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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지방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새벽부터 들려오던 로고송 소리도 사라지고 하루 수십 장의 명함을 받아야 했던 정신없던 5월의 동네 거리는 이제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곳곳에서 선거평가와 전망에 대해 이야기하는 요즘, 천안함의 북풍도 선거연합의 돌풍도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한 동네의 평범한 시민들의 선거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우린 무조건 2번이야 2번!" 했는데, 8번 무소속 당선

 

경기도 과천. 4년 전 시민후보로 추대되어 선출된 서형원(41) 의원 캠프에는 후보를 제외하곤 선거운동 경험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사무장을 맡았던 임정진씨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거에 뛰어든 이유를 묻자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고 2년 동안 땅을 치고 후회했다. 사회 전체적으로 민주주의가 후퇴하는데 과천 시민들의 힘으로 당선시켰던 의원들만큼은 내 손으로 지키고 싶었다"고 했다.

 

임정진씨는 선거운동을 하면서 후보의 당선에 확신이 없었다. 여덟 개의 표를 찍어야 하는 시민들이 시의원 선거까지, 무소속까지 봐줄까. 우리는 알맹이를 봐 달라 하는데 과연 살펴볼까 의심했다.

 

"우린 무조건 2번이야 2번. 이런 사람 많았어요. 골수들은 한나라당 찍고, 반대하면 무조건 민주당 찍는 거죠. 8번이 된 건 사람들이 후보를 정확히 알고 찍었다는 거예요."

 

운동원으로 참여했던 홍승순씨의 말이다.

 

선거 운동 경험 전무했던 운동원들

 

서형원 캠프는 후보부터 운동원까지 말이 많았다. 떼지어 서서 인사하는 운동은 하지 않았다. 매주 화요일 새벽마다 출근길 인사에 참여한 자원봉사자 서진석씨는 길 가던 사람과 네 문장 정도를 이야기할 수 있었다 한다.

 

"저는 서형원을 지지하는 자원봉사자입니다"라고 말하면 일단 한 번 쳐다봐요. 그 다음엔 하고 싶은 말을 하는 거죠. '소신 있고 열정을 가진, 주민의 삶을 좋게 바꿀 시의원입니다'."

 

시민들은 다른 사람이 그 사람을 믿는다는 사실에 신뢰를 가졌고, 잘 들어주었다. 운동원들은 시민과 나누는 몇 마디의 말 속에 후보와 정책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실었다.

 

이들은 사전 선거운동 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저 평소에 후보를 지켜본 것과 유세를 따라다닌 것이 전부였다. 유세내용을 듣다 보면 선거나 정책에 대해 할 말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이에 대해 서형원씨는 "그렇게 되리라 자신했다. 유세도 그렇지만, 과천에서는 그동안 예산참여 워크숍이나 풀뿌리 의정보고회같이 시민들과 정치를 이야기했던 일련의 과정들이 있었다. 내용을 알게 되면 할 말이 생기는 법이다"고 했다.

 

"우리는 트럭선거 안 했어요. 그거 하나는 자랑스러워"

 

공원·놀이터·골목을 다니려면 연설차량이 오히려 방해가 된다. 반드시 차량 옆에서 마이크를 써야 하는 규정 때문이다. 이들은 연설차량을 포기하는 대신 휴대용 앰프와 마이크를 선택했다.

 

아파트와 주택가 골목 어귀마다 서서 아이들의 급식과 보육문제를 얘기하고, 여성과 환경, 동네의 소소한 문제들에서부터 과천의 비닐하우스 주거현실까지 이야기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과 부엌에서 설거지하던 주부들, 동네를 뛰어다니던 꼬마들은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천안함이나 4대강, 이명박 정권 심판 등의 내용은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전국적 정치이슈를 의도적으로 말하지 않은 거냐는 질문에 서형원씨는 "천안함에 대해서는 한 번 말했다. 천안함이 지방선거의 쟁점이 되는 건 굉장히 나쁜 일이라고, 시민들의 눈을 가리는 일이라고 했다. 4대강 문제 등으로 고생하는 분들에게 부채의식이 늘 있지만 동네 시의원이 다른 이야기에 참견하기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에 100% 투자하려 했다"고 설명했다.

 

날이 지나면서 유세 내용은 점점 좁혀졌다. 후보와 같이 다니는 운동원들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가로수의 살충제 문제와 친환경급식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가면 갈수록 공약이 줄어들더라구요. 뻥을 치라는 건 아니지만 사람들을 확 끄는 뭔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었죠." 운동원들은 내심 걱정했다.  

 

서씨는 "처음부터 의도하진 않았지만 유세가 거듭되면서 내용이 몇 개로 압축됐어요.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우리 생활과 밀접한 문제를 다루는 사람이 시의원이란 사실을 강조하게 되더라구요. 저에 대한 지지호소이기도 하지만 자기가 뽑을 의원이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가장 잘 드러낼 수 있는 사례로서 정책을 소개했는데, 기대 이상의 효과가 있었습니다"고 했다.

