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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종로 보신각 앞에서 동성애 혐오 조장하는 광고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6일, 종로 보신각 앞에서 동성애 혐오 조장하는 광고 규탄 기자회견이 열렸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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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이는 밟아야 돼, 게이니까."

김우주(19)군이 몇 달 전 졸업앨범 촬영을 하며 같은 반 학우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당시 우주군 어깨에는 그렇게 말한 아이의 발이 올려져 있었다. 그가 동성애자인 것을 안 반 아이들은 끊임없이 괴롭혔다. 얼굴에 침을 뱉었고, 수치심을 느낄 만한 질문들을 노골적으로 하기도 했다. 괴롭힘을 견디다 못한 우주군은 결국 자퇴를 선택했다.

우주군은 "학교에는 호모포비아(동성애혐오자)들이 굉장히 많다"며 "동성애에 대한 나쁜 편견이 퍼져나갈수록 청소년 동성애자들은 더 움츠려들고 상처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에이즈로 죽으면 책임져라"라는 광고가 <조선일보>에 실린 것에 대해 동성애자인권연대 등 시민단체가 대응에 나선 이유다. 물론 이는 청소년 동성애자에게만 한정된 문제가 아니라 모든 동성애자들이 받은 상처와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기도 했다.

"조선일보에 실린 광고, 중세시대 마녀사냥 보는 듯"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바른성문화를위한전국연합이 9월 29일 <조선일보>에 게재한 광고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바른성문화를위한전국연합이 9월 29일 <조선일보>에 게재한 광고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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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전 종로 보신각 앞에서 열린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비난하고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이하 바성연),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 규탄 기자회견'에서 우주군은 담담하게 말했다.

"바른 것과 참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수가 하는 행동이 바르다고 생각하고 계시진 않나요.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과 '참'교육 어머니 전국 모임은 동성애자가 소수라는 이유로 동성애를 틀린 것이라 규정하고 있습니다. 청소년을 보호해야 한다며 동성애자를 타락한 존재, 위협적인 존재로 몰아 억압하려 하고 있습니다."

"국가와 자녀들의 앞날을 걱정한다"는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 등의 단체들은 "동성애자 에이즈 감염확률 일반인에 비해 730배, 국민의 건강과 공익에 반하는 동성애 미화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등의 내용을 실은 광고를 지난 달 29일 <조선일보>에 게재한 바 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광고의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편견은 무지를 먹고 자란다"며 "에이즈는 동성애 질병이 아니다, 감염자의 비율도 이성애자가 훨씬 많은데 그렇다면 이성애자 간의 성관계를 금지해야 하는 것이냐"고 따졌다.

이어 우 실장은 "'바성연' 등은 UN 보고서를 인용하며 '에이즈 환자 160만 명'을 운운했는데 실제 UN 에이즈계획 보고서를 보면 그 어디에도 관련 내용이 나와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에이즈 인권연대 '나누리+' 대표 윤가브리엘씨는 "에이즈는 예방하지 않으면 누구나 감염 가능한 일임에도 마치 동성애자 때문에 에이즈가 발생했다는 듯 광고를 냈다"며 "뇌에 뭐가 들었나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고 중세시대 마녀사냥을 보는 듯하다"고 일갈했다.

"'바성연'은 동성애자 존중하고 공존하는 친구, 가족까지도 모욕"

기자회견 참석자가 "우리는 동성애 혐오 없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라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기자회견 참석자가 "우리는 동성애 혐오 없는 세상에 살고 싶습니다"라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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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에 나온 내용이 아무리 사실이 아니라고 외치고 힐난해 봐도 상처는 동성애자와 주변인들만 받고 있는 상황이다. 단체들은 "'바성연'은 동성애를 억압하고 천대하는 세상에서 끝내 동성애자로 생존해온 이들을 모욕했다"며 "동성애자를 존중하고 그들과 공존하는 친구, 가족, 동료까지 모욕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차별 없는 세상을 여는 기독인 연대 활동가 '방랑 돌고래'는 기자회견에서 "청소년 동성애자 중에는 강경한 기독교 단체 때문에 자살을 한 경우도 있다"며 "보수 기독교 집단의 동성애 혐오 발언과 신문광고 때문에 학생들이 더 위축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광고를 실어준 언론을 향한 비판도 이어졌다. 영화 <친구사이?> 공동제작을 한 박기호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활동가는 "이런 광고를 실은 조선일보가 더 큰 문제"라며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의 인권을 무시하는 언론사가 어디인지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말했다.

동성애자임을 밝히고 국회의원 후보에 출마했던 최현숙 진보신당 성정치위원회 위원은 "이러한 왜곡 광고에 대응해야 하는 현실이 갑갑하다"면서 "이번 기회에 동성애자들이 원하는 법을 만들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말했다.

