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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천문대 가는 버스 안.
 보현산천문대 가는 버스 안.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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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산 천문대에 다녀왔습니다. 영천에 도착한 8일 오후, 지도를 보고 천문대가 있는 화북면을 향해 1시간여를 걸었는데 9일 아침엔 도로 온 만큼을 되돌아갔습니다. 가능한 한 걸을 작정이었지만 영천 버스터미널에서 보현산 천문대까지는 차로 1시간은 족히 걸리며 버스를 타도 나머지 9.3km는 걸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만만찮을 여정에 걱정이 앞섰지만 차를 타고 얼마지 않아 우려는 탄성에 묻혔습니다. 천문대 가는 길, 차 창밖 풍경이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아름다워서였습니다. 푸르디 푸른 하늘 아래 넓고 완만한 산세는 마치 조부모부터 증손자까지 한자리에 모인 거북 일가 같기도 하고, 신의 거대한 손등 같기도 했습니다. 그 아래 한참을 이어지는 영천댐은 원래가 웅장한 강처럼 보였습니다.

정각 별빛마을에서 바라보는 보현산 천문대.
 정각 별빛마을에서 바라보는 보현산 천문대.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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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으로 '와, 와, 와'를 연신 외치다보니 어느새 최종 정착지인 정각 별빛마을이었습니다. 별·빛·마·을. 이름부터 여행자의 마음을 설레게 했습니다.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서너 걸음 옮겼을 때 저 멀리 산 가운데 천문대가 보였습니다. 올라오는 내내 들뜬 탓인지 새끼손톱보다 작은 그 하얀 건물에 금방이라도 닿을 수 있을 듯 했습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본격적인 걷기에 앞서 밥을 먹었습니다. 한 사람분 식사가 되는 곳을 찾다 산 아래 마지막 식당인 '보현산 식당'에 들어갔습니다. 널찍한 마당 한쪽에서 식사 중이던 주인 부부가 얼른 자리를 권했고, 메뉴는 고를 것도 없이 '시골밥상'이었습니다.

부부가 직접 길러 만들었다는 너댓 가지 밑반찬에 엷은 우윳빛 쇠고깃국이 나왔습니다. 평소 즐기지 않는 고깃국이지만 이날만큼은 감사히 먹었습니다. 식사를 하고 있으니 들어올 때부터 살갑게 굴던 강아지 두 마리가 발목을 핥았습니다. 태어난 지 2개월쯤 됐다는 녀석들은 하양과 검정 털색만 다를 뿐 판박이처럼 닮았습니다.

한창 장난기 오른 녀석들은 지들끼리 엉겨서 깝죽대다가도 이유없이 근처 닭들에 시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 덩치 큰 닭이 날개라도 한번 움찔하면 '걸음아 나 살려라' 어미품으로 도망쳤습니다. 새끼개들 하는 양이 어찌나 귀엽던지요. 반면 하룻강아지 무례함에 이골이 난 듯한 닭들은 그저 초연했습니다. 그런 닭들을 당연히 식용이겠지 여기고 안쓰러워 했는데 알고 보니 이들도 주인 부부의 사랑을 듬뿍 받는 한 식구였습니다.

산 아래 마지막 식당 '보현산 식당'에서
 산 아래 마지막 식당 '보현산 식당'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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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 열기가 수그러들길 기다려 두 시경 식당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해발 1126.4미터의 보현산 정상을 향해 숲길을 따라 걸었습니다. 녹록지 않은 거리임에도 예의 '무대뽀' 정신을 발휘해 호기롭게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그러길 두어 시간, 여전히 7킬로미터여가 남은 지점에서 어이없게 체력이 바닥을 드러냈습니다.

기어이 가려면 못 가겠냐만은 띄엄띄엄 오가는 자가용이 있어 그들 중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골라잡은 것이 천문대 직원 두 명이 탄 차였습니다. 이정도면 '여행운'을 타고났다 해도 되겠습니다. 각기 10년과 6개월 경력의 직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빠른 속도로 산을 오르는데, 갈수록 아찔하면서도 까마득한 비경이 펼쳐져 또다시 감탄의 연속이었습니다.

