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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평화의 종공원 전경
 세계평화의 종공원 전경
ⓒ 화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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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 세계평화의 종공원, 그 46억 원의 야망

평화의 반대말은 전쟁이다. 그리고 전쟁의 근원은 탐욕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 평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인간의 모든 탐욕이 사라져야 한다. 또 인간의 내면에서 탐욕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난과 절망과 고통에 빠져 있는 이들을 구제해야 한다. 독선과 야망으로 광분하는 탐욕스러운 인간들은 격리시키거나 추방해야 하며, 세계 모든 인류가 지리적·인종적 차별 없이 경제·문화적 혜택을 균등하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세계 평화란 전쟁과 가난, 불행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이 세계는 말 그대로 인류의 안락한 휴식처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구에 생명체가 탄생한 이래 전쟁과 가난과 불행이 잠시도 떠난 일이 있었던가. 인간의 탐욕이 사라지지 않는 한, 세계 평화는 가난과 소외된 자들의 소망에 불과할 뿐이며 영구한 숙제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가도 없는 DMZ 인근 산골짜기 오지에 조성된 '세계평화의 종공원'(2007년 10월 30일 착공, 2009년 5월 26일 완공). 이 공원을 조성한 주역들에게는 어떤 신념이 있었던 것일까.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종공원이 실제로 세계평화를 이룩하는 데에 할 수 있는 역할은 어느 정도일까.

나는 지난 1년여에 걸쳐 틈나는 대로 10여 회의 정보공개청구와 화천군의회 회의록을 검토하면서 그 사업과정에 대한 내역을 추적하고 살펴봤다. 그리고 이제야 그 대략적인 사업 내용과 소감을 밝힐 수 있게 됐다.

첫째는, 세계평화의 종공원은 그 어떤 이벤트를 계기로 건설토목공사에 막대한 예산을 집행하는 전시성 행정관행이고, 또 하나는 세계평화와 같은 정치적인 행사를 빌미로 개인적인 명예와 이익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지방세 총수입 240억 원에 종공원 소요예산 약 46억 원

강원도 화천군의 2010년의 세입액은 총 244억(지방세 77억+세외수입 167억)으로 재정자립도는 약 15%에 불과하다. 그렇다. 화천군 자체 재정능력으로 조달할 수 있는 종잣돈은 한해 약 240억이다. 때문에 지역 주민의 안정된 삶과 행복을 위해 반드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과 가장 우선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신중하게 고민해야 한다.  

그런데 '세계평화의 종공원' 사업에 약 46억 원의 예산이 투입됐다. 화천군의 재정 여건과 영세한 지역경제의 현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었는지, 우선하지 않으면 안 되는 긴급한 사업이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하지 않을 수 없다.

집행된 예산 가운데 국비보조금은 17억 원. 도비보조금 5억1000만 원을 제외하더라도 공원 조성에 들어간 순수한 군비는 약 24억 원이다. 우리 화천군 한해 총 세입액의 10분의 1 정도를 종공원 조성 비용으로 사용한 것이다. 더구나 준공식이 개최됐던 2009년은 지방채 78억 원을 발행하는 등 어려운 재정 여건이었다. 때문에 이는 빚을 내어 준공식을 한 셈이니 참으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동안 공개 받거나 추적한 자료들을 종합한 결과 다음과 같이 정리됐다.

1. 종공원의 부지는 화천군의 소유가 아닌 한국수자원공사로부터 위탁받은 토지임.
2. 종제작 및 설치비는 약29억3800만 원.
3. 토목공사 및 포장 공원조성비는 약9억5000만 원.
4. 조성과정 활동비 소요경비는 약860만 원.
5. 종공원 추진위원회 활동경비 약4600만 원.
6. 준공식 소요비용 약 8억5천만 원(도비지원 1억 원). 

고르바초프 초청비용 10만불, 방송제작 의뢰비용 1억5000만 원

세계평화의 종공원 전경
 세계평화의 종공원 전경
ⓒ 화천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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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운데 특이한 부분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는데 바로 외부인사 초청비와 방송제작비다.

