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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천안함에서 후텐마로

천안함 사태가 발생한 이래, 한국과 일본의 정치일정은 전례 없이 매우 밀접하게 연동되어 진행되어 왔다. 그 시작은 한국정부가 천안함 사태 중간조사결과 발표에서 "북한의 소행"임을 공식화한 지난 5월 20일이었다.

이날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한반도가 매우 긴박해 지고 있다"고 즉각적인 소명 발표를 했다. 뒤이어 기타자와 도시미 방위상도 "일본에도 어떤 사태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입장표명과 더불어 자위대에 독자적 정보수집을 지시했다. 그리고 이와 거의 같은 시간대에 오카다 가츠야 외무상이 존 루스 주일미 대사와 함께 그간 일본외교의 최대쟁점인 후텐마 기지 이전 문제의 해결을 위한 공동성명 발표 작업의 최종 조정 작업에 들어갔다. 그 내용의 공표는 한국의 이명박 대통령이 천안함 사태 관련 대국민 담화를 발표한 직후로 맞추어졌다.

이명박 대통령의 대국민 발표가 있던 5월 24일, 하토야마 총리는 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대북한 경계태세 강화를 결정했다. 그리고 28일, 일본 정부는 각료회의를 열어, 북한으로 가는 자금의 신고 기준 금액을 종래 1000만 엔 초과에서 300만 엔 초과로 낮추는 한편, 북한에 갈 경우의 소지 금액의 신고 기준도 30만 엔 초과에서 10만 엔 초과로 조정하는 결정을 내렸다. 같은 날 참의원 본회의에서도 그간 계류 중에 있던 북한행 선박의 화물검사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켰으며, 북한 국적 선박의 입항을 금지하는 특정선박입항금지법의 시행을 1년 연장하는 의결이 이루어졌다.

민주당 정권 등장이후 보류되어 왔던 일본의 독자적 대북 제재가 일거에 분출한 것이다. 후텐마 문제 관련 미일 공동성명 발표는 이와 패키지를 이루고 있었다. 28일에 발표된 공동성명의 내용은 오키나와 나하(那覇)시에 있는 미군 기지, 즉 후텐마 기지를 오키나와 내 나고(名護)시 헤노코(邊野古)의 미군 슈워브 기지 연안부로 옮긴다는 내용이었다.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현외(県外) 이전이라는 하토야마 내각의 공약이 이 시점에서 완전히 폐기된 것이다.

한반도 정세에 대한 일본정부의 이와 같은 적극적 편승은 그 다음날에 피크에 이르렀다. 하토야마는 수상은 5월 29일부터 이틀간 제주도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담에 참석해 '선도적'으로 천안함 사태 희생자에 대한 추모를 할 것을 제안했고, 이명박 대통령의 단호하고 냉정한 대응을 적극적으로 칭송했다.

일본의 <교도 통신>에 의하면, 당시 하토야마 총리가 한국군과 일본 자위대 간에 '물품서비스 상호제공협정(ACSA)' 체결까지 제안할 계획이었다. 한일 간의 군사적 협력구축안은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한일 양국 정치의 기묘한 연동은 6월 2일 지방선거 국면까지 이어졌다. 투표 직후 한국에서 여당의 참패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일본에서는 주요 언론의 호외가 발간되었다. 같은 날 하토야마가 중·참의원에서 총리직을 전격 사퇴를 표명한 것이다.

Ⅱ. 하토야마 내각의 유사(類似)선택

마치 동전의 양면처럼 전개되어 온 천안함 사태와 후텐마 문제, 그리고 한국 여당의 참패와 일본 내각의 퇴진 간에는 어떠한 인과관계가 있었던 것일까? 오키나와 후텐마 미군 기지의 현외 이전은 하토야마 내각의 지향을 상징하는 정치공약이었다. 따라서 이것의 철회는 곧 하토야마 내각의 정체성을 묻는 문제로 직결되는 것이었다. 이 점에서 후텐마 문제와 관련한 미일공동성명의 발표와 동시에 하토야마 내각에 대한 지지 여론의 급격한 하락은 당연한 것이기도 했다.

하토야마는 후텐마 기지 이전 철회 이유로써 북한의 도발에 의한 한반도 정세의 긴박성을 수차례 언급했다. 다른 이유들은 거의 거론하지 않을 정도였다. 실제로 후텐마를 비롯한 오키나와 미군기지의 존재는 기본적으로 한반도 유사(有事)사태를 상정한 것이다. 외형상 천안함 사태의 발생이 후텐마 기지이전 구상을 후퇴시킨 것이 되고, 논리적으로 하토야마 내각을 퇴진시킨 결정적 계기가 된 것이다. 하지만 후텐마 기지이전 문제의 본질에 보다 접근하게 되면, 천안함 사태와의 관계는 이처럼 단순명료하지 않다.

