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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시인의 생애, 약력, 작품세계 중심으로)

오탁번의 문학적 위상을 말한다는 것은 난해하다. 센티멘탈리즘에서 출발하기 십상인 문학에 대한 열정을 성년이 된 후에도 그 불길 온몸에 감아 한 시대를 글자 속에서 깨고 잠든 사람이 한번 맛보기도 힘들다는 신춘문예. 그 철옹성 같은 문에 세 번이나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 1964년 고려대학교 영문학과에 입학한 뒤 1966년 <동아일보>신춘문예에 동화 <철이와 아버지> 당선, 196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순은이 빛나는 이 아침에> 당선, 1969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 <처형의 땅> 당선 등 한국 문학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신춘문예 3관왕의 주인공이 바로 오탁번인 것이다. 그러나 본고에서는 첫시집 <아침의 예언>에서부터 최근 시집인 <1미터의 사랑>까지 그와 함께 살아온 시를 살펴봄으로서 시인으로서의 오탁번을 재조명해보고자 한다.

오탁번은 '충청도 사람'이다. 정확하게는 충북 제천 출신이다. 이것은 그의 시에 큰 모티브로 작용한다. 충청도란 지명은 경상도와 전라도 사이에 있는 접경지대라고 할 수 있다. 즉, 극과 극이 아닌 절충의 이미지가 존재하는 위치인 것이다. 극한 대립과 반목이 없는 상태에서 그의 문학의 천진성은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쓰는 시어가 아이의 옹알거림처럼 천진하며, 탁한 어른의 말에 반기를 들 듯 늘 새로운 단어를 창조해내는 것도 평화가 몸에 밴 그의 무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런 그에게 일찍이 권오만(문학 평론가)씨는 '자유 공화국의 시민'이라는 말로 그를 평했다.

오탁번은 '거리두기'의 명수다. 그의 가장 최근 시집 <1미터의 사랑>에는 그의 시 전편을 통틀어 가장 애달프고 아름다운 시라고 할 수 있는 시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표제작인 <1미터의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1미터의 거리란 물리적인 거리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여기서 그가 자유로울 수 있는 비밀이 밝혀진다. 거리를 인정하는 것. 그의 슬프고 진지한 시도 읽고 나면 미소가 지어지는 원인은 사람에서든 시에서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그의 생태적인 습성 때문일 것이다.

오탁번의 꿈은 '실현되는 실천'으로 형상화된다. 그는 시 전문지 <詩眼>의 발행인이다. 1998년 계간지로 창간된 '시의 눈'이라는 뜻의 이 문학지는 문학인으로서, 교수로서 그가 후학들에게 실천하는 사랑의 정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문학이 그렇듯 작가의 이력이 배제된 글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탁번의 시에서도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의 생활이 적지 않게 드러난다.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교수를 정년 퇴임한 그는 시 <창작론 연습 교실> 등 문학 시간의 풍경을 보여주는 시가 많다. 문학세례를 넘치게 받은 문학인이 발행하는 문학잡지는 문학을 꿈꾸는 많은 문학중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 역할을 할 것은 분명하다. 어쩌면 오탁번은 교수로서의 자신보다 <시안>발행인으로서의 자신에 더 행복감을 느끼지 않을까?

어린아이의 옹알이는 4차원을 꿈꾸게 한다. 천진과 자유를 노래하는 오탁번의 시가 일상을 넘어서는 기분 좋은 '깊이'로 다가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서정을 노래하되 질척이는 애상이 없으며 자연을 노래하되 그 속에 함몰되지도 않는 그의 시는 그래서 자유롭다. 본고의 제목을 "오탁번 나라의 헌법 1조는 천진과 자유"라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본 발표문에서는 위와 같은 그의 이력은 이력으로서만 숙지하고 필자의 취향에 우선한 시를 선별, 살펴봄으로써 시에 문외한임을 고백하려 한다. 모든 학문이 그렇듯 시작은 끌림에서 부터가 아니겠는가.

2. 중심 말

인간은 누구나 머릿속에 각인된 기억 몇 개 쯤 가지고 있다. 그런 기억은 때론 그 기억이 생산된 시기에 나이를 고착시키기도 한다. 오탁번도 예외는 아니다. 고착이란 회상과는 그 궤를 달리하는 정서적 상태이므로 그 때 생성된 시는 그래서 독자들에게 '현실감'이란 즉각적 감동을 선물한다.

