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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트에 장을 혼자 보기 어려운 친구와 갔다. 비가 와서 우산도 챙겨야 했다. 마침 문화센터에서 작품을 마친 어르신과 주부 들의 작품 10점 가량을 이왕에 갈 일이 있는 예술전문법인에 대신 제출해준다고 들고 나왔다.

붓을 들고 현장에서 과거처럼 명제가 나오는데 휘호를 하면 대회가 되고, 미리 정성껏 수십, 수백 번을 화선지에 작품을 완성해서 제출하면 대전이 된다. 각 시도 예총에서는 대전을 운영한다. 대전에서 몇 대 몇의 경쟁을 거쳐 입선을 시도에 따라 10번에서 15번을 하면 비로소 작가가 된다. 해마다 되는 사람이 있고, 몇 년마다 한 번씩 붙는 사람도 있으니 보통 작가가 되기까지 십 수년이 걸리는 것이다.

학원들이 운영이 잘 안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무료나 실비로 가르치는 각 지역의 문화센터를 비롯한 평생교육기관들의 다양한 강좌의 개설과 활성화에도 원인이 있다. 처음에는 줄긋기부터 시작해도 2년 3년이 지나면 대전에 작품을 출품해보고, 공부삼아 대회에 나가서 떨리는 붓을 가다듬어 바닥에 엎드려 겸허한 초심의 마음으로 진지하게 글씨를 쓰기도 한다

무더기로 작품들을 잃어버렸다. 내 작품도 아닌 다른 사람들의 작품들이라서 더욱 마음이 심란했다.  센터의 반회장과 총무에게도 연락해서 오시라고 했고 분실센터에 말해서 이마트 직원과 카트마다 다 뒤져보고 쓰레기 버리는 곳도 뒤졌다. 그러나 결국은 찾지 못했다.

예술전문법인 대표에게 사정을 말해서 제출마감을 좀 늦추기로 하고 작품을 다시 만들어 보기로 했다. 하지만 작품을 마감한다는 것은 원래 어느 소설가가 말했듯이 피마르는 작업이다. 그 피마르는 작업을 마치고 긴장이 풀렸을터인데 다시 집중하기란 참 어려울 터였다.

두 가지를 손에 들면 한 손에 든 것은 잘 잃어버린다. 하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의 작품들을 잃어버리는 우를 범하니 무척 심란하고 죄송했다. 더구나 내가 가르치는 사람들의 작품이 되고 보니 선생된 자로서 면모도 서지 않는 셈이었다.

하지만 회장과 총무와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내 불찰에 대한 책임감과 죄송함에 나는 풀이 죽은 상태였다.
"얼마나 놀라셨어요? 작품은 저희들이 다시 쓰면 되고, 올해가 아니라도 내년에 다시 지원하면 되잖아요. 선생님 가뜩이나 몸이 허약하신데 놀라셨네요 이렇게 신경쓰시고 건강이 탈나시면 어떡해요? 어서 집에 들어가세요!"

나는 눈이 젖고 가슴이 촉촉해졌다. 내 자신의 부덕함에 대한 자책인지 아니면 사람들에 대한 미안함인지, 작품을 잃고도 오히려 나를 위로하는 사람들의  따스함인지 모를 복합적인 감정이 일어났다.

다행히 그 분들은 모두 새로 작품을 완성했고, 더러는 먼저 만든 것보다 좀 완성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좋은 성적을 내었다. 그리고 여덟 분의 주부와 할머니는 고운 한복을 입고 돗자리를 깔고 전국여류서예대회와 전국노인서예대전에 참가해서 전원입상과 특상 및 대상을 수상했다.

칠칠맞게 소중한 작품들을 몽땅 잃어버린 부덕한 선생을 오히려 너그럽게 감싸준 분들이 좋은 성과를 올리게 되어 기쁘다. 전혀 듣지 못하는 중증청각장애인 선생과 소통을 위해 입모양을 크게 하면서, 때로는 동생처럼, 큰 언니처럼, 엄마처럼, 큰 오빠처럼 지내는 분들이다. 좋은 글씨를 쓰기 위해서는 연습도 중요하지만 사람이 되어야 학문도 된다는 말처럼 사람을 이해하는 따스한 참 마음이 성공의 기반이 되는 것 같다.


태그:#분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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