다른가. 먹는 것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 아무거나 먹고 즐기지 않겠다면 '미개하다'고 말하라."

- 글이 명쾌하고 간결하다. 또한 우리가 자주 먹는 음식을 책에서 다뤘는데.
"일상음식으로 말을 해야 감을 잡는다. 어려운 음식으로는 의미가 없다. 미각 깨치는데 루왁이나 미슐랭의 별 세 개짜리 음식은 필요 없다. 일상의 음식에서 감각을 확장해야 한다. 된장찌개를 먹을 때는 모두 자신의 관점이 있지 않은가? 음식 글을 쓰면서 오류에 빠진 경우가 많다. 글을 쓰는 자신들도 자주 먹지 않는 음식으로 미각을 논하면 안 된다."

- 우리가 즐기는 맛의 기준이 어느새 거대자본이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산업혁명 이전에는 자기가 지어 자기가 먹었다. 그 이후 공업사회로 발전하며 변했는데 식품산업의 주체는 많이 팔기 위해 어떤 틀을 주입해야 한다. 마케팅의 언어라 할 수 있다. 화학조미료에 어머니의 손맛, 고향의 맛을 주입한다. 상업자본이 끊임없이 메시지를 던지기에 그런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 책 안에 '눈물'이나 '젖'을 다룬 것이 신선하다.
"인간이 입에 집어넣는 것 중 가장 감성적이지 않은가? (웃음) 음식 안에 감상이 있다는 것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 한국인들이 음식을 만들거나 먹을 때의 문제가 있다면?
"우리 땅의 재료가 언제 어디서 누가 만드는지 모르며 소비한다. 소가 어떻게 자랐는지 무슨 벼인지 신경 쓰지 않는다. 생산과정과 소비과정의 단절이다. 그래서 본래의 맛에 집중하지 못하고 상업주의에 매몰된다. 내가 음식의 진가를 알려면 진열대의 상품을 보지 말고 현장에 가보고 현장을 생각해야 감이 온다. 미국이나 일본의 아동들은 미각 교육에 있어 아이들에게 농사체험을 시키며 현장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소고기와 돼지고기를 물으면 소와 돼지를 떠올리지 못한다. 정육점의 고깃덩어리가 떠오른다. 근원적 의식이 흐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 블로그에 사회 이슈를 음식과 결부지어 발언하기도 하는데.
"먹는 것만큼 정치적인 것이 없다. 사회구성원에 분배할 자원의 조정이 정치인데 그 기본이 음식이다. 먹는 문제가 정치적 판단에 의해 정해진다. 수입쇠고기와 무상급식 문제가 이를 보여준다. 맛 칼럼을 쓰려면 자신의 입에 들어오는 것 말고도 남의 입에 들어가는 것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 발언을 하게 된다. 정치인이 음식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진실성을 알 수 있다. MB의 음식 이야기는 보면 흩어진 말들이다. 전 대통령들을 보면 각자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에 대해서만 말을 했다. 그러나 MB는 음식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한다. 못된 것이다."

- 맛이란 무엇인가?
"나도 확실한 것이 없다. 집중해서 다루고 정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궁극의 맛이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끊임없이 의심하고 연구한다. 불교에서만 깨우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도 깨우침이 있다고 생각하며 가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미각의 제국> / 황교익 / 따비 / 2010년 5월 / 1만2000원



미각의 제국 - 맛칼럼니스트 황교익이 기록한 우리 시대 음식열전!

황교익 지음, 따비(2010)


태그:#황교익, #맛, #음식, #미각의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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