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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역 노숙소녀 상해치사 사건'의 진범으로 기소된 당시 10대 청소년 4명에게 대법원이 최종 무죄를 선고해 파장이 예상된다. 범행을 부인하던 피고인들이 자백을 했다가 번복해 수사기관의 회유와 강압수사 논란을 일으킨 사건이기 때문이다.

2007년 5월 14일 새벽 5시30분경 수원의 한 고등학교 본관 입구 통로 화단에서 수원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당시 15세의 K양이 숨진 채 발견됐다. 수사기관은 수원역에서 노숙생활을 하던 J씨 등 2명이 K양을 마구 때려 숨지게 한 것으로 판단해 이들을 기소했다.

J씨는 처음에 범행을 부인했으나 나중에 "검사님의 인간적인 설득으로 저의 양심이 더 이상 거짓을 허락하지 않아 사실대로 진술하게 됐다"고 범행을 자백해 법원은 J씨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그러자 J씨는 "경찰의 폭행과 강압 때문에 거짓 진술을 하게 된 것"이라고 뒤늦게 범행을 부인하며 항소했으나, 뒤집기에는 늦었고 결국 2007년 12월 최종 유죄가 확정됐다.

그런데 검찰은 2008년 1월 K양의 상해치사 사건에 대해 재조사를 통해 진범을 찾아냈다며, 당시 18세였던 A씨 등 4명을 재판에 넘겼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가출 청소년이던 A씨 등 4명이 2007년 5월14일 새벽 수원역에서 노숙하던 K양이 자신들의 돈 2만 원을 훔쳐간 것으로 생각해 수원의 한 고등학교로 끌고 가 마구 때려 숨지게 했다며 기소했다.

하지만 이들 역시 2008년 1월 첫 검찰조사에서 범행을 모두 부인하다가, 나중에는 모두 범행을 자백했다. 이 사건은 J씨의 경우에서도 그랬듯이 뚜렷한 물증은 없고 범행을 부인하던 이들이 뒤늦게 한 자백만이 있어 수사기관의 회유와 강압수사 논란을 불러왔다.

1심, 물증 없이 자백만으로 유죄 선고해야 하는 '고뇌' 내비쳐

1심 재판부도 비록 유죄 판결을 내렸으나, 수사기관이 물증을 제시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백만으로 유죄 판결을 내려야 하는 고뇌를 판결을 통해 내비치기도 했다.

수원지법 제11형사부(재판장 신용석 부장판사)는 2008년 7월 K양을 때려 숨지게 한 혐의(상해치사) 등으로 기소된 A씨 등 4명에게 유죄를 인정해 각각 징역 2~4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먼저 "피고인들은 법정에서 한때 검사의 회유 등에 의해 사고무친(의지할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음)과 사면초가 상태에서 거짓으로 꾸며서 K양에 대한 상해치사 범행을 자백했을 뿐이고, 범행 장소인 고등학교에 간 사실도 없다는 취지로 범행을 부인하고 있다"며 "상해치사에 대한 진실은 하나이겠지만, 혹시라도 피고인들이 범행에 전혀 관여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의심하는 선에서 추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고뇌를 털어놨다.

특히 "수사기관은 현재의 유전자감정 등 발전된 과학수사로 피해자가 사망한 채 발견된 현장 주위에 있을 머리카락 하나의 물적 증거라도 샅샅이 찾아내 객관적 진실을 밝혀냈어야 했지만, 그나마 발견한 물적 증거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하지 않았다"며 "다른 많은 사건에서도 그러하지만 우리나라의 수사현실을 감안하다고 해도 심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수사기관을 꼬집기도 했다.

그러면서 "결국 상해치사 범행에 대한 증거는 범행 6개월이나 지난 후부터 시작된 진술 증거만으로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법정 태도와 진술 내용 등에 비춰 사회에 대한 경험과 인식능력을 갖고 있다고 인정된다"며 "단순히 검사의 회유만으로 피고인들이 일치해 함부로 거짓 진술을 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또 동일하게 꾸며댈 수도 없는 것이고, 진술이 큰 줄기가 일치하는 이상 지엽적인 불일치 부분을 들어 쉽사리 못 믿겠다고 할 것도 아니다"고 유죄로 판단했다.

양형과 관련, 재판부는 "피고인들의 무책임한 행동에 의해 어린 피해자가 꿈을 피워보지도 못한 채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생을 마감했음에도, 끝까지 범행을 부인하는 점에 비춰 엄히 처벌함이 마땅하다"고 밝혔다.

다만 "피고인들 또한 노숙생활을 하며 방황하고 미숙한 10대 청소년들인 점 등을 참작해 형량을 정했다"고 덧붙였다.

항소심 "물증은 전혀 없고, 자백경위가 석연치 않아 무죄"

그러자 A씨 등의 변호인은 "범행을 인정하는 피고인들의 진술이 일치하지 않고, 범행 현장 고등학교의 무인카메라에 피고인들과 피해자의 영상이 녹화되지 않은 점, 피고인들이 피해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했음을 인정할 만한 물적 증거가 전혀 없다는 점 등에 비춰 보면 피해자를 때린 사실이 없음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며 항소했다.

특히 "피고인들은 수사기관에서 자백한 적이 있으나, 이는 수사기관의 강압과 회유에 의해 허위 자백을 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상해치사 혐의를 유죄로 인정한 것은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항소심인 서울고법 제5형사부(재판장 조희대 부장판사)는 지난해 1월 A씨 등의 상해치사 혐의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1심 판결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다른 범죄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범행 장소에 도착하는 과정의 진술 등이 엇갈리는 점에 주목하면서 "이 사건에서 피고인들에 대한 상해치사를 인정할 물증은 전혀 없는데, 검사 작성의 피고인들에 대한 피의자신문조서의 자백진술은 그 자백경위가 석연치 않고, 진술내용이 서로 모순되는 등 진술내용의 진실성과 신빙성이 의심스러워 유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이어 "형사소송에서는 범죄사실이 있다는 증거를 검사가 제시해야 하고, 피고인의 변명이 불합리해 거짓말 같다고 해도 그것 때문에 피고인을 불리하게 할 수 없으며, 범죄사실의 증명은 법관으로 하여금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고도의 개연성을 인정할 수 있는 심증을 갖게 해야 한다"며 "이런 정도의 심증을 형성하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피고인에게 유죄의 의심이 간다 하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사건은 검사의 상고로 대법원으로 올라갔으나, 대법원 제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는 22일 "무죄를 선고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무죄를 확정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태그:#노숙소녀, #노숙생활, #상해치사, #회유, #강압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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