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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생 시절부터 노동자 건강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공유정옥(37, 산업의학전문의)씨는 지난 2007년 11월, 백혈병에 걸려 23살의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황유미씨의 부친(황상기씨)을 만나면서 '청정산업'으로 불렸던 반도체 산업노동자들의 그늘과 마주했다. 삼성 반도체와 LCD 등에서 근무했던 직원들이 젊은 나이에 백혈병 등의 암에 걸려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고 있던 때였다.

결국 그는 이종란 노무사 등과 함께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사망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를 발족시켰다. 대책위는 '반도체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를 내세운 '반올림'으로 이어졌다. 대책위와 반올림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반도체 노동자들의 건강권문제를 제기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특히 그는 최근 미국 공중보건학회(APHA)에서 주는 '2010 산업안전보건상(Occupational Health & Safety Awards) 수상자로 선정됐다. 전세계 3만명의 의료전문가들이 모인 이 학회는 "반올림이라는 단체를 통해 반도체 산업의 암 발병 희생자를 위해 뛰어난 활동을 벌였기에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2010년 7월 현재 피해자수 59명... 이미 사망한 사람만 30명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
 '반도체 노동자 건강과 인권 지킴이,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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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5일 만난 공유정옥씨는 "'반올림'이 받았으면 했는데 개인이 수상할 수밖에 없어서 형식상 제가 받은 것"이라고 겸손했다. 이어 "상을 받으러 가면 산업안전분과 소속 전문가들이 수백명 모일텐데, '어떻게 해야 이들에게 우리의 싸움을 효과적으로 알릴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활동하고 있는 '반올림'에서 집계한 결과, 지난 7월까지 삼성전자(반도체․LCD) 등에서 일했다가 백혈병 등에 걸린 사람은 총 59명이다. 이미 사망한 사람만 30명에 이른다.

그는 "종전에는 제보를 통해서 피해자 규모를 파악했는데, 정부가 조사한 자료 등을 종합해 봤더니 피해자 규모만 100명에 육박할 것 같다"며 "이들 대다수가 암이고, 10% 정도만 암 이외의 다른 질환을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리 활동이 주로 백혈병으로 한정돼 알려져 있어 백혈병 사례에 편중돼 있었는데, 이제는 다른 암 사례도 많이 들어오고 있다"며 "백혈병뿐만 아니라 난소암, 자궁암에 걸린 사례도 조금씩 들어오고 있다"고 전했다.

현재까지는 주로 삼성전자 반도체와 LCD 공장에서 근무한 사람들한테 백혈병 등이 발병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반올림에서 파악한 결과, 삼성전기 휴대폰 공장과 삼성전관(삼성SDI), 삼성코닝 등에서도 피해자가 나오고 있다는 것.

그는 "그동안 반도체와 LCD 라인의 제보가 많이 들어온 것뿐"이라며 "반도체와 LCD가 제일 큰 문제이긴 하지만 다른 곳이 상대적으로 덜하다고 얘기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전자와 전기로 (산업을) 분류하지만 같은 일을 하기도 한다"며 "그러니까 삼성전자와 삼성전기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강조했다.

게다가 발병 종류도 백혈병뿐만 아니라 희귀질환인 육아종, 흑생종, 생식세포종, 뇌종양, 루게릭병, 다발성 말초신경염, 생식독성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생식계통에 문제를 일으키는 생식독성의 사례가 적지 않고 들어오고 있다고 한다.

그는 "생식독성은 영어로 'reproductive disorder'라고 하는데 생리불순, 불임, 조기폐경, 무정자증, 유산, 선천성 기형아 출산 등의 증상을 보인다"며 "이 생식독성 피해자 숫자가 정확하게 집계되지는 않았지만 제보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10년 전 발암물질이 없었다는 증거도 없다"

하지만 삼성과 정부는 이러한 발병과 업무의 연관성을 부인하고 있다. 정부는 '조사를 해보니 발암물질은 없었다'고 주장했고, 삼성은 심지어 백혈병 등을 '개인질병'으로 축소하기도 했다. 

