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 정문앞에서 많은 학원관계자들이 수험생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 정문앞에서 많은 학원관계자들이 수험생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외고 폐지론'으로 불리던 외고 개편안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 교과부는 10일 "외고 등 특목고 입시에 '외고를 폐지하는 대신, 학급 규모와 학급당 학생수를 축소하여 존치하되, 입학 전형에 있어서 필기시험, 영어듣기평가 등을 폐지하고 '자기주도 학습전형'(이름만 바꾼 입학사정관제)을 도입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고등학교 선진화를 위한 입학제도 및 체제개편 방안'을 발표했다.

그런데 교과부의 이 최종안에 대해 외고 폐지 찬반 양측에서 모두 '동의할 수 없다'며 반기를 들고 있고,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미봉책'이라는 비판도 나왔다.

뚜껑 열린 교과부 외고 개편안, 누구도 반기지 않는 이유

이번 개편안에서 외형적으로 먼저 보이는 것은 학급 수와 학급당 학생 수의 축소다. 애초 교과부가 발표한 외고 개편 제1안은 외고 학생수를 과학고 수준으로 하고 이를 충족시키지 못할 경우 선택에 따라 자율형 사립고나 일반고로 전환하라는 내용이었다.

현재 서울 소재 6개 외고의 경우 학급 규모는 대체로 10~12학급이라 학급수는 크게 변동하지 않아도 되지만, 현재 36.9명인 학급당 학생 수를 내실 있는 외국어 교육을 위하여 25명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 참고로 현재 국제고 20.7명, 과학고 16.9명 수준에 비하면 외국어고는 훨씬 큰 특혜를 준 것으로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전국 외국어고등학교 교장협의회'는 이 안을 받을 수가 없다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현재 외고의 학급당 학생 수는 과학고나 국제고에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일반 인문계 학교보다도 많은 수준이지만, 25명 수준으로 축소하라는 것(현재보다 30% 정도를 줄이는 것)은 그들의 재정 여건을 고려하면 사실 상 '외고 폐지'와 다름 없다는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외고의 자기 고백이다. 이는 학문 특성상 개별화 교육이 요구되는 외국어 학습에서 외고가 제대로 된 외국어 교육을 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더불어 자기 돈이 아니라 학생들 돈으로 학교를 운영하면서 우수 학생들을 독점하는 특권까지 누리며 생색을 내왔다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대부분의 외고들이 재정적으로는 부실 영세 사학임을 자기고백한 것이다. 이 정도면 심각한 자기 반성을 할 법도 한데, 외고들은 부끄러운 줄 모른다.

자기 반성 없는 외고 교장들의 '우는 소리'

외국어고의 재정자립도(법인 기여도)가 기껏 0.7%밖에 안 되고,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할 수 있는 최소 자격을 충족하는 학교는 단 하나밖에 없다. 사실상 남의 돈(학생돈 + 국민 세금)으로 생색은 내온 것이다.
 외국어고의 재정자립도(법인 기여도)가 기껏 0.7%밖에 안 되고,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할 수 있는 최소 자격을 충족하는 학교는 단 하나밖에 없다. 사실상 남의 돈(학생돈 + 국민 세금)으로 생색은 내온 것이다.
ⓒ 김행수(원자료 안민석 의원실)

관련사진보기



국회 교육상임위 소속 안민석 민주당 의원실에서 공개한 2009년 국정감사 자료에 의하면, 2008년 전국 사립 외고의 재정자립도(학교 총예산에서 재단 전입금이 차지하는 비율, 일명, 법인 기여도)는 평균 0.7% 밖에 되지 않았다. 또 자율형사립고로 전환할 수 있는 최저 요건인 학생 납입금 대비 법인 전입금 비율 5%를 만족하는 학교는 전국을 통틀어서 한 학교밖에 없었다. 2009년 대한민국 최고라는 외고들의 슬픈 자화상이다.

