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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수첩'이 4월 20일 방영한 '검사와 스폰서'
 'PD수첩'이 4월 20일 방영한 '검사와 스폰서'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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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사장님! 고생하셨는데 그만큼 성과를 내드리지 못해 미안합니다. 그러나 그 고생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검사 스폰서 특검'의 수사 결과가 발표된 28일 밤, '검사 스폰서'로 알려진 정아무개씨에게 한 건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한 특검보가 정씨를 위로하기 위해 보낸 것이었지만, '미흡한 수사결과'를 인정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끌었다. 

"진상위-특검은 검사들을 수사한 게 아니라 나를 수사했다"

정씨는 특검 수사 결과가 발표된 전후 기자와 나눈 수 차례의 전화통화에서 "어떻게 검사들을 조사하는데 현직 검사 10명을 파견할 수 있나"라며 "외부에서 지명된 세 명의 특검보는 굉장한 수사 의지를 갖고 있었지만 파견검사들은 그 반대에 서서 진실을 봉쇄하거나 희석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정씨는 "검사들은 항상 밖에서 모니터를 통해 (수사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자기들한테 불리한 진술이 나오면 끼어들었다"며 "심지어 자기 상급자인 특검보가 조사를 하는데도 파견검사들이 끼어들어 자기들한테 유리한 질문을 했지만 특검보가 제지를 못했다"고 전했다.

실제 특검 수사 결과가 '용두사미'로 끝난 데에는 '특검·특검보 대 파견검사들 간의 대립·갈등'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파견검사들이 '진상규명'보다는 '조직보호'에 더 진력했다는 것. 전·현직 검사들이 대거 수사대상에 포함되자 민경식 특검이 '비검사 출신'인 안병희 특검보에게 일부 수사를 맡길 정도였다.     

정씨는 "파견검사들은 '왜 특검과 특검보는 정씨의 말만 믿는냐?'는 식으로 항의했다"며 "특히 10명의 파견검사는 특검이나 특검보가 아니었다. P 부장검사는 박기준 전 부산지검장을 소환조사할 때 뒷문을 열어주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민경식 특검은 "그것(파견검사들의 조직적 방해행위 등)은 과장되거나 잘못된 생각"이라며 "의사결정 과정에서 (파견검사들도) 자기 의견을 얘기할 수 있지 않냐"고 일축했다.  

한편, 정씨는 "(특검 수사 전의 법무부) 진상조사위 조사는 전부 개인 흠집내기였다"며 "진상을 규명한 것이 아니라 개인을 수사했고, 검사들을 수사한 게 아니라 나를 수사했다"고 꼬집었다.

정씨는 "검찰이나 검사는 치유 불능인 것 같다"며 "술문화는 예전에 비해 많이 바뀌었겠지만 고압적인 수사행태, 권위적인 태도, 편법수사, 별건수사 등 검찰의 폐습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정씨는 특검 수사 결과와 관련해서는 "처음부터 우려한 것처럼 진상조사위와 특검에서 저만 모든 것을 잃었고, 핵심인물들은 면죄부를 받았다"며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특검에 협조했지만, 제 지인들과 증인, 참고인 등이 겪은 고통과 희생에 비해 성과가 나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특히 특검조차도 "사건의 핵심인물"이자 "진원지"로 지목한 박기준 전 검사장이 '무혐의' 치분을 받은 것과 관련, "20여 년간 저한테 밥과 술을 얻어먹은 사람은 무혐의 처리하고, 64만어치 밥과 술을 얻어먹은 검사를 기소한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라고 형평성 문제를 제기했다.  

정씨는 "정 고검검사는 곧 검찰을 떠나야 할 사람"이라며 "결국 박 전 지검장을 기소하지 않기 위해 그분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같다"고 말했다.

끝으로 정씨는 "검찰을 상대로 한 싸움이 이렇게 힘들고 주변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몰랐다"며 "(주변 분들이) 진실과 정의를 밝히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스폰서 검사' 사건의 진상을 수사할 특별검사팀이 공식 출범한 8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특검 관계자들이 현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스폰서 검사' 사건의 진상을 수사할 특별검사팀이 공식 출범한 8월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특검 사무실에서 특검 관계자들이 현판 옆을 지나가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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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난 8월 17일과 9월 10일, 16일, 26일, 29일 정씨와 전화로 나눈 대화를 일자별로 정리한 것이다. 이는 '검사 스폰서 문화'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발했던 그가 언론에 남긴 마지막 발언록이기도 하다. 

