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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폰서 검사' 의혹을 조사해 온 진상규명위원회(이하 진상규명위)가 49일간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PD수첩> '검사와 스폰서'를 제작한 당사자로서 진상규명위의 조사 결과를 평가하는 것은 부담스럽긴 하지만 피해갈 수 없는 의무라고 생각해서 이 글을 쓴다. 이 사건에 대한 심층적인 자료를 갖고 있는 언론이 <PD수첩> 말고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진상규명위의 조사결과에 대한 제작진의 느낌은 태산이 떠나갈 듯하더니 쥐 한 마리 나왔다는 것과 비슷하다. 제보자 정아무개 사장의 일관된 진술에 따르면 성접대가 일상적으로 일어났는데 조사 결과는 딱 1명만 인정했다. 적게는 3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씩 촌지를 수 없이 건넸다고 하는데, 조사 결과는 한승철 당시 창원지검 차장 검사가 받은 택시비 100만 원을 포함 2건만 인정했다.

 

그러면서 이처럼 축소된 결과의 책임을 대부분 제보자 정 사장의 객관성과 일관성 없는 진술, 그리고 룸살롱 업주나 마담 등이 "성접대는 없었다"고 진술한 것에 돌렸다. 내가 보기에는 그 책임은 '검찰이 검찰을 조사한 것'에 돌려야 한다.

 

진상규명위는 증거가 명백한 2009년에 일어난 향응사건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상세하게 조사하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 이전 사건들에 대해서는 접대 규모를 정사장 주장보다 대폭 축소했고 성접대는 아예 인정하지 않았다. 84년부터 91년까지 진주지청 검사들을 대상으로 이뤄진 엄청난 규모의 향응, 성접대, 촌지제공 등은 딱 한 건의 촌지 제공과 접대 몇 건 정도로 축소됐다.

 

물론 오래된 사건들의 경우 관련 증거들이 없어져서 입증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솔직히 이 정도로 축소된 조사결과를 내놓은 것은 처음부터 조사 의지가 없었던 게 아닌가하는 의문이 들게 한다. 다음 사례들이 그 대표적인 경우다.

 

K검사, <PD수첩>에는 "술자리 간 적 있다"했는데 조사위는 "접대 없었다"

 

제보자 정 사장은 2003년 7월 대검찰청 정기사무감사팀이 부산지검에 직무감사를 내려왔을 때 자신이 이 감사팀과 부산지검 부장들을 1차 횟집, 2차 룸살롱에서 접대했노라고 주장했다. 정 사장은 이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임명한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서슬 퍼렇게 검찰개혁을 추진할 때여서 다들 술자리를 갖는 것에 망설였지만, 1차 횟집에서 폭탄주가 몇 순배 돌자 다 잊어버리고 룸살롱 술자리로 이어졌다고 매우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검찰 개혁이 한창 논란 중이던 상황에서 스폰서 접대를 감찰해야 할 감사팀에서 오히려 접대를 받았다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스폰서 접대 문화가 얼마나 검찰 조직 내에 뿌리 깊은지를 알 수 있는 사례다.

 

그런데 진상규명위는 이 술자리가 없었다고 결론 내렸다. 당시 감사팀의 일원이었던 K검사가 제출한 일기 형태의 비망록을 보면 K검사가 술자리에 가지 않았다는 알리바이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부터다. 바로 그 K검사는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그때 제가 누굴 따라서 그냥 식사를 갔다가 술자리로 갔던 기억이 있는데, 룸살롱을 갔는지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그런 적이 있습니다"라고 했었다. 그는 분명히 식사와 술자리를 인정했다. 다만 그는 사무감사 회식자리를 제보자 정사장이 제공한 것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그 회식자리 뒤 몇 년 동안 서로 연락이 없다가 2009년 K검사가 ○○지청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정 사장이 그에게 전화를 했다고 한다. K검사는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근데 올해 여기 제가 온 다음에 정씨가 저한테 전화해서 자기가 그때 술자리 같이 한 사람인데 인사 오겠다고 전화 온 적이 있어요"라고 했다.