외고 체제 유지와 학급당 학생수 25명은 비슷한 목적의 특목고인 국제고나 과학고에 비하면 특혜임이 분명한데도, 외고 교장들은 이를 학교 문 닫으라는 것으로 받아들이면서 강력하게 반발하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외고가 학교 문을 닫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 중 하나다. 하나는 재단전입금을 대폭 늘려서 재정 자립을 하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학생 등록금을 올리는 길이다.

외고들은 어느 길을 선택할까? 지금까지 없던 법인 수익이 하루 아침에 땅에서 솟거나 하늘에서 떨어질 가능성은 없으니 재정 자립을 꾀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등록금을 올리는 길인데 현재 재정 상태를 유지하면서 학급당 학생수를 35명에서 25명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등록금을 지금보다 최소 1.4배 더 늘려야 한다.

2008년의 경우 서울외고 850만원, 대일외고 790만원 등 평균 700만원이 넘었다. 3년 학비는 최대 2500만원에 평균 2100만원에 이른다. 학급당 학생수만 25명으로 줄이면 현재보다 1.4배가 늘어 평균 1000만원으로 졸업 때까지 3000만원에 이른다. 귀족학교에서 왕족학교로 승격했다고 할 만하다.
 2008년의 경우 서울외고 850만원, 대일외고 790만원 등 평균 700만원이 넘었다. 3년 학비는 최대 2500만원에 평균 2100만원에 이른다. 학급당 학생수만 25명으로 줄이면 현재보다 1.4배가 늘어 평균 1000만원으로 졸업 때까지 3000만원에 이른다. 귀족학교에서 왕족학교로 승격했다고 할 만하다.
ⓒ 김행수

관련사진보기


서울 소재 외국어고의 1인당 1년 공식적인 학비는 2008년의 경우 서울외고 850만원, 대일외고 790만원 등 2008년 평균 700만원이 넘었다. 3년 학비는 최대 2500만원, 평균 2100만원에 이른다. 현재도 보통 서민 가정에서 감당하기 힘든 액수인데 현재보다 1.4배가 늘어나면 평균 1000만원, 3년간 3000만원에 이른다. 이렇게 되면 지금도 귀족학교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외국어고의 진입 장벽은 더욱 높아져 결국 '왕족학교'가 되는 것이다.

학급당 학생수 25명 수준 축소를 전제로 한 외고 존치 방침에 대해서 외고 측은 생존 자체를 걱정하면서 반대하고, 외고 존치를 반대하는 측에서는 외고가 왕족학교로 업그레이되어 빈익빈부익부를 더욱 부추길 가능성 때문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다.

개편안 불구, 외고의 부익부빈익빈 우려 심화

2010학년도 신입생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에서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모두 대량 미달 사태를 맞았다. 사회적 배려가 아니라 사회적 소외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든데 숫자만 늘리겠단다. 내년에는 더 얼마나 미달될까?
 2010학년도 신입생 사회적 배려대상자 전형에서 자율형사립고와 외국어고 모두 대량 미달 사태를 맞았다. 사회적 배려가 아니라 사회적 소외라는 비판을 면하기 힘든데 숫자만 늘리겠단다. 내년에는 더 얼마나 미달될까?
ⓒ 김행수

관련사진보기


그동안 외고는 사교육을 유발시키는 등 부모의 사회 경제적 배경에 의해서 교육 격차를 확대시키는 주범이라는 비판을 받아 왔다. 그래서 교과부는 외국어고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목소리를 반영하여 사회적 배려 대상자 20% 입학 방침을 발표하였다.

