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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역사에 대해 성실하게 임하려고 생각합니다. 역사의 사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이를 인정하는 겸허함을 갖고, 스스로의 과오를 되돌아보는 것에 솔직하려고 합니다.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입니다. 이러한 식민지 지배가 초래한 다대한 손해와 아픔에 대해, 여기에서 다시금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합니다.

간 나오토 일본 총리.
 간 나오토 일본 총리.
ⓒ 일본 총리 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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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간 나오토 일본 총리는 한일 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해서 "다시금 통절한 반성과 진심으로 사죄의 마음을 표명했다." 담화를 발표하기 전부터 한일 양국의 언론은 '간 담화'가 성사될 수 있을 것인지, 만약 발표된다면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에서 더욱 진전된 내용을 담을 수 있을 것인지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또한 담화 발표를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총리 담화라는 제한된 형식을 취할 것인지도 주목의 대상이었다.

결국 담화는 발표되었다. 광복절도, 국치일(8월 29일)도 아닌 8월 10일에, 법적 책임이 없는 총리 담화의 형식을 취해서. 그리고 담화의 내용은 '통절한 반성과 진심', '사죄의 마음'을 강조했지만, '다시금'의 단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15년 전의 반성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한국과 일본의 지식인 사회가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한일병합의 불법성과 원천무효 문제는 "정치·군사적 배경 하에 당시 한국인들은, 그 뜻에 반한 식민지 지배로 국가와 문화를 빼앗"겼다고 언급하면서, 총리 담화 중 최초로 강제성이 있었음을 시인했지만 모호하게 표현하는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결국 간 담화는 전반적으로 무라야마 담화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구체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 이전 '사죄외교'와는 다른 면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까지 실시해 온 이른바 사할린 한국인 지원, 한반도 출신자의 유골 반환 지원이라는 인도적 협력을 앞으로도 성실히 실시해 가겠습니다. 또한, 일본이 통치하던 기간에 조선총독부를 경유하여 반출돼 일본 정부가 보관하고 있는 조선왕실의궤 등 한반도에서 온 귀중한 도서에 대해, 한국민의 기대에 부응하여 가까운 시일에 이를 넘겨주고자(お渡し·오와타시) 합니다.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귀중도서(일본 측에서는 대략 6만점 정도로 추정)를 가까운 시일에 '양도'하겠다는 약속으로, 간 총리는 강제병합 100년을 의식한 사죄에 진정성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다만 '반환' 대신 '양도(お渡し·오와타시)'를 사용해서 한일병합의 합법성을 미리 전제하고 병합 100년을 기념하는 특별 선물의 성격을 강조하는 한편, 이후에 있을지도 모르는 한국의 추가 요구들을 미리 차단하고자 하는 뜻을 담고자 한 것으로 여겨진다.

실망스러운 것인가, 우려할 만한 것인가

'일본 총리 담화 기대에 못 미친다(경향)' '일본의 식민지배 반성, 행동으로 진정성을 보여라(한겨레)' '日 총리 담화, 한·일 새로운 100년 출발점 될 수 있나(조선)' '강제병합 100년 반성과 사죄 … 말보다 행동이다(중앙)' '日총리 사과, 역사왜곡 시정으로 이어져야(동아)'

간 담화 발표 이후, 한국 주요 일간지의 사설 제목이다. 단적으로 한국언론의 반응은 '실망스럽다'가 대세를 이룬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역시, 실망의 대세에 한 목소리를 내었다. 한나라당은 대변인 논평을 통해, "강제병합조약의 불법성과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 동원 문제 등에 대한 구체적인 언급이 없다는 점은 과거 일본식민 지배의 고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우리 국민의 마음을 달래기에는 미흡하다"고 비판하면서 '더욱 솔직한 반성'을 촉구했다. 민주당 대변인도 "오늘 일본총리의 사죄표명은 그동안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에 비추어 진전은 있었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실망스러운 담화"라며 "우리는 아직도 일본의 사죄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다"고 비판했다.

한편 일본 주요일간지는 총리 담화 이후 '일한병합담화, 미래지향의 양국관계에 탄력을(요미우리)' '병합100년 담화-새로운 일한협력의 초석으로(아사히)' '일한병합 100년 「자학」담화는 역사를 왜곡한다(산케이)' 등의 제목으로 사설을 실었다. 보수우익을 대변하는 <산케이신문>이 "역사인식문제에 큰 화근", "폭주" 등의 표현을 사용하면서 강렬하게 반발했지만, 대다수의 신문은 간 총리의 '통절한 반성과 사죄' '한국인들의 뜻에 반해 이루어진 식민지 지배'를 공감하는 분위기이다.

