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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콘에어> <아마겟돈> <아일랜드>에서 감초 연기를 하던 스테브 부세미를 아는가? 짙은 쌍꺼풀과 사색에 잠긴 듯 묘한 눈빛, 시원한 웃음을 쏙 빼닮은 외국인 영어 교수가 있다. 캐나다에서 온 그의 이름은 Claude Drolet, 올해로 한국에 온 지 벌써 13년째다.

 

그는 캐나다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호주에서 교육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사실 현재 한국에는 그와 같이 영어를 가르치는 외국인 강사의 숫자는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13년 전 한국에 외국인이 희소할 시절부터 강사 활동을 시작한 그는 다른 외국인들보다 한국에 대한 애착과 이해가 남다르다.

 

그는 현재 인천대학교에서 7년 째 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3년 전, 한국인 토익 영어 강사 박모씨와 결혼을 하여 지난해에는 건강한 아들까지 얻었다. 수업시간에 핸드폰에 담긴 자신의 아들 사진을 보여주며 입가에 웃음이 떠나질 않는 그를 보면, 국적을 막론한 세상 모든 아버지의 자식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오후 일찍 예고 없이 그의 사무실 문을 노크했는데, 안에서 "Come in"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 13년 전 한국에 처음으로 오계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그 당시에 캐나다에서 저는 한국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사람들이 친절하고, 음식이 맛있고 등등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이유는 아무래도 제가 교육학을 전공하고 영어를 가르치려고 마음먹었을 때,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한 아시아의 나라가 한국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시, 일본에는 이미 많은 외국인 영어 강사들이 진출한 상황이었고, 중국은 외국인 영어 교육 시스템이 전혀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고요. 당시 한국에서는 영어에 대한 붐이 막 일기 시작하였고, 또 캐나다 달러에 대해 한국 돈의 가치도 꽤 높아서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돈을 벌기에도 괜찮은 조건이었어요. 그야말로 새로운 시장이었지요."

 

-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어땠나요? 

"듣기 좋게 말씀드려야 하나요, 아니면 솔직하게 말씀드려야 할까요? 하하, 솔직히 한국에 대한 첫인상은 거리가 많이 더럽다는 것이었어요. 김포공항에서 내려서 인천 계양구로 버스를 타고 오는데, 길에 쓰레기가 널브러져서 참 보기가 그랬어요. 뭐랄까, 조금 실망이었지요. 안타까운 이야기지만 13년이 지난 지금에도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의 길거리가 지저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당시 저희 집 근처에 계양산이 있었어요. 지금도 참 아름다운 산이죠. 가끔 등산을 즐겼는데 하루는 산에 올라가다가 누가 반 쯤 먹다 버린 컵라면을 보았어요. 그리고 그 주변에 아름다운 나비가 몇 마리 평화롭게 날아다니더군요. 그 나비들을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니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딱 그와 어울리는 거예요. 한국 사람들은 자연을 좋아하고, 자연친화적이지만 쓰레기는 아무 생각 없이 버리거든요. 반대적인 두 개념이 안타깝게 섞여 있는 모습이라고 할까요?" 

 

- 한국 사람들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요?

"캐나다에서 제가 듣었던 대로 친절했어요."

 

하지만 그는 다시 강조하며, kind 하지만 friendly한 개념은 아니었다고 설명하며 잠시 생각을 하더니 'isolated, 고립된' 이라는 표현을 썼다.

 

"아무래도 외국인이 많이 없던 시절이어서인지 저에게 보내는 눈빛이 '마이클 잭슨' 아니면 '괴물' 정도의 두 가지 부류였던 것 같아요. 신기했던 거지요. 하지만 당시 한국에 외국인들이 많이 없고 그런 인상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왔기 때문에 기분이 불편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물론 13년이 지난 지금은 한국에 외국인이 그야말로 포화상태죠."  

 

- 아직도 신혼처럼 늘 행복해 보이는데, 한국인 부인과는 어떻게 만나게 되었나요?

"사람들한테 말하면 영화같다고도 하죠. 인천대학교 영어 강의를 맡기 시작한 지 얼마 안되었을 당시, 학교로 운전을 하고 오다가 가벼운 접촉사고가 났어요. 뒤에서 누가 제 차를 박은 것이었는데, 그때 그 운전사가 지금 제 와이프예요. 사고 순간 제게 미안하다고 하고 명함을 주고 받았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같은 인천대학교에서 일하고 있던 토익 강사였지 뭐예요. 그 이후, 몇 번 더 만나면서 서로에게 호감을 갖기 시작하고 연애 후 결혼에 성공했어요."

 

- 수업을 하면서 한국 학생들에 대한 전형적인 특징 같은 걸 발견하나요?

"13년을 이들과 함께 하다 보니, 이젠 눈빛만 봐도 척척 알죠. 한국 학생들이 앞에 나서기를 부끄러워하고 소극적인 경향이 있다고들 하지만 학생들과 편안한 분위기로 자연스럽게 대화를 이끌어 나가면 어느 순간 또 엄청 적극적이기도 해요. 심지어 캐나다에서 제가 20대 때 기억하는 서양 아이들 보다 더 열성적이고 자신감에 넘칠 때가 많죠.

 

중요한 건 학생들 개개인이 언제 어떤 방식으로 자신들을 마음을 터놓고 숨겨진 그 적극성을 표출할지를 잘 파악하고 이끌어내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저는 예를 들어 프리젠테이션을 하며 긴장해서 떠는 친구들에게 교과서적인 충고와 격려보다는 그 친구가 그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긴장을 자연스럽게 극복하도록 농담을 하고 스스로 그걸 깨도록 가벼운 대화를 계속 걸죠."

