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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 하천을 따라 세워져 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은 아무래도 흉물스럽다. 교통편의를 위한 인간들의 이기심이 만들어낸 흉측한 괴물이다. 인류는 건설이라는 그럴듯한 구실로 끊임없이 자연을 파괴하지만 자연은 묵묵히 그 파괴된 자연을 복구하려고 애쓴다.

 

인류 역사는 어쩌면 자연 파괴의 역사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장 대표적인 산물이 도시화다, 아름다운 자연이 숨 쉬고 있던 대지를 까뭉개 버리고 거대한 콘크리트 구조물들을 빽빽하게 세워놓은 것이 도시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도시 속에서도 자연은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연회귀를 꿈꾼다. 서울 청계천 하류, 내부순환고가도로가 지나는 개울가 둔치는 줄지어 서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들이 위용을 자랑한다. 머리에 넓고 무거운 도로 상판을 이고 있는 기둥주변은 비가 내려도 빗줄기가 미치지 못한다.

 

햇볕도 들지 않는 메마른 죽음의 땅, 그런데 그 죽음의 땅에서도 식물들이 자라고 있었다. 벌써 이삭이 나와 하얀 꽃을 피운 억새와 잡초들, 그러나 그것들 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황량한 땅에 뿌리를 내린 담쟁이덩굴들이 콘크리트 기둥을 타고 오르는 모습이었다.

 

학교 담벼락에 가득 차 기어오른

우리의 서럽고 억센 팔들

 

마음 하나로는 살기 힘든 세상에

무엇으로 텅 빈 마음

저들처럼 가득히 채워 주랴

 

봄이 와도 사람들은 성난 파도

파도가 되어 일렁이고

아직도 최루탄가스가 우리의 봄빛을

앗아가는구나.

 

우리는 버릇처럼 눈물을 흘리지만

눈물이란 사랑보다 뜨거운 것

눈물만큼 뜨겁고 순수한 땅이 있다면

작은 소망의 집이라도 지을까 보다

 

-정의홍 시인의 시 '담쟁이 넝쿨' 모두

 

정의홍 시인의 시처럼 학교 담벼락이 아닌, 고가도로 교각을 타고 오른 담쟁이 덩굴들이지만 그 억센 생명력이 한편 장하고 한편 서러운 모습이다. 햇볕도 찾아들지 못하는 메마른 땅에 뿌리를 내린 담쟁이덩굴들이 죽음 같은 콘크리트 기둥을 어찌 저리 높이 올라갈 수 있단 말인가.

 

정말 마음 하나로는 살기 힘든 세상에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높이 밀어 올리는 힘이 되어주고 있을까? 죽음처럼 황량하게 서있는 도시 하천 둔치 콘크리트 기둥들을 끌어안고 오르는 저들의 텅 빈 마음을 무엇으로 채워줄 수 있을까?

 

생명력이었다. 망가져가는 자연을 복구하려는 눈물겨운 열망이 뿜어내는 강력한 생명력, 그 생명의 힘이 죽음처럼 버티고 서있는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에 생명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푸른 물감처럼 물들이는 생명으로, 추상화 같은 멋진 그림으로.

 

담쟁이들의 함성이 들리고 있었다. 저들은 소리 없는 아우성으로 인간들에게 외치고 있었다. 아무리 크고 거대한 바위와 절벽이 막아서고, 아무리 큰 권력과 힘으로 억압해도 파도는 출렁이고 밀려와 그 바위와 절벽과 힘을 덮어버릴 것이라고, 작은 줄기, 작은 잎들이 손잡고 모여 함께 기어오르며 거대한 콘크리트 기둥을 푸른 잎으로 덮어버리듯이

 

우리 인간들이 버릇처럼 흘리는 눈물이 어디 값싼 것이냐고 외친다. 눈물은 사랑보다 뜨거운 것이라고 시인처럼 외친다. 다리 기둥 옆 메마른 땅이 비록 순순한 땅은 아닐지라도 소망의 보금자리 삼아 저 높은 기둥을 타고 올라 희망의 꿈을 펼칠 것이라고, 어둠의 세력을 넘어 밝고 빛나는 세상을 만들 것이라고 외치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저들은 오순도순 희망을 이야기하며 오른다. 땅이 메마를수록 뿌리는 더욱 깊이 내리고, 햇볕이 들지 않는 어두움은 빛을 향한 갈망으로 더욱 큰 생명력으로 불타오른다고, 아무리 파괴해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연회복의 꿈을 잃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담쟁이덩굴, #죽음기둥, #소리없는 아우성, #이승철, #희망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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