그런데 올해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 결과를 보면 이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이라기보다는 사회적 소외 전형임을 확인할 수 있다. 처음으로 입학생을 받는 자율형사립고는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으로 정원의 20%를 뽑도록 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들에서 미달하는 사태를 초래했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서 13개의 자율형사립고 중 신일고, 경희고, 이화여고, 한가람고, 한대부고 등 5개 학교만 정원을 채웠고 8개 학교가 미달이었다. 평균 경쟁률은 0.79:1에 불과했고, 우신고 0.14:1, 동성고 0.23:1 등 참혹한 수준이었다. 부자동네라는 서초구 세화고, 강남구 중동고, 강동구 배재고가 모두 정원 미달이다. 사회적 배려 대상자가 가장 많은 지역에 소재한 구로구 우신고, 마포구 숭문고, 종로구 동성고 등에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지원이 대거 미달하였다.

올해 사회적 배려 대상 전형을 처음으로 도입한 외고의 접수 결과는 더욱 참담하다. 대원외고와 명덕외고는 지원자가 0명이고, 이화외고 1명, 서울외고는 3명으로 정원 미달이며, 유일하게 대일외고만 7명이 지원하여 정원을 채웠다. 공개하지 않은 한영외고를 제외하면 외고의 사회적배려대상자 전형 경쟁률은 0.44:1이다.

정부는 현재 기초생활수급자 등 사회적배려 대상자 지원풀이 전체의 30% 정도로 파악하고 있는데, 이들 중 절반도 지원하지 않았다는 의미다. 지원만 하면 뽑아주고, 등록금도 모두 지원해 준다고 하는데 왜 그들은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에 지원하지 않았을까?

공식적인 등록금은 정부에서 지원해 준다고 하더라도 이 외에 학교에 내어야 하는 추가 부담을 감당할 수 없어서 지원을 포기한 이들도 있겠지만 더 큰 이유는 돈 내고 학교 다니는 부자들 사이에서 돈 안 내고 학교 다니는 가난한 학생들이 느낄 수밖에 없는 소외감과 상대적 박탈감일 것이다. 이를 해결하지 않는 한 사회적 배려 대상자 전형의 대거 미달 사태는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번 개편안에서 정부는 외고에도 사회적 배려 대상자를 20%로 늘리는 것을 대책으로 내놓았다. 전체의 2%밖에 안 되는 5명도 못 채우는 외고들이 10배나 되는 20%를 채운다는 것은 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래서 외고 폐지에 찬성하는 측이든, 반대하는 측에서 모두 이를 탁상공론이라고 비판하는 것이다.

우수학생 싹쓸이 한 외고, 수는 성적은 '별로'

입학 당시에는 대부분 최상위 1-2등급에 속하던 외고학생들 중 4명 중 1명은 수능에서 4등급 이하를 받았다. 외고 효과가 학교 효과가 아니라 학생 선점에 의한 선발 효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입학 당시에는 대부분 최상위 1-2등급에 속하던 외고학생들 중 4명 중 1명은 수능에서 4등급 이하를 받았다. 외고 효과가 학교 효과가 아니라 학생 선점에 의한 선발 효과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김행수(교과부의 수능 결과 발표 편집)

관련사진보기


'외고 폐지론' 또는 '외고 개편론'의 핵심은 학생선발권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성적 우수 학생 선점이다. 이를 통하여 중학교 성적 우수 학생들을 싹쓸이하여 이른 바 SKY 입학뿐 아니라 사법고시 최다 합격, 외무고시 최다 합격, 그리고 판사, 검사 수 최대 등 각종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의사 고시 최대 합격이 나오지 않는 것이 다행이라고 해야 할 판이다.

외국어고 입학생들은 중학교 내신 성적을 기준으로 할 때 거의 상위 1등급이며, 일부 2, 3등급이 존재한다. 자립형사립고가 없었던 서울의 경우에는 과학고와 더불어 상위 1~2등급을 거의 싹쓸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렇게 입학생부터 특권적 지위를 누리는 것이 SKY 입학, 사법고시 합격자 수로 직결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지난 8일 교과부가 발표한 수능성적 분석 결과에 재미있는 내용이 있다. 수능 성적, 특히 수능성적 상위권을 결정하는 요인으론 학교 유형은 결정적이지 않다는 것. 지역 유형이 가장 큰 변수인 것으로 나타났다. 즉 상위권의 경우 평준화, 비평준화 여부와 별로 상관없고 일반고냐 특목고냐도 수능 성적에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 결과를 보면 외고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많아 보인다.

