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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영친왕 일가 복식>(2010.4.27~5.23)
 국립고궁박물관 특별전-<영친왕 일가 복식>(2010.4.27~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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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 <영친왕 일가 복식>(2010. 4.27~5.23)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 일가의 의복과 장신구 등을 만날 수 있는 전시이다.

영친왕(1897.10.20~1970.5.1)은 고종 황제와 순헌황귀비 엄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름은 '은'이다. 11세(1907년)에 황태자에 책봉되나, 같은 해 12월에 일본으로 끌려가 일본 황족 일원으로 살아가게 된다.

당시 통감이던 이토 히로부미가 유학을 핑계로 일본으로 끌고 가 일본 황족의 딸인 나시모토노미야 마사코(이방자 여사)와 강제 결혼(1920.4.28)을 시켜 억류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결혼한 영친왕은 1922년 4월, 부인과 아들 '진'을 데리고 조선에 방문하여 순종과 종묘에 '결혼고유'를 올린다. 고유(告由)란 '중대한 일을 치른 뒤 그 내용을 사당이나 신명에게 고하는 것. 그리고 4년 후인 1926년, 순종이 승하하자 이왕(李王)이 된다.

영친왕과 영친왕비(전시 영상 자료 촬영)
 영친왕과 영친왕비(전시 영상 자료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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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이 되자 귀국을 희망하지만 정치적 여건상 좌절되고 만다. 또한 일본의 '왕공족제도' 폐지로 평민으로 강등되어 힘들게 살아간다. 영친왕은 이 과정에 건강이 악화되어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귀국(1963년 한국 국적 회복)한다. 그리하여 1970년에 사망한다.

<영친왕 일가 복식>은 이처럼 국권피탈 속에 불행하게 살다간 영친왕과 영친왕비의 의복들과 장신구들, 조선 방문길에 사망(1922)한 첫 아들 '진', 1931년에 낳은 차남 '구'의 복식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다.

언뜻, 대례복과 활옷을 비롯한 삼회장저고리나 스란치마, 가체를 비롯한 여러 장신구들, 노리개, 두루마기나 풍차바지 등 그간 궁중 박물관 등에서 아무 때나 쉽게 볼 수 있었던 것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것은 이 유물들의 가치와 우리에게 돌아오기까지의 내력을 전혀 모를 때의 이야기다.

<영친왕 일가 복식>(2010.4.27~5.23) 전시 모습 일부
 <영친왕 일가 복식>(2010.4.27~5.23) 전시 모습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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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의 첫아들 '진'과 차남 '구'의 복식들도 만날 수 있다
 영친왕의 첫아들 '진'과 차남 '구'의 복식들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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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황족으로 살던 영친왕 일가는 광복 후 평민으로 강등되어 힘들게 살아간다. 이 유물들은 이때(1956년부터) 일본 도쿄국립박물관에 보관되게 된다. 처음에는 영친왕비가 보관했으나 생활여건상 계속 관리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영친왕 일가의 귀국(1963)과 함께 도쿄국립박물관 수장고에서 영영 묻힐 운명에 처한다. 이런 영친왕 일가의 유물들이 사람들의 관심을 본격적으로 끌기 시작한 것은 1988년, 문화재청이 반환을 받고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부터이다.

문화재청은 당시 낙선재에 거주하던 영친왕비의 협조로 도쿄국립박물관에 반환을 요청한다. 그러나 좌절되고 만다. 이후 숱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그러다가 드디어 1990년 5월 24일에 한일 정상회담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1991년 10월 15일에 반환받게 된다.

이렇게 돌아 온 영친왕 일가의 유물들은 현재의 국립고궁박물관 전신인 궁중유물전시관 탄생의 직접적인 계기가 된다. 또한 국가가 나서서 우리의 유물을 반환 받은 바람직한 사례가 되고 있다.

영친왕비의 머리장식들 일부
 영친왕비의 머리장식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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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비의 머리장식들 일부
 영친왕비의 머리장식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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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영친왕이 순종을 알현할 때 입었던 곤룡포와 영친왕비가 적의와 함께 착용한 가체 ▲부귀와 장수, 복을 바라는 갖가지 길상무늬들이 금은실과 오색실로 수놓아진 여러 개의 화려한 두루주머니와 귀주머니, 수저·붓 주머니▲각종 장신구 상자와 보자기들 ▲어염족두리와 댕기 ▲주칠 3단 경대와 그 속에 보관하던 각종 빗들과 분합 및 머릿기름합 ▲니사봉황앞꽂이와 백옥봉황꽂이를 비롯한 영친왕비의 각종 머리 장신구들 ▲영친왕의 형 의친왕 이강 공의 부인이 1941년에 영친왕비에게 선물했다는 백옥쌍나비노리개 ▲주머니삼작노리개를 비롯한 여러 개의 노리개들 ▲장남 '진'과 차남 '구'의 풍차바지와 돌까치두루마기 및 조끼 등▲반회장저고리, 스란치마 등.

