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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철거민 박래출씨(왼쪽에서 네 번째)가 은평구청에서 철거민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박씨의 머리카락과 눈썹이 하얗게 변했다.
 지난 1일 서울 은평구 응암동 철거민 박래출씨(왼쪽에서 네 번째)가 은평구청에서 철거민 이주대책을 요구하며 분신했다. 박씨의 머리카락과 눈썹이 하얗게 변했다.
ⓒ 전철협서울응암이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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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왜 우리가 죄인 취급을 당해야 하나. 왜 나를 철거민으로 만들어 분신을 시도하게 했는가."

지난 11일 오후 전국철거민협의회 서울지역 응암구역이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 사무실에서 만난 박래출(55)씨는 지난 1일 서울 은평구청에서 분신 시도를 할 때의 심정을 이와 같이 밝혔다.

그는 휘발유를 몸에 뿌린 채 라이터를 켰다. 재개발 현장에 설치한 재개발 반대 현수막을 은평구청이 강제 철거한 것에 대해 항의하기 위해 구청을 찾은 자리였다. 다행히 주변에서 바로 불을 꺼 크게 다치지는 않았으나, 박씨는 왼쪽 이마 등에 화상을 입었다. 정신적 상흔은 더욱 컸다. 

그가 '마지막 수단'인 분신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설을 앞둔 그가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설날에도 아이들과 따뜻한 떡국을 먹을 수 없다"

 응암동 철거민들이 공사현장으로 변한 삶의 터전에서 사업시공사 직원과 대치하고 있다.
 응암동 철거민들이 공사현장으로 변한 삶의 터전에서 사업시공사 직원과 대치하고 있다.
ⓒ 전철협서울응암이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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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응암동 재개발이 추진되기 전 66㎡ 남짓한 집에서 부인과 함께 두 딸을 키웠다. 집 한쪽을 터 조그마한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응암동 7·8·9구역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2008년 12월 박씨의 집은 강제 철거됐다.

당시 박씨가 살고 있던 집 평가액은 약 4000만 원. 지급받은 보상액은 시가의 절반 수준인 2000만 원이었다. 주택용 주거지로 신고된 땅은 13㎡밖에 되지 않아 임대주택 분양권을 받지 못했다. 재개발조합은 박씨가 집 한쪽을 터 운영하고 있던 슈퍼마켓도 무허가 사업이라고 평가했다. 조합은 상가분양권은 고사하고 영업 보상금도 지급할 수 없다고 밝혔다. 삶의 터전이 무너져 내린 박씨는 이후 트럭을 운전해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재개발 농성장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그의 말이다.

"그동안 세금을 다 냈는데 원주민을 다 죽이는 게 무슨 개발 정책이란 말인가. 법으로 알거지를 만드는 것 아닌가. 내가 원하는 건 고층아파트가 아니다. 내가 살던 만큼의 공간을 달라는 것이다. 조합이 책정한 돈을 갖고는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올해 학부모가 된 김해영(32)씨는 "기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들이 잠을 자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무능한 자신이 원망스럽다"면서 "철거민이 된 이후,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아직 아이들이 한글도 떼지 못했다"고 한탄했다. 현재 아이들은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김씨는 집이 철거되기 전, 대지 48㎡와 그 위에 세워진 집을 소유했다. 김씨가 받아야 할 이주비는 6900만 원. 하지만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갚지 못해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던 김씨는 이주비를 한 푼도 받지 못하고 쫓겨났다. 조합이 김씨에게 분양권을 건넨 100㎡형 아파트 분양가는 4억2000만 원. 김씨는 "도저히 돈을 마련할 수 없다"며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는 2008년 재개발 당시의 상황을 전하며 아이들에게 "철거민이 된 못난 엄마가 됐다,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하다"며 울먹였다. 그는 "옆집 건물 철거가 진행되던 때 건물구조물이 집으로 떨어지자, 아이들이 '엄마, 우리 집도 저렇게 무너뜨리면 어떡해 어떡해?'라고 말해 아이들과 함께 엉엉 울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어 김씨는 "설날이 다가와도 아이들과 따뜻한 떡국을 나눠먹을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다"며 "못난 엄마라서 아이들에게 정말 미안하고, 또 미안하다"고 밝혔다.

"제2, 제3의 분신을 각오하고 있다"

 철거민 김해영씨는 다음 아고라를 통해 청원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철거민 김해영씨는 다음 아고라를 통해 청원서명운동을 펼치고 있다.
ⓒ 다음 아고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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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암동 재개발 지역 전체 300여 세대 중 15세대가 대책위를 구성해 ▲ 재개발 관련법 개정 ▲ 이주대책 ▲ 생계대책을 요구하고 있다.

박씨는 "재개발조합 쪽이 철거민들을 죄인 취급하고 있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지난해 11월 응암 7구역 조합장은 '고집을 피우고 선택을 미루다 주변 전세가가 상승해 갈 곳을 찾지 못한 것은 당신들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대책위는 5일 은평구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조합, 시공사인 현대건설, 은평구청이 계속 응암동 철거민을 무시하고 대책을 수립하지 않는다면 제2, 제3의 분신은 계속 나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은평구청은 응암동 철거민에 대한 대책 마련이 어렵다는 방침을 밝혔다. 철거민들은 노재동 은평구청장 면담을 요구했지만, "설날이 지나고 다시 오라, 구청장을 만나려면 단계를 밟아야 한다"는 대답을 듣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현대건설은 "보상금, 분양권 등은 조합에서 결정하는 일"이라며 책임을 조합 측으로 돌렸다.

임정채 대책위 위원장은 '적절한 답변'을 주지 않는 구청·조합·시공사를 비난했다. 임 위원장은 "가족은 고시원이나 가까운 친척집 등 여기저기 흩어져 지내고, 어린아이들은 부모에게 보호받을 권리마저 침해당했다"며 "지금이라도 구청·조합·시공사는 철거민 대책을 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1일 대책위 사무실 맞은편에 있는 백련산 기슭에는 눈이 진눈깨비로 변해 내리고 있었다. 건설현장 밖에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현대건설의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그 앞으로 포클레인과 덤프트럭들이 굉음을 내며 바쁘게 움직였다. 산이 깎이고 숲이 짓밟혔다. 응암동 철거민들의 고향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2008년 12월 이전, 그곳에는 응암동 철거민들의 집이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손일수 기자는 오마이뉴스 11기 인턴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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