 

만약 실제로 술자리가 없었다면 정 사장이 이런 전화를 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PD수첩>은 접대자리에 수행하던 정 사장 회사 간부로부터 '감찰쪽에서 왔다는 사람들을 접대하러 나간 기억이 있다'는 진술도 들은 바 있다.

 

따라서 진상규명위원회는 구 검사가 <PD수첩>에 최초로 한 인터뷰 내용, 정 사장의 일관되고 구체적인 진술, 정 사장 회사 간부의 진술을 부정하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근거는 자신의 진술을 바꾼 K검사가 제출한 일기 형식의 비망록과 회식에 참가했다고 지목된 다른 검사들이 부인했다는 사실이다.

 

검사들이 부인하는 것에는 크게 중요도를 부여하기 힘들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 경우에도 아니라고 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렇다면 비망록이 결정적 증거라는 것인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또 왜 K검사가 애초 <PD수첩>에 회식자리에 참석한 것 같다고 얘기했는지도 설명이 없다. 나는 진상규명위의 결론이 충분한 근거를 갖고 있는 것인지 매우 의심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이 문제는 반드시 앞으로 여야 간에 합의돼 설치될 특검에 의해 다시 조사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횟집주인 "검사들, 정사장 이름으로 먹었다"-진상규명위 "2~3회만 인정"

 

또 다른 사례다.

 

정 사장은 부산지검 검사들뿐 아니라 부산고검의 고참 검사들도 수년간 지속적으로 접대했다고 말했다. 정 사장은 취재진에게 자신이 실제 수사를 하지 않아 실권이 없는 고검의 고참 검사들을 오랫동안 접대했고, 이것이야말로 자신의 접대가 대가를 바라고 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강조하곤 했다.

 

정 사장은 심지어 고검 검사들끼리 횟집에서 먹고 난 뒤 본인 이름으로 달아놓으면 나중에 가서 계산한 적도 많다고 했다. 취재진은 실제로 부산의 한 횟집 주인으로부터 고검 검사들이 정 사장 이름으로 달아놓고 먹었다는 진술을 들을 수 있었다. 검사들이 스폰서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의 이름으로 술을 먹는다는 것은 그만큼 관계가 깊고 오래 지속되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게 아닐까?

 

그런데도 진상규명위는 고검 검사들이 고작 2~3회만 접대 받았다고 결론 내렸다. 이 결론에 대해 진상규명위가 제공하는 근거는 접대를 받은 당사자의 진술밖에 없었다. 접대를 받은 사람이 2~3회만 받았다고 하니 그렇다는 것이다. 진상규명위 보도자료에에는 횟집에 대한 조사를 했는지 여부가 등장하지 않는다. 과연 진상규명위는 정 사장이 제보한 문건에도 등장하는 이 횟집을 조사하기나 한 것일까? 이 문제도 특검 재조사가 필요하다.

 

룸살롱 업주가 "없었다"면 있었던 성접대가 없어지나?

 

PD수첩의 취재과정에서 정 사장이 검사들을 접대했던 룸살롱의 업주나 마담들은 한결같이 성접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심지어 한 업주는 자신이 검사들로부터 장모로 불린다고까지 했다. 그런데 이 업주나 룸살롱 마담들은 검찰 진상규명위 조사에서는 "성매매가 없었다"고 진술했고 이 진술과 검사들의 부인을 근거로 진상규명위는 성매매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는 진상규명위의 이런 결론을 보면서 "이 사람들이 정말 룸살롱에서 성접대가 없었다는 진술을 믿었다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느꼈다. 룸살롱에서 성매매를 한다는 것이야 우리 사회에서 상식이고, 검사들이 룸살롱을 드나든다는 것도 이제 상식이 됐는데 성접대는 없었다니?

