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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 : 어느 한 시기에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쓰이는 말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의 정의다. "유행어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민감하게 반영하므로 그 시대의 모습을 이해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는 설명도 붙어있다.

오늘날 유행어를 만들어내고 전파하는 것은 단연 인터넷과 매스미디어다. 이들은 '대중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창'으로서 발군의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다. 어쩜 그렇게들 대중들의 구미에 착착 감길 '아름다운' 언어들을 잘 찾아내는지.

최근 인터넷과 미디어가 '선택과 집중'한 유행어는 단연 '꿀벅지'였다. 선정적인 게시판에서 어슬렁거리던 기자가 '조회 수 좀 높여보자'며 들고 나왔을법한 섹시한 신조어다. 기자의 판단은 정확했다. 덕분에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끈적끈적한 이 유행어에 끊임없이 노출되게 되었다.

여성 아이돌 가수의 '꿀벅지' 논란을 다룬 MBC 아침프로 <생방송 오늘>
 여성 아이돌 가수의 '꿀벅지' 논란을 다룬 MBC 아침프로 <생방송 오늘>
ⓒ MBC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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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벅지, 교양 있는 우리들의 가벼운 유행어

그러나 전통적으로 인류사에서 발현된 새로운 시도와 유행은 기존의 패러다임을 거스른다는 이유로 강한 반발을 사곤 한다. '꿀벅지'라는 새로운 유행어도 마찬가지다. "이 공감각적 신조어는 들으면 들을수록 성희롱 같다"고 불편해 하는 사람들이 나타난 것이다.

한 사춘기 여고생이 여성부에 "언론에서만큼은 '꿀벅지'라는 말을 삼가게 해 달라"는 청원을 냈다. 여성부가 어디인가? 진보적 계몽에 앞장서며 교양과 학식을 두루 갖춘 보통 이상의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이 아니던가! 그들은 깜짝 놀랐을 게다. '꿀벅지'란 단순한 유행어에 누군가 성적 수치심을 느낄 수도 있다는 것에 말이다.

언론은 다시 '꿀벅지 문제'를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어디까지나 '논란'으로. 그리고 논란의 1차 판정은 여성부가 해주었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라며 고상한 대다수의 취향에 강한 신뢰와 지지를 보내준 것이다. 결과적으로 '꿀벅지는 가벼운 유행어다'라는 주장의 1승.

물론이다. 우리와 같이 보통 교양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저 유행에 뒤처지고 싶지 않을 뿐이다.

'꿀벅지'는 감상하고 이해하고 탐구할 대상일 뿐이다. 그렇지 않은가? 설마 교양 있는 우리가 모두 변태도 아니고 말이다. 여자아이돌의 허벅지를 보며 '꿀 발라서 핥고 싶다' 따위의 생각을 하며 '꿀벅지'를 말하는 사람이 몇이나 되느냔 말이다. 자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자. 결코, 우리는 어린 아이돌 소녀들의 허벅지를 보며 입맛을 다시거나, 야릇한 상상을 하지 않았다고 말이다.

여자 아이돌 허벅지에 입맛 다시지 않은 거 맞잖아

"꿀벅지란 말이 처음 어디서 나온 말인지 알아요?"

후배는 '꿀벅지'의 어원을 알고 있냐며 입을 열었다. 벌건 대낮에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하려는 듯 그의 목소리는 작고 또 낮았다.

"꼴리는 허벅지라는 말에서 시작된 거예요. 꿀-, 찰- 에 여성의 신체를 붙여서 여자 몸 품평하는 말들, 알잖아요. 꿀은 애액을 비유하는 거라고. 처음 그 말을 쓰기 시작한 사람들이 므흣한 의도로 쓰기 시작한 표현인데, 어떻게 성희롱이 안 될 수가 있어요?"

그러나 '꿀벅지'가 처음에 어디에서 어떻게 쓰였는지가 뭐 그리 중요하겠나. 여체에 대한 새로운 감탄사일 뿐이라고 하지 않는가. 어차피 '꿀벅지'는 연예인들의 전략 상품이다. 대중은 예술 작품을 보며 감탄을 하듯 '아, 비린내 나게 깡마르지도 않고, 미련하게 살찌지도 않고 운동 열심히 한 예쁜 허벅지로구나!'하고 그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찬사를 보냈을 뿐이다.

자본주의 현대 사회에서 유행이라는 것이 저절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는가? '꿀벅지'라는 말이 없었으면 신인 여자연예인들이 그렇게까지 주목받을 수 있을까? 기획사와 매스컴에서는 언제나 이목을 끌 유행어가 필요하고, 연예인들은 스스로 유행이 되기를 바라고 대중들은 쉽게 즐기고 공유할 유행이 필요하다.

설마 조카가 '이모, 꿀벅지인데?' 라고 하겠어?

사람들은 곧 무뎌질 것이다. 처음에는 조금 자극적이고 거부감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창조와 전파에 전지전능한 매스컴이 있다. 낯선 유행은 반복적으로 노출되면 익숙하고 친근해지기 마련이다.

심각한 것을 싫어하는 대중들은 쉽고 원초적인 유행을 반기며 소비할 것이다. '꿀벅지'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여자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쓰이겠지만, '칭찬이다, 감탄사다'라는 말로 얼버무리며 인터넷과 방송 전파를 타고 널리널리 쓰이게 될 테니까 일상생활에서도 너도나도 쓰게 되겠지. 어쩌면 머지않아 국어사전에도 신조어로 등재될지 모른다. 

자,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어디까지나 가벼운 유행어이지 않은가. 추석 명절 때 찾아간 고향에서 같이 송편을 빚던 유치원생 조카가 내 허벅지를 지긋이 응시하며 설마 이런 멘트를 날리겠나.

"엇, 우리 이모 꿀벅지인데!"


태그:#꿀벅지, #유행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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