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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하동 악양으로 건너갈 때면 나들이 차량이 줄을 이어 달리다 멈추다를 반복하게 되는 요즘이다. 징하게 춥고 지리했던 지난 겨울은 봄마저 더디게 불러오더니 아름다운 봄날의 화사한 풍경을 누릴 새 없이 훌쩍 여름으로 건너간 듯 벌써부터 무덥다.

 

 

5월 초 하동에선 '제 15회 야생차문화축제'가 열렸었다. 마침 축제의 마지막날이 어린이날이라 덤으로 얻은 하루, 화개 축제장에서 녹차 부스를 운영하는 지인들과 '지리산학교' 선생님 몇 분을 만날 수 있었다.


악양의 평사리공원에서도 축제의 또다른 장이 펼쳐졌는데 산청에서 놀러온 후배들과 '섬진강자연재첩' 부스에서 고소한 재첩부침개에 막걸리 한 잔 나누기도 하고 다양한 행사 속에 어우러져 오랜만에 유쾌한 하루를 보냈다.

 

"다음 주말인 15일, 우리 홈페이지 회원들과 1박 2일의 재첩체험행사를 하는데 시간되면 사진 좀 찍어주실랍니까."


주말마다 건너오는 것을 아는 노만식 사장님이 슬쩍 의향을 묻는다. 악양 미점리의 '자연횟집'은 동료들과 회식을 할 때나 먼 데서 오신 손님들과 밥 먹느라 자주 들르던 곳. 섬진강에서 재첩을 잡는단다, 운 좋으면 숭어도 잡고, 저녁엔 제다실습까지 할 수 있다니.

 

 

두 가족이 참여의사를 밝혔는데 막상 날짜가 다가오자 부산에서 한 가족만이 참여한단다.거창한 행사를 계획한 건 아니지만 첫 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한껏 기대감을 부추겨 객원으로 끼어드는 나를 더 들뜨게 했는지도 모른다.


부산의 신청 가족은 아버님과 형님네 가족까지 참여했고 노사장님의 초등학생 아들이 다니는 악양의 '지산학원' 원생들의 단체 참여로 뜻밖의 대성황을 이루었다. 바다나 강가에 있어야 할 풍경은 모래와 나룻배, 물고기와 갯비린내 그리고 사람들의 발자국과 왁자한 웃음소리가 아닐까.

 

여름이라기엔 조금 이르고 봄이라기엔 조금 후텁지근했던 5월 중순의 섬진강은 낮고 흐릿한 하늘빛만 빼곤 머릿속에 그려진 섬진강의 풍경 그대로 펼쳐졌다.

 

부산의 홍 선생님댁 가족은 1년에도 몇 차례씩 아버님과 형제들 모두 모여 여행을 자주 하곤 한단다. 고만고만한 초등학생 손주들이 할아버지의 두 손을 꼭 잡고 두 아들 며느님이 그 뒤를 따르는 화목한 모습은 보기만 해도 부러웠다.


노사장님과 회원들이 재첩잡기 준비를 하느라 함지박과 그물망, 그랭이들을 펼치는 동안차에서 내린 30여 명의 아이들은 너나없이 강으로 뛰어들어 동무들을 향해 물장난부터 치기 시작한다.

 

대봉감과 녹차, 매실, 배 등은 하동 악양이 자랑하는 농산물이다. 할아버지와 부모가 농사짓고 키우며 돌보는 먹을거리들을 곁에서 늘 보며 자랐을 아이들은 섬진강 또한 지척이니 재첩도 실컷 잡아보고 그물 던져 물고기도 많이 잡아봤을 거라 짐작했다.

 

재첩과 은어, 숭어, 눈치, 참게 또한 늘 가까이 하며 살았을 텐데도 정작 섬진강에서 재첩 잡아보는 건 처음이라고 신기해 하는 아이들이 많았으니 먼 훗날 악양 아이들이 떠올릴 고향의 추억거리엔 섬진강에서 보낸 오늘 하루가 곱게 자리매김할 것이 분명하다.

 

요즘이 한창 제철인 봄재첩은 향도 좋고 살도 제법 오르는 때라 진하고 구수한 국물맛을 내기엔 안성맞춤인 때다. 간의 해독작용을 돕고 피로물질을 없애주는 타우린은 특히 해산물에 풍부한데, 재첩에도 타우린이 듬뿍 들어있어 섬진강에서 잡은 재첩으로 끓인 재첩국이 술 마신 뒤 숙취해소에 좋다. 그래서 해장국으로 재첩국만한 것이 없다는 유명세엔 그만한 이유가 충분하리라.