주요 전시 유물이다. 이중 곤룡포와 적의, 원삼 등의 궁중 예복은 영친왕과 영친왕비가 1922년 4월에 순종황제와 종묘에 결혼고유를 올리는 의식에서 착용했던 것이다. 궁중 의례복식의 구성, 착용 상태 등을 알려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당시의 사진과 영상자료가 남아 있어 자료가치가 더욱 높은 유물이랄 수 있다.

게다가 적의는 1897년에 제정된 적의제도에 따라 제작된 것이라 110여 년 전의 왕실 복식의 전모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란다. 이 유물들은 또한 왕실 한 가족의 복식 유물이 일괄로 전해지는 유일한 사례란다. 또한 조선 왕실 소속 마지막 장인들의 최고의 솜씨를 알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옥장 김영희 선생이 재현한 가체.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옥장 김영희 선생이 재현한 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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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비의 주칠 3단 경대에 보관중인 유물들 일부. 각종 빗들,머릿기름함, 분합 등
 영친왕비의 주칠 3단 경대에 보관중인 유물들 일부. 각종 빗들,머릿기름함, 분합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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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신구 등을 싸던 주머니와 상자들 일부
 장신구 등을 싸던 주머니와 상자들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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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여러모로 의미가 남다른 유물들이다. 이 유물들이 지닌 이런 가치들 때문에 유물들은 지난해(2009.12.17) 중요민속자료 265호로 지정되었다. 문화재 지정 정식명칭은 <영친왕 일가 복식 및 장신구류>, 모두 333점이다.

올해는 국권피탈(경술국치) 100년이 되는 해이다. <영친왕 일가 복식>은 한 왕족 일가의 복식을 문화재적 가치로 소개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전시관 곳곳의 전시설명과 영상자료는 국권피탈이 한 개인, 그것도 한 왕족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를 알 수 있는 것들이다.

전시 덕분에 이제까지 마지막 황태자로만 알고 있던 영친왕의 삶과 그 가족들에 대해 명확하게 알게 되었음은 물론이다. 또한 그동안 여타의 박물관이나 전시에서 개별적으로 만나던 궁중 복식을 일괄적으로 만날 수 있어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18호 옥장 김영희 선생이 재현한 가체도 의미있는 전시물이다. 적의와 함께 착용하는 것으로 궁중 복식에서 가장 화려하고 격식 있는 머리 양식으로 치장이 매우 화려하다. 전시는 5월 23일까지, 국립고궁박물관(02-3701-7500 )

영친왕의 두 아들 '이진(李晉)'과 '이구(李玖)'

영친왕의 두 아들 '진'과 '구'의 복식들도 전시된다. 관련유물 일부로 바지는 풍차바지다.
 영친왕의 두 아들 '진'과 '구'의 복식들도 전시된다. 관련유물 일부로 바지는 풍차바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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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친왕의 장남 '이진(1921.8.18~1911.5.11)'은 1922년 영친왕의 조선 방문 때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성소화불량으로 사망했다. 순종의 명에 따라 원손의 예로 장례를 치러 청량리 숭인원에 묻혔다.

차남 '이구(1931.12.29~2005.7.16)는 일본에서 성장, 1953년에 미국으로 유학하여 1956년에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를 졸업했다. 뉴욕의 한 건축회사에서 일하던 중 우크라이나계 미국인 여성 줄리아 멀록과 결혼(1959)했다.

1963년, 영친왕 부부와 귀국하여 창덕궁 낙선재에서 생활하다가 사업 실패 등으로 고국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겪자 1979년에 일본으로 떠났다. 그후 1996년에 귀국하여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명예총재를 맡아 종묘대제의 초헌관 등으로 활동하나 끝내 고국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한국과 일본을 오가다 2005년에 사망한다.

그가 죽은 곳은 도쿄 아카사카 프린스 호텔의 한 객실, 사인은 심장마비다. 남양주시 홍유릉 내 회인원에 묻혔다. -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자료를 토대로 정리


태그:#영친왕, #영친왕비(이방자), #중요민속자료 제265호, #국립고궁박물관, #옥장 김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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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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