  바둑아 바둑아
  이리 오너라
  나하고 놀자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시간

  어미개 때려잡아서
  가마솥에 삶아먹는
  어른들
  -초등학교 1학년 하교길

  제 어미가 죽은 줄도 모르는
  바둑이가
  몽당연필 따라
  마분지 공책에서
  깡충깡충 나하고 논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숙제

  어른들은
  개고기 먹고 술에 취해
  쿨쿨 잔다
  -국어 숙제 끝
                   시 <초등학교 1학년 오탁번 생각>전문

조심스러운 추측이지만 오탁번은 초등학교 시절에서 곧바로 대학생, 즉 어른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의 시에는 중고등학교를 추억하는 시가 한 편도 발견되지 않는다. 어릴 때 추억을 노래한 시는 전편이 초등학교 시절에 국한되어 있다. 이로서 필자는 일차적으로 오탁번을 초등학교 시절에 고착된, 그 시절의 기억에 유달리 집착하고 사로잡혀 있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다. 위의 시를 보면 까마득한 옛날을 노래했음에도 과거형이나 회상조를 쓰지 않고 바로 현재 일처럼 느껴진다. 고착이란 그 시기에서 더 나아가지 않고 머무는 상태를 말한다. 때문에 언제나 현재형인 것이다. 그의 시에 '아기', '배꼽' 등의 단어와 의성어 의태어가 빈번한 것도 유년에 고착된 그의 성향과 무관하지 않을 듯싶다.

문학을 아름답게 하는 데는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인류가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 모든 예술은 사랑에서 발원되었음도 물론이다. 오탁번의 시에서도 사랑에 대한 절편이 적지 않다. 게 중엔 유쾌한 에피소드적인 것도 있지만 가슴에 멍울을 만드는 애틋한 시도 눈에 많이 띈다. 그런 시에서 발표자는 시인이 유독 공력을 들인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시어의 사용이 그렇고 정중하고도 애틋한 문체가 그렇다.

  석 자 가웃 되는 1미터의 정확한 길이는
  빛이 진공 속에서 2억 9천 79만 2천 4백
  58분의 1초 동안 진행된 거리라고 하는데
  그대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그리움의 거리는
  베틀 위의 팽팽한 눈썹줄이 잉아에 닿을 때
  북에서 풀리는 비단실의 떨림이라도 되는지
  우리들 사랑의 이 영겁과도 같이 멀기만 한
  닿을 수 없는 허기진 목숨의 허공 속에는
             (중략)
  내 약지를 그대의 약지에 마주 비벼서
  10조분의 1미터의 목마름 죄다 지우고
  운석 떨어지고 화광 박히는 우주 속에서
  미리내를 건너는 그리움이 금빛으로 물들 때
  아스라한 길녘 어느 1미터의 물이랑 위에
             (중략)
  애비에미 이별은 나비잠 속에서도 꿈꾸지 않을
  외씨 같은 젖니 난 우리 아기의 첫 돌을 잡히고
                          시 <1미터의 사랑> 부분

이 시를 오탁번의 사랑시 중에서도 단연 절편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1미터라는 구체성이 확보한 독창성 때문이다. 1미터.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손을 뻗으면 닿을 듯 말듯 한 거리가 1미터일 것이다. 아예 닿지 않는 거리라면 그 애달픔은 추상으로 흐르고 만다. 그러나 사랑이 추상적 감정이기는 하나 반드시 대상이 있는 감정이라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 대상과의 1미터 거리란 사랑의 감정을 최고조로 올리는 절대 요소가 될 것이다. 이 시는 그의 다른 시와 비교할 때 상당히 오래 갈고 닦은 정성을 느끼게 하며, 일반 연애시 범주를 뛰어 넘는 숭고한 사랑시로 시의 화자가 체험한 어느 깊은 사랑을 엿보게 한다. 애매모호한 사랑의 감정에 이처럼 구체적, 산술적 대입이 허락된 시가 일찍이 세계 시사에 있었는가.

오탁번의 시집 <생각나지 않는 꿈>에는 흔히 연애시라고 일컬어지는 사랑에 관한 시가 많이 등장한다. 이 시집은 <미학사>에서 출간된 것으로 발행일자가 1991년 5월로 되어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시기를 전후로 오탁번은 연애시를 많이 썼다는 말이 된다.