[8월 17일] "수사내용이 전부 검찰에 보고되지 않을까 우려"

부산고검 사무실에서 3회 특검조사를 받았다. 진상조사위 때 내 제보내용과 달리 짜맞추기 수사에 고통을 많이 받았다. 또 가족들이나 친인척들에게도 많은 폐를 끼쳤다. 그런데 특검에서 (진상규명) 의지를 가지고 있는 같아서, 여기서 물러나면 진실이 은폐될까 걱정돼 특검 조사에 적극 응했다.

C 검사장은 청와대에 파견돼 비서관을 하다가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를 어떻게 만났고 접대했는지 특검조사에서 자세하게 진술했다.

법무부 진상조사위 때 C 검사장의 혐의내용은 묻지도 않았다. 진상조사위는 첫날부터 제 식구 감싸기로 일관했다. 당연히 조사가 안 됐다. 그래도 특검에서는 먼저 물어왔다. 그래서 자세하게 대답했다. <시사인>과 <오마이뉴스>에서 거론한 세 사람의 검사장(황희철 법무부 차관, 정아무개·C 검사장)을 모두 조사한다고 말했다.

황희철 차관의 경우 성접대는 받지 않았다. 하지만 진상조사위에서 진술한 것처럼 부산지검에 접수시켰던 진정서를 법무부 차관실에 보냈고, 확인까지 받았다. 하지만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다. 내가 진정서를 보낸 직후 핸드폰을 안 받았다. 범죄첩보 측면에서 법무부에서 당연히 점검을 했어야 했는데 하지 않았다.

(세 현직 검사장을) 이번 주에 소환할 모양이다. 특검팀이 의지는 있어 보인다. 10명의 현직 검사가 특검팀에 파견됐다. 저한테 파견된 분은 부부장 검사와 평검사 두 명이다. 조사를 받아보면 아는데,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수사한 내용이 전부 검찰 핵심라인에 보고되지 않겠나? 그런 게 우려된다.

[9월 10일] "진상조사위 조사는 전부 개인 흠집내기였다"

지난 4월 23일엔가 음독을 해서 병원에 입원했다. 왜 음독을 했냐 하면, 사실 방송보도가 이렇게 일파만파 커질 줄 몰랐다. 특히 아내와 아이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이런 고통이 올줄 몰랐다. 그래서 신경안정제, 수면제 등 서너 가지 약을 섞어서 약 120알 먹었다.

당시 검찰이 구속집행정지 취소를 법원에 요청하는 걸 보고 죽고 싶었다. 지금도 그런 심정이다. 신경안정제, 진통제, 수면제 등을 매일 40알 먹는다. 매일 죽는다는 생각을 한다. 후회하지는 않았지만 파문이 이렇게 커질 줄 몰랐다. 내가 그 사람들의 형사처벌을 원한 게 아니었다. 검찰의 악습, 구태를 알리면 된다는 순수한 취지였다.  

진상조사위가 꾸려졌지만 진실이 밝혀질 것이라는 기대는 하지 않았다. 내가 제보한 내용은 제쳐두고 자기들 감싸는 쪽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술집종업원이나 업주로부터 (검사들을 접대하러) 10번 왔는데 1-2번 왔고, 검사들인지 모르겠다 등 허위진술을 받아냈다고 한다. 검찰은 고압적이고 위압적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진상조사위 시절) 업주들을 부를 때 나랑 대질시켜 달라고 수차례 요구했다. 하지만 어떤 사람하고도 대질한 적이 없다. 나랑 대질한 검사들도 없었다. 그런데 검찰은 제 친구, 어머니 등 주변 분들의 계좌를 다 추적했다. 나를 흠집내서 내가 제보한 내용을 묻으려고 했다. 제 흠집을 내고 주변을 캐는 등 압박을 가했다. 그런 소식(주변 계좌추적 등) 들으면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진상조사위 조사는 전부 개인 흠집내기였다. 진상을 규명한 것이 아니라 개인을 수사한 것이다. 검사들을 수사한 게 아니라 나를 수사한 것이다. 그래서 검사들과 언쟁을 많이 벌였다. 한 검사는 "우리는 검사 생활하면서 한 번도 접대를 받아본 적이 없는데 전체 검사들을 매도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제가 제보한 사람 중에서도 존경하는 사람 있다, 전체를 매도하는 게 아니다"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그래도 사건이 특검으로 넘어오면서 기대를 했다. 물론 특검도 부담스러웠다. 다시 언론에 나오게 되면 가족들이 힘들 수밖에 없어서 부담스러웠다. 몸도 안 좋았고, 이 정도 했으면 됐지 않나 싶어서 체념하고도 싶었다. 내가 더 이상 구설에 오르는 게 괴로웠다.

