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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잘 짓는 자는 아마 병법을 잘 알 것이다. 비유컨대 글자는 군사요, 글 뜻은 장수요, 제목은 적국이요, 고사의 인용은 전장의 진지를 구축하는 것이요, 글자를 묶어서 구를 만들고 구를 모아서 장을 이루는 것은 대오를 이루는 진을 치는 것과 같다.

 

운에 맞추어 읊고 멋진 표현으로써 빛을 내는 것은 징과 북을 울리고 깃발을 휘날리는 것과 같으며, 앞뒤의 조응이란 봉화요, 비유란 유격이요, 억양반복이란 맞붙어 싸워 서로 죽이는 것이요, 파제한 다음 마무리하는 것은 먼저 성벽에 올라가 적을 사로잡는 것이요, 함축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늙은이를 사로잡지 않는 것이요, 여운을 남기는 것은 군대를 정돈하여 개선하는 것이다. (228쪽. 소단적치인 1권에서 인용)

 

연암 박지원은 글을 병법에 비유했다. 글과 군대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는 소재를 가지고 그 둘 사이의 유사점을 절묘하게 잡아내는 능력과 보는 이들로 하여금 고개를 끄덕이도록 만드는 글 솜씨는 우리의 선조였던 연암 박지원이라는 인물에 대하여 그 당시도 그랬고 지금도 그를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을 보유한 이유를 알 수 있다.

 

대문장가인 박지원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 아니라면 대체 어떤 것이 가문의 영광일까? 흥미롭게도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라는 책은 읽는 모든 독자들에게 가문의 영광이 될 자격을 부여해 주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 우리가 그러한 영광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지문'이라는 한 남자와 우리를 동일시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가 '지문'이 되어 연암에게 직접 글쓰기를 배우는 것과 같은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이 책은 책의 서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처럼 인문실용소설이라는 다소 생소한 장르를 표방하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어떤 글쓰기 책들보다 가독성부분에서 상당히 뛰어난 장점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다가 나는 허접스럽지 않는 소설구성과 사물의 묘사력은 제목에서 연암선생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거론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흐드러진 봄날이었다. 겨우내 집 안에만 갇혀 지냈던 더벅머리 아이들이 따스한 기운을 참지 못하고 골목으로 뛰어나왔다. 마을 뒤편으로 봉긋하게 솟은 언덕에서는 희고 검은 나비들이 새로 피어난 꽃들을 마음껏 희롱하는 중이었다. 개울에 둘러앉은 아낙네들은 수다를 방망이 삼아 빨래를 두드려댔으며, 제비들은 그 소란 속에서도 둥지를 만들 가지들을 쉴 새 없이 우듬지로 나르고 있었다." (7쪽)

 

이렇듯 섬세한 문장력으로 가진 글쓴이에 의해 태어난 제자 '지문'과 스승 연암 박지원의 "글쓰기란 어떤 것인가?" 에 대한 문답식 구성을 바라보고 있자면 그리고 찬조출연 하신 박제가 선생의 말씀까지 듣고 있으면, 이 책에서 내가 과연 무엇을 얻을 것인지에 대하여 크게 애쓰지 않고도 쉽게 체득할 수 있었다.

 

글쓰기 법칙 : 1. 푹 젖는 것이 귀하다.

 

"독서는 푹 젖는 것을 귀하게 여긴다. 푹 젖어야 책과 내가 서로 어울려 하나가 된다."

(70쪽)

 

연암선생은 지문에게 <논어>를 천천히 읽으라. 지시하면서, 외우려 들지 말고 음미하고 생각하면서 읽는 것을 첫 번째 과제로 제시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바라보면서 나는 속독이라는 것이 과연 그렇게 의미가 있는 독서법인지에 관한 의문이 제일 먼저 들었다. 연암은 우리에게 빨리 읽는 것에 연연하지 말고, 한 글자 한 글자를 볼 때마다 푹 젖는 것과 같이 생각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연암을 속독보다는 숙독이 훨씬 더 유용한 독서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시간이 촉박하고 얻어야 할 정보가 많더라도 말이다.

 

글쓰기 법칙 : 2. 천지만물이 모두 책이다.

 

지문에게 주어진 두 번째 과제는 붉은 까마귀에 대해서 글을 지어보라는 과제였다. 붉은 까마귀가 어디에 있다고 우리더러 붉은 까마귀에 대한 글을 지어라고 했을까? 아니나 다를까 지문의 생각도 나와 마찬가지였다. 그는 한참동안이나 고심했고 우연한 깨달음으로 인해서 글을 써냈다. 그는 고심을 통해서 지문은 약의 이치를 알게 되었고, 깨달음을 얻고 글을 써내었으므로 오의 이치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서 연암은 이야기한다.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는 거리를 두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네가 이리저리 걸으며 까마귀를 본 것이 그 방법이었다. 그럴 때 비로소 문제를 객관적으로 인식 할 수 있다. 그것을 일컬어 약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문제를 인식하고 나면 언젠가는 문제의 본질을 깨닫는 통찰의 순간이 오는 법. 네가 갑자기 깨달았다고 한 그 순간이니라. 통찰은 결코 저절로 오지 않는다. 반드시 넓게 보고 깊이 파헤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것을 일컬어 오의 이치라고 하느니라." (110쪽)

 

글쓰기 법칙 : 3. 원칙을 따르되 적절하게 변통하라 의중을 정확히 전달하라.

