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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 시행 이후 많은 성매매 단지에서 일하던 '언니'들은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당시 언론은 성매매 포주들의 부당한 행태를 고발했고 대대적인 단속으로 많은 성매매 업소들은 사라졌다. 그렇다면 과연 성매매 방지 특별법 아래 살아가고 있는 지금의 '언니', '이모'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영등포의 밤거리 그곳의 밤을 보내고 있는 한 '이모'를 만날 수 있었다. <기자의 말>

12월의 밤. 서울 영등포 뒷골목을 지나는 기자를 한 중년 여성이 붙잡는다. 속칭 '이모'다.

이날 성큼 다가온 겨울에 기온은 떨어지고 칼바람이 불었지만, 석유난로를 피운 한 평이 채 안 되는 공간에는 4~5명의 이모들이 모여 있었다.

영화 <섹스볼란티어> 스틸컷
 영화 <섹스볼란티어> 스틸컷
ⓒ 아침해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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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에 나왔던 거? 요즘은 그런 데 없어"

한 이모가 "궁금한 거, 다 말해주겠다"며 기자를 멈춰 세운다. "이모, 요즘 언니들은 어떻게 일해요?"라고 묻자 이전의 이야기들을 꺼낸다.

"왜 예전에 방송에 나왔던 거? 가두고 핸드폰 뺏고 빚지게 해서 묶어두고…, 그런 게 요즘 어디 있어. 빚지는 애들은 자기 성형하고 명품사서 들고 다니면서 돈 헤프게 써서 그런 거지. 인터넷이 얼마나 발전한 시대인데 그렇게 했다간 다 알려지고 장사 못해. 112는 괜히 있겠어?"

영등포 토박이로 이곳 생활만 30년을 했다는 이모. 세월의 풍파 때문인지, 이곳 생활의 연륜 때문인지 취재차 나온 기자임을 밝혔지만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가감 없이 이곳의 생활을 들려준다.

"여기(영등포) 유리관(붉은색 불이 켜져 있고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는 가게) 안에 있는 아가씨들도 대부분 30대야. 20대는 10명도 안 돼. 우리처럼 이모들이 손님 끌어서 해주는 아가씨들은 더 말할 것도 없고….

젊은 애들은 이런 데 안 오지. 더 많은 돈을 주는 데로 가지 않겠어? 하지만 돈 모으는 법을 몰라서 버는 것만큼, 아니면 그 이상 더 쓰는 거야. 돈의 소중함, 필요성 알 때쯤 되면 이미 늦어서 모을 수가 없지. 그러다 보면 생긴 빚 갚아야 하고, 애들 딸린 애들은 애 키워야 되고…. 그때 이런 데로 오는 거야.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학벌 없고, 기술 없고 나이 먹고, 이런 일 배웠는데 어디 갈 데가 있겠어."

유리관 속 언니들은 자신을 '20대'라고 이야기했지만, 짙은 화장으로 인해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던 그 언니들의 실제 나이를 듣고 나니 왠지 가슴이 찡해진다.

'나이를 가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분칠을 더해야만 했을까….'

"우리 이모들도 겨우 담뱃값 벌러 여기 나오는 거야"

호객행위를 해주는 이모들은 모여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가도 남성이 지나가면 서로 나가서 말을 건네고 팔을 잡는다. 자기가 데려가 아가씨에게 넣어준 손님에게만 약간의 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여기서 호객 행위를 하는 이모들도 그저 돈 때문에 일하는 것은 마찬가지야. 길 가는 사람들 잡아서 데리고 들어가는 게 어디 쉽겠어? 요즘 식당 가봐. 식당 아줌마들도 다들 30~40대인데 우리 같이 나이 먹은 아줌마들이 갈 곳이 없잖아. 경제는 어렵지, 사회적으로는 힘들어지지. 그래서 나오는 거야. 나와서 담뱃값이나 벌고 들어가는 거지."

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이 한국으로 들어오면서 식당가에서조차 이모들이 설 자리는 사라졌다. 음식점들은 좀 더 젊은 인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식당일조차 하지 못하는 이모들은 이곳을 떠나지 못했다.

"마음 같아선 파지 줍는 거라고 하고 싶지. 하지만 하루 종일 파지 주워도 돈 만 원 나오기가 힘든 상황이야. 게다가 저 앞에 쪽방촌 보이지? 거기 사람들 대부분 파지 줍는 걸로 사는데 파지도 자리를 잡아야 줍지. 그러다 보니 우리 역시 아가씨들과 마찬가지로 돈 때문에 여길 못 떠나고 있는 거야."

이모의 말대로 영등포 성매매 지역은 쪽방촌 인근에 있었고, 기자가 그곳을 지날 때 여러 사내들이 그곳을 지키며 파지를 분리하고 있었다.

영화 <섹스볼란티어> 스틸컷
 영화 <섹스볼란티어> 스틸컷
ⓒ 아침해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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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를수록 이곳도 변한다

2004년 성매매 방지 특별법이 본격적으로 시행되고 대대적인 단속으로 인해 영등포 성매매 단지는 그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을 뿐, 예전의 활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오후 9시라는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곳곳의 가게는 불이 켜져 있지 않았고, 아예 문을 닫은 가게도 눈에 띄었다. 

"예전엔 경찰들이 돈도 받고 봐주기도 하고 그랬지. 하지만 요즘은 그런 거 없어. 돈을 받지도 봐주지도 않아. 그만큼 이곳의 사람들은 더 어려워진 거지."

성매매 여성의 인권에 대한 목소리도 높아졌다.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었던 일들이 이곳에서도 일어나고 있었다.

"인권단체에서 매주 화요일 나와서 콘돔이니 화장품이니 주고 가. 생일날 되면 케이크도 주지, 연말이면 장갑에 무릎 담요에 바리바리 싸가지고 와서 주고 간다니까. 예전엔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어."

찾아든 한파로 인해 손님은 더 줄어가고 공치는 날도 많다고 이모는 말한다. 하지만, 이모 역시 이곳을 떠나지 못한다. 더욱 음지가 되어가는 곳. 허름하고 쓰러져가는 이곳의 건물들과 그 앞에 들어선 거대한 쇼핑몰. 그 사이에 존재하는 낡은 담이 더욱 높아 보인다.


태그:#영등포, #성매매, #이모, #홍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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