하지만 일본 언론의 공감은 식민지 지배를 반성하는 원론적인 수준에 한정되는 것일 뿐, 조선왕실의궤를 비롯한 도서반환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진보적 입장을 대변하는 <아사히신문>만이 도서반환 조치를 찬성할 뿐, 대부분의 신문들은 도서반환 조치가 새로운 배상문제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이 "새로운 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일본정부의 입장은 견지해야만 한다. 한국 측에는 냉정한 대응을 요구한다"고 한 것이나, <산케이 신문>이 "(도서반환에 대해서) 새로운 조약을 체결해 국회승인을 얻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은 이번 조치 이후의 잠재적인 불씨를 미리 차단하고자 한 것이다.

한국과 달리 일본 정치권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야당 중에서는 사민당과 공명당만이 이번 담화를 높게 평가할 뿐, 자민당을 비롯한 나머지 보수 야당은 "미래지향이 아닌 과거지향적", "일방적으로 자학적 역사인식을 보여 한국 측에 전후보상에 대한 과대한 기대를 갖게한 것" 등의 부정적인 평가가 훨씬 우세하다.

당장 민주당 내에서도 의원 15~20명이 '일본국연구회'라는 모임을 결성해서 간 총리의 담화가 국익을 해쳤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심지어 담화가 내각에서 결정된 사안임에도 일부 각료들의 불만도 언론에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우려할 만한 것'의 가능성

우리에게 실망스러운 담화가 그들에게는 왜 우려할 만한 것이 되었을까? 한국 언론과 정치권이 한국병합의 불법성과 원천무효 선언에 집중한 결과 도서반환이 가지고 있는 이후의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한국병합의 체결과정에 있었던 강제성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도서반환이 낳을 실질적인 손실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점에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분명 이번 담화는 우리에게 실망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실망과 손실에 집중하는 방식은 적대적인 관계를 키워왔던 원동력이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을 맞아 한일 양국이 미래지향적인 새로운 관계로 나아가고자 진심으로 원한다면, 과거에 반복해 왔던 '사죄와 실망의 반복'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지혜가 절실히 요구된다. 그런 면에서 우리가 보다 주목해야 할 지점은 간 담화의 원론적인 한계보다는 담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얼마나 넓혀갈 것이며, 이를 어떻게 이어갈 것인가에 있지 않을까?

'한국병합 100년에 즈음한 한일 지식인 공동성명'(한일 지식인 1000명 이상이 서명)을 주도한 일본 측 대표 와다 하루키 교수는 이번 담화에 대해 "간 총리나 센고쿠 요시토 관방장관이 자민당은 물론이고 민주당 내 보수적인 의견에도 불구하고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고 지적하면서, "전체적인 문맥으로 볼 때 이번 담화는 '한일병합이 강제적이었다'는 것을 인정한 내용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조약 자체가 부당한 것이었고, 무효였다는 내용에까지 이르지는 못했고,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런 방향을 향해서 일보 전진이 이뤄진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일본 내 전문가들이 이번 담화가 예상했던 것보다 진전된 내용이 포함되었다고 평가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우려할 만한 것'의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그 '우려할 만한 것'이 점점 자라나 '일어서라 일본당'의 히라누마 대표가 말한 것처럼 "한국 측에 전후보상에 대한 과대한 기대를 갖게"하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말처럼 "향후 문화재 반환이 여러 가지 개인보상 문제로 불똥이 튈 수 있"는 화근이 되게 하고, <산케이신문>이 지적한 것처럼 "이번 담화는 한반도 통치가 '위법했다'는 생각이 끼어들게 하고, '무효'로 인정하게 될 위험성을 내포"하도록 실천가능한 로드맵을 구성하는 것이야말로, 예정된 실망 대신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내용이다.

간 총리의 표현처럼 "아픔을 준 쪽은 잊기 쉽고, 받은 쪽은 이를 쉽게 잊지 못하는 법"이다. '아픔을 준 쪽'이 가해의 기억을 망각하지 않고 '받은 쪽'의 아픔을 공유할 수 있게 하는 현실적인 가능성은 어디에 있는가? 최소한 "전향적인 총리담화가 나올 경우 동생(이 대통령)은 역사인식 문제에 종지부를 찍을 생각이 있다"는 대통령 형님의 화끈한 미래지향이나, "그동안 일본의 무책임한 태도에 비추어 진전은 있었지만 여전히 미흡하고 실망스러운 담화"라는 야당 대변인의 답답한 과거답습에서 발견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태그:#일본총리 담화, #간 담화, #간 나오토, #한일강제병합, #통통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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