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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열리는 조계사 '생명평화마당'에 사람이 별로 없다. 날이 덥기도 하고, 월드컵 영향 탓도 있지만 4대강 뭇생명들의 죽음이 나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사람이 없다.

 

지난번 우리와 아르헨티나와 축구경기를 할 때 조계사로 가기 위해 지하철을 타니 빨간티를 입은 젊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들은 다들 목적을 향해 힘찬 발걸음을 했고, 나는 좀 씁쓸한 마음으로 조계사로 향했었다.

 

아마 다들 그럴 것이다. 4대강을 살리긴 해야지, 저대로 두면 안 되지 싶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힘들게 행동으로 옮길 만큼 절실함이 다가오지 않아 참여를 안 하는 것이리라. 광우병과는 달리, 4대강이 내 입 속으로 들어가서 나를 당장 죽음의 공포로 몰아가지 않으니 당장 내 삶의 1순위에서 밀려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사람이었으니 할 말이 없다. 3월달에 아이들과 제주도를 갔는데 공항에서 나오는 4대강 개발 홍보를 보고 정말 깜짝 놀랐다. 4대강을 개발하면 죽어가는 환경이 살아나는 것처럼 포장을 잘 했다. 오고 가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환경 살리기=4대강 개발'로 오인할 정도였다.

 

정부는 저렇게 4대강 개발을 그럴듯하게 포장해서 대대적인 광고를 해대고 있는데 우리는 그에 대한 아무 준비를 하고 있나? 이러다 진짜 진행되겠다는 생각에 불안했지만 금세 잊었다. 

 

매일 매일 눈뜨면 해야 할 일들이 쌓였다. 어느 날은 인간사 갈등이 기다리고, 어느 날은 돈을 많이 벌겠다는 집착이 기다리고, 어느 날은 자식이 기다린다. 그렇게 기다리는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4대강이 날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문수스님의 소신공양이 헛 것을 기다리는 내게 4대강을 보게 했다. 정말 우리가 봐야할 가치가 무엇인지 알려주셨기에 난 조계사 생명평화마당에 거의 매일 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이지 않는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람들이 더 관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지쳐가는 것 같다.

 

나도 지친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힘든데 하루 쉬지, 라는 마음이 들텐데 사람들의 관심이 점점 더 떨어지는걸 보면서 나라도 지켜야 한다는 힘든 각오가 있어야 그곳에 갈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힘이 급속도로 빠지면 나도 '에라 모르겠다' 할 날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수경스님이 떠올랐다. 얼마 하지 않은 나도 도망치고 싶은데 수경스님은 그동안 얼마나 지치고 힘들었을까. 스님이 떠나실 수밖에 없었던 고뇌가 느껴진다.

 

하지만 '생명평화마당'에서 내가 얻는 소득이 없다면 진작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지혜로운 삶을 사는 여러 강사분들을 통해 내 안에 MB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내 안에 평화가 오려면 어떤 삶을 살아야 가능한지도 알게 되었다. 

 

 

21일 오셨던 김경일 신부님(대한성공회광주교구)은 무척 솔직하셨다. 성직자이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자신을 말하셨다. 신부님의 집안에 개신교 다니시는 분이 신부님께 이렇게 물었다.

 

"신부님은 구원의 확신이 있습니까?"

"구원에 확신이 없습니다"

"우리 교회로 옮기시면 구원에 대한 확신이 생기니 당장 옮기시죠."

"구원의 확신이 생긴 모습이 당신의 모습이라면 전 구원의 확신을 갖지 않겠습니다."

 

구원에 확신이 없다는 신부님의 말씀이 구원을 확실히 해주겠다고 하는 종교지도자보다 더 믿음이 간다.

 

신부님의 생각은 지금의 기독교는 종교의 본연의 자리에서 벗어났다고 보고 계셨다. 가난한 교회나 가난한 목사는 무시당하고, 큰 교회만 살아남는다. 왜냐면 큰 교회에 가야 얻어먹을 것이 생긴다는 사람들의 생각이 있기 때문이다.

 

"목사나 신부도 돈이 많아야 능력있는 사람으로 취급받습니다. 문수스님은 성직자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몸으로 보여주신 분이십니다."

 

신부님의 말씀은 아픈 반성이다. 성직자로서의 아픈 반성이기도 하고, 세속에 사는 내 자신에게도 아픈 반성의 시간을 주기도 한다. 한 분이 생명평화마당에 참여하면서 과연 4대강을 내가 지켜낼 수 있을까 부정적인 마음이 든다고 했더니 신부님은 당신은 진다고 생각하고 이 일을 하지 않으신단다. 반드시 이긴다고 생각하신단다.

 

반드시 이긴다. 이긴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지긴 하지만 조계사에 오는 사람 수를 봐서는 이길 것 같지 않다. 만약 이긴다면 이런 면에서 이길 것이다.

 

4대강이 다 죽고 나서 '아차, 그때 문수스님이 소신공양을 하신 것이 이래서였구나, 우리가 내 안일에만 매달려 환경문제에 관심을 안 가진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오는구나'를 깨닫는 것이 이기는 것이라면 이길 것이다.

 

지금 이대로 우리들이 행동하지 않는 무관심을 보인다면 '아차'라는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헌데 뭇생명을 다 죽이고 '아차'를 깨닫기 위해서라면 너무 슬픈 일이다. 참 슬픈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김경일, #생명평화마당, #조계사, #수경스님, #문수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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