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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보홀섬에서 서식하는 희귀종 안경원숭이
 필리핀 보홀섬에서 서식하는 희귀종 안경원숭이
ⓒ 이승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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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세부 막탄섬에서 두 번째 밤을 지낸 다음 날은 아침부터 바빴다. 보홀섬으로 가는 연락선 시간에 맞춰야 했기 때문이다. 아침을 일찍 먹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막탄섬에서 세부 섬으로 연결된 다리를 건너 잠시 후 규모가 큰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승선 과정이 만만치 않다. 마치 공항에서 비행기를 탈 때와 비슷한 검색대를 거치고, 여권까지 확인한 다음에야 대기실로 들어갈 수 있었다. 승선 대기실에서 잠시 기다린 후 곧 우리들의 승선 차례가 되었다.

승선 티켓을 확인하고 밖으로 나서니 바로 선착장이다. 그런데 저 만큼 떨어진 배와 선착장 사이에 걸쳐 있는 승선용 다리로 가는 길 아래, 바다와 선착장 사이 바닷물에 몇 척의 어설픈 작은 배들이 눈길을 붙잡는다.

예의 대나무 날개가 양쪽에 달렸지만 그야말로 손바닥만큼 작은 배를 탄 이들은 구걸하는 사람들이었다. 대부분 여성과 어린이 들이었다. 어떤 여성은 나이 어린 작은 아이를 등에 업거나 품에 안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그들은 줄지어 걸어가는 관광객들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외치며 손을 들거나 넓은 천을 펼쳐든다.

넓은 천을 펼쳐든 것은 지나가는 사람들이 동전이나 지폐를 던질 경우 바닷물에 떨어지지 않고 쉽게 받을 수 있도록 마련된 것 같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대개 무표정하거나 구경삼아 바라볼 뿐 선뜻 돈을 던져주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 일행들 몇 사람이 동전과 1달러 지폐 몇 장을 던져주었을 뿐이었다.

세부섬 선착장 바닷물에 작은 배를 띄우고 구걸하는 사람들
 세부섬 선착장 바닷물에 작은 배를 띄우고 구걸하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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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배에 오르자 이번에는 선실 창문 밖에 아이들 몇이 나타났다. 아이들도 역시 양쪽에 대나무 날개를 단 아주 작은 배 위에서 두 손을 흔들며 구걸을 하고 있었다. 온몸이 새까맣게 그을린 아이들은 대부분 벌거숭이로 어떤 아이는 팬티도 입고 있지 않았다.

선착장 바다에서 구걸하는 아이들, 서너 살 아기도 헤엄칠 줄 알아

작은 배 한 척에는 작은 남자 아이 하나와 누나로 보이는 조금 큰 여자아이가 서너 살 정도로 보이는 남자 아이를 등에 업고 있었다. 어쩌면 아주 가난한 3남매처럼 보이는 아이들이었다. 그들도 선실 창문을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참으로 안쓰럽고 매우 불쌍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선실에서는 그들에게 몇 푼이나마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선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현지인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외국인 관광객들이었다. 우리들은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들을 멀거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아기를 업고 앉아 있던 여자아이가 일어서서 역시 손을 흔들었는데, 바로 그 순간 작은 배가 기우뚱거리며 중심을 잡지 못한 두 아이가 바닷물 속으로 곤두박질을 친 것이다. 아앗! 깜짝 놀란 나와 일행들이 비명을 질렀다.

등에 엽혀있던 아기까지 함께 바닷물에 곤두박질 했으나 아기도 헤엄치는 모습이 놀라웠던 구걸하는 3남매 아이들
 등에 엽혀있던 아기까지 함께 바닷물에 곤두박질 했으나 아기도 헤엄치는 모습이 놀라웠던 구걸하는 3남매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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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다음 순간 바닷물에 빠진 두 어린이가 물속에서 솟아 나와 머리를 내밀며 곧 헤엄을 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헤엄을 치는 모습이 더욱 놀라웠다. 아이를 업고 있던 큰 아이야 당연히 헤엄을 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등에 업혀 있던 서너 살 쯤으로 보이는 아기는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 작은 아이도 능숙하게 헤엄을 치는 것이 아닌가. 등에 업혀 있어서 배에서 더 멀리 곤두박질쳤던 아기가 잽싸게 헤엄을 쳐 뱃전에 다가가자 형과 누나가 아기의 손을 붙잡아 배 위로 끌어올려주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네. 눈앞에서 어린애 하나 물에 빠져 죽는 걸 빤히 바라보게 되는 줄 알았잖아?"
"아이쿠! 놀래라! 저 녀석들 때문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선실에서 그들을 바라본 사람들이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 때 연락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부섬을 출발한 연락선은 1시간 40여 분을 달려 보홀섬에 도착했다. 날씨는 무더웠지만 쾌청했다. 보홀섬은 인구 100여 만 명으로 필리핀에서 세부섬에 이어 10번째로 큰 섬이다. 그렇지만 세부섬처럼 관광지로 외부에 많이 알려진 섬이 아니어서 조용하고 한산한 모습이었다.