먼저 하토야마 내각이 당초 후텐마 기지에 주목하게 된 경위를 보자. 민주당은 2002년부터 독자적인'오키나와 비전'을 제시하면서 후텐마를 거론해 왔지만, 이것이 최우선 순위의 정책이 된 것은 2009년 정권교체가 현실화되면서 부터다. 민주당이 내건 메니페스토에는 미국과의 '대등한 파트너십'에 근거한 '신시대 미일동맹'이라는 용어와, 미일지위협정의 개정 및 주일미군기지의 재편이라는 구상이 등장했다.

하토야마는 내각 출범 직후 "미국 영향력의 저하"를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일면 급진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민주당 정권의 대미관의 이면에는 사실 중국의 경제·군사 대국화가'불가피한 추세'라는 인식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현실화되고 있는 중국의 부상이 일본에게는 위기로 다가온 것이다. 민주당 정권이 대외정책의 총론을 미일관계의 재편 그 자체가 아니라 "동아시아 공동체"로 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 실행의 첫 단계로서 등장한 키워드가 바로 오키나와 후텐마 기지 문제였다. 전술한 대로 후텐마 기지는 북한의 위협을 가정하고 있지만, 오키나와는 지정학적으로 일본 본토보다 대만에 근접해 있는 곳으로 대 중국관계에 있어 가장 민감한 곳이기도 하다. 민주당에게 후텐마 기지는 미일동맹과 미중관계의 재편을 동시에 풀어갈 수 있는 정책 어젠다로 인식된 것이다. 

문제는 그 실천전략이었다. 하토야마 내각은 임박한 미일, 미중관계의 변화를 선도한다는 관점에서 후텐마 문제에 접근했지만, 이는 곧 때 이른 기대로 드러났다. 정권교체 직후였던 만큼, 하토야마는 적어도 국내적 추진력을 자신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후텐마 문제에서 결정적인 것은 결국 미국의 반응이었다. 후텐마 기지의 이전을 오키나와 내로 한정한다는 계획, 즉 헤노코 안은 과거 자민당정권과 미국 간의 엄연한 합의사항이었다. 민주당은 일찍부터 주둔군 없는 미일동맹을 당론으로 하고 있었지만, 이를 실현을 하기 위해서는 미국과의 합의파기라는 강수를 두어야만 했던 것이다.

출범 초기 하토야마 내각이 보인 자신감의 이면에는 오바마 민주당 정권의 등장과 이로 인한 미국의 세계전략 및 핵정책의 변화에 대한 낙관이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미 국무성은 곧 후텐마 기지에 대한 하토야마 내각의 접근에 불신의 시선을 던졌고, 오바마는 하토야마에게 이를 노골적인 표현하기까지 했다. 결국 작년 12월까지 후텐마 기지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하토야마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올해 5월까지 그 시한을 연장하면서 여론의 지지율은 서서히 추락하기 시작했다. 천안함 사태는 바로 이 와중에 발생했다.

이렇게 보면 하토야마 내각에 있어 천안함 사건은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미국과의 정책조정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판명된 만큼,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현외 이전 구상의 폐기는 이미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여기서 천안함 사건이 이를 공식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 것이다. 후텐마 기지 현외 이전 폐기를 내용으로 하는 미일공동성명이 있던 날, 임시국무회의에서 서명을 거부한 후쿠시마 소비담당상이 파면되었다. 그는 사민당 당수였다. 하토야마는 연립정권 붕괴를 동반한 '결단'을 단행한 것이다.

하토야마가 이처럼 단호할 수 있었던 것은 2002년 납치문제가 표면화된 이후 토착화되어가고 있던 일본 내 반북여론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천안함 사태에 대한 한국정부의 공식 발표는 일본의 주요 일간지 1면의 머리기사가 되었고, 사진·그래픽 등이 동반된 상세한 분석기사가 연일 게재되었다. 뒤이어 한반도 전쟁시나리오가 미디어의 단골메뉴로 등장했다. 이즈음부터 하토야마 내각은 이명박 정권과 유사한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즉 북풍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우방국으로서가 아니라 당사자적 자세로 대 북한 강경책을 선도했고, 후텐마 구상의 폐기 또한 그러한 정책의 일환으로 활용했다. 이 과정에서 보인 '단호한 결단'이 그간 상처받은 리더십의 회복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였다. 하토야마 내각은 천안함 사태를 퇴진의 계기가 아니라 돌파의 기회로 인식했던 것이다.

