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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배설의 즐거움이 그렇게 소중한 줄. 이틀 전, 아랫배가 살살 아팠다. 곧바로 화장실로 직행. 쉽게 밀어내기에 성공할 줄 알았다. 어~, 그게 아니었다.

사실 난 변기에 앉아 오랫동안 기다리는 체질이 아니었다. 찬 음식을 먹거나 시원한 생맥주를 마신 후면 어김없이 줄줄 새는 체질이었다. 아내는 그때마다 쓴 소리를 여지없이 토해냈다.

"또 새요? 그러니까 술 좀 작작 마시라니깐."

이렇듯 변비와 인연이 전혀 없었다. 줄줄 새다 보니 어쩔 땐 변비 한 번 걸렸으면, 하고 원할 때가 있을 정도였다.

형님의 특이한 인사, "똥은 잘 누요?"는 생활지혜

변기에 앉아 처음에는 이러다 말겠지 여유만만 했다. 책을 보다, 힘을 주다 했다. 문득 잊고 있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외가에 특이한 형님이 한 분 계셨다. 그는 고모인 어머니를 보면 "잘 계시느냐?" 등의 보편적 인사는 건네지 않았다. 꼭 이렇게 안부를 물었다.

"똥은 잘 누요?"

이를 두고 형님을 타박한 적 있다. 안부 인사를 다른 걸로 바꾸기를 권했다. 그랬더니 엉뚱한 답이 돌아왔다.

"니가 잘 모르나 본데, 똥 상태를 묻는 건 어른들 건강을 살피는 한 방법이야. 노친네들은 변을 잘 봐야 건강하거든."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내가 막상 배설의 어려움에 처하니, 형님 말이 괜한 안부는 아니구나 싶었다. 형님 안부는 생활 지혜였던 게다.

웃음이 나와, 신랑은 돌아가기 일보 직전이구만!

관장의 고통을 누가 알랴?
 관장의 고통을 누가 알랴?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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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변기통에 앉은 지 한 시간이 넘어가자 얼굴빛이 달라졌다. 아이들도 한 소리씩 보탰다.

"아빠, 왔다 갔다 하지 말고 변기에 가만 좀 앉아 있어요."
"낸들 왔다 갔다 하고 싶어 이러는 줄 알아?"
"화장실 오래 앉아 있는 건 제가 선배네요. 앉아서 아랫배에 힘주고 있으면 나와요. 왔다 싶을 때가 있거든요. 아빠가 안절부절 하니까 제가 더 안타깝네요."

아이들은 며칠 만에 변을 보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내게 던진 훈수는 전혀 소용없었다. 참다 참다, 밖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 두 시간 째 변이 안 나와. 설사약이나 관장약 좀 사와."
"히히~, 병원 응급실에 가요. 그게 더 편해요. 다들 그러다 결국 응급실에 간대."
"지금 웃음이 나와. 신랑은 돌아가기 일보 직전이구만. 잔 말 말고 빨리 약이나 사와."

버럭 화를 냈다. 변비에 시달린 경험이 있던 아내인지라 그 속을 알 텐데, 야속했다. 아내는 아이들 관장도 심심찮게 했던 이 방면의 도사였다.

"항문에 힘 꽉 줘, 안 되면 응급실에 가야 해"

변기 앞에서 씨름하길 세 시간째. 늦게 온 아내가 성의 없이 약을 내밀었다. 관장까지 할 상황이라 몹시 심통이 났다.

"약, 여깄어요."
"자네가 해줘. 이 꼴인 나보고 하라고…."
"더럽게 내가 어떻게 해. 다들 자기가 직접 하드만~, 이상한 남편이네."

엉덩이를 까고 바닥에 비스듬히 누웠다. 으~ 으으~ 윽. 항문 속으로 관장약을 넣던 아내가 오금을 팍팍 박았다.

"항문에 힘 꽉 주고 10여분 기다려요. 안 그러면 약이 줄줄 새서 관장약도 소용없어. 꼭꼭, 그렇게 해야 돼. 알았어요? 안 그럼 응급실에 가야 해."

죽는 줄 알았다. 항문에 힘을 줘도 힘이 쏠리지 않았다. 우~째, 이런 일이…. 때 이른 망령이 난 건가?

관장의 고통, 약발이 동했을까? 혼신의 힘이 통했을까?

배설의 기쁨을 안겨 준 관장약.
 배설의 기쁨을 안겨 준 관장약.
ⓒ 임현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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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별 꼴이다. 관장약이 흐르는 느낌이었다. 참을 수가 없었다. 2분 여 만에 변기에 앉으려고 바닥에서 일어났다. 아내가 악을 썼다.

"누워서 엉덩이에 힘주고 있으라니깐. 그 놈, 진짜 말 안 듣네. 빨리 누워!"

허허~, 끝까지 가보자는 말투였다. 부부싸움도 이렇게 한 적 없었다. 그렇지만 왠지, 두 눈 부라리고 악을 바락바락 써 대는 아내가 밉지 않았다. 그냥 처량했을 뿐이다. 각시 못할 짓을 시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부 밖에 없다는 걸까?

아내는 말 안 듣는 신랑을 향해 "당신 알아서 해"하고 밖으로 나갔다. 변기 위에서 홀로 씨름했다. 땀이 줄줄 흘렀다. 다리 힘이 솔솔 빠져 나갔다. 여전히 해결 기미가 없었다. 이러다 응급실 가는 것 아냐? 조바심이 났다.

킁킁~, 삶은 혼자라더니 기를 쓰고 혼자 해결해야 했다. 아~, 고통의 시간이여! 약발이 동했을까? 마지막 혼신의 힘이 통했을까? 기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 배설의 기쁨, 그 시원함이란?

이틀이 지난 지금, 아직 쾌변을 못하고 있다. 팥과 녹두가 좋다는데 식이요법이 통하려나?

덧붙이는 글 | 다음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관장, #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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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힐 수 있는 우리네 세상살이의 소소한 이야기와 목소리를 통해 삶의 향기와 방향을 찾았으면... 현재 소셜 디자이너 대표 및 프리랜서로 자유롭고 아름다운 '삶 여행'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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