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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속에 담겨 있을 여성의 발자취를 조금이라도 찾아내 보자는 뜻에서 모였던 여성 문화유산 답사팀이 이번에 겨울 산행을 주관해서 함께 다녀왔다. 걷는 것은 잘하는 답사회원들이지만 산을 타는 것에는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누구나 부담 없이 갈 수 있는 코스를 선택했는데, 그곳이 서울 근교의 북한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우이령 길'이었다.

 

우이령길은 남쪽에는 북한산을 북쪽에는 도봉산을 가르는 분기점으로 약 4km가 조금 넘는 길이 양주의 교현리에서 서울의 우이동까지 연결되어 있다. 소귀고개라고도 한다. 우이령 길은 그동안 민간인 출입통제의 길이었으나 작년 7월에 전면 개통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게 되었다.

 

옛날에는 마찻길로 생필품을 실어 나르던 소로였는데 지금은 대형트럭이 지나다닐 정도의 신작로가 되었다. 고개라고 하나 가파른 오르내리막이 없어서 무릎이 성치 않는 사람도 얼마든지 걸을만 한 길이었다. 그러나 자연 생태계보존 차원에서 사람들의 탐방을 제한적으로 받기 때문에 미리 인터넷이나 전화로 예약을 해야 한다. 작년 7월에 개방 되었을 때 많은 사람들 속에 끼어 다녀왔지만 겨울에는 그 길이 어떻게 되어 있을까도 궁금했다.

 

 

산행을 한 7일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기온이 낮아 차가운 바람이 옷속으로 파고들었다. 구파발역에서 일행들을 만나기로 했다. 지하철 역 안에서 만나기로 했는데도 어찌나 춥던지. 주변을 둘러보니 역사 안에 고객서비스센터라는 사무실이 보였다. 염치불구 하고 일찍 온 일행들이 문을 밀고 들어갔다.

 

칸막이 너머에서 사무를 보던 여직원이 나오더니 옆에 있는 소파에서 추위를 피하라고 한다. 의자 몇 개를 차지하고 않았다. 또 다른 남자 직원이 보이기에 "이렇게 들어와 있어도 되나요?"하니 "사람이 있는 곳인데 못 들어올 곳이 어디 있겠어요?"라며 칸막이가 있어 방해가 되지 않으니 괜찮다고 한다. 고마웠다. 이렇게 추운데 산행이 가능할까 은근히 걱정도 되었다. 북한산을 잘 아는 등반가가 동반을 했다.

 

 

구파발 1번 출구에서 나와서 704번 버스를 타고 20분이 흘렀을 쯤 '석굴암'이라는 정류장에서 내렸다. 지명은 양주 장흥면 교현리였다. 버스에서 내리면 바로 우측으로 오르는 길이 나온다. 이쪽으론 처음이다.

 

조금 걸어 들어가니 교현탐방지원센터가 나온다. 예약상황을 확인 받고 본격적인 걷기가 시작 되었다. 지하철 역사 안에서 떨었던 것을 생각하면 산행하면서 얼마나 추울까 걱정했는데 산 속은 바람 한 점 없이 햇볕만 쏟아져서 오히려 따뜻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길을 도는 동안 도봉산의 오봉이 꼭 한 밤중의 하늘에 떠 있는 달처럼, 계속 우리 곁에 머물러 있었다. 오봉은 이곳에서 '나만한 바위가 어디에 있는가'며 어서 바라보라는 듯 우뚝하니 계속 우리들 눈 속에 가득 들어차 왔다. 그 오봉에도 전설이 담겨져 있었다.

 

 

"산은 내려오기 위해 오르는 것이 아니라, 다만 집에 가려니까 내려오는 것뿐이다"고 우리를 안내하는 사람이 말한다. 그이는 산만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올 정도로 산이 좋다고 한다. 북한산 능선과 도봉산 능선을 훤히 꿰고서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는 산에 대해 우리에게 설명을 해준다. 암벽등반도 서슴지 않고 하는 전문 산악인이 우이령 길을 안내하려니 조금 답답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도 그이가 있어서 우뚝 솟은 오봉의 봉우리 이름을 처음부터 알고 바라볼 수 있어서 좋았다.