화천군은 2009년 5월 26일 열린 준공식 국외 참석자들의 항공료, 초청대행비, 의전비 등으로 약 3억3천만 원을 지출했다. 이 금액의 대부분이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는 고르바초프를 준공식 행사장에 모시기 위해 초청비로 송금한 금액만 10만불(당시 환율 약1억5000만 원)과 그 사람과 동행한 수행원들의 항공료, 초청대행비, 의전비 등으로 지출됐다. 기자는 고르바초프에게 송금한 10만불 무통장입금 내역서 사본을 직접 확인하면서 이렇듯 세계평화에 기여한 노벨평화상 수상자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정치세계의 모순된 단면을 보는 것 같아서 실망스러웠다.

그렇듯 거창하면서도 쓸쓸한 분위기로 치러진 60분 분량의 준공식 방송 DVD제작 및 1회 방송을 위해 또 1억5000만 원이 지출됐다. 세계적인 평화공원 준공식이라면 전국의 방송 미디어 매체들이 앞 다투어 생방송 행사라도 할 것 같은데, 1억5000만 원을 지불하고서야 방송국을 섭외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는 이 행사가 그 어떤 국가적 행사도 아니고 지방의 기념비적인 사업도 아닌, 한낮 자치단체 이벤트 행사에 불과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 종공원 추진위원들이 전 세계에 홍보하고 인사들을 섭외하기 위해 활동비로 지출한 비용이 4600만 원이다. 하지만 그렇게 화려하게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경비를 들인 것과는 달리 고르바초프를 제외한 다른 해외 유명인사는 준공식에서 볼 수가 없었다.

화천군의 재정상황에 비해 과분한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반려하도록 권고해야 할 중앙정부도 오히려 사업비와 준공식 행사비를 지원했다. 물론 이러한 사업을 진행하도록 예산을 승인해준 제5대 화천군의회 역시 종공원 예산집행의 공범에 해당된다. 

종공원 조성 토목공사에 실제적으로 소요된 비용의 타당성 여부도 조사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개 받은 사업비집행 내역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으로 공사비의 허실까지 따져보기에는 전문성 있는 분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에 거론할 수 없는 점이 유감이다.

화천군은 지역 경제의 활성화와 농업생산, 유통지원에 전력해야

세계 평화를 돈으로 살 수 있다면 세계 평화를 염원하는 지구 인류의 각성이 일어났던 그 순간 세계 평화는 완성되었을 것이다. 세계 랭킹 10대의 갑부들이 힘을 합치기만 해도 벌써 평화라는 단어조차도 없는 지구가 됐을 것이며, 국제기구에서 자금을 추렴해서라도 수십 번의 지구평화를 이뤘을 것이다. 

세계평화를 위해 화천군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가난과 소외로 인한 불이익이나 절망의 고통을 겪는 사람이 약 2만3천 명 화천군민들 가운데 단 한 사람도 없을 때까지 세심한 대민지원과 복지관리, 그리고 농업생산과 유통 및 상거래 활성화에 대한 실질적인 정책 배려에 행정력을 집중하는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다.

허공에 울리는 종소리로 세계평화가 도래할 수 있다고 믿었다면 누군가 대단히 잘못된 야망과 환상을 가지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비유하자면 가족들은 굶주림과 질병에 시달리고 있는데 가장이라는 사람은 명예로운 시민상을 받기 위해 완장 두르고 자원봉사에 여념이 없는 격이다.

저질러 놓은 수십억의 공원 조형물을 배경으로 올해에도 1억5000만 원의 비용을 들여 평화콘서트를 개최한다고 한다(원래는 6월 예정이었으나 천안함 사태 등으로 행사는 보류 상태다). 접경지역 종합개발 사업추진에 따른 요란한 선전행사의 일환으로 화천군이 콘서트 개최 비용을 떠안은 것이다. 지역주민들의 그 어떤 요청에 의한 것도 아니고, 그 어떤 사전 협의도 없이 정해졌다.

정부와 화천군이 접경지역 개발 사업이라는 명분이 생겼으니, 신이 나서 돈을 쓰고 일부 주민들은 들러리로 참석시키면 그만이라는 식이다. 화천군의회는 이번 콘서트 집행예산도 군말 없이 승인했다.

정부 예산은 눈먼 돈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산을 지휘하는 지배 권력자의 머릿속에는 세계평화를 돈으로 이룰 수 있다고 믿는 허황된 생각이 아직도 투철하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덧붙이는 글 | 도류 스님은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이사입니다.



태그:#세계평화, #평화의 종공원, #화천군 예산, #고르바초프, #노벨평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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