외부에서 지명된 특검보가 세 명 있는데, 굉장한 수사의지를 갖고 있었다. 검사들은 그 반대에 서서 (진실을) 봉쇄하거나 희석하려고 했다. 심지어 한 검사는 내 성기능을 묻기도 했다. 내가 전립선 비대증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그 검사가 "성관계에 지장이 있느냐?", "어떻게 성관계를 하느냐?"고 물어서 어이가 없고 황당했다. 하지만 답변을 거부하기 억울해서 비협조적인 답변으로 "10년간 부부관계를 한 적이 없다"고 진술하면서 고함을 지르고 항의했다.

내가 (성접대를) 받아놓고
K 부장검사에게 뒤집어씌운다고 해서 그런 질문을 한 것이다. 어이가 없었다. 성기능이 좋으면 내가 한 것인가? 전립선 비대증이 있으면 어떤 증세가 오는지 몰라서 그런 것을 물어보나?


부산에서 조사받을 때도, 서울에서 조사받을 때도 그랬다. 검사들은 항상 밖에서 모니터를 통해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기들한테 불리한 진술이 나오면 '이런 경우도 있지 않느냐?'며 따져 물었다. 자기 상급자인 특검보가 조사를 하는데도 파견검사들이 들어와서 끼어들었다. 그리고 자기들한테 유리한 질문을 하거나 불리한 부분은 다른 식으로 물었다. 특검보가 제지를 못했다.

회의 때마다 특검보와 파견검사들이 대립을 했다고 한다. "왜 특검과 특검보는 (제보자) 정씨의 말만 믿느냐?"는 식으로 항의를 했다. 수사관들한테 직접 들은 얘기인데, 특검보와 파견검사들 사이에 알력이 심했다고 한다. 아침만 되면 고함을 지르는 등 난리였다. 10명의 파견검사는 특검이나 특검보가 아니었다. 박기준 전 지검장 소환조사할 때 뒷문을 열어준 사람이 P 부장검사였다고 한다.

특검법이 잘못 제정됐다. 어떻게 검사들 조사하는데 현직 검사 10명을 파견할 수 있나? 수사기법 등 기술적 요구 때문에 파견한 것 같은데 (파견검사들의 행태는) 그런 범주를 벗어났다. 그날 수사된 내용은 저녁마다 법무부와 대검에 다 보고됐다. 매일 수사내용이 검찰쪽으로 새나간 것이다. 검사를 조사하는 사건에 검사를 파견해서는 안 된다.

오늘 얘기를 들어보니까 특검보들은 박기준 전 지검장과 한승철 전 대검 감찰부장은 기소할 모양이다. 박 전 지검장은 자기가 현직 검사장인 것처럼 안하무인격으로 특검조사를 받았다고 한다.

(파견검사들은) 공소시효가 지나서 처벌받을 게 없다고 주장하지만, (특검보들은) 직무유기나 직권남용으로 기소하려고 법리를 검토하는 것 같다. 한 전 부장은 100만원만 인정했다. 그리고 K 부장검사는 오히려 내가 성관계를 했다고 덮어씌우고 있다.

(진상조사위나 특검 조사를 받아보니) 검찰이나 검사는 치유불능인 것 같다. 강압적이고 고압적인 수사행태, 권위적인 태도 등 달라진 게 하나도 없다. 이번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마도 선배검사한테 전수받고, 교육받고 하니까 그런 것 같다.

내가 검사들과 자리를 수백번 했지만, 그들의 교육이란 '피의자 다루는 법'이다. 예를 들면 "잠을 재우지 마라", "불러도 조사는 하지 마라", "계좌추적 등 주변을 압박해라" 등이 그런 경우다. 후배들은 그런 것밖에 안 배운다. 내가 경험해본 바로는 조사도 하지 않으면서 계속 부르는 게 제일 힘들더라. 오전 8시에 불러서 오후 4시가 되어서야 조사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조사도 안 하고 돌려보내기도 했다.