"이곳이 보홀섬입니다. 먼저 안경원숭이부터 구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주의 하실 것은 안경원숭이를 그냥 눈으로만 보셔야지 절대 손으로 만지시면 안 됩니다."

"왜요? 만져볼 수 있으면 만져보고 싶을 것 같은데, 왜 안 된다는 거죠?"

"안경원숭이는 두개골 뼈가 아주 약하답니다. 그래서 머리를 잘 못 만지면 치명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랍니다."

보홀섬 해안 바닷물 속의 맹그로브 숲
 보홀섬 해안 바닷물 속의 맹그로브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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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이드로부터 안경원숭이에 대한 설명을 듣고 버스에 오르자 곧 달리기 시작했다. 조금 달리자 아주 멋진 바닷가의 풍경이 나타난다. 바닷물 속에 잠긴 숲이었다. 우리나라에선 바닷물에서 사는 나무가 없는데 이곳 바닷가엔 물속에 숲을 이룬 나무들이 있어서 아주 색다른 풍경이었다.

동물처럼 새끼 낳아 번식하는 해안가 갯벌에서 자라는 맹그로브 나무

바닷물 속에 형성된 숲이라니, 맹그로브 나무숲이었다. 맹그로브 나무는 그 식생이 아주 특이한 나무다. 열매나 뿌리로 번식하는 나무가 아니라 동물처럼 새끼를 낳는 나무라고나 할까. 식물이 새끼를 낳다니 얼마나 특별한가.

그런데 사실이었다. 맹그로브 나무는 필리핀 등 동남아와 카리브 해안. 인도와 방글라데시 등의 바닷가에 서식하는 나무다. 그런데 그 번식하는 모습이 마치 동물이 새끼를 낳는 것과 비슷해서 일명 '새끼 낳는 나무'로 불리는 것이다.

맹그로브는 모든 식물 중에서 유일하게 나뭇가지의 가장자리에 생긴 새끼 나무가 바닷물에 떨어져서 번식하는 특이한 나무다. 민물 때 바닷물에 떨어진 새끼 가지는 썰물이 되면 바닥 갯벌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것이다.

모내기 끝낸 논 가운데 농가 풍경
 모내기 끝낸 논 가운데 농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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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번식하는 맹그로브는 아열대와 열대 지방의 해안선 얕은 곳에서만 서식하는데 현재까지 4과 12종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일단 뿌리를 내린 맹그로브 숲은 육지로부터 흘러내려 온 퇴적물에 의해 점차 육지로 변하기 시작한다. 이런 번식 방법으로 맹그로브는 해안선을 확장하는데, 그 속도는 지역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육지를 넓히는 역할을 하는 나무로 알려져 있다.

도로는 대체로 한산한 편이었다. 도로변 농촌 풍경은 예상했던 것만큼 다양하지 못했다. 열대지방이어서 벼농사가 3모작이 가능하기 때문에 모내기를 하는 논과 벼 베기를 하는 논이 함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이드의 말에 의하면 3모작이 가능하긴 하지만 이곳 농민들은 거의 2모작만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모를 내고 벼를 베는 시기가 거의 비슷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논들은 대부분 모내기를 한 지 얼마 안 된 모습이었고 아직 모내기를 하지 않은 논들도 많았다. 그래도 우거진 숲을 배경으로 모내기를 끝낸 논 가운데 자리 잡은 농가의 풍경은 평화로웠다.

안경원숭이 사육장 입구
 안경원숭이 사육장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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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과 농촌길을 달려 도착한 안경원숭이 사육장은 너무나 실망스런 모습이었다. 원숭이들이 살고 있는 곳은 너무나 비좁고 초라했다. 넓은 숲속에 살고 있을 원숭이들을 그렸었는데 원숭이들은 불과 50여 평이나 될까, 비좁은 공간에 서있는 작은 나무줄기들을 껴안고 있었다.

