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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을 갈고, 퇴비를 뿌리며 파종을 준비하는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 충북 음성군 소이면 봉전리 밭을 갈고, 퇴비를 뿌리며 파종을 준비하는 농부의 손길이 분주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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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유난히도 말썽을 많이 피웠던 진국씨는 나의 형님뻘이다. 어떻게 인연이 되어 충청도가 고향이신 어머니와 촌수에 촌수를 따진 결과 진국씨는 의붓아들이 되었다.

고향을 떠난 객지생활, 진국씨는 그렇게 우리 가족과 인연이 되어 30년 가까이 지내고 있다. 그러던 그가 어렵던 시절에도 사업을 잘해서 돈을 모았고, 고향에 땅을 사서 자그마한 집을 지었다고 했다.

논두렁 밭두렁에 지천으로 피어난 봄맞이꽃이 봄바람에 흔들린다.
▲ 봄맞이꽃 논두렁 밭두렁에 지천으로 피어난 봄맞이꽃이 봄바람에 흔들린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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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의 집에 내가 좋아할 것이 많을 것이라 했다. 어머니도 '그렇게 오라는데 한 번은 가봐야 하지 않겠냐'며 나를 다그쳤다. 가겠다고 약속을 한 날 아침 8시도 안 되어 진국씨는 사무실을 닫고 집까지 찾아왔다.

편도 1시간 30여분, 그리 먼 길은 아니었다. 출근시간에 30분을 더하면 되는 시간, 러시아워 출근길과 비슷한 시간을 달려 나는 도시가 아닌 산도 지척에 있고, 논밭도 있고, 거름냄새도 나는 충청도 시골 조용한 마을에 서있었다.

씨앗을 심고, 비닐을 덮어 둔 밭이 하나의 모자이크 물결을 이룬듯 하다.
▲ 밭 씨앗을 심고, 비닐을 덮어 둔 밭이 하나의 모자이크 물결을 이룬듯 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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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대로였다. 논두렁밭두렁엔 철을 만난 봄맞이꽃이 한창이었고, 양지바른 무덤가에는 할미꽃과 제비꽃을 위시하여 이런저런 꽃들이 만발했으며, 숲 가장자리에는 취나물까지 쑥쑥 올라와 있었다.

이미 파종이 된 밭들은 냉해방지와 싹을 쉽게 틔우기 위해 비닐을 덮어놓았고, 파종할 밭은 고슬고슬 갈아졌고, 이제 막 파종을 앞둔 밭에는 거름이 뿌려지는 중이었다.

양지바른 무덤가에 피어난 화사한 솜방망이
▲ 솜방망이 양지바른 무덤가에 피어난 화사한 솜방망이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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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모든 일들은 고요한 가운데서 알게 모르게 피어나는 들꽃의 모습을 닮았다. 씨앗을 뿌리는 이들의 몸짓이 씨앗이 움터오는 모양을 닮은 것이다.

뿌리고, 가꾸고, 기다리며 인내하고, 하늘에 맡기고, 거두고….

그렇게 묵묵히 일하는 이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아직, 이 세상은 그렇게 정의롭지 못한가 보다.

고즈녘한 시골마을
▲ 충북 음성 소이면 고즈녘한 시골마을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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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이면에 점심을 먹으러 나왔다. 점심시간엔 근처의 공장에서 나온 이들로 소이면 일대가 북적거렸다. 갑자기 몰려든 사람과 차량의 행렬에 '시골에 무슨 사람들이 이리도 많냐?' 했더니만, 요즘 근처에서 토목공사가 한창이란다.

그리고 점심시간이 지나자 다시 소이면은 시골 일상으로 돌아갔다.

무리지어 피어난 앵초가 원예종의 한계를 극복했다.
▲ 앵초(원예종) 무리지어 피어난 앵초가 원예종의 한계를 극복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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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국씨는 이곳 식당음식은 모두 맛나다고 했다. 담백한 것이 먹고 싶다고 하니 묵밥집으로 안내를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 동네에서 제일 맛없는 집'이란다.

