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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는 지금까지 뚜렷한 이유 없이 사람들로부터 흉조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전봇대와 전깃줄에 올라앉은 까마귀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까마귀는 지금까지 뚜렷한 이유 없이 사람들로부터 흉조 취급을 받아왔습니다. 전봇대와 전깃줄에 올라앉은 까마귀들은 이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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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까마귀는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됐습니다. 뭔가 깜박했을 땐 여지없이 '까마귀 고기를 먹었냐?'는 얘기를 들어야 했습니다. 심지어 까마귀를 보면 재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지붕 위로 까마귀가 날면 사람이 죽어나간다고까지 했습니다. 까치가 기쁜 소식을 상징하는 것에 비해 까마귀는 가혹하리 만큼 부정적인 이미지 일색이었습니다.

언제인지 기억은 나질 않지만 고구려 벽화에 까마귀가 등장한 걸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린 적이 있었습니다. 몇 해 전엔 드라마 <주몽>을 통해 '삼족오'가 광범위하게 알려졌습니다. 어린이들까지 삼족오를 이야기할 정도였습니다. 까마귀를 형상화한 삼족오는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재수 없는' 까마귀가 왕권을 상징한 것이었습니다.

까마귀와 관련된 기억들을 되짚어 봅니다. 견우와 직녀 사이에서 다리를 놓은 새가 다름 아닌 까마귀였습니다. 옛날 민간에서 전해지는 솟대에도 까마귀가 존재했다고 들은 적 있습니다. 새 가운데 아이큐도 높다고 합니다. 효성을 지닌 유일한 새라는 말도 들려옵니다. 지금까지의 선입견과 정반대로 길조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담양 들녘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까마귀 무리. 남도의 생태계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담양 들녘에서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까마귀 무리. 남도의 생태계가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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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들녘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까마귀 무리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담양 들녘에서 먹이활동을 하던 까마귀 무리가 하늘로 날아오르고 있습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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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대나무의 고장'으로 알려진 남도땅 담양 들녘을 지나다 까마귀 떼를 만났습니다. 겨울철 까마귀 무리를 만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날따라 까마귀 무리가 마음 한켠으로 들어왔습니다. 먼발치에 서서 한동안 지켜봤습니다. 재수가 없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반가웠습니다. 들녘을 점령한 채 먹이활동을 하고 있는 까마귀들이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먼 곳까지 찾아와서 겨울을 보낸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까지 들었습니다. 우리 땅의 생태계가 그만큼 살아나고 있다는 반증이니까요. 고니, 백로만 진객이 아니고 까마귀도 '진객'으로 다가섰습니다.

동장군이 물러나 겨울날씨치곤 포근할 정도였지만 까마귀들의 먹이활동은 부산했습니다. 날갯짓에서도 생동감이 넘쳤습니다. 무리 지어 창공을 나는 모습은 철새들의 군무 그것이었습니다. 먹이활동을 잠시 멈추고 전봇대에 무리 지어 앉아있는 모습에선 여유가 묻어났습니다.

들녘의 까마귀 떼. 선입견을 갖지 않고 보면 까마귀도 겨울진객입니다.
 들녘의 까마귀 떼. 선입견을 갖지 않고 보면 까마귀도 겨울진객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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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나는 까마귀. 다른 철새들처럼 아름다운 날갯짓을 뽐내고 있습니다.
 하늘을 나는 까마귀. 다른 철새들처럼 아름다운 날갯짓을 뽐내고 있습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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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볼 수 없었어. 근데 몇 년 전부턴가는 모르겄는디, 겨울만 되면 까마귀들이 저렇게 찾아와서 놀아. 먹을 것이 많아서 그러겄제. 지들이 먹을 것이…. 피해는 없어. 농사철이 아니어서 잘은 모르겄는디 까마귀가 피해를 준다는 얘기는 아직 못들어 본 것 같은디."

길을 지나는 주민의 얘기였습니다. 들녘을 누비는 까마귀 떼가 '남도의 생태계는 살아있다'고 노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게다가 과수원에 큰 피해를 끼치는 까치와 달리 까마귀는 아직 피해를 주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까마귀는 우리의 편견과 달리 아주 고마운 겨울철새였습니다.

사실 그동안 '철새'하면 가창오리, 고니, 흑두루미, 백로, 황로, 왜가리 같은 고상한 새만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부턴 그 무리에 까마귀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까마귀는 특정 지역이나 호수에 가야만 볼 수 있는 철새도 아닙니다. 우리의 생활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전깃줄에 올라앉은 까마귀들에서 포근한 겨울날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전깃줄에 올라앉은 까마귀들에서 포근한 겨울날의 여유가 느껴집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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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우리의 역사와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는 새입니다. 인간에게 해도 끼치지 않는 영리한 새입니다. 더 이상 근거 없이 미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친환경 농업이 뿌리를 내리면서 까마귀의 개체수까지 늘었다고 생각하니 마음까지 뿌듯해집니다. 친환경 농업이 우리들한테 안전한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발길을 돌리면서 마음속으로 되새겨 봅니다. "이제 더 이상 이유 없이 까마귀를 미워하지 않아야겠다고. 까마귀들도 이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더 이상 기죽지도 말고, 가슴 펴고 맘껏 남도의 살아 숨쉬는 생태계를 만끽했으면…"하고 말입니다.

황량한 들녘을 수놓은 검은색의 까마귀 떼. 정적인 겨울풍경에 생동감이 넘쳐납니다.
 황량한 들녘을 수놓은 검은색의 까마귀 떼. 정적인 겨울풍경에 생동감이 넘쳐납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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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녘에 내려앉은 까마귀 떼의 모습은 남도의 색다른 겨울 풍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들녘에 내려앉은 까마귀 떼의 모습은 남도의 색다른 겨울 풍경 가운데 하나입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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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까마귀, #담양, #겨울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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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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