 

- 평소에 인천대 강의 말고 또 강의를 맡은 곳이 있나요? 강의를 마치고 주로 하는 일은 무엇이죠?

"인천 서구에 인재개발원에서 가끔 강의를 맡기도 해요. 술은 마셔도 맥주 한 두병 정도이고 담배는 피우질 않아요. 일 마치면 주로 집에 가서 요리를 해요. 한국요리는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멕시코, 이탈리아, 프랑스요리는 예전에 캐나다에서 주방장 경험도 있었던 만큼 전문가 못지않은 실력이라고 자부해요. 요리를 하면서 행복을 느끼고요."

 

- 한국에서 앞으로 계속 살 계획인가요?

"아직 확실히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중고등학교에 갈 때쯤엔 북아메리카로 가서 살고 싶어요. 한국과 그쪽의 교육의 우열을 비교할 순 없지만, 제 생각에 한국은 어린 학생들에게 지나친 교육열로 스트레스를 주고 더 많은 것을 경험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게 만드는 것 같아요. 저나 부인이 일을 그만둘 때쯤, 더 나중 미래에는 다시 한국에 돌아올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부인과 함께 차차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 캐나다와 비교해서 한국이 더 나은 점과 안 좋은 점, 지금 떠오르는 한 가지가 있다면요?

"먼저, 좋은 점은 한국은 첨단 기술이 발달했다는 것이에요. 컴퓨터, 핸드폰, 인터넷 속도... 제가 간혹 캐나다를 방문하면 마치 몇 년은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간 기분이니 들 정도니 말이죠. 그런 면에서 한국은 첨단 기술의 선두주자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해요.

 

안 좋은 점 하나를 들라면 교통문제가 아닐까요. 인구밀도의 차이가 주된 이유겠지요. 캐나다는 공간이 넓고 교통이 그렇게 복잡하지 않지만, 한국에서는 매일 아침 움직이지 않는 도로에서 시간을 버리고, 또 난폭하게 운전해야 하는 게 고통이죠. 이제는 적응할 때도 되었지만, 아직도 운전대만 잡으면 긴장의 연속입니다."

 

- 마지막으로 뉴스를 보면 외국 영어 강사들이 한국 여학생들을 영어를 미끼로 접근해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종종 있죠.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문화 이해의 부족인 것 같습니다. 그런 외국인들은 한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일부 한국인들을 영어로 이용하려는 것인데 매우 잘못된 것이죠. 마찬가지로 한국인들도 영어권 국가의 외국인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할 것 같아요. 서로 그 나라의 문화가 다른 점을 이해하고 서로의 문화에 반하거나 도덕적으로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아야 된다는 인식을 바로 잡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의 사무실은 4층에 위치해 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엘리베이터를 이용하지 않는다. 이유를 물으니 전기요금을 아끼기 위함이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데 많은 한국인들이 에너지 절약을 하는 데 무감각하다며 꼬집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수업 시간에 가장 마지막에 강의실 소등을 하고 문을 나서는 것 역시 매번 그였다.

 

그의 알뜰함은 부모님에게서 물려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집에는 아버지가 젊은 시절 구입한 책상과 식탁 등 40년 이상 된 가구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고 한다. 핸드폰이나 컴퓨터 등의 신제품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와도 그에겐 관심 밖이다. 쓸 수 있는 물건을 놔두고 유행을 좇는 것만큼 불필요한 낭비는 세상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절약 정신 뿐 아니라, 그는 공중도덕에도 철두철미하다. 오래 전 서울시에 공중 쓰레기통이 없어진 이후 그는 매우 불편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스크림 막대 하나라도 절대 그냥 버리는 법이 없다. 예전에는 집밖을 나설 때 늘 비닐봉투 한 장을 휴대하며 자기가 배출한 쓰레기는 모두 모아 집에 돌아오곤 했다고 한다.

 

학생들 사이에 유명한 그의 특징은 수업과 평가를 하는데 공과 사가 명확하다는 것이다. 그의 수업을 듣는 대부분 학생들은 재미있고 친절한 그를 삼촌같이 친구같이 좋아한다. 하지만 출석과 시험 등 학교 관련 일에서는 누구보다 엄격한 잣대로 냉철하게 모든 학생들을 평가한다. 한 번은 자신과 개인적으로 아주 친한 학생이 있었는데, 시험을 잘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출석 일수에 미달되어 가차 없이 낙제 학점을 주었다고 한다.

 

또 아무리 반에서 가장 좋은 시험 성적을 냈더라도 출석, 수업 태도, 숙제 등 학기 초에 자신이 정해 놓은 총괄적인 기대치 이상의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 학생은 A+가 아닌 A0의 성적을 받게 된다. 그는 학점을 위한 교육에 반대한다고 했다. 배워서 터득하는 것을 근본적인 목적에 두고 학점이 솔직한 그 평가의 잣대 역할을 했을 때, 제대로 된 학점으로서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그의 사무실에는 최소 10명 이상의 학생들이 수업과 관련되지 않은 이유로 그와 대화를 즐기러 찾아온다. 물론 영어회화의 일환으로 그를 찾는 이유가 많겠지만 확실한 건 그가 한국 학생들에 대한 세심한 이해와 애정을 토대로 학생들을 대하기 때문에 그들이 지속적으로 그를 편하게 방문한다는 것이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고, 방을 나서기 전 조그만 박스하나를 열며 나에게 사탕 하나를 짚어가라고 했다. 13년 전에는 한국의 '정'이라는 것을 몰랐을 파란 눈 백인 선생이 지금은 얼마나 한국에서 '정'을 느끼고 또 베풀며 살아가는지 그 따뜻함이 뚜렷이 전해왔다. 


태그:#외래 교수, #외국 교수, #인천대, #영어회화, #클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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