주인하고 잘 아는가 보다. 그러니까 그런 농담도 하지. 아니다 다를까, 맛이 상당히 좋았다. 제일 맛없는 집이라고 떠들어도 농담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주인에게 기분나쁜 말이 아닐 정도로 맛이 있었다. 그 집, 그 가게 화단에는 이렇게 사람의 손이 탄 앵초가 한무더기 피어 있었다.

원예종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조차도 '와, 예쁘다!'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골 다방, 그 특별한 공간의 향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까?
▲ 시골다방 시골 다방, 그 특별한 공간의 향기를 기억하는 이들이 있을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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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이면 지금도 으레 남아있는 다방, 시골다방의 요즘 풍경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그냥 내겐 정겹게 다가오고, 조금은 슬픈 느낌으로 다가온다.

벌써 3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절 군에 입대해 있는 친구 면회를 간날 시골다방의 풍경이다. 20대 한창 젊은이들이 시골다방에 몰아치자 반가워하는 마담과 머뜩해하는 동네 촌부들의 순간의 어색함, 담배 냄새, 커피와 노란 계란을 띄운 진한 쌍화차, LP판에서 지직거리며 흘러나오는 팝송을 따라부르면 적어도 20살을 더 많아 보이는 마담이 '어머, 오빠 저 노래도 알아?' 나긋나긋 대화가 시작되면 으레 고향을 묻고 나이를 묻고 그러다 이내 '또 오마'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하고 다방을 나섰다.

제비꽃의 보랏빛이 선명하다.
▲ 제비꽃 제비꽃의 보랏빛이 선명하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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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다시 봉전리로 들어왔다. 어린시절을 이곳에서 보낸 진국씨는 농사라면 지긋지긋했는지, 텃밭이 돌밭인데도 그냥 대충 심어 먹는다고 방치하다시피 두었다. 천천히 하면 된단다. 그 천천히가 벌써 몇 년인데…. 돌을 골라내고 토란을 조금 심었다.

토란을 빌미로 몇 차례 이곳으로 끌어들이려는 속셈도 있을 것이다. 나도 못 이기는 척하고 이곳을 찾아올 빌미를 만드는 것이다. 진국씨의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은 이런 식이다.

폐가의 창고를 잠근 자물통이 열린채 녹슬어있다.
▲ 폐가의 창고 폐가의 창고를 잠근 자물통이 열린채 녹슬어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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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몇 집들은 폐가가 되어 있었다. 대문이 열려있어 불쑥 들어간 어느 시골집, 마당은 텅비어있었고 토담벽에는 녹슨 삽이 기대어져 있었고, 흙벽에는 개줄이 걸려 있었다. '창고'라고 쓰여진 허술한 철문에는 자물통이 열린 채 녹슬어 있었다.

참으로 많은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조금만 마음을 열고 다가가면 들어갈 수 있을 것도 같고, 저 텅 빈 창고같은 현실이 지금 농촌의 현실인 듯도 하였다.

선홍빛 붉은 유혹으로 다가오는 꽃망울
▲ 겹홍매 선홍빛 붉은 유혹으로 다가오는 꽃망울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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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저런 꽃들을 가꾸고, 분재를 하는 집이 있어 마당을 둘러보다 선홍빛 붉은 색의 꽃망울을 만났다.

진국씨는 오랜만에 만난 고향 지인과 차를 마시며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와 어릴적 얼마나 개구쟁이였는지를 증명하기 위해 지인의 입을 빌린다. 내 어릴적 기억으로도 분명한데, 동네에서는 여북했을까 싶다.

30년 전,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후 정착을 하지 못하고 그야말로 술독에 빠져지내던 진국씨는 이제 어엿한 사장님이다. IMF도 견뎌낸 사업체의 사장이며, 일찍 부모를 여윈 슬픔을 달래고 싶어 연줄연줄 이어가며 기어이 우리 부모님의 의붓아들이 된 형님이기도 하다.

의붓형님, 진국씨의 고향 봉전리의 봄은 조금 쓸쓸하면서도 정겨운, 말로 표현하기 쉽지 않은 두루뭉실한 충청도의 색깔이 가득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카페<달팽이 목사님의 들꽃교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봉전리, #소이면, #봄맞이꽃, #앵초, #솜방망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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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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