Ⅲ. 간 내각의 출범, 동아시아 구상은 후퇴하나

하토야마 내각의 선택은 그 귀결 또한 이명박 정권의 그것과 유사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북풍의 효과는 일본에서 정권 유지의 기재로 작동하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하토야마의 내각에 대한 지지율은 취임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았다. 하지만 그 이후의 전개는 한일 양국이 전혀 상이한 양상을 보여 주었다. 하토야마는 수상직을 사퇴했고, 오자와 이치로가 당무에서 물러났다. 이들의 동시퇴장을 예상한 시나리오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토야마와 오자와에 의한 당·정 이중권력구조는 불협화음의 기미를 보이고 있었지만, 7월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를 맞이하기 위해서는 최선의 선택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민주당 내 최대계파 소유자이자 선거전의 핵심인물은 오자와였고, 그와 협력적 국정운영이 가능한 유일한 대안은 하토야마였기 때문이다. 보다 놀라운 것은  간 나오토 가 새로운 수상으로 유력해지자, 내각 지지율이 60%를 상회하기 시작한 점이다. 하토야마 내각의 퇴임 직전의 지지율(20%내외)을 3배 이상 증폭시킨 것이다. 이는 정권교체 직후 하토야마 내각이 획득했던 지지율에 육박한다. 민주당 지지율 또한 28%로 회복돼 자민당 지지율(14%)의 2배로 나타났다. 이는 민주당 스스로도 예상치 않은 결과였다.

6월 8일 공식출범한 간 내각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가능하다. 다만 그 구성에 있어 탈(脫)오자와의 색깔이 분명해졌다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민주당 정권에 대한 지지율 반등은 바로 하토야마의 리더십과 오자와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분명한 거부의사를 민주당 정권이 정면으로 수용한 결과였던 것이다. 지방선거 이후에도 의미 있는 쇄신을 지체시키고 있는 이명박 정권과는 대조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각 구성에서 보다 주목할 것은 그 간 후텐마 기지 이전을 추진해 왔던 주체들 즉, 외무상 오카다 카츠야, 방위상 기타자와 도시미, 오키나와 담당 및 국토 교통상 마에하라 세이지, 그리고 국가공안·납치문제 담당상 나가이 히로시 등 외교안보라인의 거취이다. 이들은 당정의 전면적인 쇄신 속에서도 예외 없이 재임되었다. 후텐마 기지의 오키나와 현외 이전의 꿈은 실패했고, 그 현실가능성도 부정되었지만, 간 내각의 출범으로 그것의 추진이 가지는 의미 자체가 기각되지는 않은 것이다. 이 또한 국민 여론을 반영한 것이었다.

우애외교(友愛外交)라는 하토야마식 슬로건은 사라졌지만, 민주당 정권의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에 기초한 대외정책은 지속될 것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의 천안함 사태는 동아시아 공동체 구상의 실행을 위한 어젠다 설정의 오류를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고도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간 총리는 취임연설에서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한 아시아 중시 외교'를 제시했다. 각론의 작성은 현재진행중일 것이다. 이것의 성공여부는 간 내각이 얼마만큼 안정적인 리더십을 창출하느냐에 달려있다. 여기서 일본 내에서 간 내각의 장기집권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는 점은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민주당은 중의원에서 단독으로 과반이 훨씬 넘는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7월에 예정된 참의원 선거 또한 큰 변수가 되지 않을 것이다. 애초부터 총 242석 가운데 121석을 결정하는 데 불과하기 때문이다. 한 달 이내에 자민당을 비롯한 여타 군소정당이 이를 장악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매우 낮다. 사실 일본정치에 있어 안정적인 리더십의 창출문제는 일본 정치 전체가 당면한 최대 과제이기도 하다. 최근 4명의 총리가 연달아서 집권 1년을 못 채우고 자리를 물러나는 광경은 제2차 대전 패전직후의 일본을 연상시킨다. 간 내각의 등장으로 민주당만이 아니라 일본 정치가 다시 새로운 출발점에 서있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간 총리가 하토야마와 마찬지로 한일관계를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한반도 정책에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이 기대 섞인 전망은 당분간 유효할 것이다. 현재 일본은 한미 양국과의 긴밀한 공조 하에 북한을 규탄하고 중국을 압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는 천안함 사태의 국면으로 이를 주도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간 내각의 출범과 더불어 일본정치가 이미 천안함 사태의 국면으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장기적으로 한미일이 삼국이 동맹관계가 되어서 중국을 위협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현실가능하지도 않다. 오히려 간 내각의 동아시아 구상에 있어 새로운 정책 실천의 아젠다는 미일 합의에 의한 북일교섭의 재개로 나타날 수도 있다. 비약적인 전망으로 보일 수 있지만, 과거 고이즈미 내각이 단행한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그러했다. 이명박 정부가 천안함 사태로부터 전개되고 있는 상황논리에 자족하는 동안 간 내각의 동아시아 구상이 구체화될 경우, 한국에게는 '고립'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발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간 내각의 한국에 대한 우호정책은 유지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대한반도 정책은 매우 유동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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