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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그것은 인간의 삶이었다. 이데올로기, 그것도 인간의 생산물이었다. 그것들은 인간이 없으면 존재할 수 없고, 인간에게만 필요한 것들이었다. 특히, 이데올로기란 인간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 인간이 만들어낸 발명품이었다. 그런데 그 발명품은 당초의 목적대로 쓰이지를 못했다. 그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 인간의 문제였다. (120쪽)

 

여기 이 <인간연습>에는 이데올로기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한 인간에 대한 이야기가 적혀있다.

 

그 동안 <한강> <태백산맥> <아리랑>과 같은 책을 통해 굵직굵직한 대한민국의 역사를 소설로 승화시켜온 조정래님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게 이 책은 이데올로기에 발목 잡힌 어떤 한 인간, 그리고 우리 사회에 대한 그의 깨달음인 것이다.

 

이 책의 중심인물인 윤혁. 그는 젊은 시절, 사회주의가 가장 이상적인 체제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그것은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이상적인 사상이었으며, 실제로도 그 시대의 사회주의라는 울타리 속에서 공산당원과 인민들이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는 가슴 훈훈한 장면을 매번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믿었다. 사회주의가 이 세상에서 가장 성공적인 이념이라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그는 공산당의 부름에 기꺼이 응했으며, 남파하여 공산당을 위한 거점을 마련하는 것에 앞장섰다. 하지만 이념의 대립이 가져온 반공법이라는 것이 무서웠나보다. 자신이 가장 친하다고 여겼던 친구의 배신과 함께 그는 남쪽의 정부에 억류당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오랜 세월동안 비전향장기수라는 이름하에 자신이 믿었던 이념이 틀리지 않았다고 저항한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졌다. 그리고 또 북쪽의 인민들이 쫄쫄 굶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토록 가슴 따뜻했던 사회주의가 왜 무너진 것인지. 그는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밥 먹는 철학' 을 표방하는 사회주의라는 것이 왜 백성들을 굶게 하느냐? 라는 비아냥거림에 아무런 변명조차 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는 남쪽에 억류되어있는 자신과 뜻을 같이했던 비전향장기수들이 희망을 잃고, "이제껏 우리는 헛살았어요" 라는 체념과 함께 생을 마감하는 장면을 지켜보기까지 한다. 대체 그들이 한평생 자신뿐만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에게까지 누를 끼치면서 지켜야 했던 것이 허망한 것이었다는 알게 되는 순간에 대체 어떤 기분이 들까?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인간이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있어야 존재하는 것들로 인해 우리가 받고 있는 지금의 현실, 그리고 이들이 받아야만 했던 지난날의 고통이 너무나도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어렴풋이 깨닫는다. 모든 이데올로기적 변질의 중심에는 '이성적 인간' 보다는 '본능적 인간' 이 우월하게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는 인간이 존재해야만 필요한 '이데올로기' 에 사로잡힌 수많은 인간들에게 있어서 어쩌면 지금과 같이 무너지고 깨닫고 다시 무너지는 것을 반복하는 것이 '인간연습' 이 아닌가? 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그래서 지금도 우리는 인간연습을 하고 있는 중이다. 신 자유주의라는 허상이 세계 만방에서 무너져가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는 또 다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새로운 선택을 기다리고 있다. 그 선택은 대단한 것일 수도 있고 대단치 않은 것일 수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그것이 우리가 조금 더 인간다운 생활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새로운 것은 지금껏 실패해왔던 이념의 전쟁의 결과물을 받아들이는 것을 기본으로 삼아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 인간연습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래서 앞으로 나아가는 본성을 지닌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지금 또 다른 인간연습을 진행 중에 있다.

 

한 인물은 지난 날의 실패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게 글로 알리고 있으며, 또 한 인물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본능의 이데올로기'를 견제하기 위해 시민단체를 만들어 나가고 있으며, 또 한 인물은 우리의 어린이들이 더 이상 상처받지 않도록 그들의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었다. 모든 인물들이 인간이 인간답게 살고자 할 때 필요한 <인간연습>을 실행 중에 있었다.

 

마지막으로 나는 이 책에서 또 한 번 언급되는 리영희님의 말을 담고자 한다. 아마도 이것이 <인간연습>의 저자 조정래님이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가장 핵심적인 한마디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인간 연습

조정래 지음, 실천문학사(2006)


태그:#인간 연습, #조정래 , #실천문학사,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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