검찰은 반성하고 자성한다고 하지만 말뿐이다. 물론 술문화는 (예전에 비해) 크게 바뀌었을 것이다. 하지만 편법수사, 별건수사, 권위적 태도 등은 전혀 안 바뀌었다.

내가 이 사건을 제보할 때 형사처벌은 생각하지 않았다. 각오하고 지난 일을 폭로한 이유는 이렇게 폭로되면 검찰의 구습, 폐습이 바뀔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결과를 놓고 보면 저는 모든 걸 잃었다. 아내와 자식들, 친인척, 선후배 등에게 엄청난 피해를 줬다. 어떻게 사죄하고 용서를 구해야 할지 모르겠다.

내 후원사이트(http://cafe.daum.net/sponsor2010)에서 선처를 바란다는 서명을 받고 있다. MBC와 KBS, SBS 등 시사교양 관련 피디와 작가들 240여 명이 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9월 16일] "특검법에도 없는 경찰관 조사로 물타기하고 있다"

구치소에 영치해둔 핸드폰이 있는데, 박기준 전 지검장이 나를 모른다고 부인해서 (나와 박 전 지검장의 관계를) 증명하기 위해 그걸 검찰에 제출했다. 검찰에서 다운을 받은 뒤 돌려받았다. 원래는 핸드폰 기기를 바꾸어서 (검찰에 제출했던) 핸드폰을 변호사나 가족에게 돌려주려고 했는데, 검찰이 바로 압수수색 해갔다.

검찰은 제 핸드폰에 박 전 지검장과 관련된 녹음이 위·변조될 수 있기 때문에 압수수색을 신청한다고 했다. 거기에 판사도 서명을 하고 압수수색영장을 발부했다. 그런데 이번 특검수사 과정에서 알게 됐다. 검사들이 특검법까지 위반해가면서 개인보복을 하려고 한다.

내 핸드폰에 입력된 사람들은 대부분 다 조사했다. 심지어 내가 다니는 미용실에 전화를 해서 한 여성분한테 "정씨와 어떤 사이냐?"고 모욕적으로 물었다. 제 자녀의 은사님들한테도 전화해서 "정씨로부터 돈을 받지 않았냐?"고 묻는 등 모욕감을 느낄 정도로 조사했다. 또 영장도 발부받지 않고 제가 보낸 문자, 받은 문자, 저장된 전화번호 500여 개를 불법으로 다 들여다봤다. 애초 그러려고 했으면 문자 발수신, 입력된 전화번호부를 전부 검색한다고 해서 영장을 받았어야 했다.

(전·현직) 경찰관들을 조사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특검법에도 없는 경찰관 조사로 물타기하고 있다. 결국 내 죄를 캐기 위한 것이다.

현재까지 기소를 검토하고 있는 사람은 박기준 전 지검장과 한승철 전 대검 감찰부장, 황희철 차관, K 부장검사 등 4명 정도다. C 검사장은 공소시효가 끝났다고 그냥 넘어갈 모양이다. 제가 (접대사실 등을) 자세하게 진술했고, C 검사장으로부터 직접 받은 명함까지 제출했는데도 말이다.

[9월 26일] "저만 몸고생, 맘고생 한 것 같다"

형사처벌 발표가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형사처벌보다는 25년 전부터 지금까지 검찰의 구습이 안 바뀌었다는 것이 내 주장의 핵심이다. 공소시효가 지났다고 하더라도 검사들에게 경종을 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어찌 될지 궁금하다.

박기준 전 지검장과 한승철 전 감찰부장이 면직 취소소송을 냈다고 하던데, 특검의 진상조사 결과가 발표되지도 않았는데 그런 소송을 냈다는 것은 국민을 우롱하는 것이다. 복직하겠다는 뜻인데 참으로 후안무치하다.

전에 내 핸드폰 압수당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것을 특검에 넘겨야 하는데 누락했다. 핸드폰을 돌려받지도 못했다. 전에 얘기한 것처럼 핸드폰에 입력돼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마녀사냥식으로 전화조사를 받았다. 그저께(24일) 왜 핸드폰이 없느냐고 특검팀에 물었더니 검찰로부터 받은 게 없다고 했다.

내 후원 사이트가 생기고 후원계좌도 만들어졌는데 참여가 저조하다. 그 이유를 알아보니, 제 친구나 선배, 지인들이 내 후원계좌에 1만원이라도 넣으면 검찰로부터 압수수색이나 계좌추적을 당할까 두려워하고 있다. 사업가는 사업가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직장인은 직장인대로 그렇게 겁을 내고 있다. 심지어 병문안도, 전화도 못한다.

