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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과 서양음악은 음을 이해하는 방식이 전혀 달랐습니다. 서양음악은 분할적이지만, 국악은 음을 집합적 또는 관계론적으로 이해했죠. 분할적이란 음을 해부해 파편화시킨다는 뜻이고, 관계론적이란 말은 음이 일종의 경락에 의해 연결된 것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음악을 만들고 이해할 때 밑에서 작용하는 집단적 사고방식이 판이하게 달랐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20세기에 서양문물이 물밀 듯이 들어와 이 땅에 자리 잡았고, 서양식 학교교육이 전면적으로 실시돼 버렸습니다."

 

지난 29일 임실 필봉농악전수관 내 필봉문화촌 전시관에서는 '2009 필봉농악풍물굿축제 흥소리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제도와 풍물굿'을 주제로 기획세미나가 진행됐다.

 

이날 세미나 발제자는 3명이었다. 오용록 서울대 국악과 교수는 '교육제도 내의 풍물굿'을, 양진성 필봉농악 예능보유자는 '무형문화재 제도와 풍물굿'을, 전지영 음악평론가는 '사회제도, 욕망, 풍물굿'을 각각 발표했고 전체토론이 이어졌다.

 

오용록 교수는 현 대학 국악과에서 진행 중인 풍물굿 교육 문제점을 하나씩 지적해 나갔다.

 

"서양음악이 기악, 성악, 작곡과로 나뉘어 있기 때문에 국악도 한 과 안에서 기악, 성악, 작곡 전공으로 나뉘었습니다. 서양음악의 기악이 악기별로 전공이 나뉘기 때문에 국악도 악기별로 전공이 나뉘었습니다. 서양음악이 관현악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국악도 관현악을 중요하게 여겨 합주과목은 선택이어도 관현악은 필수로 요구했죠. 이런 예는 수 없이 들 수 있는데, 이 모두는 겉으로 보이기 때문에 쉽게 알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겉으로 보이지 않고 안에 숨어 있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민요와 풍물굿이 국악의 뿌리가 뻗을 수 있는 토양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악은 기층음악이 있어야 그 다음단계의 판소리나 궁중음악 등의 전문가 음악이 가능해진다. 민요와 풍물굿이 바로 기층음악이다. 19세기 국악의 발전은 민요와 풍물굿이 전문가의 음악이 물고기처럼 놀 수 있는 물의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양진성 예능보유자는 무형문화재 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현재 무형문화재 제도 안에서 풍물굿은 예능분야 음악종목에 속해있는데, 그렇게 해서는 풍물굿의 온전한 모습을 이어갈 수 없다는 것.

 

"풍물굿의 성질은 같은 음악종목에 속하는 정악이나 산조, 판소리 등 음악 위주의 종목들과 달리 음악(기악과 성악) 이외의 춤, 극, 의식, 놀이 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결합한 중층적 성격을 가진 장르입니다. 그런데도 풍물굿을 음악으로 구분하고, 보호의 대상으로 그 음악적 요소를 중심으로 삼고 있습니다. 이는 한 사람의 신체 중 그 일부만을 보험에 든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전지영 음악평론가는 "문화정책 속에 문화예술이 없다"며 현 문화정책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화예술에 대한 부실한 마인드는 문화예술을 가치가 아닌 통치의 도구로 간주하고, 돈을 위한 산업화를 향한 제도(문화정책)를 낳게 됩니다. 이런 제도화는 제도 설계자들 혹은 권력 담지자들의 욕망의 결과일 뿐입니다. 그리고 그 경제적 희생물이 곧 풍물굿입니다. 농업구조개선정책이나 한미FTA 등이 바로 경제적 이윤과 문화예술을 장삿속으로 교환한 대표적인 경우죠. 전통적 농업구조 붕괴는 자연스럽게 마을공동체를 붕괴시키고, 이는 자연스럽게 풍물굿 위기를 가중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현 제도적 상황이 풍물굿을 온전히 보전하는 데 역행하고 있다는 것과 그렇다고 해서 작금의 상황이 그리 쉽게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에도 다들 동의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오용록 교수의 말처럼 '역사는 준비하는 자의 몫이고, 각자의 위치에서 본분을 다하는 것이 미래를 준비하는 올바른 자세'라는 데에서 의견의 일치를 보였다.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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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양진성.JPG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전주일보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필봉, #필봉농악, #풍물, #굿, #풍물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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