"아니 무슨 원숭이가 이렇게 작아, 이건 원숭이가 아니라 다람쥐잖아?"

원숭이들도 작고 앙증맞기는 마찬가지였다. 다람쥐보다는 조금 더 컸지만 원숭이라기엔 너무 작은 모습이었다. 더구나 원숭이들은 하나같이 두 눈을 꼭 감고 있어서 원숭이인지 다른 동물인지 구별이 안 될 정도였다.

"원숭이들이 눈을 떠야 그 눈이 커서 안경처럼 보이는데 눈을 꼭 감고 있어서 아쉽네요."

가이드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여기까지 와서 안경원숭이의 본 모습을 못보고 간다는 게 말이 되는가. 방법을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러나 방법이 막연했다. 손으로 만져서 깨울 수도 없고, 그렇다고 큰 소리를 질러서 안경원숭이들을 놀라게 할 수는 없었다.

눈을 내려감고 나뭇가지를 끌어안고 있는 안경원숭이
 눈을 내려감고 나뭇가지를 끌어안고 있는 안경원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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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커서 안경원숭이, 강제로 거처 옮겨 스트레스 받으면 자살한데요

그래서 원숭이들이 꼭 껴안고 있는 나뭇잎을 한 개 땄다. 그리고 그 나뭇잎으로 원숭이 한 녀석의 얼굴을 슬슬 건드려 보았다. 그랬는데 그 방법이 적중했다. 녀석이 눈을 뜬 것이다. 마치 "누구세요?" 하는 듯 커다란 눈을 크게 뜬 것이다.

"아하! 저 눈 좀 봐요? 저 눈 때문에 안경원숭이라고 하는구나."

정말 안경을 쓴 것 같은 얼굴 모습, 정말 그럴듯한 안경원숭이였다. 다른 사람들도 같은 방법으로 원숭이들이 눈을 뜨게 했다.

"그 녀석들 참 귀엽게 생겼구먼, 한 마리 사가지고 가서 애완용으로 길렀으면 좋겠네."

누군가 한 사람은 안경원숭이가 몹시 탐이 나는가 보았다. 애완용으로 기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것 같았다. 가이드에게 혹시 사 가지고 갈 수 있느냐고 묻는다.

"절대 안 됩니다. 필리핀에서도 저 원숭이들은 멸종 위기의 보호동물이거든요. 그래서 외국 반출은 절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저 안경원숭이들은 강제로 옮기면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해 버리거든요"

안경원숭이 사육장 내 기념품 가게
 안경원숭이 사육장 내 기념품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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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경원숭이 사육장 뒤편 야산 풍경
 안경원숭이 사육장 뒤편 야산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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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말이었다. 동물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스스로 자살을 하다니. 그러나 사실이라고 했다. 안경원숭이는 다른 이름으로 타르셔스 원숭이라고도 부르는데 세계에서 가장 진귀한 동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안경원숭이는 몸길이가 불과 12~13㎝밖에 안 되는데 눈이 머리의 반을 차지하고 머리가 좌우 180도까지 회전하는 특이한 구조를 가진 동물이다. 야행성으로 낮에는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가 밤이 되면 메뚜기 등 곤충을 사냥한다. 식물 대신 곤충을 사냥해 먹으니 육식동물인 셈이다.

"그 녀석들 보기보다 성깔도 사납고, 까다로운 녀석들이구먼"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일행은 애완용으로 기르고 싶은 욕구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았다. 안경원숭이 20여 마리를 사육하고 있는 이곳엔 기념품가게도 함께 있었다. 그러나 기념품이랬자 안경원숭이 인형과 액세서리 몇 종류가 있을 뿐이어서 눈길이 별로 가지 않았다.

사육장 앞 한산한 거리 풍경
 사육장 앞 한산한 거리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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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으로 나오자 햇볕이 쨍쨍하다. 사육장 뒤편 야산 아래쪽엔 야자나무 숲이 울창하다. 산은 오히려 평범해 보인다. 열대지역 특유의 정글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도로도 한산했다. 사육장 근처에 있는 한 농가 뜰 나무 밑에서는 어미 닭 한 마리가 병아리 10여 마리를 거느리고 모이를 찾는 모습이 옛날 우리 농촌을 떠올리게 하여 정겨운 모습이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애완용, #안경원숭이, #보홀섬, #이승철, #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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