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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차례 태풍이 몰아치고 간 기분이다. 'G20'이라는 꽤 큰바람이 불고 갔는데 도대체 어떤 변화가 생긴 것인지 도통 모르겠다. '곤파스' 때는 쓰러진 가로수라도 본 것 같은데.

아니다. 무시하지 못할 사회변화가 분명 있었다.

G20을 앞두고 한 지자체는 음식물 쓰레기를 집밖으로 배출하지 말라고 해 원성을 샀다. 분뇨도 수거하지 말라 했다. 국민들은 대중교통을 이용하라는 국가의 권고를 받아야 했고, 서울 강남의 일부 학교들은 등교 시간을 늦췄다. 어디 그뿐인가. 도심 곳곳에 배치된 공권력은 시민 한 명 한 명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스캔'하지 않았나. 이 모든 게 국어사전에도 없는 '한 나라의 대외적인 품격', 바로 '국격'을 위한 조치였다.

곰곰 생각해 보면, 이런 일상의 변화를 예고하는 '전조'는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다. 바로 우리가 늘 보고 있는 방송광고를 통해서 말이다.

안방까지 침투한 '국격'

혹시 TV를 통해 <글로벌 에티켓>(LG), <자랑스러운 대한민국>(현대자동차), <세계의 행복파트너>(우리은행), <희망의 증거, 대한민국>(삼성)이란 방송광고를 본 적이 있는가.

현대자동차그룹의 상업적 공익광고
 현대자동차그룹의 상업적 공익광고
ⓒ 현대자동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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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공익광고 형식을 띠고 있지만,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가 제작해 무료로 방송하고 있는 '무료 공익광고'와는 달리 '상업적 공익광고'로 분류되는 방송광고이다. '상업적'이란 단어에는 기업이 광고제작비는 물론 막대한 송출비용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들 기업이 공익광고를 만들어 방송해야 하는 배경에는 국가가 있다.

이명박 정부는 지난 2009년 1월 대내외적인 국가 위상과 품격을 높인다는 명목으로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를 신설했다. 이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주요 사업에는 "기업의 자발적인 국가브랜드 제고 노력"이라는 항목이 있다. 국내 8개 대기업이 국가 시책에 부응하기 위해 곧바로 결합을 선언했고, 2009년 5월부터 얼마 전 G20 정상회의 전까지 권위주의 정권 시절의 진한 향내가 나는 공익광고가 전파를 탔다.

<국격 관련 공익광고 현황>
o 아시아나항공 : 기내, 박물관 에티켓(09.5.22~), 기내 상영
o 대한항공 : 여행에티켓(09. 7. ~ 9.), 지상파TV
o SK : 나눔과 헌신(09. 11. ~ 10. 1.), 지상파TV
o LG : 프렌들리 코리아(10. 1. ~ 3.), 지상파TV, 케이블 일부
o 현대자동차 : 더 큰 대한민국(10. 3. ~ 5.), 지상파TV, 케이블 일부
o 우리금융, tvN : 글로벌에티켓 6편(10. 5. ~ 12.), CJ미디어 채널
o 삼성 : 대한민국, 희망의 증거(10. 9. ~ 11.), 지상파TV, 케이블 일부
o 우리은행 : 대한민국은 세계의 행복파트너(10. 9. ~ 11.), 지상파TV

그렇다면, 이들 기업들이 국가브랜드 제고를 위해 방송광고에 쏟아 부은 예산은 얼마나 될까. 국가브랜드위원회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한 탓에 얼마의 예산이 투입됐는지 알 길이 없다"는 입장이다.

하는 수 없이 방송 3사를 통해 집계해 봤다. 생각보다 큰 금액이 집행됐다.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민주당 최문순 의원실이 집계한 결과에 따르면, 국가브랜드위원회의 요청으로 집행된 기업들의 상업적 공익광고는 (2009년 5월부터 2010년 8월 말 현재) KBS 29억 원, MBC 14억 원, SBS 16억 원으로 추산된다.

"대한민국은 강하다" 선전에 동원되는 기업들

그러나 이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명박 정부 들어 기업들은 단발마의 비명조차 내지 못하고 국가주의를 찬양하는 선봉장이 돼 버렸다.

'국가주의'를 강조한 상업적 공익광고 현황
 '국가주의'를 강조한 상업적 공익광고 현황
ⓒ 이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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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요구'가 많아진 만큼 기업들이 상업적 공익광고를 제작·송출하기 위해 치러야 할 예산은 이명박 정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KBS의 상업적 공익광고 현황
 KBS의 상업적 공익광고 현황
ⓒ 이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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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광고의 내용 또한 참여정부 시절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당시 기업들의 상업적 공익광고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현대증권), <건강한 인터넷으로 하나 되는 나라>(KT), <사랑의 힘>(동양생명), <바른돈 캠페인>(국민은행), <함께 나누는 사회>(새마을금고), <생각이 희망이다>(케이티프리텔) 등 주로 나눔·봉사·혁신 등이 키워드였다.

'기업동원', 그 낡고도 진부한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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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성그룹의 상업적 공익광고 .
ⓒ 삼성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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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이런 문제 제기에 대해 아마 "국가와 국민의 자긍심을 고취하는 게 무슨 문제냐"고 할지 모르겠다. 덧붙여 "상업적 공익광고는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제작해 송출하는데, 어떻게 정부에 책임을 묻는가"라고 반문할 것이다.

그러나 기업들은 누구보다도 사회 분위기를 빨리 파악한다. 그리고 그에 맞춰 자신들의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안다. 단언컨대, 기업들이 국민들만 바라봤다면, 그리고 자사가 추구하는 미래가치만 생각한다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공익광고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국가 시책 달성을 위해 군대를 동원하고, 학교와 학생을 동원하고, 기업을 동원하고, 나아가 국민을 교육하려 하는 국가. 분명한 것은 이런 국가는 세계강국도, 선진국도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주당 최문순 의원 블로그 '문순c네 야단법석'(moonsoonc.net)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공익광고, #기업동원, #G20, #국가브랜드, #최문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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