교과부가 발표한 2008년과 2009년 수능등급 현황에 따르면, 외고 졸업생 중에서 (전체의 상위 11% 이내에 속하는) 1~2등급 비율은 언어 50%, 수리 54%, 외국어 64%로 전체 평균이 56%였다. 1~3등급(전체의 상위 23% 이내에 속함)에 속하는 비율은 언어 70%, 수리 64%, 외국어 82%으로 전체 평균이 76%였다. 이 수치만 봐도 결코 평균보다 높다고 자랑할 일이 아님은 분명하다.

이는 바꾸어 말하면 4등급 이하 즉, 상위 23% 이하의 성적을 받은 학생들이 언어 30%, 수리 36%, 외국어 15%로 전체 평균이 25%나 된다는 의미다. 입학할 때는 대부분 최상위 1~2 등급에 속하던 학생들이었던 '외고 학생'들이 졸업할 때쯤엔 4명 중 1명이 4등급 이하를 받고 있다는 의미다. 내신 성적이 아니라 수능 성적을 이렇게 받고 있었다.

즉, 외고 학생들은 학생들이 외고에 입학해서 공부를 잘하게 된 것이 아니라 원래 공부 잘 하던 학생들이 모여 있어서 명문대에 많이 가고, 사법고시에도 많이 합격하고 있다는 것이 수치로 증명된 것이다. 나아가, 원래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 중 많은 이들이 오히려 외고에 입학해서 성적이 하락한 경우도 상당하다는 의미다.

그럼에도 외고에 여전히 주어진 '우수학생 선점'

여기서 의미있게 보아야 하는 것이 바로 선발 효과, 즉 학생 선점 효과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외고는 필기시험, 영어 듣기시험, 토익 토플 등 외국어 시험, 면접 구술 등을 통하여 학업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쏙쏙 뽑아 갔다. 이를 위해서 당연히 초등학교 때부터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들이 많아 사교육의 진원지로 비판 받았다.

그래서 이번에 외고에서는 이런 비판을 의식하여 영어듣기를 없애고, 필기 시험을 없애고 내신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등의 자구책을 내놓았다. 이번 교과부의 외고 개편안에서는 여기에 '자기주도학습 전형'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다. 자기주도학습 전형이라는 미사여구를 동원하기는 했지만 사실상 그 내용은 입학사정관 제도다.

현재 대학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가 빠른 속도로 도입되고 있다. 교과부와 청와대는 이 입학사정관제가 우리 교육의 구세주가 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이 제도는 결코 전가의 보도가 아니다. 아직 대학에서도 입증된 바가 없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인데 고등학교까지 성급하게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교과부나 청와대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좋은 제도라면 "왜 이 입학사정관제도를 실시하는 나라가 전세계에 유일하게 미국밖에 없는가?"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을 내놓아야 한다. 

외고에서 학생을 듣기평가를 통하여 뽑든, 필기시험으로 뽑든, 면접 구술로 뽑든, 아니면 내신으로 뽑든, 아니면 입학 사정관제로 뽑든 학생 선점 특권을 개혁하지 않으면 외고 개편의 의미가 사라진다. 학생 선점, 또는 사교육 효과는 소위 말하는 풍선 효과다. 한쪽을 누르면 누른 만큼 다른 쪽이 튀어 나온다는 뜻이다.

듣기평가로 뽑는다고 하면 듣기 과외가 유행하고, 내신으로 뽑는다고 하면 내신 과외가 성행하고, 구술면접으로 뽑는다고 하면 구술면접 학원이 판을 치고, 필기 시험으로 뽑는다고 하면 그에 맞춘 학원이 물 만난 고기가 되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입학사정관제로 학생을 뽑겠다는 것 역시 이에 대비한 사교육을 불러올 것이 뻔히 예상된다.

