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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가, 빚에 짓눌려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다. 물론 그 누구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진 못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재건축 등이 시작된 서울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최근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다가, 빚에 짓눌려 힘겨운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이른바 '하우스 푸어'다. 물론 그 누구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진 못했다. 사진은 지난 2006년 재건축 등이 시작된 서울 잠실 일대 아파트 단지.
ⓒ 오마이뉴스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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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요, 아파트 사시게요?"

뜨끔했다. 책을 감싸고 있는 광고문구였다. 직장생활 13년차인 기자에게도 '내 집 마련'은 여전히 '꿈'(?)이다. "왜? 아파트 사려고?"라는 도발적인 질문 앞에 내심 불편했다. <하우스 푸어(House Poor)>(더 팩트, 김재영 지음)의 책장은 그렇게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책을 쓴 이는 현직 방송사 프로듀서다. 문화방송(MBC) <PD수첩>의 김재영 PD는 최근 1년 동안 부동산 문제를 집중적으로 파헤친 거의 유일한 시사프로그램 PD다. 판교와 강남재건축, 인천 송도에 이르기까지 아파트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은 그대로 전파를 타고 안방에 전해졌다. 거대한 아파트와 무분별한 재건축 등의 그늘 속에 속앓이하던 주민들 음성의 여운은 상당했다.

<하우스 푸어>는 그들의 이야기였다. 방송 때보다 더 진솔하다. 그리고 불편하다. 김 프로듀서는 최근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우리 사회에서 집을 갖는다는 것은 중산층과 경제적 안정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맞다. 내 집을 갖는다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그리고 집값도 계속 올랐다. 일하면서 벌어들이는 소득보다 집 한 채가 엄청난 불로소득을 가져다 주었다. 집을 사서 돈을 버는 것은 어느 순간부터 당연시됐다. 김 PD는 이를 두고, "우리 모두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거대한 전염병에 감염됐다"고 했다. 그리고 "백신도 없으며, 한번 걸리면 책임만 남는다"고 했다.

아파트 신화라는 거대한 덫에 걸린 사람들, '하우스 푸어'

2000년대에 들어서는 집을 가지고 있느냐에서 한 발 더 나아간다. 어떤 집을, 어디에 갖고 있느냐가 중요했다. 이에 따라 신분과 계급이 구분됐다. '강남불패'라는 말과 함께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인 짝짓기도 보편화됐다.

김 PD는 "모든 중산층이 탐욕스러워졌을 때 탐욕은 더 이상 탐욕이 아니었다"고 썼다. 그의 말대로 거대한 아파트 공화국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탐욕'으로 세워진 아파트 공화국도 이젠 곳곳에서 균열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그는 '아파트'라는 탐욕의 드라마의 끝이 보인다고 했다. 또 "클라이맥스를 지나 끝물이 보인다"고도 했다. 대신 그가 주목한 것은 탐욕의 드라마 끝에 희생되는 사람들이었다. '하우스 푸어'다. 집을 가졌지만 가난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들은 우리 앞에 모습을 더 자주, 더 많이 드러내고 있다.

서울 강남의 수천여 재건축 아파트 단지부터 서울 도심의 뉴타운, 분당과 일산 등 1기 신도시와 김포·용인 등 2기 신도시, 인천 송도 등 경제자유구역에 이르기까지. 이곳에선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 집을 샀지만, 빚에 짓눌려 삶이 피폐해진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누구도 이런 결과를 예상하진 못했다.

왜 그들은 하우스 푸어의 세계로 자신들을 내던졌을까? 김 PD가 내놓은 답은 이렇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가 아파트 신화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덫에 걸려 있었기 때문"이라고.

집 없는 중산층에서 집 가진 하류층으로 전락한 그들

지난 2006년 중반, 김아무개씨는 경기도 분당에 109㎡(33평형)의 아파트를 샀다. 부동산 광풍이 한창 몰아칠 때였다. 이미 이곳 아파트 값은 6억원을 넘어 7억원을 넘나들었다. 그는 4억원이 넘는 빚을 내서 집을 샀다. 지금 사지 않으면 앞으로 이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과 함께, 아파트 값도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도 있었다.

첫 1년여 동안은 좋았다. 아파트 호가가 1억원 이상 뛰었기 때문이다. 은행 이자만 월 200만원이 넘었지만 아파트 값이 오르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2008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7억원대에 달하던 집값은 2008년 말 금융위기 이후 6억원 밑으로 떨어졌다. 2009년 초 잠시 집값이 반등하는 기미를 보이더니, 다시 곤두박질쳤다. 이젠 5억원대까지 떨어졌고, 거래조차 사라졌다.

집값 하락으로 그는 극심한 스트레스와 불면증에 시달려야 했다. 이미 2억원 이상 자산가치가 하락했고, 은행이자와 부동산 거래 비용으로 1억원 이상 날렸다. 그는 지난 4년 동안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는 수준으로 살았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아이들의 과외는 그만둬야 했고,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대기업 중견 간부인 김씨의 매월 500만원 수입 가운데 300만원이 대출 원금과 이자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김씨는 이 책에서 "은행의 월세 세입자이고, 집의 노예일 뿐"이라며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다"라고 증언하고 있다. 김씨가 만약 무리하게 집을 사지 않았다면, 나름대로 저축을 해가며 중산층 수준의 삶을 누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는 집 없는 중산층에서 집 가진 하류층으로 전락해 있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 전경.
ⓒ 오마이뉴스 선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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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광풍 때 빚 내서 집 산 198만 가구 몰락?