천수누림길데크로트 전망대에서
 천수누림길데크로트 전망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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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보현산천문대 도착. 내려갈 때도 천문대 직원들의 퇴근시각인 6시에 맞춰 신세를 지기로 하고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기대한 것과 달리 천문대에서 밤하늘의 천체를 볼 수 있는 건 1년에 단 한 번뿐이지만 산 정상에서 보는 경상북도 일대의 전경만으로도 가슴이 벅찼습니다.

보현산천문대. 한국천문연구원(KASI)은 1996년 이곳에 1.8미터 망원경을 설치했다.
 보현산천문대. 한국천문연구원(KASI)은 1996년 이곳에 1.8미터 망원경을 설치했다.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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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산 아래 풍경에 넋을 잃고 있다가 제일 먼저 1.8미터 광학망원경이 있는 천문대 건물 앞으로 갔습니다. 12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동전도 식별할 수 있다는 이 망원경이 우리돈 1만 원권 지폐에 혼천의와 함께 그려진 망원경입니다.

직접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이런 곳에서 묵묵히 우주를 관찰하고, 일상생활에 없어선 안 될 정보를 전달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생각만으로 세상을 좀더 알게 된 기분이었습니다. 

다음은 전시관. 1층의 넓지 않은 공간에 다양한 천체 사진과 그 특성 등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전문적인 내용까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몇 가지 재미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달과 목성, 태양에서 각기 자신의 몸무게를 알 수 있는 체중계였습니다. 지구에서의 몸무게도 알 수는 있었으나 통과! 저는 달에서 11kg, 목성에서 183.94kg, 태양에서 1940kg이었습니다.

태양에 관한 중요한 상식도 터득했는데, 자동차로 지구에서 태양까지 가려면 시속 100킬로미터로 172년을 가야 한다는 사실과 1초 동안 태양이 발산하는 에너지는 미국이 9만 년간 쓸 수 있는 양이라는 것, 태양 중심부의 빛이 그 표면까지 나오는 데 약 1500만 년이 걸리는 데 반해 그것이 지구까지 오는 데는 불과 8분 20초가 걸린다는 것 등입니다. 우주를 움직이는 질서 앞에 사람은 한낱 티끌 만큼의 존재감도 확보되지 않는 듯 합니다.

하늘까지 이어질 듯한 천수누림길데크로드.
 하늘까지 이어질 듯한 천수누림길데크로드.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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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전시관에서 나와 천수누림길데크로드를 따라 시루봉까지 걸었습니다. 정상의 산 둘레를 따라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길인데, 걷다 보면 마치 하늘을 향해 가고 있는 듯합니다.

하지만 좀전에 만났던 천문대 직원에 따르면 최근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등의 붐을 타고 시에서 조성하고 있는 이러한 시설이 천문대 본연의 역할인 천체 관측엔 도움이 되질 않는다고 합니다.

천체 관측에 있어 절대적으로 방해가 되는 것이 빛인데, 사람들이 이곳을 관광지로 여겨 특히 밤에 자동차의 헤드라이트를 켜고 찾아오면 그 자체로 업무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왜 9.3킬로미터 지점에서 차가 끊기는지 의아해했는데 그 물음에 대한 해답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데크로드 우측 끝 정자에서 다시 우측으로 몇 발자국만 오르면 보현산 두 번째 정상인 시루봉이 나옵니다. 이곳은 패러글라이딩 활강장인데, 간담이 서늘할 만큼의 고도 앞에서 '언젠가 날고 싶다'던 바람은 자신을 잃었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하늘을 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겠습니다.

시루봉 패러글라이딩활강장.
 시루봉 패러글라이딩활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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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문대 직원과 다시 만나기 전 약 한 시간 동안은 데크로드의 난간에 앉아 책을 읽었습니다. 이야기에 정신을 놓았다 문득 주변을 돌아보니 하늘 한가운데 앉은 듯한 착각도 들었습니다. 저녁이 가까운 시각, 바람은 지상에서보다 훨씬 차가웠습니다. 조만간 긴 팔 윗옷을 사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비록 밤하늘에 총총한 별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과 다름없이 마음이 환해진 하루였습니다.

당신의 오늘은 어땠습니까? 별을 본 마지막이 언제였는지 기억나시는지요?

천상에서의(?) 책읽기.
 천상에서의(?) 책읽기.
ⓒ 이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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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와 다음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태그:#가을여행, #전국일주, #보현산천문대, #별밤, #천수누림길데크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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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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