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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의 가장 큰  명절인 설날이 다가왔다. 매년 설 연휴가 되면 아쉬운 점이 있다. 고향에 술을 사가려고 백화점이나 마트의 주류 코너를 둘러 보면 온통 와인이나 위스키 등 서양의 술 천지이고, 우리 전통주들은 한쪽 구석에 조금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그나마 문배주, 안동소주, 이강주 등 몇 가지만 명맥을 유지할 뿐 대부분의 전통주는 시중에서 보기조차 힘들다. 오늘날 전통주가 푸대접 받는 이유야 여러 가지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고유의 문화가 녹아 있는 전통주를 살려서 알리고 발전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다행히 작년 5월에 '한식 세계화 추진단'이 출범해서 우리 음식을 세계에 알리고자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또, 2008년부터 국내외에서 막걸리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는 점도 전통주의 미래에 기대를 걸게 한다. 이번 달에는 설을 맞이해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전통주 몇 가지를 소개한다.

중요무형문화재 3총사

문배주
 문배주
ⓒ 전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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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전통주 중에서 문배주, 면천 두견주, 경주 교동법주는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이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증류식 소주가 도입된 시기는 고려시대이다. 우리나라에서 소주로 유명한 지역은 평양, 안동, 제주 등이 있는데, 원나라 군대의 주둔지였던 평양에서 문배주가 유명해졌다.

1986년에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문배주는 밀, 조, 수수를 원료로 만드는데 우리나라 고유의 재래종 배인 문배의 꽃 향기와 과실 향이 난다고 붙여진 이름이다. 문배나무의 과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도 문배와 같은 향을 갖게 되는 것이 큰 특징이다. 전통 증류식 소주인 문배주는 1991년 한소 정상회담 차 한국을 방문했던 고르바초프가 반한 술로 유명하며, 노태우 대통령의 유엔방문 기념파티를 거쳐,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도 사용되었다.(http://www.moonbaesool.co.kr)

두견주
 두견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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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당진군의 특산품인 면천 두견주는 누룩, 찹쌀, 멥쌀, 아미산 진달래로 만드는 발효주로, '아지라인'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진해, 신경통, 부인냉증, 요통에 탁월한 효능을 보인다고 <동의보감>에 소개되어 있다. 

두견주는 고려의 개국공신인 복지겸 장군에 얽힌 전설이 있다. 복지겸 장군이 면천에 휴양 차 왔다가 정착하여 은둔 중 이름 모를 병을 앓게 되었다. 이때 복지겸의 17세 된 딸 영랑이 아미산에 올라 100일 기도를 드렸는데 마지막 날 꿈에 신선이 나타나 아버지의 병을 고치려면 아미산 진달래꽃(두견화)과 찹쌀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물로 빚어 100일 후에 먹고 앞뜰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고 정성을 들이면 나을 수 있다고 했고, 그대로 했더니 복지겸의 병이 나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교동법주
 교동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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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경주 교동법주는 경주 최씨 가문의 비주로 350여년을 이어져 왔다. 경주 교동법주를 처음 빚은 사람은 현 기능보유자인 최경의 10대조인 최국선인데, 그는 궁궐에서 임금의 수랏상을 돌보고 장을 담그는 염장을 관장하는 사옹원의 참봉으로 있다 관직에서 낙향하여 사가에서 처음으로 빚은 술이다. 최국선으로부터 이어지는 법주 빚는 방식은 최부자댁의 며느리들에게 물려져 계승되어 왔는데, 법주란 일정한 규격에 따라 빚는 술이라는 뜻이다.

경주 교동법주는 약주에 속하는데, 찹쌀로 빚은 청주라 부르기도 한다. 청주는 예로부터 겨울 술이라 하였고, 교동법주 역시 여름에는 술을 빚지 않는다. 교동법주에 어울리는 안주로는 육포, 각종 전, 집장, 약과, 다식, 북어보푸림, 사연지 등 특별한 것이 많다. 집장은 콩, 밀을 띄운 메주를 갈아서 박, 가지, 무청, 다시마, 부추, 닭고기, 쇠고기 등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만든 장이다. 다식은 쌀, 송화, 깨 등을 갈아서 만든 한과이고, 북어보푸림은 북어포를 아주 잘게 찢어 양념한 것이다. 사연지는 이 가문의 고유 김치인데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이 안주들 역시 경주 교동법주와 함께 대대로 전수되고 있다.(http://www.kyodongbeobju.com)

조선 3대 명주

감홍로
 감홍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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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은 <조선상식문답>에서 감홍로, 죽력고, 이강고를 조선 3대 명주로 꼽았다. 평양 감홍로는 술을 고을 때 약초의 일종인 지치(일명 지초)를 넣어 붉은 색을 우려낸 뒤 꿀을 섞어 달콤한 맛이 나도록 한 소주로서, 단맛과 붉은 빛, 독특한 향이 어우러져 미각은 물론 시각과 후각을 만족시키는 술인 셈이다. 로(露)는 증류된 술이 항아리 속에 이슬처럼 맺힌다는 뜻이다.

