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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에서. ' 한국의 마터호른', 거류산이 보인다.
 고성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에서. ' 한국의 마터호른', 거류산이 보인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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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칠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나와 친구처럼 지내는 김호부 선생님과 함께 거류산(570.5m, 경남 고성군 거류면) 산행 겸 고성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푸른 남해의 절경뿐만 아니라 벽방산, 구절산, 그리고 고성평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거류산은 한마디로 조망이 참으로 좋은 산이다. 게다가 지난 2007년 10월, 세계 최초로 히말라야 8천미터 16좌 완등에 성공한 산 사나이 엄홍길의 전시관이 그 자락에 개관되면서 산 이름이 전국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엄홍길 전시관이 자리 잡은 거류산으로

오전 9시 40분께 마산을 출발하여 산행 들머리인 엄홍길 전시관(경남 고성군 거류면 송산리)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40분께. 우리는 폭신한 흙길을 따라 느긋한 산행을 시작했다. 이따금 차가운 바람이 불어오기도 했지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부드럽고 따사로워 한겨울 속의 포근한 봄을 만끽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얼마 가지 않아 자연석을 상석으로 삼은 무덤이 나왔다. 자연석이 먼저인지, 무덤이 먼저인지 지나가는 등산객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니 각자 나름대로 상상력을 동원한 이런저런 이야기도 자연스레 서로 오가게 되었다. 우리로서는 숨겨진 속사정을 알 수는 없고, 어쨌든 이 세상에서 아주 근사한 상석을 가진 무덤인 것만은 명백하다.

 
ⓒ 김연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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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길에 자연석을 상석으로 삼은 보기 드문 무덤을 볼 수 있다.
 산행 길에 자연석을 상석으로 삼은 보기 드문 무덤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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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산, 거리산이라 불렸던 이 산의 이름이 거류산(巨流山)으로 바뀐 사연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의 여느 산처럼 거류산에도 전해져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해 질 무렵 부엌에서 밥을 짓던 한 처녀가 밖으로 나와 보니 커다란 산이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다. 너무 놀라서 부지깽이를 두드리면서 "저기 산이 걸어간다"라고 세 번 외쳤더니 산이 그만 그 자리에 멈춰 버렸다는 거다.

그 뒤로 걸어가던 산이라는 뜻으로 '걸어산'이라 부르다 언제부터인가 '거류산'이 되었다. 황당 개그처럼 들리지만, 어쩌면 전설은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어 오히려 신비스러운 것은 아닐까.

산 모양이 알프스산맥의 마터호른산을 닮았다 하여 산객들은 거류산을 '한국의 마터호른'으로 부르고 있다. 실제로 마터호른산을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그저 고개를 끄떡일 수밖에 없는 노릇인데, 어디서든 우뚝 솟은 거류산 정상부를 바라보면 그 독특한 형상으로 눈에 확 띈다.

거류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장의사(藏義寺)가 내려다보인다.
 거류산 자락에 자리 잡은 장의사(藏義寺)가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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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의 침략에 대비한 소가야의 거류산성으로 지난해 복원되었다.
 신라의 침략에 대비한 소가야의 거류산성으로 지난해 복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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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인한 생명력으로 바위를 뚫고 새 가지를 뻗은 , 수령이 300년 가까운 소사나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고성 거류산 정상은 여느 산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바위를 뚫고 새 가지를 뻗은 , 수령이 300년 가까운 소사나무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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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 12시 10분께 복원해 놓은 거류산성(경남문화재자료 제90호)에 이르렀다. 거류산성은 신라의 침입을 막기 위해 소가야(小伽倻)가 쌓은 성이다. 성벽 둘레가 1400m에 이르렀다고 하는데 대부분 훼손되고 현재 600m 정도 남아 있다. 그곳에서 15분쯤 되는 거리에 거류산 정상이 있다.