사랑에 관한 시는 아름답다. 그것이 문학적으로 어떻게 평가되든지 간에 사랑이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독자는 쉽게 그의 시에 동화될 수 있으며, 그가 노래한 사랑에 자연스럽게 동참되는 호사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다음에 인용할 시는 그의 여러 시집에서 발췌한 연애시들이다.

우리를 항상 슬프게 하는 것은
  낙엽이 아니다 구름도 아니다
  시계 바늘이 동그란 시계 바탕을 맴돌 듯
  언제나 바라보고 싶은 눈썹 위에
  지는 저녁 노을 퍼지는 땅거미마냥
  하나씩 묻어오는 늦가을의 외로움

  너의 영혼 모두 너의 육체 모두를
  나는 탐하지 않았다 너의 손톱에 낀
  하루의 슬픔 한 순간의 외로움만
  나의 것으로 하고 싶었다
  너의 손톱 하나 때가 낀 조그만 시간
  긴 꿈속에서만 기억나는
  한 순간의 그리움이 되고 싶었다

  초침은 1초에 1초만큼 가고
  분침은 1분에 1분만큼 가는 세상
  나의 시계가 1초에 1분만큼 가는 슬픔의
  긴 꿈속에서만 떠오르는 모습
  눈썹 하나 머리칼 하나만 훔치고 싶었다
  낙엽도 구름도 내 뜻을 다 안다
                         시 <나의 뜻>전문

시인이 쓴 사랑시를 보면 그 사람의 사랑관이 드러난다. 물론 본격 시인이니만큼 심중을 그대로 적나라하게 옮길 수는 없을 것이다. 때론 미화되고 때론 감추는 일도 허다할 것이다. 하지만 내재된 자신의 관점만은 나타나는 법이다. 오탁번의 사랑시는 드러내는 적극성 대신 안으로의 열망이 주조를 이룬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랑에 뒷걸음치는 나약한 소극성은 아니다. 오히려 가장 간절한 그 무엇을 바란다. 당신의 모든 것을 다 가지려는 건 아니지만 <긴 꿈속에서만 기억나는/ 한 순간의 그리움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꿈속에서도 기억되는 그리움이란 하루를 온통 메우는 그리움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는 걸 머리 좋은 이 시인은 알고 있다.

  오랜만에 그대를 다시 만나니
  그 어디 어두운 곳에 숨어 있던
  등푸른 물고기 한 마리 뛰어오르듯
  그리움의 물살을 헤어날 수 없네
  가을 가랑잎 날리듯 아주 가볍게
  그대와 함께 찾아가는 오솔길
  추억만이 찬란한 낙엽으로 쌓이고
  오랫동안 잠자던 그리움이
  그대를 만나자마자 큰 눈을 뜨고
  저 넓은 바다 뒤채이는 물고기떼
  나의 평화는 물방울처럼 부서지며
  그리움이 수북한 가을 산등성이에
  예보 없는 해일로 뒤덮이고 있네

  여기쯤에서 그만 또 작별을 하자
  눈뜨고 사는 이에게는
  생애의 벼랑은 언제나 있는 법
  여기쯤에서 또 그만 작별을 하자
                       시 <첫눈>전문

이별에도 시기가 있을까? 오탁번은 그 시기를 <여기쯤>이라고 말한다. <눈뜨고 사는 이에게는>이라는 행이 보여주듯 모든 생명에는 끝이 있음을 그는 아는 것이다. <생애의 벼랑은 언제나 있는 법>. 벼랑은 정점이다. 위는 하늘이고 아래로는 까마득한 절벽인 벼랑을 그는 이별이라 말하고 있다. 

  너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둠의 깊이만큼 비애가 끝간 데 없었다
  만나면 만날수록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고
  어쩔 수 없이 젖어드는 그리움의 얼굴

  바람이 불고 눈이 오고 또 꽃이 피고
  천둥 번개 요란한 새벽마다 눈을 뜨고
  너의 옷을 하나씩 벗겼다 알몸에 알몸을
  가까이하고 여름 여치가 날개를 비벼대며 울 듯

  너를 떠나보내고 돌아오는 길에는
  사랑의 깊이만큼 우수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별의 시간이 다가올수록 더욱 빛나는
  너의 흰 손 흰 이마 가슴 적시는 눈물 방울
                                   시 <사랑의 깊이> 전문

이별을 겪은 사람은 조용하다. <사랑의 깊이만큼 우수가 손에 잡히지 않>을 만큼 <너의 흰 손 너의 흰 이마 가슴 적시는 눈물 방울>만 느껴질 뿐이다.