조와 쌀로 만든 술에 고급 한약제를 넣어 침출한 후 이를 숙성시킨 것인데, 조선시대 고급 증류주는 마시고 취하려는 것이 아니라 몸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질병에도 감홍로'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과거에는 최고의 술로 인정을 받았다. 현재 파주에서 감홍로를 빚는 이기숙씨와 이민형씨는 1986년 문배주로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가 된 이경찬(1993년 작고)씨의 차녀와 사위다.

죽력고
 죽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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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정읍시 태인면에서 나오고 있는 죽력고는 조선시대에 출간된 유중림의 <증보산림경제>와 서유구의 <임원십육지> 등에 등장한다. 특히 매천 황현이 쓴 <오하기문>에는 '전봉준이 전북 순창 쌍치에서 일본군에 잡혀 흠씬 두들겨 맞고 만신창이가 된 상태로 서울로 압송될 때 죽력고를 먹고 기운을 차렸다'는 기록이 있다.

죽력은 대나무 토막을 항아리에 넣고 3일간 불을 지폈을 때 흘러내리는 대나무 즙으로, 한방에서는 중풍, 천식, 해열 등의 치료에 쓰인다고 알려져 있다.

죽력고는 이러한 죽력에 솔잎, 생강, 창포 등을 넣고 증류시켜 만든 것이다. 조선 3대 명주로 꼽혔던 죽력고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죽력이 식품이 아닌 약재로 식약청에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궁합이 맞는 안주로는 삼합이 꼽힌다. 현재 죽력고는 태인양조장에서 송명섭씨가 빚고 있다.

전주 이강주는 유득공의 <경도잡지>와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서 기록을 찾을 수 있으며,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에서 감홍로, 죽력고와 함께 조선 3대 명주로 꼽히는 전통주이다. 완주 이서의 배와 봉도의 생강이 들어가서 이강주라 불렸는데, 옛 선조들은 여름밤의 서늘한 초승달 빛의 술이라고도 칭했다.

이강주
 이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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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부터 전주를 비롯한 전라 지역과 황해도 지역에서 주로 빚어졌던 이강주는 현재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6호로 지정되어 있고, 조정형씨에 의해 빚어지고 있다. 그는 '이강주에 배를 넣는 이유는 술에 청정미를 더해서 맑게 하는 작용을 하고, 생강은 건위에 좋아 술을 마신 후 위에 자극을 주지 않고 서서히 취하게 만들지요. 한약재인 울금은 담황색의 빛깔을 내 먹음직스럽게 만들며, 꿀과 계피는 피로회복을 빠르게 하는 작용을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술을 빚는 정성입니다'라고 이강주를 소개하고 있다. 조정형씨의 외숙부인 가람 이병기 선생도 생전에 이강주를 즐겨 마셨다고 한다. 남북적십자 회담 등 국가 주요행사의 대표주로 선정된 바 있으며,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설 선물로 선정되어 유명세를 치르기도 했다.(http://www.leegangju.co.kr)

기타 유명 전통주

위의 전통주 외에도 한산 소곡주, 김천 과하주, 문경 호산춘, 계룡 백일주, 중원(충주) 청명주, 제주 고소리술, 안동소주, 가야곡 왕주, 김제 송순주, 경주 신라주, 금산 인삼주, 진도 홍주 등이 유명하다.

물론 아직 우리 전통주가 가야 할 길은 멀다. 사람들이 전통주를 외면하게 된 데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한 전통주 제조 업체의 잘못도 크다. 전통이란 단순히 옛 것을 지키고 변화 없이 전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변화와 발전이 포함된 계승이 필요하며, 그런 의미에서 현대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는 맛, 손이 저절로 가게 만드는 아름다운 병,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드는 마케팅이 필요하다. 물론 정부 차원의 지원도 필요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전통주들이 한국을 넘어 세계인들이 즐겨 마시는 날이 오길 기대해 본다. 이번 설에는 각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주를 한 병 사서 고향을 방문하는 것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전재구: 믹솔로지스트, 한국음료문화연구회 회장, (사)한국바텐더협회 교육이사,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심사위원, 서울특별시 여성능력개발원 강사, 네이버 카페 <칵테일과 꿈> 운영자



태그:#전통주, #중요무형문화재, #조선3대명주, #감홍로, #문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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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료강사협의회 회장, 루이스 바 총괄대표, 한국국제소믈리에협회 부회장, 대한칵테일조주협회 서울지회장, 대한민국 NCS 산업현장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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