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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아산시 유곡리에 정착한 후배 사라·태영 부부를 방문했다. 이쯤이면 고구마를 캤던 것 같았는데, 고구마 순을 다 따지 못해서 수확을 미루기로 했다고 한다. 그 대신 땅콩을 캐기로 했는데 이것도 며칠 전 심방대신 가을 걷이 도우시러 오신 목사님과 맘씨 좋은 어느 분이 도와 주셔서 수확을 했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첫날은 다랑이 논의 물을 빼주고 저녁을 일찍 시작하여 잠에 들었더니 다음날 일찍 눈이 떠졌다. 조용한 농가의 아침, 자리에 누워서 뭐할까 궁리하다가 문득 가까운 봉곡사(鳳谷寺) 소나무 숲길을 이른 아침에 걸으면 좋다는 인터넷 기사가  생각났다. 아내를 깨워서 같이 가자 하였더니 선뜻 따라 나선다.

내가 봉곡사를 알게 된 건, 최인호의 소설 '길아닌 길'에서이다. 그 책에서 '경허'스님의 제자인 '만공'스님이 젊은 시절 봉곡사에서 득도하여 게도송을 읇었다는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었다. 내가 '길아닌 길'을 읽고 소설 속의 절을 직접 찾아가본 것은 청양 칠갑산 장곡사가 유일하였다. 장곡사 설법당에서 '경허'스님의 흔적을 찾던 기억이 가뭇가뭇하다.

그런데 재작년인가 태영이네가  빌려 짓던 수수밭이 있어서 그 밭머리에 몇번 간 적이 있었다. 그때 길 입구에 '봉곡사'라는 절 표지를 발견하고, '길아닌 길'의 감동이 떠올라 나름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태영이네가 사는 송악면이 부모님이 사시는 청양으로 넘어 가는 길에 있어서 잠간 스쳐갈 뿐, 매번  절집에 갈 여유가 안되어 방문을 미루었다. 드디어 10월 11일 일요일 아침, 수년의 염원과 탐색이 이슬 맺히듯 때를 만나 길을 나서게 되었다. 

봉수산 봉곡사는 천년의 고찰이라고 이를 만큼 오래된 사찰이지만, 일주문이 없는 작은 절이다. 그러나 그 일주문과 인왕 및 사천왕을 대신하는 것이 낙낙장송 소나무들이다. 그래서인지 봉곡사 소나무들에게서는 어느 큰 절집 못지 않은 영기가 느껴지고 나무 하나 하나가 서로 다른 모습으로 참배객들을 맞는 것 같다.

길을 걷다보니 나무들마다 아래 쪽에 한결 같이 V자형으로 무늬가 새겨져 있고 그 위에 시멘트가 발라져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보면 이 길이 김박사 님의 로봇태권브이 기지로 가는 길인가 싶다. 듣기로는 일제 강점기 말에 연료로 쓰기 위해 송진을 채취하던 흔적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이들은 단지 아름다운 소나무들이 아니라 역사의 상흔을 안은 채 꿋꿋하게 서 있는 지킴이들이다.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살짝 안개가 낀 봉곡사 소나무 숲길
▲ 봉곡사 소나무 숲길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 살짝 안개가 낀 봉곡사 소나무 숲길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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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가 산길을 오른 것은 아침 일곱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인데 햇살이 숲안쪽으로 살짝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숲길 초입에 사진 찍기 좋겠다고 생각되는 곳에 자동차 한대가 서 있었다. 홀로 삼각대를 세우시는게 솔나무 길의 아침 이미지를 얻으시려는 모양이다.