즉, 어떤 방법이든 성적이 우수한 학생을 외고에서 가려서 뽑을 수 있다는 학생 선점 특권을 차단하는 개혁안이 아니면 효과를 발생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이런 면에서 이번 외고 개편안에서 도입한 자기주도학습 전형은 말만 새로운 것이지 전혀 새로울 것이 없으며, 사교육을 잠재우고 우리 공교육을 구할 '백마 탄 기사'가 될 수도 없어 보인다.

미봉책 불과한 교과부 외고 개편안은 '무효'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 정문앞에서 수험생들과 함께 온 학원관계자가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하고 있다.
 서울지역 외고 입시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광진구 중곡4동 대원외고 정문앞에서 수험생들과 함께 온 학원관계자가 일일이 악수를 하며 격려하고 있다.
ⓒ 권우성

관련사진보기


이번 외고 개편안에는 분명히 이전보다 진일보한 면이 있다. 학교별 지필고사나 교과지식을 묻는 형태의 구술면접, 적성검사 등을 폐지하고 나아가 토플 등 각종 영어 인증시험과 경시대회 수상실적 등은 전형요소에서 아예 삭제하도록 한 것 등은 이전에 비하면 굉장히 의미 있는 조치다. 그리고 영어 듣기평가가 폐지되며, 내신은 중학교 2~3학년의 영어성적만 반영하는 점 등도 역시 이전보다 개선된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교과부의 외고개편안에 대해서 외고 폐지를 찬성하는 쪽에서도, 외고 폐지를 극구 반대하는 쪽에서도 선뜻 동의할 수 없는 것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외고 존치라는 큰 틀은 유지되었지만 현재의 재정 여건상 학급당 학생수 축소는 사실상 외고 폐지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항변과 이름만 바뀐 자기주도학습 전형으로 학생 선점 특권을 인정하는 한 외고는 여전히 그 특권적 지위를 유지할 것이며, 현재의 귀족학교에서 왕족학교로 레벨-업되어 우리 교육의 질곡으로 남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그것이다.

1984년 대원외고와 대일외고가 처음으로 각종학교 형태로 개교하면서 출발한 외고 논쟁이 새로운 계기를 맞았다. 80년대에는 생존이 최우선 과제였고, 92년 특목고에 편입되어, 2001년 특목고 지정·고시권이 시도교육감에게 이양되면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외고는 이후 '외고 열풍'을 불러올 정도로 승승장구했다. 현재 전국적으로 30개의 외고가 설립되었고, 강원도와 광주 등에서도 외고 설립을 예정하고 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외고가 참여정부에서 비판의 중심으로 등장하더니 2009년에는 폐지론으로 이어져 우리 교육계 최대의 화두가 되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촉발된 외고에 대한 비판은 외고 폐지론으로 이어졌고 외고들은 마녀사냥이라며 집단행동도 불사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외고 논쟁에 종지부를 찍겠다면서 내놓은 교과부의 이번 개편안은 논란을 잠재우기는커녕 새로운 논쟁을 격화시킬 것으로 보인다. 외고 개혁을 위해서 가장 먼저 풀어야 하는 것은 어문계열 진학률이 25%밖에 안 되는 것에서 보듯, 과연 외고가 설립 목적에 맞도록, 즉 '어학영재 양성'을 위해 기능해 왔는가다.

그리고 '외고'란 문제 풀이는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인 '학생 선점이라는 특권을 계속 인정하느냐?', '외국어고가 존재 목적을 위해 기능하고 있는가?'를 비껴간, 어느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미봉책에 불과한 이번 외고 개편안은 무효다. 이 두 가지 핵심을 중심으로 새로운 외고 논쟁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태그:#외고 폐지, #외국어고, #학생 선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