거류산 정상은 여느 산과 다른 특별함이 있다. 바위 틈에서 싹이 돋아 300년 가까운 오랜 세월 동안 모진 비바람을 맞고도 꿋꿋하게 버텨 온 소사나무가 있기 때문이다. 강인한 생명력으로 바위를 뚫고 새 가지를 뻗고 있는 소사나무를 제발 아껴 달라는 내용으로 새해 첫날 거동 석림회에서 조그만 표지판을 세워 두었다. 수액 공급과 가지치기를 하면서 나무를 계속 돌보고 있다고 하니 그런 분들의 숨은 노력이 있어 이 세상이 그나마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 것 같다.

엄홍길 전시관에서.
 엄홍길 전시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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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왔던 길로 이내 하산을 서둘렀다. 점심을 하지 못해 배가 많이 고팠지만 엄홍길 전시관에 들렀다가 음식점으로 가기로 했다. 엄홍길은 자신의 이름을 딴 2개의 전시관을 가지고 있는 산악인이다. 세 살 때 이사한 경기도 의정부시 호원동에도 그의 전시관이 있는데, 경남 고성은 그가 태어난 고향이다.

해물칼국수 먹고 갈모봉 산림욕장을 거쳐 송학동 고분군까지

오후 3시 30분께 늦은 점심을 하기 위해 '당항포 항아리 수제비, 칼국수'(경남 고성군 회화면 삼덕리)라는 식당으로 들어가 맛있는 해물칼국수와 김밥을 사 먹었다. 도로에 접해 있는 그 맛집의 겉모습이 예쁘고 깔끔하게 보여 거류산으로 가는 길에 미리 점찍어 두었었다. 실내 벽면의 색상 또한 자칫 차가운 느낌을 줄 수 있는 파란색인데도 도리어 신선하면서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내었다. 무엇보다 칼국수 국물 맛이 얼마나 시원한지 또 가고 싶은 음식점이다.

맛집 <당항포 항아리 수제비, 칼국수>의 해물칼국수. 국물 맛이 기막혔다!
 맛집 <당항포 항아리 수제비, 칼국수>의 해물칼국수. 국물 맛이 기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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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맛있는 점심을 하고서 갈모봉 산림욕장(경남 고성군 고성읍 이당리)으로 향했다. 30~50년 수령의 편백이 울창한 삼림을 이루고 있어 숲길을 거닐면서 편안한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다. 편백 숲은 여느 수종에 비해 피톤치드 발생량이 많아 삼림욕을 하기에 아주 좋다. 숲 치료라는 말이 요즘 그렇게 낯설게 여겨지지 않는데, 숲에서 내뿜는 피톤치드를 마시면 스트레스가 해소되고 장과 심폐기능이 강화된다 하니 시간을 내서라도 자주 찾는 것이 좋겠다.

우리는 편백 숲의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면서 거닐다 마산을 향해 달렸다. 20분을 채 못 갔을까, 갑자기 내 눈길을 끄는 곳이 있었다. 바로 송학동 고분군(사적 제119호, 경남 고성군 고성읍 송학리)이다. 고성읍 무기산 일대에 위치한 가야 시대의 고분군으로 7기의 무덤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아쉽게도 벌써 해 질 무렵이라 우리는 잠시 걸으면서 구경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곳에서도 우뚝 솟은 거류산이 보여 반갑기 그지 없었다.

갈모봉 산림욕장의 편백 숲에서.
 갈모봉 산림욕장의 편백 숲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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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사람들의 흔적 앞에 서면 나보다 앞서 이 세상을 살았던 그들의 숨결이 느껴지는 듯해 내가 '현재의 나'로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이따금 자연의 드넓은 품속에 안겨 비틀거리는 삶의 외로움을 털어 버리면 같은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이 그리움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어느새 마산으로 달리는 길 위에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대전~통영간고속도로(동고성 I.C 하차)→ 거류면 방면 진입(산업도로)→ 율대농공단지 앞 우회전→ 엄홍길 전시관



태그:#고성거류산, #엄홍길전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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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3.1~ 1979.2.27 경남매일신문사 근무 1979.4.16~ 2014. 8.31 중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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