 

 

겨울 산행은 아무리 낮은 곳이라도, 비록 사용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내려오더라도 아이젠과 스패츠를 꼭 챙기라고 했다. 또 방한에도 신경 써서 어떤 종류의 옷을 입어야 하는지도 말해준다. 눈이 덮인 길이었지만 아이젠은 사용할 필요가 없었고, 가져갔던 스패츠는 유용하게 썼다. 눈 속에 푹푹 빠져도 스패츠를 착용하니 신발 안으로 눈이 들어가지 않는다. 이런 준비물은 나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함께 가는 사람들에 대한 배려이기도 하단다. 혹여 다치기라도 한다면 같이 갔던 일행이 얼마나 힘들 것인가를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

 

 

올 해 눈 때문에 이런 저런 고생들을 했으면서도, 막상 산행에서 제설작업이 너무 잘 되어 있는 길을 보니 조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천천히 산책하듯 50분쯤 걸어 올라가니 갈래 길이 나온다. 오른 쪽으로 오르면 우이령으로 넘어 가는 것이고 왼쪽이 석굴암 암자다. 그곳을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약 20분쯤 오르면 된다. 언덕길이어도 그리 가파르지 않다. 눈도 잘 치워져 있어서 미끄럽지도 않았다. 왜 산길을 이렇게 말끔히 치워 놨을까 했더니 이 암자 때문에 제설작업을 한 것 같다.

 

석굴암은 광릉에 있는 봉선사 말사였으며 이곳에서 단종 비 정순왕후가 귀양 가 있는 단종을 위해 몇 개월간 머물며 기도를 했던 곳이라고 하는데 그 기록이 봉선사에 있다고 한다.

 

다시 갈래 길로 내려와 우이령길로 접어들었다. 이곳부터 눈이었다. 한 줄로 나 있는 눈길을 걸었다. 스패츠를 착용한 사람들은 눈 속으로 발을 푹푹 집어넣으면서 걸어 보기도 했다. 넓고 평평한 고갯길은 비록 온통 눈으로 덮여 있다고 해도 어디 발을 잘못 디뎌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어쩌나 할 걱정은 아예 없어 눈 속을 산책하는 제대로의 맛을 느꼈다.

 

 

방학을 하고 집에 있을 아이들을 데리고 엄마들이 길을 나서도 좋을 것 같다. 아이들에게 위험하지 않으면서 겨울산행을 다녀왔다는 추억을 남겨줄 만한 길이었다. 눈싸움을 하며 공기 좋은 곳에서 아이들과 뒹굴어 보면 어떨까.

 

우리 동네 뒷산도 있는데 할 지 모르겠으나 아무리 뒷산이라도 산으로 연결된 눈 쌓인 길이라면 울퉁불퉁한 바위나 미끄러지기 쉬운 경사진 면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우이령 길에서는 그 점을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다. 도란도란 이야기 하며 걸어도 숨찰 일이 전혀 없는 거의 평지에 가까운 산책길이다.

 

사는 곳이 우이동 쪽에 가깝다면 도선사 입구 옆에 있는 먹거리 마을 쪽으로 오르면 된다. 굳이 재를 다 넘을 필요도 없다. 석굴암까지만 갔다가 다시 돌아와도 전혀 아쉽지 않을 만치 좋은 눈길이 약 2km로 정도 그곳에 집중해 펼쳐져 있었다. 하얀 눈으로 점점이 꽃을 피우고 있는 나무들조차도 추워 보이지 않는 풍경을 하고 사람을 반기는 정겨운 길이다.

 

마차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넘은 고개였듯이, 걷는 내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는 오봉을 벗 삼아 쉬엄쉬엄 재를 넘었다.


태그:#우이령 길, #도봉산, #북한산, #오봉, #북한산국립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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