그렇다면 김씨와 같은 하우스 푸어는 얼마나 될까. MBC <PD수첩>은 서울 강남 은마아파트 4424세대, 경기도 판교 900여 세대의 등기부등본을 모두 떼서, 전수조사를 했다. 김 PD는 "리서처들을 동원해서 등기부등본을 복사하는 데만 2주일이 걸렸다"고 했다. 무모한 일처럼 보였지만, 엄청난 분량의 이 종이더미들은 우리에게 많은 사실을 확인시켜줬다.

은마의 경우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산 가구의 비중이 70% 안팎이며, 이들 가계의 평균 금융부채는 약 3억원에 이르고 있었다. 이같은 빚으로 오른 집값은 부동산 시장에 약간의 충격만 오더라도 금세 무너지게 마련이다. 한때 '금마(金馬) 아파트'로까지 불렸던 '은마아파트'이지만, 이젠 더 이상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김 PD는 "2006년 이후 빚을 지고 아파트를 구입한 가구는 전국적으로 159만5000가구 정도"라며 "여기에 2007년 이후 수도권 일대의 신규 분양 가구 등을 합하면 약 198만 가구가 하우스 푸어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수치 역시 지방 집값 하락 등이 빠져 있기 때문에 실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아파트 공화국의 희생양은 대부분 부동산 광풍의 막차를 탄 중산층이란 말이다.

이와 함께 거대한 아파트 공화국의 헛된 이야기를 가공하고, 생산하면서, 이익을 보는 세력도 이 책에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대표적인 것인 '강남 재개발, 재건축아파트'를 둘러싼 정부 고위공직자들의 행태가 그것이다. <PD수첩>은 2001년부터 2009년까지 1급 이상 정부 고위공직자 3400여 명의 재산을 일일이 따졌다. 강남3구 재건축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공직자가 317명. 이들은 2003년까지 재건축 아파트를 사들이다가, 2004년부터는 거의 사지 않았다. 아파트 값이 폭등하기 시작한 시기였다. 이미 이들은 재건축 시장에서 발을 빼기 시작했다.

20년 2억원 대출 vs. 9.3년 2억원 저축... 집 없이도 행복하게 사는 법

아파트를 둘러싼 탐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가계 대출 규모는 계속 늘고 있다. 실제로 지금처럼 아파트 값이 떨어지고 있을 때 집을 사야 할까 고민하는 사람들도 있다. 김 PD는 냉정하게 계산기를 한번 두드려 보라고 말한다. 어차피 은행에서 돈을 빌려 집을 사야 한다면, 제대로 계산을 해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과연 올바른 선택인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2억원을 20년 만기, 금리 6.5%, 거치기간 없는 원리금 균등 분할 상환 조건으로 대출한다면, 한 달에 갚아야 할 원금은 149만1146원이다. 매달 150만에 달하는 돈을 20년 동안 은행에 갖다 바쳐야 한다. 모두 3억6000만원을 갖다 줘야 2억원짜리 대출을 끝낼 수 있다.

<하우스푸어>의 저자 김재영 PD는 "우리 모두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거대한 전염병에 감염됐다"고 했다. 그리고 "백신도 없으며, 한번 걸리면 책임만 남는다"고 했다.
 <하우스푸어>의 저자 김재영 PD는 "우리 모두 내 집 마련의 꿈이라는 거대한 전염병에 감염됐다"고 했다. 그리고 "백신도 없으며, 한번 걸리면 책임만 남는다"고 했다.
ⓒ 더 팩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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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로 이 돈을 저축해보자. 140만원을 매달 4.8% 복리금리로 저축하면, 9.3년 후에는 2억원가량 모으게 된다. 은행의 세금 우대 상품이나 비과세 상품에 저축을 하면 2억 800만원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2억원 대출을 갚으려면 약 3억6000만원의 돈을 은행에 내야 하지만, 2억원을 모으기 위해선 약 1억6000만원만 은행에 예금하면 된다. 또 같은 돈을 은행에 내더라도 9.3년과 20년이라는 엄청난 시간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금리가 오른다면, 시간 차이는 더 벌어지게 된다. 당연히 2억원을 빌린 사람은 20년 동안 갚아야 할 돈이 더 많아질 것이고, 저축하는 사람은 더 짧은 시간에 2억원을 만들게 된다.

서울 강북의 아파트에서 전세를 살고 있다는 박준명씨의 이야기는 위안거리다. 부부 연봉이 1억을 넘지만, 그는 여전히 전세를 살고 있다. 그는 스스로 부동산에 대한 믿음이 일종의 트라우마였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 믿음에서 벗어난 지금은 부부와 세 자녀가 여행을 다니고, 자녀들은 다양한 교육을 체험하고 있으며, 노후 자금도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집이 없어도 충분히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책을 읽고 덮었다. 다시 책은 "왜요, 아파트 사시게요?"라고 묻고 있다. 읽기 전 내심 불편했던 기자의 마음이 가벼워졌다.


태그:#하우스 푸어, #PD 수첩, #김재영 PD, #부동산 광풍,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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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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