 

비닐하우스 마을을 밝힌 촛불들

 

서형원 캠프는 선거운동 첫날 저녁 유세장소를 과천 외곽의 비닐하우스 마을로 잡았다. 계속되는 강추위로 지하수관이 얼어 얼음을 깨고 눈을 녹여 밥을 해 먹어야 했던 올해 겨울, 서씨와 본격적으로 인연을 맺은 이 동네 주민들은 서 의원이 온다는 말에 돗자리와 촛불을 들고 동네 한가운데 공터로 모여들었다. 주민들은 한 명씩 나와 하고 싶은 말을 쏟았다.

 

"우리 동네 수돗물은 동물도 못 먹어요. 이 물로 목욕하면 아이들은 피부병이 나고요. 수초도 다 죽어요. 비닐하우스에도 수돗물을 공급해 주셨으면 합니다!"

 

불법 주거지에 상수도관을 둘 수 없어 농업용 지하수를 먹고 있는 실정을 토로한 이복희(60) 주민의 말이었다. 이어서 문인순(33)씨가 어린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안타까움을 호소했다. 어릴 적부터 이 동네에서 살아온 문인순씨는 이번 선거에 운동원으로 참여했다.

 

"없는 사람들 목소리를 대변하는 사람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약한 사람들에게 더 가혹한 게 정치인이고 관이더라. 그런데, 서 의원이나 주변 사람들같이 우릴 알아주는 사람이 있고 희망이 있다는 것을 동네 사람들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이번 선거에 참여하게 된 동기를 이 같이 설명했다.  

 

대학생 박병희씨는 이날 유세를 이렇게 회상했다.

 

"전혀 모르던 세상을 보았어요. 사람들이 모여 같이 촛불 들고, 노래하고, 세상 사는 얘기를 나누는 게 어찌 보면 당연한 건데 저에겐 충격이었죠."

 

선거운동을 한다고 말하면 주위 사람들로부터 '그거 손 치켜들고 춤추고, 돈 받는 아르바이트 아니냐. 스펙에 도움도 안 되는데 쓸 데 없는 일 하지 말라'는 충고를 들어야 했다. 박씨는 주로 저녁시간 후보의 수행을 맡았다.

 

"만나는 사람마다 사연이 있고 도움이 필요했어요. 시의원 하나 잘 뽑으면 사람들 사는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박씨는 앞으로 살면서 또 한 명의 좋은 후보를 만난다면 기꺼이 돕겠다 했다.

 

투표로 보여준 시민들의 지지

 

서형원씨는 다른 당 후보들을 모두 제치고 1등으로 당선됐다. 서 의원에 당선의 주요인을 묻자 "일단 재선이기 때문에 사표심리가 없었고 두 번째로 4년의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받았다. 또, 전에는 30-40대가 지지층의 중심이었다면 이번엔 50, 60, 70대가 새로운 지지층이 되었다. 선거운동에 참여한 사람들의 선한 의지도 지역주민에게 어필이 됐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안정된) 노년층의 지지가 그간 후보의 활동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는 말에 "그들을 위해 일했기 때문에 지지받은 것은 아니었다. 그 분들은 의회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좀 더 정의롭고 합리적으로 일하는 사람을 원했고, 새로운 사람들이 커가는 모습도 보고 싶어했다. 천안함 같은 문제가 선거를 당 중심으로 몰고 가는 와중에 '그래도 서형원은 괜찮은 사람'이라며 방어해 주셨던 분들이 바로 노인 분들이었다"고 설명했다.

 

지난 7월 1일 제6대 과천시의회가 개원했다. 선거에서 보여준 시민의 뜻을 의회가 존중하는 의미에서 일곱 명의 의원들은 만장일치로 의장단을 선출했다. 두 선거구에서 각각 1등으로 당선된 서형원과 진보신당의 황순식 의원이 의장과 부의장이 됐다.

 

서형원 과천시 의장은 "의회를 운영하고 시민과 의회를 매개하는 일이 의장의 역할이다. 앞으로 어떻게 하면 시민들이 의회와 지방자치에 대해 기대를 가질 수 있을까에 초점을 두고 일하겠다"고 했다.

덧붙이는 글 | 저는 지난 선거에서 서형원 후보 캠프에서 일을 도왔습니다. 


태그:#동네선거, #풀뿌리정치, #지방자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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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천의 한 공부방(맑은내방과후학교)에서 교사로, 과천마을신문의 기자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주로 교육관련기사를 담당했고, 교육이 서열화의 도구로 전락하지 않고 제 기능을 찾도록 하는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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