김수현씨 "웃음도 안 나오네"... 바성연 "현실에 경종을 올린 광고"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조선일보>에 게재된 광고를 크게 확대 해 광고판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기자회견 자리에서는 <조선일보>에 게재된 광고를 크게 확대 해 광고판에 포스트잇을 붙이는 퍼포먼스가 진행되었다.
ⓒ 이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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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SBS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작가인 김수현씨는 바성연 등의 비난 광고가 <조선일보>에 실리자, 트위터를 통해 답답한 심경을 드러냈다. 김씨는 지난달 29일 자신의 트위터에 "'인아(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 된 내 아들 에이즈 걸리면 운운 광고 났다면서요. 웃음도 안 나오네요"라며 "전혀 내 마음 힘들지 않아요. 근데 메이저 신문인데도 돈만 내면 말 안 되는 광고도 받아주나 봐요"라고 토로했다.

자신의 성 정체성을 밝히며 커밍아웃을 했던 방송인 홍석천씨도 "머리가 텅 빈 사람들은 아닌 듯 한데 도대체 어쩌다 그런 생각으로 돈 들여 광고까지 할까"라고 불편한 심기를 트위터에 올렸다. 그는 "10년 전 커밍아웃 때 '뽀뽀뽀'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내가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며 하루 만에 짤린 이유가 그거였다"며 "그때 나와 출연했던 아이들이 다 게이가 됐어야 되는데. 그런 아이는 아직 없다"고 강조했다.

홍씨는 또 "동성애는 전염병이 아니란 얘기다, 이 무식한 인간들아. 어휴 답답한지고"라며 "그런 광고를 올리신 분들은 동성애자 인권 뿐 아니라 에이즈환자 분들의 인권도 짓밟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바성연도 곧바로 "문화 권력의 강자 김수현·홍석천씨, 누가 무식하고 누가 인권을 침해합니까"라는 제목의 성명을 내고 "동성애를 옹호하는 유명한 두 사람이 너무 막나가고 있다"고 반박했다.

바성연은 "현실에 경종을 울린 광고를 놓고 본질을 비껴가며 악담을 퍼붓는 것은 공인으로 해서는 안 되는 언행"이라며 "우리 입장이 마치 동성애자와 에이즈 환자의 인권을 침해한 것처럼 호도하는 홍석천씨는 진정 동성애자들의 인권을 보호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숙고해 보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교도소, "교화 의도와 맞지 않다"... 제소자 <인생은...> 시청 중단 논란

법무부가 '교화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두 달 전부터 교도소 등 교정시설 내 제소자들에게 SBS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시청할 수 없도록 한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논란이 예상된다.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천주교인권위원회 등은 6일 "법무부가 지난 8월부터 제소자들이 보는 '교화방송' 중 이 드라마의 방영을 중단했다"며 "이는 법무부가 동성애를 차별하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밝혔다.

'친구사이' 등에 따르면 지난 8월 17일 K구치소의 한 제소자가 "동성애 때문에 <인생은 아름다워>의 시청권을 제한당했다"는 내용의 제보를 메일과 편지를 통해 해왔고, 이에 대해 천주교인권위원회가 법무부에 관련 정보 공개를 청구해 답변서를 받은 결과 제보 내용이 사실로 확인됐다는 것이다.

실제 법무부가 보내온 답변서에 첨부돼 있는 '교화방송'의 방송 편성표와 '법무부 교화 방송 일지'에는 8월 9일부터 드라마 <인상은 아름다워>가 편성에서 빠져 있었다. 또한 같은 날짜의 '교화 방송 일지'와 방송 자막에는 "방송 초기 기획의도와 달리 동성애에 대한 비중이 높아져 교화 방송의 의도와 맞지 않아 중간 종영"이라는 내용이 기록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친구사이' 등 3개 단체는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소수자의 권익을 앞장서서 높여야 하는 국가가 오히려, 그 누구보다 앞장서서 소수자의 인권을 짓밟고 차별에 가담하고 편견과 혐오를 조장한 것에 다름아니다"고 비판했다. 특히 이들은 "수용자는 합리적 이유 없이 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형의 집행 및 수용자의 처우에 관한 법률' 5조를 국가가 정면으로 위배했다고 주장했다.

이들 단체는 법무부에 방송중단 시정을 촉구하는 한편, 지난 4일 동성애에 대한 비중이 높아지는 것이 교화방송의 어떤 의도에 어떻게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인지, 이 결정이 누구의 판단에 따라 어떤 절차로 이루어졌는지 등을 묻는 질의서를 발송했다.


태그:#동성애자, #인생은 아름다워,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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