 -1983년 가을 하버드 대학 도서관에서 실비아 플라스의 평전 <The Poetry of Initiation>을 읽다가 아주  인상깊은 그녀 일기장의 일부를 본 일이 있는데 다음은 기억나는대로 그것을 옮긴 것이다. 하지만 요즘의 내 상상력을 배후조종하는 한국의 어느 여류시인이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얼마나 굴절시켰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1.
  그 순간 제철소의 용광로가 보였어 대장간이 보였어 풀
무속에서 이글거리는 시우쇠처럼 뜨겁고 부드러운 것이
내 몸으로 파고들어왔어 앗 뜨거워 앗 뜨거워 소리치면서
나는 그 순간 죽고 싶었어 아니아니 내가 살아 있다는 게
정말 고마웠어 시뻘건 쇠막대기 이글거리며 내 영혼으로
파고들어올 때 나는 내 몸뚱이가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어

        2.
  갈대밭이 바람에 마구 쓰러지고 있었어 멀리 멀리 바다
소리 내 귓가에서 출렁거렸어 솨솨솨 갈대잎 흔들리는 소
리가 내 몸에서 터져나왔어 소금기 비릿한 파도소리에 나
는 죽고 싶었어 아니 아니 그 순간 오래 살고 싶었어 내가
자살하면 내 몸뚱이가 소멸된다는 게 너무 슬펐어 하지만
자살 말고 순간을 영원으로 바꿀 수 있는 방법이 또 있을
까?
                      시 <여류시인의 일기장에서> 전문

오탁번의 사랑시 중에서 가장 격렬하고 역동적인 시가 위의 시 <여류시인의 일기장>이 아닌가 한다. 33세에 자살한 실비아 플라스를 인용한 것도 이채롭다. 위의 시는 사랑하는 남녀의 정사를 묘사한 것으로서 승화된 관능이 시 전편에서 요동친다. 두 사람의 육체적 합일이 정신적 합일로 나아가고 있는 위의 시는 사랑이란 바람도 폭풍도 제철소의 용광로도 모두 그 안에 담고 있는 엄청난 괴력을 생산하는 감정임을 깨닫게 한다. 죽고 싶다는 것은 살고 싶다는 것의 가장 역설적인 감정 일 것이다. 얼마나 지극한 환희였으면 열락의 순간에 그것을 느끼게 하는 주체인 <몸뚱이가 소멸된다는 게 너무 슬>프다는 생각을 할 수 있을까?

  비상등 켜고 전조등 밝혀도
  그대가 가는 길 보이지 않는다
  네거리에 가까스로 왔지만
  직진해야 하는지 우회전해야 하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황도 십이궁도 광막한 어둠에 싸여
  전갈자리인지 사자자리인지
  북극성 곧바로 보이는
  오리온자리인지
  분별할 수가 없다
  길은 뚫린 곳에서 스스로 막힌다
  내 생애의 길은
  저 혼자 시간의 강물로 빠지며
  내 마음의 길을 지워버린다
                      시 <그대의 별자리> 전문

그러나 사랑이란 지도 없이 헤매는 정처 없는 여정인 지도 모른다. 일생에 한 번 뿐이라는 고전적인 표현도 사실은 사랑을 환상에 묶어두려는 낭설인지도 모른다. 사랑을 하면 그 때까지 익혀온 모든 주관 객관적인 것들로부터 멀어진다. 그 시기에 따라 대상에 따라 사랑의 깊이에 따라 모든 길이 새롭게 생긴다. 때문에 <직진해야 하는지 우회전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고, <내 생애의 길은…/ 내 마음의 길을 지워버>는 것이다. 

