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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항 근처의 옹포리에서 바라본 제주의 바다.
▲ 옹포리에서 바라본 비양도 한림항 근처의 옹포리에서 바라본 제주의 바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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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항 컨테이너 박스 햇살 좋은 곳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밥을 먹고 있는 이들은 외국인 노동자들이었다. 마도로스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기도 하고, 먼 나라에까지 와서 돈을 벌어야하는 그들의 사연들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슬퍼졌다.

많은 이들이 아메리칸드림을 꿈꾸며 아메리카로 향했다

그 중 누구는 꿈을 이루기도 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도 많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사람들은 관심이나 조명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그냥 그렇게 머나먼 이국땅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꿨던 자신을 원망했을지도 모를 것이다.

그들의 '코리안 드림', 그 꿈을 짓밟는 야만적이 나라가 아닐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그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을 마음에 근처 옹포리 마을회관 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천년의 섬 비양도와 옹포리 바다의 풍광을 담았다.

방사탑과 비양도와 제주의 돌담, 이 모든 것들의 조화가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 옹포리에서 방사탑과 비양도와 제주의 돌담, 이 모든 것들의 조화가 마음을 따스하게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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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포리 바다에는 방사탑이 자리하고 있었다

방사탑과 방파제의 등대 사이로 천년의 섬 비양도가 보인다. 한 걸음 옮길 때마다 다르게 다가오는 풍광, 내가 걷고 있는 동안 그들은 날아다니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방사탑은 마을에 불길한 징조가 비치거나, 풍수지리설에 따라 기운이 허하다고 믿는 곳에 액운을 막으려고 세운 돌탑이다. 마을의 안녕을 보장하고 수호하며, 해상의 안전과 아이를 낳게 하고 보호해주는 기능까지 다 들어있는 것이다. 탑을 쌓을 때에는 밥주걱이나 솥을 묻었는데, 이유는 솥의 밥을 긁어 담듯이 외부의 재물을 마을 안으로 담아 들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육지의 장승이나 솟대가 가지는 방액·방사의 의미와 같은 맥락에서 세워진 것이 방사탑인 것이다.

원하지 않는 아픔을 감당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삶이다

그러나 그 누군가 삶의 깊은 수렁에 앉아 신음할 때 너무 쉽게 '삶이란 다 그런 거야,' 혹은 '나도 이미 다 겪어봤어.'라고 쉽게 말하지 마라. 그 깊은 수렁에 앉아 신음하는 사람에게는 지금껏 살아온 삶 중에서 가장 힘겨운 시간인 것이다.

출항준비를 하고 있는 배
▲ 한림항에서 출항준비를 하고 있는 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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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을 다 먹었는지 항구에서 작업을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정박된 배들의 이름을 살펴본다. 조금은 멋진 이름이 있었으면 했는데 저마다 사연이 없는 이름은 없겠지만 단조롭다.

곽재구의 포구기행에 언급되었던 '해신(海神)'이라는 이름의 배를 만나면 참 좋을 것 같은데, 찾질 못했다. 아니, 그런 이름을 가진 배가 없는지도 모르겠다. 배는 이제 곧 출항을 하려는지 손질된 그물이 놓여있다.

바람에 만선기가 펄럭이고 있다.
▲ 만선기 바람에 만선기가 펄럭이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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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배가 돌아올 때면 만선기가 우뚝 서서 펄럭이면 좋겠다.
▲ 만선기와 배 저 배가 돌아올 때면 만선기가 우뚝 서서 펄럭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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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를 가득 실었다는 표시로 항구로 돌아올 때 배에 높이 다는 깃발을 만선기라 한다. 물고기가 가득 찬 배, 그 얼마나 마음 따스한 단어인가? 만선기가 바람에 펄럭이며 뱃머리에 기대어있고, 배 안에는 잘 정리 정돈된 어구가 쌓여있다.

무언가를 채우려면 비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잘 정리 정돈된 배가 파도에 출렁이며 말하고 있다.

닻을 올린 배, 저 닻이 있어야 먼 바다에 나가 파도에도 흔들리지 않고 제자리에서 작업을 할 것이다. 닻이 내려지는 그 곳은 이른 바 바다의 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농부들이 각기 제 밭에서 먹을 양식을 거두듯, 어부들도 각기 자기의 바다에서 양식을 구하는 것이다.

조명등을 전부 갈아끼우면 밤바다로 나갈 것인가?
▲ 조명등 조명등을 전부 갈아끼우면 밤바다로 나갈 것인가?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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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닻을 내리는 곳이 어부의 밭이다.
▲ 닻 저 닻을 내리는 곳이 어부의 밭이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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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에게 밭이 있듯이 어부에게도 바다에 밭이 있는 것이다

비행기가 남해 어딘가를 날을 때 창밖으로 남해가 보이고, 올망졸망 작은 섬들과 큰 섬 사이에 양식장이 보인다. 양식장마다 논처럼 각진 형태의 모양이 질서정연하다. 저기 김해평야의 논밭처럼 말이다.

누구에게나 어떤 형태가 되었든 지간에 자기의 우물, 자기의 밭이 있어야 한다. 더 많은 우물과 밭을 가진 이들이 자기의 우물과 밭을 늘리기 위해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다면, 그것이 불의다.

그런데 이런 불의한 일들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불의한 힘에 맞서고 맞서다가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지경에서 힘없는 이들이 기댈 곳이 어디인가?

방사탑, 그것이 제주 곳곳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에게는 생소할 방사탑 앞에서 그들이 땀 흘리며 일한 만큼의 대가를 받을 수 있기를, 코리안 드림을 꿈꾸고 이 땅에 온 이들의 소망이 이뤄지길 기도한다.

이제 제주도를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아직도 항구에는 볼 것도 많이 남아있고, 제주공항을 가는 길에 들어선 해안도로를 낀 작은 해안가 마을 귀덕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집을 만나게 된다.

(이어집니다.)


태그:#제즈도, #한림, #옹포리, #방사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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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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