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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언'의 해설서다.
 '선언'의 해설서다.
ⓒ 느린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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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만은 가득해도 그것을 일시에 해소하기란 불가능하다. 끼리끼리 모여서 정책이 어떠니 학교의 선생님이 어떠니 해본다. 결국은 어느 학원이 좋으니 강사가 어느 대학 출신에 경력이 어떻다니 하는데로 흐르기 마련이다. 사실 학교 다닐 때 일찍부터 경쟁에 우위에 서면 좋은 대학을 갈 여건은 되는 셈이다. 대학입학을 위해.

현실은 대학이 제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대학을 가게 되면 더 크고 웅장한 질주의 '트랙'이 기다린다. 옆을 돌아보지 못하도록 쉴 새 없이 채찍질 한다. 더 이상 학교 내에서 경쟁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의 경쟁자들과 경쟁하는 것이 더 어렵고 힘들다. 학점, 토익점수, 봉사활동, 영어연수 등의 스펙을 쌓고 자격증을 취득하는 것이 자리싸움에서 우위를 점한다고 믿는것만이 그들의 최선이다.

돌아보지 말고 질주하라. 최후엔? 장렬히 전사하라.

청년실업 43 만 명. 취업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고 대부분이 백수가 되는 요즈음. 몸부림은 더욱 심해지고 대학은 자못 심각한척 할뿐 취업을 위한 학원으로 변해버렸다. 그렇다면 결국 유치원때 배우는 영어조차 취업을 위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벗어날 수 없다. "전국 900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88만원 세대를 양산하고 있다. 결국 혜택 받는 몇 천 명만이 취업이라는 시대의 특권을 누릴 기회를 가진다. 그 기회를 잡지 못하면 사회로부터의 차가운 시선 속에 놓이게 된다.

김예슬은 '경쟁의 탑'에서 가장 꼭대기에 있는 이였다. 누군가는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 영혼이라도 내어줄것이다. 그 탐나는 '계급장'을 선선히 떼어버리겠다고 했다. 온갖 추측이 난무했다. 곧 그녀의 진의가 널리 퍼졌고 어른들과 일부의 학생들은 이 땅의 교육시스템을 다시생각해 볼 기회를 얻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작은 균열이 불러올 파급효과를 기대하며 '자격증 장사 브로커'로 전락한 대학에 몸담는 일은 자신의 인생에 더 이상 의미로 남기 힘들다고 했다. '상품으로 선택당하지' 않고 '인간의 길'을 걷기 위해서라고 했다.

눈물이 흘렀다. 이렇게 '저항하는 것이 젊음'이라고 하지만 홀로 감당해야 할 고통과 관계를 맺는 인간으로서 가져야 할 번뇌가 얼마나 클 것인가. 나는 그 때 그렇게 깨달음을 가지는 것조차 버거웠겠지만 설사 그런 깨달음이 가슴에서 울려온다고 해도 현실의 두려움을 약삭빠르게 계산하는 머리에서 막았을 것이다. 위대한 성의 쪽문으로 소리 없이 떠나는 것과 감히 굳건하고 공고한 벽을 향해 짱돌을 날리는 것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그는 기억되어야 한다. 사회전체가 '내 자식만이라도' 라는 착각 속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는 것과 더럽고 추한 시스템인줄 알고 비판은 하면서도 그 테두리를 정작 벗어나지 못하는 '두려움'을 원동력으로 움직이고 있는 요즈음의 교육현실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리하여 바뀌게 될 것이다. 이미 "균열은 시작되었다."

그녀가 바라보는 사회적시각과 진보라 자칭하는 모둠들의 래디컬(Radical-책에서는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자세로 쓰임)하지 못함을 비판하는 관점을 보고 '낭만주의'라 비난하는 일부 진보세력도 있긴 하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좀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는 '운동'이다. 맨몸으로 누구도 해내지 못한 실천을 통해 이 사회전체를 단 일분이라도 환기시킬 수 있었다면 그 '운동'은 계속 되어야 한다. 끊임없이 누군가가 이 소리 없는 전쟁을 수행해야 할 것이고 마침내 작은 짱돌들이 모여 굳고 단단한 성벽을 허무는 날도 올 것이라 기대한다.

나도 저자와 마찬가지로 앞으로 자라날 후배들을 위한 '좋은 대학'을 꿈꾼다. 입학시험도 없고 졸업장도, 자격증도 없는, 세계 곳곳의 마을과 삶의 현장이 캠퍼스인, 야생자연을 탐험하고 자신의 몸에 귀기울이고 우정과 사랑의 기쁨을 누리고 호미와 삽을 들고 생명농사를 짓고 도구를 스스로 만드는 대학.

덧붙이는 글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느린 걸음/ 7,500\



김예슬 선언 -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김예슬 지음, 느린걸음(2010)


태그:#김예슬, #고대자퇴녀, #김예슬선언, #대학, #교육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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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데로 생각하지 않고, 생각하는데로 살기 위해 산골마을에 정착중입니다.이제 슬슬 삶의 즐거움을 느끼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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