  시를 시답게 쓸 것 없다
  시는 시답잖게 써야 한다
  껄껄걸 웃으면서 악수하고
  이데올로기다 모더니즘이다 하며
  적당히 분바르고 개칠도 하고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똥끝타게 쏘다니면 된다
  똥냄새고 안나는
  걸레냄새 나는 방귀나 뀌면서
  그냥저냥 살아가면 된다
  된장에 풋고추 찍어 보리밥 먹고
  뻥뻥 뀌어대는 우리네 방귀야말로
  얼마나 똥냄새가 기분좋게 났던가
  이따위 추억에 젖어서도 안된다
  저녁연기 피어오르는 옛마을이나
  개불알꽃에 대한 명상도
  아예 엄두내지 말아야 한다
  시를 시답게 쓸 것 없다
  시는 시답잖게 써야 한다
  걸레처럼 살면서
  깃발 같은 시를 쓰는 척하면 된다
  걸레도 양잿물에 된통 빨아서
  풀먹여 다람질하면 깃발이 된다
  노스텔지어의 손수건이 된다
  - 벙그는 난초꽃의 고요 앞에서
  [우리시대의 시창작론]을
  쓰고 있을 때
  내 마빡에서 별안간
  '네 이놈!'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만 연필이 딱 부러졌다
  손에 쥐가 났다
                   시 <우리 시대의 시창작론> 전문

시인, 소설가, 동화작가에다 국문학을 가르치는 교수인 오탁번의 시창작론이다. 그는 단 두 행으로 그것을 정리한다. <시를 시답게 쓸 것 없다/ 시는 시답잖게 써야 한다>는 명쾌한 것 같으면서도 선승의 화두처럼 시인 지망생들을 고뇌하게 할 것이다. '답게' 와 '답지 않게'는 그래서 영원한 시의 비밀이요 숙제다. '답지 않으면서도 다운' 그 무엇인가를 캐내는 그 비밀을 오탁번은 정말 알고 있을까? 오만과 독선과 그러면서도 위트가 넘치는 그의 숙제를 풀 일이 아득하다. 시인 지망생들이여! 우르르 몰려가서 소주에 양주에 맥주 철철 넘치는 테이블을 앞에 놓고 시인에게 따져 물을 그 시간을 준비하라.

지금 밖에는 찬비가 내린다
  애비의 가슴이 이토록 스산한 것은
  찬비 때문이 아니다
  너희 엄마는 젊은 날에
  <근심하는 나의 별에게>라는 시를 썼었다
  너는 그때 종암초등학교 3학년
  별이 그려진 그림딱지치기하다가
  해넘어서야 동네골목 떠들썩하니
  엄마 손잡고 돌아오곤 하였다
  아들아 네가 지금 지나가는 시간이
  이슬처럼 영롱한 별을 기다리는 것
  애비는 지금 찬비 소리 들으며 믿고 있다
  제 몸 태우는 촛불이 어둠 속에서
  더 밝고 빛나듯
  네가 꾸는 꿈 속의 빛을
  애비는 믿는다
  너희 엄마가 너희 엄마이듯
  우리집의 어둠과 별빛을
  믿는다
  애비의 가슴이 스산할수록
  너를 믿는 마음
  천지를 뒤덮는다
                 시 <아들에게> 전문

오탁번의 시 중에서 가장 뭉클한 시라고 할 수 있는 시가 위의 시다. 여자가 어머니라는 이름 앞에서 가장 숙연해지듯이 남자는 아버지가 될 때 가장 성숙한 외로움을 느끼는 것일 것이다. 자식은 부모가 믿어줄 때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네가 꾸는 꿈 속의 빛을> 믿어주는 <애비>가 있음을 오탁번은 말한다. <가슴이 스산할 수록/ 너를 믿는 마음/ 천지를 뒤덮는다>고 오탁번은 다음 생을 희망하듯 자식에게 희망을 걸고, 이미 정해진 현실인<너희 엄마가 너희 엄마이듯>, <우리집의 어둠과 별빛을 믿는다>고 바꿀 수 없는 절망과 외로움까지도 자식에 대한 애틋함으로 견디고 있는 것이다. 시인이기 전에 아버지로서의 부정이 행간의 여백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시라고 할 수 있다. 

3. 나가는 말

시인들의 시를 읽다보면 도처에 우주가 있고 그 우주엔 우리가 모르는 미지의 나라가 있다는 걸 실감하게 된다. 사람마다 한 두 개의 트라우마는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걸 치유해나가는 과정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상처 없는 영혼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시인의 상처가 유독 아름답게 보이는 건 그들의 시에 중독되었기 때문인가, 시에서 객관성을 갖지 못한 내 무지 때문인가. 열심히 훔쳐볼 수밖에 달리 흔쾌한 수가 보이지 않는다.


태그:#오탁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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