검사가 어떻게 검사를 조사할 수 있나?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특검을 할 필요가 없겠다. <문화일보>에 기사가 났는데, 거기에 거론된 부장판사는 내 동생이 아는 사람으로 잠시 자리에 앉았다 간 사람이다. 그런데 파견검사들이 이걸 언론에 흘렸다. 물타기 하려고 말이다.

진상조사위와 특검을 하면서 저만 죽었다. 건강은 더 나빠지고, 가정은 파탄났고…. 저만 몸고생, 맘고생 한 것 같다. 특검도 뚜렷한 성과를 못내고 끝나는 것 같다.

[9월 29일] "박기준 무혐의?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

특검 결과는 정말 어이없고 황당하다. 처음부터 우려한 것처럼 진상조사위와 특검에서 저만 모든 것을 잃고, 핵심인물들은 면죄부를 받았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특검에 최선을 다해 협조했다. 증인을 확보해주고, 설득하는 등 특검에서 요구하는 것은 다 들어주었다.  진술하기 부담스러운 사람도 수소문해서 협조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제 지인들, 증인, 참고인 등이 겪은 고통과 희생에 비해 성과는 나지 않았다.

박기준 전 지검장은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무혐의 처리했다. 그는 이번 사건의 중심이다. 내가 뇌물공여죄로 처벌받는 한이 있더라도 포괄적 뇌물죄나 직무유기로 기소했어야 했다. 20여 년간 저한테 밥과 술을 얻어먹는 사람은 무혐의 처리하고, 64만어치 밥과 술을 얻어먹은 정아무개 고검검사를 기소한 것은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지난해 3월 정 검사가 마련한 환송연을 내가 지원했다. 하지만 내 사건이 터진 것은 같은 해 4월 말이었다. 그러니까 환송연 때 사건을 청탁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64만어치 향응을 받고 사건을 청탁받았다고 정 검사를 기소했다. 그런 식이라면 내 사건과 관련해 '수사를 늦추라'고 지시했고, 20여 년간 밥과 술을 접대받은 박기준 전 지검장도 포괄적 뇌물죄를 적용했어야 한다. 정 검사는 곧 검찰을 떠나야 할 사람이다. 결국 박기준 전 지검장을 기소하지 않기 위해 그분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 같다.

K 부장검사도 성접대 혐의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데, 술집 사장과 아가씨는 2차를 나갔다고 수차례 진술했다. 특검은 '2차는 나갔지만 성관계는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면 성관계 하는 것을 직접 보고 와야 성접대가 확인되는 것인가? 일반 성인들이 성매매로 단속됐을 때 그런 식으로 조사하나? 우리보다 진술이 더 약해도 100% 구속할 것이다.

제가 부산과 서울에서 조사받으면서 느꼈는데, 특검 내부의 갈등과 알력이 굉장히 심했던 것 같다. 파견검사들과 민간인 특검보 사이의 갈등이 심했다. 파견검사들은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검찰조직을 보호하는 쪽으로 수사를 진행했다. 조사과정에서 자기들한테 불리한 진술이 나오면 끼어들어 방해했다. 그래서 검사들을 조사하는 사건에 검사를 파견하면 안 된다.

내 제보로 인해 주변 지인, 선후배, 친구 등에게 폐를 끼쳐 굉장히 죄송하게 생각한다. 진실과 정의를 밝히기 위한 것으로 이해해주길 바란다. 검찰을 상대로 한 싸움이 이렇게 힘들고 주변을 고통스럽게 만드는지 몰랐다. 그리고 물심양면으로 후원해주신 국민들에게는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끝으로 저랑 인연을 맺은 전·현직 검사들에게 인간적으로 호소한다. 뒤에 숨지 말고 양심이 있다면 떳떳하게 나한테 전화 한 통 해달라.

<채근담>에 이런 대목이 있다. '내가 남에게 베푼 것은 마음에 담아두지 말고 남이 내게 베푼 것은 마음에 새겨두라.' 항상 되새기고 있는데 저도 일개 필부인지라 100% 초연해지지는 않는다. '웃음을 위해 분노하고, 웃기 위해 눈물을 흘린다'는 글이 현재 내 심경이다.


태그:#검사 스폰서, #민경식 특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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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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