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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 <녹색평론>을 읽으면서 '자발적 가난'이라거나 '공생공빈(共生供貧)', '공생공낙(共生共樂)'과 같은 삶의 가치를 따르려고 하고, 법정 스님의 '무소유' 정신을 닮고 싶은 사람이다. 지구를 걱정하는 많은 이들이 그렇다고 본다.

 

한나라당 임해규 의원은 23일 밤 11시에 방송된 MBC <PD수첩>에서 '무상급식'을 두고 '가난에 순응하라'고 말했다. 이런 내용을 국회의원이 당당하게 말한다는 게 슬펐다.

 

"지금도 아이들 사이에 누가 부잣집 아이고 누가 가난한지 다 알잖아요.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상처 받나요? 그것 때문에 심하게 상처받아서 교육이 안 되나요? 그렇지 않다고 보거든요. 인간의 잠재력과 순응력이라는 게 뭐겠어요. 자신의 처지를 순응하고 받아들이고 또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게 인간이고, 또 그렇게 자라도록 하는 게 교육 아니겠어요?"

 

나는 전교생의 50%가 넘는 아이들이 무상급식을 하는 초등학교 교사이고, 지난 1년간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 학교에서 복지 업무를 맡아서 일했다. 교육복지 일을 하면서 교육청으로부터 가장 많이 듣고, 집행하면서도 고민했던 것이 바로 '낙인 효과'를 없애는 일이었다.

 

깊어지는 낙인효과, 어른은 생각도 못할 걸

 

낙인효과는 초등학교 5, 6학년으로 갈수록 더 심각해진다. 중학교로 가면 훨씬 더 심각해진다고 한다. 단적인 데이터를 말하면 보편적복지 방안으로 정규교육과정 속에 프로그램을 녹여 시행할 경우는 당연히 낙인효과가 없어진다. 이 경우는 교육복지투자 대상자가 아닌 아이들(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 대상 학교의 경우, 대상이 아닌 아이들도 일반 학교에 가면 가난한 축에 든다)에게도 교육복지 대상학교의 혜택을 입게 되기 때문에 불만이 줄어든다.

 

나는 많은 예산이 이렇게 쓰여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왜냐하면 가난한 학교에 다닌다는 것으로 인한 낙인효과를 지우려면 2억이 넘는 특별 예산으로 교육과정을 세련되게 짜고 실천함으로써 학교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교육복지투자 우선지역 학교는 대부분 작은 학교여서 과중한 수업 시수 부담과 큰 학교에 비해 1.5배의 업무 부담으로 인한 수업 결손이 심한 상태에서 2억이 넘는 사업을 추진하려면 이 또한 보통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는 대구 지역의 경우, 사서 교사를 채용하는 정도가 보편적복지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대부분은 선별적 복지로서 교육복지투자 대상 학생들을 상대로 프로그램을 이용하다보니 그 대상이 누군지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고학년으로 갈수록 자존감은 커지는데, 가난한 존재감이 드러나면서 생기는 '낙인효과' 또한 심각해지게 된다. 결국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거나 눈의 띄게 참여율이 줄어드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고학년을 대상으로 동아리 활동을 권장하여 일반 학생의 참여 기회를 40% 이상 주는 일반 프로그램으로 인식되도록 노력해 왔다.

 

가난한 학교 교사인 나는 아이들의 이러한 낙인효과를 극복하는 방안으로 가난이 개인의 문제만이 아님을 북유럽 여러 나라들의 사례를 알려주고, 인권의 가치(초등학교 6학년 국어와 사회 교과서를 읽기 바람)로 아이들과 대화한다. 그래서 기꺼이 사회의 도움을 받고, 언젠가 다양한 방법으로 사회에 갚을 것을 함께 다짐한다. 세상은 그렇게 서로 손잡고 돕고 도우며 살아가는 것이 순리이다.

 

밥을 먹으면서 아이들은 차별을 느끼지는 않는다. 단지 급식비나 우유를 신청할 때, 현장학습비를 낼 때, 주말이나 휴일 체험프로그램에 참여할 때, 방학 중 프로그램을 할 때, 값비싼 스키캠프를 갈 때 일반 학생들이 "너희들은 좋겠다 공짜로 스키캠프로 가고" 부러워할 때 낙인효과는 생긴다. 학교에 아이들은 교사가 일부러 가난을 들추어 내지 않지만 아이들은 수시로 자신이 가난하다는 것을 깊게 느낀다.

 

낙인효과는 이런 감정들이 쌓여서 생기는 것이다. 교육적으로 안 생기게 하면 되지 않는냐고 묻는다면 당연하게도 보편적복지 실현 말고는 교육적 노력이 어렵고 가슴 아프다는 것이다. 교사나 부모가 어른으로 느끼는 아픔도 크지만 아이들이 받을 내면의 아픔을 헤아리기는 어렵다.

 

가난은 구조적 문제, 개인이 노력해서 해결하라니

 

당연히 가난한 아이들이 가난을 극복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교육이고 교사가 할 일이다. 하지만 가난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는 말하지 않고, 가난을 개인의 노력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말하는 이런 말을 일반인들이 해도 시비가 일어날 텐데 국회의원이라는 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 무섭다. 대통령이든 누구든 가난을 극복하고 성공했노라고 말하는 것은 미덕일 수도 있지만 대통령이 구조적으로 가난을 극복해야지, 개인이 노력하라고 말하는 것은 폭력이다. 차라리 말 안 하는 게 났다.

 

"지금도 아이들 사이에 누가 부잣집 아이고 누가 가난한지 다 알잖아요."

 

그렇다. 아이들도 어른들도 다 안다.

 

"그렇지만 그것 때문에 상처 받나요?"

 

상처를 받는다. 안 받는데 교육청이 '낙인 효과'를 없애달라고 주문할까?

 

"그것 때문에 심하게 상처받아서 교육이 안 되나요? 그렇지 않다고 보거든요."

 

교육이 힘들다. 제발 보편적복지를 통해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밥 값 냈나? 우유값 냈나? 체험학습비 냈나?" 묻지 않고, 교실에 아이들이 함께 쓰는 학용품들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불필요하게 준비물을 안 챙겨 온 몇몇 아이들 버릇을 고쳐준다고 수업시간을 낭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대신 한나라당과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학력 향상'에 힘 좀 쏟고 싶다. 아이들과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 하면서 신나게 공부하고 싶다.

 

헌법에 보장된 의무교육은 국민이 원해서이기도 하지만 국가가 필요해서 하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이 없으면 다른 재원을 줄여서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어려우면 앞으로 하자고 말하는 게 국회의원이 할 말이다. 이 참에 의무교육 확대 논쟁이 일어나면 좋겠다. 사실 나는 국가주의가 지나친 현실의 학교에서 밥줄을 대놓고 살지만, 늘 마음이 불편하다.


태그:#무상급식, #피디수첩, #임해규의원, #교육복지투자우선, #교육복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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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서 생명평화의 도시마을공동체를 꿈꾸는 교사 활동가입니다. 지금은 낙동강을 되찾기 위한 일과 참교육이 무엇인지 새롭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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