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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을 앞두고 포옹하는 킴과 크리스
▲ 뮤지컬 <미스 사이공> 이별을 앞두고 포옹하는 킴과 크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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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1 당신의 슬픔에, 우리의 근대사를 묻다

지난 25일, 뮤지컬 <미스 사이공>을 봤다. <레미제라블> <캣츠> <오페라의 유령>과 더불어 세계 빅4라 불리는 뮤지컬이다. 영국과 미국, 그리고 한국에서의 초연까지 3번을 봤지만 여전히 새롭고 강력하다.

관객들은 <미스 사이공>을 가리켜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라 치부한다. 물론 킴이 부르는 애절한 사랑 노래는 마음 한 구석을 갈갈이 찢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품은 정치적인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행간의 의미들로 넘쳐난다.

한국은 혈맹이라 불리는 미국을 위해 월남 파병을 했고, 그곳에서 많은 범죄를 저질렀다. 민주주의 이념의 수호란 미명하에 우리가 저지른 죄악에 대해, 한국사회가 얼마나 투명하게 '반성'과 '후회'를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모든 걸 전쟁의 트라우마가 시킨 '불가피한 행동'으로 치부한다. 전쟁의 광기를 들먹이고, 조직적 범죄의식 속에 개인의 '죄성'은 철저하게 파묻히고 만다.

사이공 함락을 앞두고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장면
▲ 뮤지컬 미스 사이공 사이공 함락을 앞두고 마지막 사랑을 나누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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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2 뮤지컬 판 <나비부인>...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타자들

라이따이한에 대한 이야기는 우선 접어두자. 어차피 뮤지컬 <미스 사이공>은 사이공의 함락을 앞두고 벌어지는 한편의 비극적 사랑이야기니까. 그 형태는 예전 오페라 <나비부인>의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를 그대로 차용, 시대적 배경과 국적을 버무렸을 뿐이다. 그 속에 담긴 동양에 대한 서구의 시선, 혹은 동양적 환타지를 만들어 유포하고 지속하려는 제국주의의 불쾌한 관점을 읽어내는 일은 꽤나 괴롭다.

극의 이야기는 사이공 함락을 앞둔 시점, 유곽의 술집을 배경으로 이뤄진다. 미군 크리스는 존과 함께 들른 드림랜드란 술집에서 킴을 만난다. 킴과 크리스를 만나게 한 건, 이 가게의 주인이자 자칭 엔지니어라 불리는 포주다. 그의 이름은 프람반딘. 이 엔지니어가 바로 극의 실제적인 주인공이다.

사람들은 킴과 크리스의 사랑을 기억하지만, 결국 그 사랑이야기를 규정하고  풀어가는 건 엔지니어의 시선에 비친, 지금 '전장터'의 모습과 이후의 삶인 셈이다. 허장성세로 일관한 외부 언론의 내용과는 달리, 사이공은 점차 호치민을 비롯한 공산당 세력에 의해 점유되고 미군들은 떠나는 상황.

미군들을 상대로 몸을 파는 유곽의 여인들이 오직 바라는 건 군인들과 결혼해 미국으로 가는 것일 뿐이다. 담보할 희망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하룻밤의 사랑 속에 전쟁의 상처를 위무하고 싶었던 크리스는 킴과 명멸하는 사랑의 회오리에 빠져들고 결혼식도 올린다.

사이공을 떠나는 헬기와 이를 붙잡으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아우성
▲ 뮤지컬 미스 사이공 <헬기씬> 사이공을 떠나는 헬기와 이를 붙잡으려는 베트남 사람들의 아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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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헬기씬이 등장한다. 외국에서 원작을 본 분들이 실제 헬기가 무대에 선다고 스펙터클에 놀랐던 그 장면이다. 사이공이 함락되며 떠나는 미군의 헬기에 몸을 의탁하려는 처절한 베트남 민중들의 모습이 눈에 아린다. 베트남의 역사는 한국의 슬픈 근 현대사와 닮았다. 미 군정과 함께 혈맹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미국의 한국 내 범죄사는 이를 증명한다.

최근 노근리 양민 학살사건을 다룬 영화 <작은 연못>은 일부일 뿐이다. 미군 주둔과 더불어 생긴 이 땅의 기지촌들을 생각해 보자. 소설가 안정효는 <은마는 돌아오지 않는다>에서 기지촌 양공주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그렸다. 은색 숫말들, 바로 영어의 실버 스탤리언이란 제목으로 영역, 미국에서 출간하기도 했다. 우리 근대사의 암울한 초상이었다.

크리스는 킴을 어떻게든 태워 떠나려 하지만 여의치 않다. 둘은 이별한다. 아비규환의 현장 크리스와 킴의 이별은 한없이 슬픈 미래를 예감케 한다. 이제 곧 사이공은 함락될 것이고 호치민이 등장하는 무대가 펼쳐진다.

호치민 정권의 등장을 알리는 용과 집단무 장면,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용의 등장과 함께 성조기가 찟긴다.
▲ 뮤지컬 미스 사이공 중 호치민 정권의 등장을 알리는 용과 집단무 장면, 이 장면을 자세히 보면 용의 등장과 함께 성조기가 찟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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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의 상징인 용이 등장하고 화려한 집단무가 펼쳐진다. 호치민의 뜻이 '깨우치는 자'라지만, 그가 이루고자 했던 반외세, 반 파시즘 노선은 여전히 절반의 성공에 머물렀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북 베트남 정권의 수장으로서 인도차이나 반도를 피로 얼룩지게 한 그의 모습은 뮤지컬을 통해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온다. 집단무를 자세히 보면 미국 성조기가 용이 등장해 바람을 품을 때, 찢어지게 된다. 한 나라의 국기를 찢도록 연출하는 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는 말이다.

