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불개미에 대해 우리는 매우 무서운 이미지를 갖고 있다. 어마어마한 숫자로 몰려나와 인간을 공격하고, 순식간에 뼈만 남겨놓는 장면. 이런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원래 불개미는 30센티쯤 되는 흙무더기를 곳곳에 남기는 성가신 존재 이상은 아니었다. 그러나 살충제가 개발, 보급되면서 미국 정부의 태도는 급변했다. 농무부는 불개미를 농업의 적으로, 조류나 가축 심지어 인간을 죽이는 파괴자로 묘사하기 시작했고, 불개미가 인간에게 덤벼드는 장면을 넣은 영화 제작을 지원했다. 결국 2천만 에이커에 공중 살충제 살포가 결정되었고 살충제 제조업체들은 노다지를 캤다.

 

과학적 근거조차 제대로 갖추지 않고 몰아붙인 이 계획의 끝은 비극이었다. DDT보다 몇 배나 독한 화학약품들이 마구 뿌려졌고 지렁이, 쥐, 너구리, 메추라기가 속속 자취를 감췄다. 가축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뿌린 약은 그 가축이 오염된 사료를 먹고 죽어가는 데 일조했다. 살아남은 가축들도 생식능력이 치명적으로 저하됐다. 농약을 뿌린 지 5개월이 지나도 젖소의 우유에서 농약이 검출됐다. 사료에 묻은 농약은 우유에서 수십 배 농축되어 인간에게까지 전달되었다.

 

엄청난 세금을 쏟아부은 이 계획은 효과는커녕 더 많은 해충을 불러들였다. 천적들이 다 죽어버리자 개미와 해충이 더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연방정부와 주 정부는 살충제 살포를 포기하지 않았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을 썼다. 화학업체와 정부로부터 갖은 비난을 감수하면서.

 

카슨은 죽음의 흰 가루 DDT를 토양, 수질, 생물피해, 유전적 피해, 인간의 질병 증가 등 수많은 각도에서 파헤쳤다. 이 책에서 그녀는 화학을 시어처럼 다룬다. 행간에선 들꽃과 새 소리와 아이들을 사랑하는 여성이 얼마나 슬퍼하고 분노했는지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철저한 자료와 사례로 상대를 반박하고, 절제된 말투로 이렇게 말한다.

 

"참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면,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의 권리다."

 

그러나 <침묵의 봄>을 통해 DDT 계열 살충제와 제초제의 진상을 알게 된 시민들은 더 이상 참는 것을 의무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백 마디 모호한 선동보다 한 마디의 정확한 알림이 행동을 이끌어낸다. 그래서 이 책을 평가하여 "<침묵의 봄>이 있었기에 침묵의 봄이 오지 않을 수 있었다"고 하는 것 아닐까.

 

50년 전 미국에서 봄이 침묵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선 강이 울고 있다. 제대로 된 환경영향평가도 없이 천리마운동 하듯 강 전체를 동시에 파헤치느라, 강 바닥에서 중금속과 오니가 쏟아지고 흙탕물이 둥둥 흘러내려간다. 구불구불 느림의 곡선이었던 강 여울은 폭탄 테러 현장처럼 갈기갈기 찢겨나가고 있다. 누가 봐도 '강 죽이기'이다. 그들만 '강 살리기'라고 우길 뿐.

 

'침묵의 봄'을 부른 주역이 결국 화학산업체의 눈먼 탐욕과 한 사회의 과학기술에 대한 맹신 그리고 민주주의에 반하는 정부 관료들이었다면, 21세기 대한민국에는 건설자본의 탐욕, 자연을 통째로 개조하겠다는 어이 없는 오만, 그리고 국민 70%가 반대를 하거나 말거나 내 갈 길 가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있다. 해충 구제 효과가 있건 없건 일단 살충제부터 뿌리고 보자는 50년 전 미국처럼, 일자리 창출이며 홍수 관리 같은 사업 효과가 거의 기대되지 않는 마당에도 이리 저리 말을 바꿔가며 무조건 강행하는 것까지 똑같다. 심지어 그것을 '환경보호(녹색)'이라고 포장하는 것까지도.

 

희망이라면, 우리에겐 많은 레이첼 카슨이 있다는 것이다. 지율 스님이 낙동강을 걸으며 강의 모습을 하나하나 기록에 남기고 계시고, 환경 단체와 정당은 물론 수많은 시민들이 4대강 죽이기를 제발 멈추라며 피를 토하고 있다. <침묵의 봄>이 있어 침묵의 봄을 막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하기에 따라 강의 울음을 그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다가오는 선거,  "알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권리라면, 올바른 표를 행사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다."

 

한쪽 접시엔 딱정벌레들이 갉아먹는 나뭇잎을 올려놓고, 다른 쪽 접시에는 유독성 살충제가 무차별적으로 휘두르는 몽둥이에 스러져간 새들의 잔해와 다양한 빛깔의 가련한 깃털을 올려놓은 채 저울질을 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설령 저울질을 할 수 있다고 해도 그에게 그런 결정을 내릴 권리가 있는가? (...)

 

결정을 내리는 사람은 우리가 잠시 권력을 맡긴 관리들이다. 이들은 아름다움과 자연의 질서가 깊고도 엄연한 의미를 갖는다고 믿는 수많은 사람들이 잠시 소홀한 틈을 타서 위험한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 본문 중에서

 


침묵의 봄 - 개정판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홍욱희 감수, 에코리브르(2011)


태그:#침묵의봄, #레이첼카슨, #4대강, #이명박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작가. 기본소득당 공동대표. 기본소득정책연구소장. <기본소득이 세상을 바꾼다><기본소득 쫌 아는 10대> <세월호를 기록하다> 등을 썼다. 20대 대선 기본소득당 후보로 출마했다. 국회 비서관으로 일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