 

룸살롱 업주나 마담이 성접대가 없었다고 진술한 것은 충분히 이해가 가는 일이다. 성매매를 한 것이 되니 자신들이 당장 처벌받을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꼭 처벌받지는 않더라도 자신들의 고객이었던 검사들에게 해가 되는 일이니 앞으로의 영업을 위해서도 좋을 일이 없을 것이다. 게다가 자신들을 조사하는 주체가 피해를 입을 검사들의 동료 검사들이니 사실대로 진술하는 것이 쉽겠는가?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나온 룸살롱 관계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진상규명위는 "성접대는 없었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PD수첩>의 편집 왜곡을 의심한 진상규명위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진상규명위는 <PD수첩>이 성접대는 없었다고 말한 룸살롱 업주나 마담의 진술을 편집해 있었던 것처럼 만든 것이 아닌가 의심했다. 이런 의심은 일부 기자들에게 전달됐고, 그 기자들은 "진상규명위가 <PD수첩>이 편집을 통해 왜곡했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언론은 진상규명위가 대검찰청에 해당 부분의 편집 여부를 분석해달라고 의뢰했는데 "편집된 것 같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진상규명위 대변인은 나중에 "룸살롱 업주 등이 그렇게 말했을 뿐 진상규명위가 결론을 내린 것은 아닌데 언론이 그렇게 보도했다"고 <PD수첩>에 해명했다.

 

나는 이 에피소드야말로 조사를 담당한 검사들이 룸살롱 관계자들의 "성접대는 없었다"는 진술을 진실로 믿은 증거라고 생각한다. 또 검찰이 검찰의 문제를 수사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례라고 생각한다.

 

진상규명위는 조사결과 발표문의 많은 부분을 정 사장 제보의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점을 설명하는 데 할애했다. 그들의 접근방법은 <PD수첩>과는 달랐다. <PD수첩>은 정 사장의 증언에 신뢰성이 있다고 보았다. 다만 정 사장의 제보 문건 내용이 과거 접대가 이뤄진 그날 그날 기록해놓은 게 아니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재정리한 것이라 실제 상황과는 다른 오차가 있을 것으로 보았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그의 증언을 검증한 뒤 방송했다. 예를 들어 제보문건에는 2003년 대검의 부산지검 사무감사 당시 있었던 회식에 한승철 당시 부장검사가 있었다고 나오지만, 인사발령 기록을 확인한 결과 그 당시 한 부장검사는 부산에 가기 전이었기 때문에 빼고 방송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오류가 일부 있다고 해서 제보 문건 자체의 신뢰도를 의심하지는 않았다. 비록 날짜는 틀린 경우가 여럿 있었지만 정 사장 기억 속의 사건들은 하나 하나 매우 구체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그 존재 여부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진상조사위는 오류가 발견되면 곧바로 이를 정 사장 진술의 신뢰도 문제로 치환시킨 듯하다. 반면 상대방인 검사들이나 참고인인 룸살롱 업주, 마담들의 부인하는 진술은 의심하지 않고 그대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이처럼 진술의 신뢰도에 각각 다른 가중치를 부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조사 결과는 접대 횟수를 극도로 줄이고, 성접대를 인정하지 않는 결과가 되어 버렸다.

 

특검 수사가 필요한 이유

 

나는 대한민국 검사들이 다른 사건을 수사할 때도 이렇게 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는다. 다만 이 사건이 자신들의 문제이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래서 검찰이 아니라 객관적인 입장에 있는 기관이 검사들의 문제를 수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 시작은 여야 간에 앞으로 논의될 특검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검이 이 사안을 수사해서 진상규명위의 결론과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면 검찰이 수사와 기소에 대한 모든 권한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 심지어 검찰에 대한 수사도 검찰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드러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최승호 기자는 MBC  '검사와 스폰서'의 프로듀서입니다.


태그:#스폰서 검사, #PD수첩, #진상규명위원회, #특검, #검사와 스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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