 

지문에게 주어진 세 번째 과제는 대문장가 한신에 관한 글을 짓는 것이었다. 한나라 때의 무장이 대문장가라니? 지문은 이해가 되지 않는 스승의 문제에 대하여 깨달음을 얻었고 그는 다시 글로 표현했다.

 

병법에 물을 등지고 진을 치는 배수진은 나와 있지 않다. 여러 장수들은 불복할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회음후는 말했다.

"이것은 병법에 나와 있는 데 단지 그대들이 제대로 살피지 못했을 뿐이다. 병법에 '죽을 땅에 놓인 뒤라야 살아난다' 고 나와 있지 않던가." (143쪽)

 

한신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에서 '죽을 땅에 놓인 뒤라야 살아난다' 라는 원칙을 갖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었으므로 과연 대문장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책이며 글쓰기라고 연암은 이야기했다. 이미 있는 원칙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작업. 비록 쉽진 않은 일이지만 수긍할 수 있었다.

 

글쓰기 법칙 : 4. 사이의 묘를 깨닫다.

 

지문은 박제가에게서 이는 살에서 생기는가, 옷에서 생기는가? 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그를 기특히 여겨 붓 끝을 도씨 삼아 거짓된 것들을 찍어버릴 각오로 글을 쓰라는 당부를 보탠다. 지문은 박제가의 물음에 대한 답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연암은 이야기한다.

 

"내 말을 그저 양쪽의 입장을 모두 고려하라는 역지사지 정도로 들어서는 안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양쪽의 입장을 고려해 무엇을 얻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양쪽을 고려하되 반드시 새롭고 유용한 시각을 창출해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내가 서 있는 자리와 사유의 틀을 깨고 나갈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184쪽)

 

사이를 관찰하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연암이 이야기하는 글쓰기의 가르침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암이 앞서 말한 생각하는 독서와 관찰과 통찰이 필요할 것이다. 자신의 주관이 없는 상태에서 상황을 고찰하지 않고 쓰는 글은 글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 법칙: 5.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하다.

 

사실 지문이 연암의 물음에 답하고자 썼던 모든 글은 지문의 글이 아니라 박지원의 글이다. 하지만 이 책은 실용소설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에 박지원의 글을 가상의 인물인 지문에게 덮어씌워 우리에게 학습효과를 고취시키고자 한 것이다. 그리고 글쓰기를 병법에 비유한 서문의 인용구도 박지원의 글이지만 소설 속에서는 지문이 앞서 깨달은 것을 바탕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지문이 써낸 병법에 비유한 글을 보고서 연암은 지문에게 글쓰기의 기술은 완벽하나 딱 한 가지가 부족하다고 이야기 했는데, 연암은 <사기>를 지은 사마천을 보면서 깨달음을 얻고 글을 지어보라는 마지막 과제를 남겼다.

 

글쓰기 법칙 : 6. 사마천의 분발심을 잊지 마라.

 

사마천이 후대에 글을 남기기 위해 자신에게 가해진 모진 고문을 견뎌내고 마침내 그 위대한 저작을 완성시켰다는 사실을 혹시 알고 있는가? 지문은 비로소 마지막 퍼즐이었던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문은 자신의 입신양명에 연연하였던 글쓰기에 반성을 하게 된다.

 

글쓰기에 중요한 것은 돈과 명예가 아니요.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나는 글. 바로 그것이 진정한 글쓰기라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글쓴이는 사마천의 분발심을 나비를 잡고자 하는 어린 소년에게 대비시켰다.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지만, 나중에서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그것은 사마천이 글쓰기 그 한 가지에 모든 것을 불어넣은 것과 마찬가지로 소년도 꽃에 앉아 있는 나비를 잡기위해 숨을 죽이고 동작을 최소화하여 정신을 집중하여 그 나비에게 손을 뻗는 것이었다.

 

오마이뉴스 기사 중에 '치열한 잉걸이 좋다'라는 제목을 가진 기사를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속으로 '에이~ 아무래도 잉걸보다는 버금이 좋고 오름이 좋지요'라는 생각을 가졌었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그 기자 분은 스스로 원하는 글을 썼고, 그리고 그것이 아주 못 볼 정도는 아닌 것에 만족했던 것이었다. 그분이 이 책을 읽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연암이 제일 강조하는 분발심을 가진 문장가라는 것에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님! 당신은 연암이 인정한 사람입니다. 자부심을 가지세요."

이 말을 그에게 전하는 동시에 나의 글도 연암의 기분을 조금이나마 만족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지면서, 앞으로 글을 써내려갈 것이다. 그리고 혹시 잘 보이고 싶은 글을 쓰고자 하는 분이 있다면 글을 쓰기 전에 이 책을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박현찬, 설흔 지음, 위즈덤하우스(2007)


태그:#연암에게 글쓰기를 배우다, #설흔,박현찬, #예담, #단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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