 

 

노사장님은 손으로 잡는 재첩이 모래도 많지 않아 작업을 훨씬 수월하게 해준다며, 손수 많은 양의 재첩을 손으로 그러모아 잡는다. 공장으로 가져와 해감하고 씻고 끓여내 진한 국물맛을 내기까지 몸은 좀 고되도 태어나 자란 곳에서 순자연의 맛을 내고 재첩의 고장 악양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작업이 너무 좋기만 하다며 우직하면서도 순박한 웃음을 머금는다.

 

 

"제가 하는 고된 작업의 피로를 단번에 풀어주는 것은 맛있다고, 국물이 정말 진하고 구수하다며 좋은 평을 들려주는 회원들의 한 마디입니다. 가끔 덤행사를 하며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 하지만 현장에서 함께 어우러져 재첩도 잡고 고기도 잡고, 악양의 아름다운 사계절을 꼭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이런 체험행사를 마련했습니다."

 

재첩과 숭어를 잡느라 섬진강에 뛰어들어 옷이 흠뻑 젖은 아이들은 악양으로 돌아와 토종닭을 푹 고은 백숙으로 추위와 허기를 달래며 즐거웠던 섬진강에서의 이야기로 또한번 시끌하다.

 

 

'섬진강자연재첩체험 1기'의 하루를 마치고 아이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홍 선생님 가족은 제다실습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야생차의 고장 하동답게 이맘때의 화개와 악양 일대는 찻잎을 따는 분주함과 차 덖는 향으로 술렁인다.

 

제다실습장의 본부장님과 차 한 잔씩을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무쇠솥 앞에 다가가 '야생차 만들기'의 첫 경험에 마주한다. 엄마와 아들, 아빠와 딸 이렇게 2인 1조가 되어 앞서거니 뒷서거니 차를 덖고 비비는 동안 잰 손놀림과 서툰 손놀림이 가늠되는 자녀들의 숨은 재주가 엿보이자 내심 흐뭇해 하는 할아버님과 부모님.

 

 

피곤한 하루였을 것이다. 재첩체험행사의 일정이라 프로그램에 맞춰 강가에서 놀고 제다실습도 하고, 조금은 빠듯하게 움직이느라 바빴지만 언제 또 이런 경험을 할 것인가. 사진 핑계삼아 봄날의 끄트머리와 여름의 문턱을 유쾌하게 넘나든 객원은 이쯤에서 퇴장했다.


일요일 아침, 지난 밤에 덖어놓은 차를 맛내기까지 마친 홍 선생님 가족은 본인들이 만든 차를 가슴에 품은 채 악양 나들이에서 놓칠 수 없는 최참판댁 산책까지 즐기고 헤어졌다고 한다. 밤이 이슥토록 모닥불 피워놓고 소주 한 잔 곁들인 삼겹살 파티로 지난 밤의 사립문을 닫았음은 물론이다.

 

"이런 행사를 준비하고 진행해 본 건 처음입니다. 마음으론 참 풍족하게 준비한다고 했는데 생각만큼 흡족하진 않았어도 섬진강과 악양의 아름다움, 재첩과 야생차의 맛과 향을 조금이라도 느끼셨다면 기쁘겠습니다."


식당 돌보랴, 물때에 맞춰 재첩 잡고 고기 잡으랴 바쁘지만 첫 행사를 치르고 나름 소박한 자신감을 얻은 노사장님은 벌써 다음 행사를 구상하는 눈치다.

 

 

계절마다 빛을 발하는 그림은 참 다양하다. 제철에 누려야 할, 제철에 누리고 싶은 저마다의 그림 한 장 새하얀 도화지에 그리고 싶지 않은가. 그렇다면 떠나라, 자연이 숨쉬는 곳으로. 그래 떠나자, 우리도 그들처럼.

덧붙이는 글 | 자연이 숨쉬는 곳, 닮고 싶은 삶 등을 '우리도 그들처럼'으로 이어갑니다.
'지시랑공방'과 '섬진강자연재첩' 홈페이지, '참거래농민장터'에도 올립니다.


태그:#섬진강, #봄재첩, #재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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