강력한 반 식민주의적 시각을 한번의 연출로 표현하는 극의 전개가 놀랍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이 드라마의 실제 연출은 영국임을 감안해야 한다. 영국은 미국적 패권주의에 대한 상당한 반감을 드라마를 통해 드러낸다. 미스 사이공에 삽입된 연출씬들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자신의 아들 탬을 죽이려는 옛 연인 투이를 죽이는 킴
▲ 미스 사이공 중 자신의 아들 탬을 죽이려는 옛 연인 투이를 죽이는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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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의 아이, 탬을 임신한 킴. 그리고 그녀와 예전 정혼했던 투이. 그는 호치민 정권에서 장교가 되어 그녀에게 나타난다. 사랑의 삼각관계를 외삽시킨 이야기 구조는 영화 <인도차이나>와 닮았다. 1930년대 프랑스 치하의 사이공. 양어머니와 그녀의 애인 그리고 양녀 사이에 벌어지는 사랑의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 <인도차이나>. 

고무나무 농장을 경영하는 프랑스인 엘리안느(까뜨린느 드뇌브)는 고아가 된 까미유(린 당 팜)를 양녀로 들이고 프랑스 상류사회의 교육을 시킨다. 엘리안느는 프랑스 해군장교 장을 사랑하게 되는데 까미유 역시 그를 사랑하게 되어 삼각관계에 빠지게 된다. 베트남에 대한 프랑스 제국주의의 몽환은 그 정도가 심하다. 여전히 식민주의 시대를 잊지 못하는 서구의 환상은 아닐까?

식민주의란 군사력과 자본에 의한 타국의 침탈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서구적 주체를  내면화시켜가는 '타자화'의 과정이다. 타자화 된다는 것은 외부에 있는 '초자아'에 기대어 자신을 인식하고 그것에 기대어 힘을 얻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그로 인해 자신의 삶을 소홀히 하고 하찮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극에서 미국이 베트남 민중이 품도록 심어놓은 아메리칸 드림은 일종의 환상이다. 미국은 베트남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거울이 되고, 그들이 규정하는 대로 따라갈 때 안정감을 느끼게 된다. 평생 그들에게 문화적으로 예속되는 것이다. 아이를 죽이려는 투이를 권총으로 살해하는 킴. 그녀는 포주인 엔지니어와 함께 사이공을 떠나 방콕으로 간다. 그들의 삶은 이제 어떻게 될까?

부이 또이 재단 설립과 관련된 장면, 미군에 의해 잉태된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씩 후면의 영상으로 등장한다.
▲ 뮤지컬 <미스 사이공> 중 부이 또이 재단 설립과 관련된 장면, 미군에 의해 잉태된 아이들의 모습이 하나씩 후면의 영상으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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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이 또이(Bui Toi) 재단의 개막과 더불어 2막은 시작된다. 부이 또이란 삶의 먼지란 뜻이다. 미군이 베트남에서 남긴 사생아들, 아이들을 거둬 입양시키고 교육하는 재단이다. 전장터에서 크리스의 친구였던 존은 외국인 인권 운동가가 되어 이 재단을 설립한다. 부이 또이의 실제 뉘앙스는 발 뒷굼치의 때 혹은 똥 밟은 신발과 같은 의미다. 자신의 잔혹한 전쟁범죄에 면죄부를 부여하려는 미국식 '양심선언'을 등장시켰지만, 결국 그들의 전쟁범죄에 의한 '삶의 먼지'를 얼마나 깨끗하게 청소하는지에 대해서 극은 설명하지 않는다.

하긴 이 부분은 마냥 비난을 일삼기가 어려운 것이, 미국은 이상하리 만치 자국의 범죄에 대한 '반성과 모색'이 그래도 열린 사회란 점이다. 한편으로는 부럽다. 그렇게 자국의 범죄에 대해 출판이나 강의를 통해 알리려는 지식인들이 있다는 점과, 국가에 대해 반성을 촉구하는 조직들이 있다는 점이 말이다.

존의 도움으로 크리스는 킴을 만나지만, 그는 이미 엘런과 결혼한 사이, 엘런은 사랑하는 남편을 지키기 위해 킴과 삼각관계에 휘말린다. 마지막은 결국 파국일 뿐.

캐딜락에 올라선 엔지니어의 모습, 아메리칸 드림을 추종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 뮤지컬 <미스 사이공> 중에서 캐딜락에 올라선 엔지니어의 모습, 아메리칸 드림을 추종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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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 사이공>은 깔끔한 연출과 더불어 성량이 풍부한 배우들의 액션이 가미, 초연 때보다 훨씬 통일감과 역동성이 드러난다. 한국 뮤지컬의 지평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중요한 것은 <미스 사이공>을 바라보는 렌즈다. 탈식민담론으로 읽건, 중세풍의 이뤄지지 않는 불가능의 사랑이야기로 읽던, 수용자의 몫이다. 다만 오늘 정치적인 관점을 드러낸 것은, 여지껏 미스 사이공을 <러브 스토리>로만 해석해온 기존의 시각에 좀더 풍성한 관점의 살을 붙여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곁에 있는 기지촌 양공주들의 이야기가 <미스 사이공>의 스토리와 별 다름없기 때문일거다.

덧붙이는 글 | 다음뷰에도 송고합니다. 오마이뉴스 기사를 위해 새롭게 편집해 내용과 결론이 다소 다릅니다.



태그:#미스 사이공, #뮤지컬, #전쟁범죄, #노근리 양민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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