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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꽃 때문이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것은 꽃 때문이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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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녘에 뒤척거리다 잠을 깬 것은 방문 틈으로 들려오는 거실의 TV 소리 때문이었다. 오늘은 녀석을 깨워서 혼 좀 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쉽게 눈이 떠지지 않는다. 문득 지난밤에 아내가 들어온 것을 못 본 것이 생각나서 바로 거실로 나가보니 TV 리모컨을 손에 쥔 채 옆으로 새우잠을 자는 아들과 엎드린 채 잠든 아내가 있었다. 외출복을 입은 채 그대로 쓰러진 모양새가 무척이나 피곤했던 모양이다. TV를 끄고 아들과 아내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다시 잠을 청했지만 오지 않는다.

일주일 전부터 아내는 어버이날 꽃 준비를 하느라 ,휴일도 없이 새벽부터 밤늦도록 재료 준비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버이날 이틀 전부터는 가게에서 장인과 밤을 새우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하는 일이라 이제는 뭐 특별할 것도 없지만 나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전하고는 한다.

아내와 연애하던 시절, 졸업과 입학 시즌에는 만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각 학교를 찾아다니며 꽃 장사를 했던 부모님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다. 결혼을 앞두고는 나도 처가로 달려가 서툰 손놀림으로 작은 보탬이 되고는 했다. 결혼 후에도 시즌 때마다 온 식구들이 모여서 꽃을 만들며 밤새 수다를 떠는 한쪽에서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묵묵히 일하고만 있어도 나는 좋았다. 좋은 자리를 얻기 위해 새벽에 떠나는 부모님의 운전기사를 자청하며 컴컴하고 찬바람 부는 교문 앞에 내려주고 따뜻한 커피자판기라도 찾을라치면 그냥 어서 가라고 떠밀던 때가 어제 일처럼 떠오른다.

꽃을 만지는 사람의 마음이 꽃처럼 되어야 꽃이 더 이쁘다.
 꽃을 만지는 사람의 마음이 꽃처럼 되어야 꽃이 더 이쁘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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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일과 청소일을 하면서 30년 넘게 입학과 졸업 때에만 노점 꽃 장사를 하던 일도 장모님의 갑작스러운 병으로 접어야 했고, 그때 작은 가게를 월세로 얻어 드린 것이 지금의 꽃가게였다. 꽃가게를 시작한 지 몇 년만에 아내도 회사를 그만두고 꽃가게로 나가야만 했던 우여곡절을 겪은 지가 6~7년이 된 것 같다. 꽃과 관련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였던 아내는 갖은 어려움 속에서 지금의 자리를 만들기까지 많은 시행착오와 잠을 아끼고 새벽 꽃시장을 돌아다니며 나름의 비법을 익혔던 세월이 있었다.

장미 가시에 무수히 찔리고, 살갗이 닳아서 손가락 마디에 밴드를 붙인 자국이 있는 손을 잡으면 나무껍질처럼 거칠었다. 남들이 보면, 꽃밭에서 한가롭게 꽃꽂이나 하는 일처럼 보이지만 완전히 3D업종이라며 웃는 아내다.

'그냥 만들어져 나온 것 갖다가 팔아도 되는 것 아냐. 잠도 못 자면서 생고생을 하고 그러냐.'
'뭘 모르는 소리 하지 마시지요. 누가 편하게 장사할 줄 몰라서 안하나. 내가 만든 꽃바구니 어때?'

'꽃에 대해서 잘 모르는 나도 당신이 만든 것이 눈에 쏙 들어오긴 하네.'
'꽃은 정성으로 만들어야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기분이 좋은 겁니다.'

어버이날 아침, 아내는 급하게 배달일이 생기면 도와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문자를 남겼다. 걱정 말라는 답장을 보냈다. 오전에 있던 일을 잠시 미루고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중에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노점으로 꽃 장사를 나간 장인에게 급하게 꽃을 배달해 달라고 했다. 승합차에 예쁜 꽃바구니가 담긴 상자를 가득 싣고 달렸다. 행인이 많이 오가는 어느 백화점 근처에 자리를 잡았으나 주변의 텃세에 밀려서 자리를 잡았다는 육교 위에는 다 팔리고 남은 빈 상자만이 있었다.

정성이 담긴 꽃은 받는 사람을 감동 시킨다.
 정성이 담긴 꽃은 받는 사람을 감동 시킨다.
ⓒ 오창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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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정성껏 만든 꽃바구니는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든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꽃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감탄사가 나올 정도의 작품이었다. 다시 꽃바구니를 내놓자 오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고, 이내 꽃바구니를 한두 개씩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꽃보다 아름다운 어버이날이었다.


태그:#어버이날, #꽃, #아내, #꽃바구니, #꽃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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