찰나의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새벽길을 달려 오신 열정이 보기 좋았다. 급한 마음으로 나선 산책길이라 사진기를 가져 오지 못한 탓에 부러운 마음으로 촬영준비를 하시는 분을 바라 보다가, 내가 좋다고 생각하는 곳에 그 분이 서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뿌듯하여 다음을 기약하였다. 인터넷에서 얻은 정보로는 햇살이 스며들기 전 살짝 안개가 낀 솔나무길이 제일 좋다고 하였다. 그런 이미지를 얻기에는 좀 늦지 않은가 싶기도 하지만, 햇살이 살짝 스며든 아침 길도 정갈하고 나름의 기운이 있다고 여겨진다.

흠뜻 흠뜻 둘러보며 올라가니 금세 절집 입구에 세워져 있는 공덕비 앞에 다다랐다. 어떤 스님의 공적을 적은 것인가 싶어 보았더니, 봉곡사 전화선로를 개설해 주신 어느 보살님을 기리는 것이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길이 정말 짦게 느껴질 만큼, 금세 대웅전이 보이니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봉곡사 솔나무 숲길은 아름답기로 소문 난 월정사의 천년 숲길이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소개된 부안 내소사 전나무 숲길만큼 웅장하지는 않아도 정감있고, 자연미가 느껴진다.

이리 저리 마음가는대로 뻗은 소나무 가지들을 바라보면 위로가 되기도 하고 숱한 세월을 넘겨온 시간의 공력이 저절로 느껴진다. 유일한 흠이 짧다는 것이다. 듣기로는 700미터라 하는데, 초입의 집들과 주차장을 허물고 숲길을 더 이어 보면 어떨가 싶기도 하다.

절입구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는 모습
▲ 봉곡사 절입구에서 대웅전을 바라보는 모습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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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마른 날이 계속된 탓인지  절 입구에서는 물흐르는 소리가 멈추었다. 계곡 한측면에 몇단으로 쌓은 축대 위에 아담한 절집이 올려져 있었다. 봉곡사는 본래 석암사(石庵寺)라 했다가 조선 말기에 지금의 봉곡사로 개명했다 한다. 근래에 쌓았다고 하는 축대에 이끼가 끼니 석암사라고 하는 옛이름과 나름 잘 어울린다.

대웅전 앞뜰에 잔디가 심어 있어서, 맨땅의 양산 통도사를 걷던 것과 느낌이 다르다. 근래에 심은 것이겠지만 밉지 않다. 보아 하니 축대 위에도 잔디가 심어 있고, 안쪽 요사채도 새로 지은 것 같다. 마당 곳곳에 화분과 꽃들이 가득한 것이 살뜰하고 정감있는 절집이다. 서산 개심사도 그렇고, 청양 장곡사도 그렇고, 또 다른 충청도의 절집 아산 봉곡사에서 우뚝 솟은 남성미보다는 여성스럽고 살가운 맛이 느껴지는 데 거부감이 젼혀 없다.

위 사진 속에 사람들이 서있는 그 건물이 대웅전이다. 본디 이층으로 나뉜 집이어서 법당안을 들여다 보면 생각보다 좁다. 이른 아침의 정적 속에 열려진 대웅전을 살피니 학사모를 쓴 젊은 분의 영정이 하나 걸려 있다. 고통없는 불국정토에서 다시 태어나시라!

대웅전 오른 쪽에는 옛적에 고방(庫房)으로 쓰였다는 'ㅁ'자형 건물이 있다. 그 끝 자락에 커피 자판기가 있어 이채롭다. 안어울린다고 생각하면서도 커피를 마실 수 있었으면 했는데 전원이 연결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까치가 유난히 바쁜 계절, 요사채 아래쪽 길에 주황색 감들이 주렁주렁 무척 많이 열렸다. 갑자기 어느 보살님의 고함소리가 나서 쳐다보니 감나무에 사람이 올라가 있고 보살님이 급히 달려 가신다. 그 아래로 따스한 가을 햇살이 꽃혀 있고 코스모스를 비롯한 여러 꽃들이 만발하다. 불가에서 말하는 서천(西天)의 안양국(安養國)이 여기를 말한 것이 아닐까 싶다.


태그:#봉곡사, #길없는 길, #소나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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