그는 "(반도체) 디퓨전 공정을 관리하는 엔지니어 4명이 한 팀에서 일했는데 부장은 40대 초반에 백혈병에 걸려 현재 투병 중이고, 과장은 흑생종에 걸려 죽었고, 다른 한 명은 육아종에 걸려 현재 투병 중"이라며 "이것을 우연이라고 얘기할 수 있나?"라고 지적했다.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는 "이길 때까지 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올림' 활동가 공유정옥씨는 "이길 때까지 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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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사례도 있다. IBM 연구소에서 웨이퍼 반도체 공정을 연구하는 연구원 12명 중에서 10명이 암(6명)과 뇌종양(4명)에 걸린 것. 1980년대에 일어난 일이다. 이는 백혈병 등이 반도체 공정과 상관관계가 있을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는 "삼성은 다른 나라 얘기라고 얘기하지만 그런 일이 한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며 "반도체 칩을 검사했던 여성노동자들 중에 재생빈혈이나 뇌종양에 걸린 사람들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상관관계를 부정하는 쪽에서는 발암 물질이 없다는 것을 가장 큰 증거로 내세우지만, 10년 전 (반도체 공장에) 발암물질이 없었다는 증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중요한 건 발암물질로 밝혀진 게 있고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게 있다"며 "(그런데도 상관관계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 동네에서 연쇄살인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동네에 전과자가 없다는 이유로 살인이 아니라 자살이라는 논리를 펴는 것과 같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지난 2008년 초 전국 13개 반도체 제조업체 노동자 건상실테 일제조사를 실시했다. 이 조사에는 ▲주요 화학물질 현황 ▲방사선 발생장치 사용 현황 ▲백혈병 발생 현황 ▲건강진단 및 작업환경 측정 실시 현황 등이 포함돼 있었다. 하지만 정부는 일제조사 결과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는 "반올림에서 조사결과와 관련해 정보공개 청구를 했지만 '영업비밀'을 들이대며 공개를 거부했다"며 "하지만 미국 실리콘밸리(캘리포니아주)에서는 시민이 화학물질 리스트를 공개하라고 요구하면 공개해야 한다는 것이 주법으로 만들어져 있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 1983년 미국에서는 처음으로 '지역사회의 알 권리에 대한 법'이 통과됐다. 이 법에 따라 기업들은 지역사회에 배출하고 있는 화학물질 목록을 공개해야 한다. 더 나아가 미국에서는 제조시설에서 배출하는 독성 화학물질의 정보를 공개적으로 제공하는 '독성물질배출목록'도 만들어졌다.

이와 관련, 그는 "캘리포니아 오스틴에 삼성공장이 있는데 '지역사회의 알 권리에 대한 법안' 때문에 삼성공장은 미국 시민에게 정보공개를 해야 한다"며 "하지만 똑같은 회사가 암에 걸려 딸이 죽은 한국의 아버지나 노동자에게는 공개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내년에 반올림 상설단체화... 이길 때까지 싸울 것"

그는 "삼성이 내년에 반도체 등에만 11조원을 투자한다고 하는데 그에 비례해 얼마나 많은 노동자가 죽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며 "이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문제를 직시해서 지금부터 답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피해자 편에 서는 사람들을 늘리는 데 힘을 모을 생각"이라며 "내년에 '반올림'을 상설단체화 하는 등 장기적 안목으로 이길 때까지 싸울 생각"이라고 말했다.

반올림에서 집계한 '삼성전자/전기 백혈병 피해 노동자' 명단.
 반올림에서 집계한 '삼성전자/전기 백혈병 피해 노동자' 명단.
ⓒ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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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공유정옥, #삼성반도체 백혈병, #미국공중보건학회, #반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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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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